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56
제158화
158화
죽음.
영원한 작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것.
그런 죽음에 대해서 보통의 아이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당신이 부모라고 생각해 보아라. 이제 유치원을 다니는, 살면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인생의 첫 체험이기에. 좋은 것만 보여주기에도 부족한 나이의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은가.
적어도 태규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호는 이미 수많은 죽음을 겪어왔었다.
전생의 아빠가 죽었고, 엄마 또한 오랜 세월을 버틴 뒤에 소멸하여 사라졌다.
그렇기에 미호는 알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 것인지.
– 태규 씨 왔어요? 아이고, 빈손으로 오라니까. 또 무슨 과일을 그렇게나 사 오셨대.
바로 어제, 미옥의 병문안을 잠시 다녀왔었다.
끓이고 있던 약을 잠시 내려놓고. 샤워를 잔뜩 하고 갔었는데도, 미옥은 태규의 몸에서 한약 냄새가 난다며 웃었다.
‘아주머니.’
병원에 입원하고 이 주일.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고, 미옥은 머리를 전부 밀었다.
털실로 만들어진 모자를 쓴 채로. 아직 자신의 머리가 어색하긴 하지만, 이렇게 다 밀어버리니 시원하고 좋다며 허허 웃던 아주머니의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항암제는 강했다. 세포를 죽이는 약이었기에 몸 입장에서는 극독과도 같았다.
미옥은 그사이 눈에 띄게 말라버렸고, 그런 몸으로 태규가 왔다며 과일을 깎아주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무리하지 말라 하는데도.
– 우리 애들은 밥 잘 먹어요?
잘 먹지요. 너무 잘 먹지요.
매일매일 소반에 찾아와서, 누나가 민규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배부르게 먹고 갑니다.
그렇게 말해주자 미옥은 참 다행이라며 다시 웃었다.
태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민규는 보았을까, 과연 알고 있을까.
미옥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파도처럼 밀려드는 여러 생각 때문에 머리가 띵하게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미호가 이렇게 묻는 것이다.
“압빠. 미옥 아줌마가 그렇게 많이 아파요?”
“……응. 많이 아프셔.”
“그럼 압빠가 약 만들면 미옥 아줌마가 안 죽어요?”
미호는 어떻게 알고 있던 것일까.
미옥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그런 미옥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이 열심히 노력 중이라는 것까지.
질문하기 전 먼저 대답했다.
“응. 그렇게 할 거야.”
“다행이다.”
“미호는 어떻게 알았어? 미옥 아주머니가 많이 아픈 거.”
약을 만드는 이유는 대충 둘러대었고, 다른 것들은 미호에게 최선을 다해 숨겼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모를 줄 알았다.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었으니까.
심지어 민규 또한 마찬가지였다.
민규는 소반에서 항상 해맑았고,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미호가 이야기해주었으니까.
그렇다면 미호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것일까.
미옥이 아프다는 것. 심지어 죽을 정도로 아프다는 것을.
“우움…… 그게요.”
평소답지 않게 조금 망설이던 미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규가 알려줘써요.”
“민규가?”
이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도저히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민규가 알려줬다고 했다. 다름 아닌 미옥 아주머니의 아들인 민규가.
당장 어제저녁에도 소반에 누나와 함께 찾아와서 웃는 얼굴로 밥을 먹고 갔었던 그 민규가, 사실은 미옥 아주머니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고?
그런 태규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은 것일까. 미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속마음이 들려서…… 그래서.”
“아…….”
미호는 평범한 아이와는 달랐다. 태규처럼 사람과 이매망량 둘 사이에서 발을 걸치고 있는 녀석이지만, 동시에 이매망량에 조금 더 가까운 아이였으니까.
그렇기에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때때로는 미호가 원하지 않더라도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민규가 속으로 말했던 거야?”
“민규가 며칠 전부터 계속 울었어요. 유치원에서는 그냥 재미있게, 평소랑 똑같이 웃으면서 가치 놀았는데. 속에서는 계속, 계속 울어서. 그래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는데.”
미호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였다.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민규였는데. 속마음으로는 계속 울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가갔다. 민규가 좋아하는 놀이를 하자고 먼저 말했고, 간식으로 나온 쿠키까지 먹으라며 건네주었다.
