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86
제188화
188화
재근이와 민규. 민규와 재근이.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빠질 수 없던 미호.
셋은 유치원 때부터 여러 일들을 겪었고, 샛별 유치원의 삼총사로 통하며 항상 붙어 지냈던 세 사람은 누구나가 다 알아주던 삼각관계였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나이의 유치원생.
사랑이나 연애라는 단어의 뜻조차 제대로 몰랐을 때부터 삼각관계를 유지했던 세 사람의 인연은 특이하게도 아주 길게 이어졌다.
샛별 유치원을 졸업한 다음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심지어 중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특이한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었지만 여러모로 확률적인 운이 참 좋았다.
세 아이들의 집이 거의 다 붙어있었기에 자연스레 초, 중 학교의 1, 2, 3지망을 똑같은 곳을 썼고, 전부 다 1지망이 붙어버렸으니까.
아슬아슬했던 삼각관계는 중학교에 들어서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미호도, 재근이도, 민규도. 어디 하나 꿇릴 것 없이 멋진 아이들이었으니까.
서로 고백도 많이 받았지만 전부 거절했다. 왜? 당연히도 가슴 속에 이미 다른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미호는 재근이와 민규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알고 있었으며, 재근이와 민규 또한 서로의 가슴 속에 미호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근이와 민규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친구였기에, 누구 하나 먼저 나설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애매하고 아슬아슬한 관계가 깨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
“그으, 미호야.”
“응? 재근아, 왜?”
“나 이번에 엄마랑 이야기했는데. 고등학교는 특목고로 가기로 했어.”
“특목고? 그럼, 너 음악 쪽으로 쭉 가게?”
“으응, 아마도 그럴 것 같아서. 그리고 음악 고등학교에 원서 넣고 저번에 실기까지 봤잖아? 그런데 붙어버려서. 그렇게 됐네.”
일반적인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넣었던 미호, 민규와는 달리. 재근은 음악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심지어 덜컥 붙어버렸다.
유치원생 때부터 음악 학원을 다녔고. 심지어 나름 괜찮은 재능까지 보여주었던 재근은 피아노에 꽤나 재미를 붙였다.
초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여러 크고 작은 콩쿠르에 나가서 상을 받아오기까지 했으니.
재근의 어머니는 아들과 오랜 이야기를 한 끝에 음악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그 결과 음악 특목고 입학이라는 괜찮은 결과까지 성공한 것이었다.
“축하해! 진짜 잘 됐다. 거기 나오면 음악 쪽 대학 가기도 엄청 쉽다면서.”
“으응, 그렇지. 으응.”
당연히 축하할 일이었다. 잘된 일이었다.
서울에 있던 음악 특목고는 들어가기만 하면 인서울 음악 관련 대학에 무조건 진학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고, 그에 따른 경쟁도 엄청나게 셌으니까.
재근이는 그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입학했다.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재근이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중학교가 끝난 시간.
떡볶이를 먹자는 핑계로, 미호를 학교 근처에 있던 분식집으로 불러낸 재근이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악고 가면, 너랑 떨어지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민규랑 미호 너는 일반고로 가는데, 나 혼자만 음악고잖아. 심지어 거리도 멀어. 엄마 차 타고 왕복 1시간 이란 말이야.”
“그래도 계속 친구잖아, 우리는. 같은 동네 사는 건 똑같으니까, 주말에 만나면 되지.”
“그래도. 난 싫단 말이야.”
미호는 생각했다.
평소에 자신 만큼이나 그렇게 좋아하던 떡볶이를 잘 먹지도 않는 재근이를 보며, 사실 녀석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좋아하니까. 떨어지기 싫으니까. 그런데도 고백할 용기는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조금 어리광을 부리듯이 이야기 하고 있는 거라고. 미호는 생각했다.
딱 여기까지일 거라고.
우리 친구들의 관계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소꿉친구로만 남지 않을까 하면서. 사실 세 사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까지도 했다.
“솔직하게 말할게, 미호야.”
“응? 뭔데.”
“난 좀 무섭단 말이야. 내가 음악고 가서 멀리 떨어지면, 너랑 민규랑 더 가까워질까 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소외될까 봐.”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이 붙어 있었는데, 고작 고등학교 하나 달라졌다고 해서 우리가 왜 널 소외시켜.”
“알아.”
“응? 안다니?”
“나도 안다고. 고작 고등학교 하나 바뀌는 걸로 우리 사이가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근데 왜.”
“근데 내가 생각을 정말, 정말로 많이 해 봤는데. 솔직히 나는 계속 무섭고 걱정될 것 같단 말이야.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학원에서 피아노 연습할 때도, 심지어는 너희들을 만날 때에도.”
학교가 달라지니까. 지금까지는 항상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나 혼자만 떨어져야 하니까.
