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90
제192화
192화
“연희야!”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자신은 참 오래도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반가워 죽겠다는 듯이 오른손을 휘적휘적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예! 서방님!”
하고 말이다.
왜 남편도 오빠도 아니고 서방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불러야만 할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서방님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고,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두근 뛰는 것이다.
저 멀리에서 안개에 가려진 듯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신이 드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거다.
당장이라도 내달려서는 끌어안고 싶고, 얼굴을 매만지고 싶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생김새도, 맞닿는 살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면서도 동시에 안개가 낀 듯 희미해서.
당장이라도 알 것 같았지만, 손을 뻗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아, 아아…… 아아아…….”
으아아아악-!
항상 이런 꿈을 꾸며 깨어나 버리는 것이었다.
“희야! 일어나, 이뇬아! 빨리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그러다가 늦겠다, 정말!”
“흐아아아암…… 예에에.”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꿈을 꾸었다.
늦겠다는 엄마의 호통에 잠에서 깨어 샤워를 하면서도 계속 꿈 생각이 났다.
도대체 누구일까. 며칠에 한 번씩, 계속해서 꿈에 나와서는 ‘연희야-’하고 자신을 부르는 수수께끼의 남자는 누구인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세수를 하려 거울을 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뭐야. 나…… 울었어?”
자신의 눈가에 선명하게 나 있는 두 갈래의 눈물 자국을.
정말이지, 신기하고 이상한 꿈이 아닐 수 없었다.
* * *
“미호야. 일어나야지!”
“흐아아아암…… 5분만 더어어…….”
“5분만 더는, 무슨 5분이야. 너 또 학교 지각하려고 그래? 밥 다 차려놨으니까 빨리 먹고 학교 갈 준비해야지. 응?”
“으아아…… 알게써요오오오…….”
태규의 호통에 겨우 눈을 뜬 우리의 미호 공주님.
이제 고등학생이 다 된 녀석이었지만, 아침에 이러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아빠인 태규의 눈에는 그냥 똑같은 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빠? 밥 다 됐다고 하지 않았어?”
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보니, 밥을 다 차렸다는 아빠의 말과는 달리 식당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태규가 넌지시 말했다.
“거의 다 됐어. 밥 좀 푸고 수저 좀 놔라.”
“으아아악…… 또 속았어.”
“너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안 일어나잖아. 매일 늦잠 자고.”
“히히, 원래 미녀는 늦잠꾸러기라고 하잖아요. 안 그래요? 맞지?”
“그래, 우리 미호가 좀 미녀이긴 하지. 크크.”
“헉, 잠깐만. 아빠 설마 오늘 아침…… 된장찌개야?”
“우리 미호가 좋아하는 두부도 많이 넣고 끓였지요.”
“꺄아아! 역시 우리 아빠 최고!”
참 신기한 아이였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태규가 된장찌개만 수백번을 넘게 해준 것 같은데.
집 밖에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었음에도, 아직까지 아빠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다고 말해주니 말이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웅웅. 아빠, 나 한 그릇 더 주라.”
“알겠어요. 잘 먹으니까 이렇게 좋네.”
심지어 밥도 어찌나 예쁘고 맛있게 잘 먹는지.
쌀밥 위에 된장찌개 국물을 올리고, 두부까지 쓱쓱 부숴서 잘 비벼준 다음. 태규가 직접 담근 배추김치까지 야무지게 얹어서 먹는 미호를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허허 나와버리는 태규였다.
미호 밥을 잘 챙겨주고 학교에 보낸 뒤, 태규 또한 빠릿빠릿하게 출근할 준비를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이름 없는 한 날.
특별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굉장히 평범하고 행복했던 그런 날.
출근을 했음에도 똑같았다.
평소처럼 소반 레스토랑에 출근해서 일했고, 손님들이 몰아닥치던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는 앞의 집밥 소반에서 일하던 저승과 서아 부부를 불러 같이 점심을 먹었다.
저녁 장사가 끝나면 학교를 마친 미호가 찾아왔다.
그런 아이와 함께 오늘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하며 저녁을 먹고, 그런 다음에는 미호를 먼저 집에 들여보낸 뒤.
“오늘 밤에는 어떤 손님이 오시려나요, 현무 님.”
“그러게요. 배고픈 원혼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래도 저승사자 오는 날은 아니라 다행이고요.”