미호는 말했다. 민규는 그저 웃었다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정말로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계속 웃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모전자전이라더니.’
마치 미옥 아주머니가 태규에게 그랬던 것처럼, 민규 또한 마찬가지였던 거다.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는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걱정을 타인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미옥과 민규를 그렇게 했다.
고작 다섯 살.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를 많이 닮았던 민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하였다.
‘민규는 어떻게 알았을까.’
순간 그런 고민을 하였지만, 이내 의미 없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만두었다.
자식이다. 부모가 이렇게나 크게 아프다는데, 구태여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미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민규 밥은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미옥이 아무리 친한 태규라 할지라도 매일 저녁을 부탁했다.
그러니 민규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이다.
무엇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엄마가 아프다는 게,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병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그런 어른과 아이들의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미호의 귀에까지 들어가 버렸다.
“걱정 마, 미호야. 아빠가 꼭 도와줄 거야.”
“진짜요?”
“응, 당연하지. 진짜, 진짜, 진짜로. 꼭 해낼게. 민규도 미옥 아주머니도. 누구도 울지 않도록 열심히 해볼게.”
“고맙습니다, 압빠.”
“그러니까 우리 미호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 믿고, 민규랑 재미있게 놀아주고. 알겠지?”
“웅! 꼭 그렇게 할게요. 이마안큼 사랑해요, 압빠.”
울먹거리던 미호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미호는 아빠를 믿으니까. 아빠가 괜찮다고 말해주었다면, 그게 정말로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니까.
민규가 더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자신 또한 민규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찾아보면서, 열심히 아빠를 도와주겠다고. 너무 착하고 장하게도 미호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태규는 그런 딸아이를 꼬옥 껴안아 준 다음 다시 솥 앞에 섰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공기는 후덥지근해서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는 힘든 축에도 끼지 못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약재들은 깊게 우러나고 있었으며, 미옥을 생각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던 태규였기에.
오늘도 꺼지지 않는 가스 불 앞에서, 태규가 흘린 땀방울만큼 현무가 말했던 마음이라는 것이 약에 담기고 있었다.
* * *
“……어때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온종일 죽어라 약을 달이며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하여 넣어둔 재료들이 거의 완전히 녹아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여주었다.
미옥은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민규와 미호가 슬퍼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완성된 약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현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생했어, 태규 사장. 열심히 해줬구나.”
그리고는 태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해주었다.
“잘 만들어진 것 같아.”
“그렇다면, 이제.”
“응. 약이 나왔으니까 먹이기만 하면 끝이야. 그거면 충분 한 거니까. 살아날 수 있을 거야, 미옥 아줌마.”
“하아…… 다행이다.”
당연하다는 듯 내려진 현무의 OK 사인.
살면서 이 정도로 식은땀을 흘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크게 긴장하고 있던 태규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십년감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희망에 찬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약은 바로 주고 올 거야?”
“그렇게 하려고요. 조금이라도 빠르게 약을 쓰는 게 좋잖아요.”
“그게 맞긴 하지. 이게 작은 병도 아니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문 열어줄게. 잠깐만.”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현무와 저승사자의 능력. 문을 열어주는 것을 사용하기 위해, 현무가 소반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너머로 병실까지 이어질 것이었다. 혹은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병원의 뒷문이라든가.
금방 다녀갔다가, 금방 다녀오면 될 뿐.
아주머니에게 약을 전해드리고 다시 돌아오면 그것으로 족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이상하게도.
“……어?”
“왜 그러세요?”
“아니, 잠깐만. 이게 왜 이러지?”
현무가 소반의 정문을 열자,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병실도 병원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바깥의 모습.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익숙한 거리의 풍경.
잔뜩 당황한 현무가 다시 한번 문을 닫았다가 열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조금도 없었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문을 연 것처럼. 똑같이 그 너머의 풍경이 펼쳐질 뿐이었으니.
“뭔가 잘못됐어.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했던 현무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며 다리까지 떨었다.
지금까지 언제나 한결같이 침착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현무.
그러던 와중이었다.
치링~
소반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지금은 아직 가게 문도 열지 않은 시간인데도.
물론 아는 얼굴이었다.
동시에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은 얼굴이기도 했다.
현무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보고서는 아드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검은 양복의 저승사자.
그가 피식 웃으며 현무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