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Disaster-Class Hero RAW novel - Chapter (115)
제115화. 전갈좌의 공주 (1)
“이거 강화를 잘못 했나 봐. 고장 났어.”
이건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만년필을 툭툭 쳤다.
아주 책상에 쾅쾅 두드리고, 해체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휴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이 새끼는 도대체 뭘 봤길래 반응이 이 모양이야.
“전갈좌가 뭐라고 썼는데?”
“몰라. 아무튼 고장이야 고장.”
이건의 중얼거림에 휴고는 이제 헛웃음까지 나왔다.
아주 현실부정을 하는 듯한 얼굴 표정이 볼만했다. 어지간해서는 저런 표정을 지을 녀석이 아닌데.
그래서 휴고도 이상했다.
‘헤일리도 우리랑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뿐일 텐데.’
물론 12성인 중에서 이건을 좋아하는 인간은 없었다. 개차반이었으니까.
그러니 답이라고 해봐야 뻔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이 이런 반응이라면…
“왜. 전갈좌가 네 칭찬이라도 써놨니? 아니면 욕?”
휴고는 이건의 손에서 질답지를 빼앗아갔다. 비웃음은 덤이었다.
“뭐, 그래봐야 욕이겠지. 우리 중에서 널 좋게 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으니까. 무슨 근자감인지는 몰라도 칭찬을 써주길 바랐다면 큰 오산….”
하지만 질문지를 쭈욱 읽어내려가던 휴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상했다. 헤일리가 답을 쓰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묘하게 쓴 시간에 비해 부쩍 늘어난 듯한 답변 양은 둘째 문제였다.
“아…아….”
눈이 삔 건가 싶어 위에서부터 다시 읽어내려가는 휴고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허…헉!”
중간부터는 아예 부끄러운 듯, 볼이 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그렇게 읽다가 마침내 마지막 줄! 마지막까지 읽은 휴고의 얼굴은 아예 빨갛게 익다 못해 터져버리려고 했다.
유부남조차도 입으로 담기 부끄러운 내용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심호흡을 하던 휴고가 이건의 어깨를 잡았다.
“추…축하해.”
“뭐?”
“경험해보니까 자식은 딸이랑 아들 하나씩이 좋더라.”
“야.”
“아니 아들은 별로니까 딸로 둘. 아니 딸은 널 닮으면 안 되는데… 아씨 아무튼! 그 애들은 내가 잘 키워서, 내 성도로 삼을… 컥!”
휴고는 기어이 한대 얻어맞았다.
그리고 휴고를 쓰러트린 이건이 답변지를 다시 보았다.
“아무튼 이거 아냐. 고장이야.”
이건은 걱정스럽게 제 만년필을 보았다.
하지만.
[] [상태 : 최상] [일체의 고장도 없이 완벽한 컨디션을 자랑합니다]빠직.
결국 이건은 만년필을 부러트리려고 했다.
“이 새끼가. 강화를 시켜줬더니 대가리를 굴려!”
우드득!
결국 만년필이 몸통이 부러지려고 하자 만년필이 울부짖었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부모의 뜻대로 열심히 일을 한 죄밖에 없는데!
열심히 제 기척도 숨겨가며 헤일리의 손에 집히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밖에 없는데!
[이 이거는 아니라고 합니다] [만년필은 부모에게 억울함을 호소합니다]결국 그쯤 되자 상황을 보던 신궁좌 성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도대체 뭐라고 써져 있길래 저러지?
고트는 바닥에 떨어진 질문지를 집어 들었다. 천성재도 급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뭐길래 두 분이 저런….”
곧 그들도 질문지 답변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휴고와 같은 반응이었다.
“헉…!”
고트는 입만 뻐끔거렸고, 천성재도 입을 떠억 벌렸다.
“야이 이거…윽!”
옆에서 보던 이재원이 천성재의 눈을 가렸다.
“도련님, 일러요. 착한 어린이는 이런 거 보면 못씁니다.”
