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32
제134화
134화
죽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모든 것을 빼앗고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
그래서일까.
그런 죽음을 전달하는 저승사자가 나타나자, 모든 것은 정말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제, 제발. 제발 자비를…….”
“미안. 여기까지네.”
태규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나름의 예의를 지키던 저승사자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느낌이 달라져 버렸다.
무릎까지 꿇은 채 살려달라며 싹싹 비는 박황석. 하지만 저승사자는 그에게 조금의 자비조차 베풀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각. 또각. 새까만 구두 소리가 점점 박황석에게로 다가갔다.
이토록 확실한 죽음이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내 저승사자가 손을 들어 박황석의 심장에 올려버렸다.
‘뭔가가 이상하잖아, 이건.’
태규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간절하게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이건 마치, 저승사자가 박황석을 살해하는 것 같지 않은가.
심지어 그는 말했다. 너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기록될 것이다…… 하고 말이다.
‘잘못됐어. 너무 많이.’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것은 비단 태규만이 아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멈춰!!”
현무와 태규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달려 나갔다.
저승사자를 막기 위해서.
아무리 박황석이 인간 취급도 아까운 쓰레기 같은 놈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죽여버리는 것은 정말 아니지 않은가.
막아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퍼억!
“뭐, 뭐야 이거?!”
저승사자의 바로 앞까지는 왔지만,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투명한 벽이 쳐져 있는 것처럼.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저 무언가에 가로막힐 뿐.
저승사자와 태규가 있는 세계가 완전히 분리된 것만 같았다. 저승사자는 이런 것조차 알고 있었던 것인지 뒤를 돌아보며 태규와 눈을 맞추더니, 이내 씩 웃어 보였다.
“가만히 있어요. 이건 제 일이니까.”
“저승사자! 너 도대체…….”
“현무 님, 어떻게든 해봐요. 이러다가 박황석 씨가 정말로…….”
“잠깐만. 일단, 이게. 말이 안 되는데?”
현무라면 어떤 방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무려 사방신 아닌가. 일개 저승사자와는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아주 격조 높은 신 말이다.
현무는 바로 투명한 벽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무언가 주문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식은땀만 흐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현무가 땅이 꺼지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 태규 사장.”
“현무 님…….”
“안 될 것 같다. 이건.”
신들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특히 현무 정도의 격조 높은 신이라면 아주 사소한 거짓말로도 커다란 천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말하는 현무의 말은 정말로 사실인 것이다.
사방신인 현무조차도 넘을 수 없었던, 겨우 저승사자가 만들어낸 벽.
그 너머에서, 저승사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마칠 뿐이었으니.
“크억, 크아아악!”
품속에서 자그마한 생사부와 붓을 꺼낸 저승사자가 오른쪽 아래 끄트머리의 빈 곳에 박황석의 이름 석 자를 적어넣었다.
박황석. 사망.
사인, 심장마비.
오랜 옛날의 한자로 이루어진 글자가 하나하나 새겨질 때마다 박황석은 커다란 고통을 느끼며 절규했지만, 저승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 놈의 생사부는 방금 고쳐 써졌어.”
그리고 이내 모든 것들을 적어내어 생사부를 완전히 고쳐 썼을 때.
“제, 제발…… 커흐윽!”
한 마디의 비명과 함께. 아주 조금의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심장을 부여잡은 채 박황석은 털썩 쓰러져버렸다.
“아아…….”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황석이라는 한 악인의 생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저승사자의 손에. 죄를 물을 수조차 없이, 살해당해버린 것이다.
* * *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태규와 현무는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호를 봐주고 있는 삼신에게 조금만 더 신세를 지자고 생각하면서. 집 근처의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심란함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평소에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현무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도 맥주를 마셨다. 신이라 아는 게 많은 탓이었을까. 그는 태규보다도 더 많이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현무가 술을 먹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흔히 말하는 ‘술찌’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맥주를 작은 것으로 한 캔도 다 안 마셨는데, 벌써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혀가 살짝 꼬여버렸으니 말이다.
한참이나 한숨을 푹푹 내쉬며 침묵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규 사장. 미안해.”
“아니에요. 현무 님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것까지는…….”
“약속한 게 있잖아. 도와주겠다고. 물론 이번 일은 엄연히 따지면 내 능력 밖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안해. 태규 사장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잖아. 그렇지?”