그래서 많이 걱정되고. 물론 미호 네가 지금처럼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줄 것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데도 어리고 여린 나는 다시 예전처럼 너희들과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렇게 말하며 재근이 씩 웃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오늘 결정할래.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떤 걸…….”
“미호야.”
“응, 재근아.”
“나 너 좋아해. 유치원 때부터 계속. 우리 사귀자.”
“아…….”
고백해버렸다.
눈을 딱 감고, 집에서 수십, 수백 번 연습해왔던 대사를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비록 선물로 줄 것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낭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학교 앞 분식집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쩌면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상관없을지도 몰랐다.
“진짜야?”
“응, 완전 진심이야.”
입 밖으로 내뱉으니 오히려 후련해졌다.
지금까지 유치원에서 미호를 처음 만난 뒤로, 지금껏 하고 싶었던 말. 좋아한다는 이 한마디.
그걸 이제야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로 많은 고민과 시간을 거쳐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해야만 했던 이유는.
“나, 적어도 민규보다는 더 빨리 말하고 싶었거든. 너 좋아한다고. 아직…… 민규는 말 안 했지?”
“응. 아직.”
“다행이다. 내가 먼저 말해서.”
“내가 거절할 수도 있잖아.”
“그래도 괜찮아. 거절하면 뭐, 아쉬운 거지.”
“거절 안 하면?”
“……응?”
“거절 안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 그야. 뭐어…….”
조금 얼굴이 빨개진 채로 물어오는 미호.
마찬가지로 귀까지 새빨개진 채, 잠시 버벅거리던 재근이 세상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열심히 노력해야지. 너 행복하게 해주려고.”
“나를?”
“응.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가고, 주말마다 놀러도 가고. 나 혼자 학교 다닐 때나, 연습할 때. 이제는 그냥 마음 편하게 미호 네 생각만 하면서.”
“바보야.”
“내가? 갑자기?”
“몰라, 그냥 넌 바보야. 이 바보 멍청아.”
그렇게 말하며, 미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는 뜻이었다. 네가 좋은 만큼, 나도 네가.
미호와 재근이가 손을 꼬옥 잡았다.
중학생이었으니까. 아직 많이 어리고 여린 나이였으니까.
고작 이 정도의 스킨십이었지만, 아이들은 충분히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귀게 되었다.
민규와 재근이 중, 미호의 남자친구가 된 것은 재근이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정도가 남았을 때의 일이었다.
* * *
“……그렇게 됐다고? 재근이랑?”
“으응.”
재근이와 사귀게 된 뒤, 미호는 태규에게 바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생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아빠한테 말한다는 것 자체가 꽤나 부끄럽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아빠가 신경을 안 쓰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랄까.
“요새 이상하게 재근이랑 많이 노는 것 같더라니.”
물론 사춘기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엄마 아빠들은 사실 모르는 척하면서 전부 알고 있다는 것.
“뭐야, 아빠.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너네 사귄 지 대충 2주쯤 됐지?”
“어, 어떻게…….”
“다 티가 나요. 아빠가 그랬잖아. 아빠는 눈이 뒤에도 달렸고, 코에도 달렸고, 입에도 달렸다니까?”
“나 아빠 절 때 모르게 티도 안 내고, 통화나 문자도 밤에만 살살 하고 그랬었는데?”
“그런 게 아니라. 미호 네 얼굴에 쓰여 있었거든.”
“내 얼굴에?”
“재근이랑 같이 놀러 나간다고 할 때마다 행복해 보이더라고.”
“으윽…….”
“그리고 하나 더. 재근이 엄마한테 연락 왔다.”
“혜영 아주머니한테?”
“응. 너랑 재근이가 요새 느낌 이상하다고.”
“지, 진짜로?”
“그러면서 고맙다고 하시던데?”
“아빠한테 왜?”
“재근이 첫 여친이 너라서 다행이라고. 걱정 안 해도 되는 멋진 우리 미호라서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고. 그러시더라, 아빠한테.”
순식간에 멍해져 버린 미호.
태규는 그런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씩 웃어주었다.
오늘 저녁에 또 저녁을 먹으러 놀러 간다고 하기에, 맛있는 걸 먹고 오라면서 용돈도 통 크게 오만 원이나 주었다.
사실 걱정이 조금 많이 되긴 했다. 그도 그럴 게, 딸 가진 아빠였으니까.
하지만 괜찮았다. 그 딸의 남자친구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재근이라서.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아빠 고마워! 다녀올게요!”
“그래, 재미있게 놀다 와라.”
미호를 보내놓고 집에 홀로 남은 시간.
치익- 하고 캔맥주 한 캔을 따서 꼴딱꼴딱 마시며.
눈을 잠시 감은 태규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진짜 조금만 있으면 시집도 가고, 손주까지 낳겠구나. 우리 미호.”
기분은 참 좋은데.
이상했다.
이상하게 외롭고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