이재원은 방긋 웃으면서 종이를 꽉 잡고 놓지 않으려는 천성재의 손을 뺐다.
고트는 벽을 짚고 심호흡을 했고, 서기관은 영혼을 잃었다.
결국 이재원이 미안하다는 듯, 질문지를 고이 접어 책상에 돌려놨다.
“죄송합니다, 전갈좌 성주님. 프라이버시적인 내용을 저희들이 함부로 엿봤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설마 그렇게 깊은 마음을 이런 자리에서 다 표출하실 줄은 몰라서….”
이재원은 생긋 웃었다. 마치 읽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웃음.
동시에 천성재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나아아아! 비상! 누나아아아!”
비명을 지르던 천성재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SOS 메시지를 보냈다.
삼촌의 몸이 위험하다는, 아니 삼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아주 긴급한 메시지였다.
사실 전갈좌가 나타난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SOS 메시지를 보내놓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됐다.
“누나아아아! 비상 1급 사태야!”
결국 그쯤 되자 답변을 쓴 헤일리의 표정이 볼만했다.
아니, 도대체 왜?
자신이 무슨 말을 썼다고?
그래봐야 평범한 대답을 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헤일리는 되려 혼란스러웠다.
‘뭐지. 조건에 따라 협조한다는 말이 이상했나?’
협조는 너무 안 어울렸나? 아니면 조건이 붙은 게 너무 쪼잔해보였나?
바로 그때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다못한 헤일리가 질답지를 가져갔다.
‘그래봐야 별 내용도….’
하지만 내용을 확인한 순간.
“?????!!”
헤일리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Q. 이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이건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 (중략)
[Q. 앞으로 이건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참을 수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서 입고 있는 옷부터 확 찢고… (중략)
특히 두 번째 질문의 답변에 헤일리는 새빨갛게 익어 입만 뻐끔거렸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까지 읽지도 못하고 질답지를 내 던졌다.
“무엇이냐! 난 이런 걸 쓴 적이 없는데!”
헤일리는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아니, 물론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아주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도대체 왜 저런 게 자기 필체로 써져 있는 건가 싶을 그때.
‘아차…!’
그녀는 이건이 부러트리려는 만년필을 보고 경악했다.
‘서, 설마!’
자신이 쓴 만년필이 그 만년필이었던 건가!
‘진실만을 쓰게 하는!’
어떤 문구를 써도 진실이 드러나게 하는 성물이었다.
결국 헤일리는 좌절했다.
자신이 이건에게 보낸 물건인 만큼 자신이 물건의 기척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는데.
‘강화했다고 하더니…!’
아무래야 좋았다.
이건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색은 안하지만 이건조차 드물게 민망해 하는 표정이다.
결국 헤일리가 시선을 피했다.
“그…그래. 고장 난 거다! 물건이 많이 망가진 것 같구나. 녹이는 게 좋겠다.”
“그, 그치? 역시 이놈이 대가리 굴린 거지? 오늘 녹여야겠다.”
[부오오오오오!]만년필은 진짜 억울했다.
반면 그 와중에 서기관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그럼 헤일리 님은 저놈을 마음에 담은 적이 없으신 거죠?”
움찔한 헤일리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번득였다.
“다, 당연하지 않느냐!”
서기관은 안도했다.
“그럼 역시 성물의 농락이로군요! 하긴. 아무리 뭘 쓰든 진실이나 속마음이 드러나는 물건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문구를….”
그 와중에 헤일리는 움찔했다.
‘마, 말도 안 되나? 그런 건가?’
새삼 창피한 것과 다르게 헤일리는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에 불똥이 튄 한 명이 더 있었다.
“야. 방금 뭐라고 했어.”
“!”
“속마음이 드러나는 만년필이라고?”
바로 휴고였다.
그리고 만년필의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걸까.
그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 만년필, 그런 기능이었어?!”
서기관은 어처구니없이 그를 보았다.
“그것도 몰랐습니까?”