“그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규.
이번 일은 엄연히 따지면 태규에게 있어서는 배드엔딩이었다.
초롱은 한을 풀었다. 아니, 내려놓았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고작 당신 같은 사람에게 한을 품는다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느껴버렸으니까.
심지어 박황석은 죽어버렸다. 아니, 저승사자에게 살해당했다.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심으로 고해성사를 하며 기도할 사람이 남지 않아버렸다.
“그 저승사자 놈. 아니,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 녀석, 저승사자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그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잖아. 저승사자가 생사부를 고쳐 썼어. 그건 염라대왕이나 직접 와야 가능한 짓이라고.”
생사부는 말 그대로 사람의 생과 사가 적힌 아주 중요하고 고결한 서류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일개 일꾼에 불과한 저승사자가 고쳐 쓰는 것으로 사람을 죽여버렸다.
일개 저승사자가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저질렀다 하더라도 저승에서 어떤 벌을 받을지 차마 가늠조차 나지 않는. 중범죄 중에서도 연쇄살인에 가까운 중범죄라고 했다.
“심지어 마지막의 그 투명한 벽. 그건 나조차도 못 뚫었잖아.”
“그렇죠. 사방신이시잖아요. 현무 님은.”
“뭘 어떻게 한 건지 감조차 안 잡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저런 건 정말로 처음 봤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정말로.”
후르릅, 후르릅.
현무는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표정으로 계속해서 맥주를 마셨다.
태규는 생각했다. 새로 부임한 저승사자가 어딘가 많이 이상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선배인 저승에게 막 대한 것도 그렇고,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정보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던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이번에는 생사부를 고쳐 쓰고, 현무조차 뚫을 수 없었던 벽까지 세워내며 대놓고 자신이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기까지 했으니.
“현무 님이 뚫지 못했잖아요. 그 정체도 모르는 벽을요.”
“……그렇지. 미안하다, 태규 사장.”
“그럼 다르게 말하자면. 정말 혹시라도요.”
어쩌면 태규와 현무 모두가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던 이야기.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겨났을 때, 다른 모든 가능성이 거짓이라면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정답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논해봐야 할지도 몰랐다.
“새로 온 저승사자가. 현무 님보다 더 강한 신이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아.”
현무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연신 맥주를 들이켤 뿐.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당장 백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와중이었는데, 거기에 저승사자의 일까지 겹쳐버렸으니. 머리가 심란하긴 했지만, 내일도 역시나 살아가야만 했다.
“알아볼게. 어떻게 해서든, 뭐라도 알아볼게.”
“감사해요, 현무 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따라 흐리고 칙칙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태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호 보고 싶다.”
처음에는 미호를 그 집에 데리고 갈까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역시 데려가지 않기를 참 잘했구나 싶었다.
미호가 철이 많이 들기는 했으나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였으니까.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버리는 그런 광경을 아이에게 보여줘 버렸다면, 태규는 그런 자신을 아마도 평생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박황석 또한, 결국에는 내가 지켜내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으니까.
아무런 말도 없이 터벅터벅 으슥한 밤거리를 걸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표정을 고쳐 썼다.
미호는 속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표정과 함께 마음도 다시 재단장을 했다.
좋은 생각만 하기로. 아까 보았던 끔찍한 일과, 가슴에 커다란 돌처럼 내려앉아 버린 이 근심을 최대한 숨겨보기로.
그렇게 생각하며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집의 문을 연 순간.
“압빠아아아! 다녀오셔써요!”
“……미호야.”
우다다다 달려 나와서는 태규의 다리를 끌어안는 미호.
아이를 보자마자 느꼈다.
행복하다고. 그 태산 같던 근심 걱정이, 봄바람에 눈이 녹듯 스르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응. 잘 다녀왔어요, 아빠.”
“고생 많으셔써요! 압빠 보고 싶었는데, 그래두 삼신 할무니가 재미있게 놀아주셔서 괜찮았어요. 압빠도 갠차나요?”
“당연하지. 우리 미호만 있으면 아빠는 다 괜찮아요.”
태규는 그런 미호를 꼬옥 끌어안았다. 미호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걸로 됐을지도 몰랐다. 많은 것들이 포옹 한 번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