“그건 그렇죠. 그 아저씨, 오기만 하면 술을 궤짝으로 먹고 가시니까, 허허.”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범한 손님들이 전부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돌아간 바로 이때, 태규와 현무는 소반에 남아 두 번째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승사자, 귀신, 이매망량 등등.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배가 고픈 이들이 있다면 손님으로 와서 든든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갈 수 있는 시간.
소반의 밤 장사. 귀신들을 위한 식당 말이다.
누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서 일찍 끝날 수도, 아니면 여러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새벽까지 늦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태규는 자신만이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나름 보람차게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손님이 찾아왔으니까.
치링~
소반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현무와 여러 잡담을 하고 있던 태규가 고개를 돌리며 빙긋 웃었다.
“어서 오세요, 소반입니다.”
9시가 지나고 문을 닫은 후, 소반에는 사람이 들어올 수 없게 된다.
정확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소반이 완전히 문을 닫아 불이 꺼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방신인 현무가 걸어준 마법 덕분이라는데. 정확한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귀신들이 와서 밥을 먹는 시간에 평범한 사람 손님들이 들어오는 일을 막을 수 있었기에 참 편리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오늘 밤 소반을 찾아온 손님은, 척 보기에도 귀신이나 이매망량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어…… 그런데. 그으.”
“아직 영업 하고 있는 거예요?”
“아, 예에. 일단 그렇습니다만.”
평범한 사람.
미호와 같은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책가방을 메고 있었고, 학원이라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인지 한 손에 참고서까지 들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현무 님, 현무 님!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저 애, 귀신 아니죠? 사람이잖아요. 그쵸?”
“진정해 봐, 태규 사장. 내가 봐도…… 이매망량이 아니라 확실히 사람인 것 같은데.”
사람이었다는 거다.
귀신도, 신도, 이매망량도 아닌. 정말로 사람. 멀쩡한 사람 말이다.
당황한 태규가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유지하며 현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태규 못지않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현무가 은근슬쩍 식당 밖으로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이상하네. 내가 식당에 걸어둔 마법은 멀쩡한데.”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거의 2년 넘는 시간 동안……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현무가 걸어두었던 마법은 멀쩡했다.
혹시라도 마법에 문제가 생겨서, 그래서 어쩌다 보니 근처에 지나가던 아이가 홀려 들어왔다는 사실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건만. 그런 형편 좋은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저 학생이 이상한 거예요?”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은 나중에 삼신 할매라도 불러서 물어보는 게…….”
그렇게 태규와 현무가 은밀하게 작전 회의를 하고 있던 찰나.
“아저씨! 저 주문 해도 돼요?”
“아, 예예. 지금 갈게요.”
멍하니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 두 남자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도 식당에 온 손님이니 그냥 내보내기에는 애매한 상황.
태규가 후다닥 달려가 학생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식당이 이 시간에는 조금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어서 말이야. 딱히 메뉴판은 없고, 그 대신에 학생이 먹고 싶은 거 말하면 아저씨가 만들어 줄게.”
“헉, 진짜요? 그냥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당연하지. 우리 식당 규칙이거든.”
“우와아…… 진짜 신기하다. 근데 막 가격 이상하게 받거나 하는 거 아니죠? 막, 라면 한 그릇에 5만 원씩 받고 그런다거나.”
“에헤이. 아저씨가 무슨 사기꾼도 아니고, 그러지는 않아. 상식적인 것보다 싸게 받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학생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줘. 가능하다면 뭐든지 만들어 줄 테니까.”
“으음…… 그러면, 으으음.”
잠시 고민하는 여자아이.
왜인지는 몰라도 태규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저 된장찌개요. 아! 계란프라이도요. 괜찮아요?”
“된장찌개에 계란프라이…… 당연히 괜찮지. 아저씨가 바로 만들어 줄게요.”
“네에! 우와, 근데 진짜 신기하다. 먹고 싶은 걸 만들어 준다니. 이런 식당은 만화책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하하…… 뭐, 그렇지. 응.”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돌아가는 길.
영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태규의 시선에 무언가가 보였다.
아이가 입고 있던 미호와 똑같은 고등학교의 교복.
그 가슴께에 새겨져 있던 명찰의 이름 두 글자가 말이다.
[김 연]아이의 이름은 연이었다.
외자 이름.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