동시에 휴고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건 당연했다.
“야이씨! 그럼 지난번에 내가 쓴 답도…!”
자신이랑 케빈도 똑같은 질문지를 받았을 때 저 만년필로 답변을 쓰지 않았던가.
이건의 주문으로 말이다.
결국 휴고가 이건의 멱살을 잡았다.
“야! 너 그런 거라고 왜 말을… 아니 됐으니까 내 답지 내놔봐! 너 그때 분명 웃었지! 내놔 보라고!”
“없어, 새끼야. 버렸지.”
하지만 그때였다.
이건의 등에 찰싹 붙어 있던 슬라임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더니 슬쩍 입에서 뭔가를 툭 내뱉었다.
“!”
바로 휴고와 케빈이 썼던 답안지였다. 공처럼 완전히 구겨져 있었지만 전혀 상관 없었다.
휴고는 비웃으며 답안지를 펼쳤다.
“뭐, 걱정 안 해. 그냥 확인해보는 거야. 속마음이라 해봐야 별것 아닐…!”
하지만 곧 답안을 본 휴고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Q. 이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건이 없으면 안 돼, 우리 건이 너무 멋져 세상에서 제일이야 (중략)
[Q. 앞으로 이건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냥 우리 건이 하고 싶은 거 다해, 아프지만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다해, 먹고 싶은 것도 다 먹고, 사고도 쳐도 되고, 그 정도는 내가 다 처리해줄 수 있… (중략)
동시에 답안지를 찢은 휴고가 외쳤다.
“저 만년필 고장이야!!!”
[부오오오!!!?!!]결국 휴고까지 거들어서 만년필을 녹이려 하자 만년필은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렇게 큰 태풍이 지나가고.
만년필은 꽁꽁 묶여 이건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동시에 씩씩 대던 휴고는 케빈의 답지까지 보고 나서야 조금 진정했다.
물론 여전히 분은 안 풀렸지만, 차츰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왜?
“만년필이 그런 기능이라면 뭐 더 물을 것도 없겠네.”
휴고는 전갈좌 헤일리를 보았다.
“적어도 그 관종이나 전갈좌는 너한테 해를 끼칠 인물은 아니겠다. 물론 내가 쓴 답변은 당연히 만년필의 농락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휴고가 삐죽거렸다.
여전히 자신을 속이고 그딴 만년필을 쓰게 한 것이 못마땅한 것이리라.
“아무튼 전갈좌는 범인도 아닌 것 같고, 이 기회에 둘이 아주 잘해보지?”
제 친구의 삐침에 이건은 쯧 혀를 찼다.
“글쎄, 니네 둘의 답은 진실이지만 이 녀석의 답변은 고장 난 거라니까. 내가 싫어서 얼굴도 안 보려는 여잔데.”
휴고는 어이가 없었다.
“건아.”
“뭐.”
“너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지? 모쏠이지?”
휴고는 또 맞았다.
이건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진심일 리도 없고, 설령 진담이라고 해도 인간도 아닌데 그렇게 써졌으면 되려 진의가 의심스럽지.”
“그래. 그래서 의심스럽….”
순간 휴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네?”
동시에 거기에 있던 모두가 제 귀를 의심했다.
바로 이건이 꺼낸 말 때문이었다. 분명 중간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말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상황을 흐뭇하게 보며 웃고 있던 이재원도 얼굴을 굳혔다.
“이건 님. 방금 뭐라고?”
그러나 이건은 당황한 헤일리를 보며 웃었다.
헤일리를 바라보는 이건의 눈빛이 뱀의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 13의 감이 발동 중입니다]흑백의 세계로 바뀐 시야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휴고도 파란색.
천성재나 이재원, 고트. 하다못해 서기관도 파란색.
하지만.
[주의. 무척이나 위험하고 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헤일리만큼은 몸 전체가 붉은색.
아니나 다를까.
이건이 얼어붙은 헤일리를 보며 웃었다.
“너 인간 아니잖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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