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성 모 씨 생일 (1)
“그 파란색 드레스 귀엽지 않았어? 예림이 네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는 취향이랑 입는 취향은 다른 거거든요. 제 인형한테 입히고 싶은 드레스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예림이의 옷차림은 연미복이었다. 맞춤 제작한 연미복이라 언제 준비한 거냐고 물었더니 홍콩 때 자기도 입고 싶어져서 주문해 둔 거라고 했다. 나비넥타이 대신 귀걸이에 맞춘 푸른 브로치를 단 것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아니면 혹시 이 옷 별로예요?”
“아니야, 멋있어. 귀여워.”
어디 내놔도 눈길을 사로잡을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저쪽들도.
‘…새삼스럽지만 같이 다니기 부끄러워지네.’
유현이야 말할 것도 없고 노아도 여전히 반짝거리고 명우도 나보다는 저쪽에 가까워진 지 오래였다. 저마다 다른 타입의 정장 미남들이 늘어서 있자 무슨 영화 시상식장에라도 온 거 같은 기분이다.
그 옆의 문현아는 이브닝드레스 차림이었다. 반 가까이 밀어 버린 헤어스타일에 드레스라니,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았지만 의외로 어울리다 못해 멋있었다. 분명 드레스인데 활력 넘치는 파워풀한 분위기였다.
‘나만 너무 따로 노는 거 아니냐.’
거울 봤을 땐 역시 꾸미니 사람이 달라지네 싶었는데 출발선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여섯이서 헬리콥터 승강장에 섰다.
성현제의 생일 파티 장소는 다름 아닌 크루즈선이었다. 하고많은 호텔 내버려 두고 웬 선상파티냐 하면, 안전 때문에 쫓겨난 것에 가까웠다. 국내 S급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도 혹 사고 터지진 않을까 걱정될 판에 해외에서까지 온다 하면 당연히 기겁할 소리다.
그래도 작년에는 주위에 민가가 비교적 드문 호텔에서 했었지만 결국 S급 헌터들 사이에서 약간의 시비가 붙어 버렸다고 했다. 대중에게는 가스 폭발로 둘러댔다나. 그 이후로 업무상의 이유 외에 S급 헌터 다수가 한자리에서 정식 모임을 가질 시 던전 내부 또는 반경 1km 내로 민가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 하라는 권고가 내려왔다.
특히 이번처럼 해외 헌터까지 연관될 시 단순 권고로 끝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기에 바다로 나가게 된 것이었다. 근처에 민가를 찾아볼 수 없이 휑뎅그렁하니 떨어진 괜찮은 호텔은 없었으니까.
타다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도착했다. 날리는 바람 속에서 예림이가 선물을 고쳐 챙겨 들었다. 반짝거리는 포장지로 감싸고 리본까지 달려 있다.
“아저씨가 귀띔해 준 대로 책 샀어요.”
내 시선을 눈치챈 예림이가 말했다.
“기초부터 시작하는 참 쉬운 뜨개질, 북유럽풍 다양한 장식뜨개, 아름다운 뜨개 무늬 패턴. 결국 만 원은 훌쩍 넘어 버렸지만요.”
“잘 샀어. 좋아할 거다.”
그야말로 지금 딱 필요한 맞춤형 선물 아니겠냐. 내가 준 털실 다 쓰려면 내년까진 심심할 일 없겠네. 고개를 돌려 유현이를 바라보았다.
“유현이 넌 뭐 준비했냐?”
“몰라. 비서실에서 적당히 보냈겠지.”
정말 관심 없다는 투다. 그래도 생일인데. 보아하니 문현아도 따로 직접 챙기진 않은 모양이지만. 명우는 간단하게 아이템을 만들었고 늦게 초대받은 노아의 것까지 준비해 주었다. 각각 1회용짜리 포획용, 비행용 아이템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어땠어? 이런 데는 처음이라 약간 긴장되네.”
헬기가 준비되는 사이 유현이에게 살짝 물었다. 호텔 경매 파티 주인공은 해 봤지만 생일 파티는 이런 사람 여럿 모이는 호화 버전은 물론이요, 평범한 것도… 오래됐지.
“난 안 가고 김성한 헌터가 대신 갔었어.”
“안 갔다고? 정보 교환하기 좋은 기회라며.”
“대외적으로는 A급 던전 공략 중이라고 했었는데…….”
유현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을 이었다. 헬리콥터 소리 탓에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때, 형이 다쳤었잖아.”
그랬던가. 지금으로부턴 1년 전이지만 내 감각으로는 6년 전이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와 관련해서, 얻어먹을 게 없나 기웃대는 놈들이 그때는 아직 있었으니까.”
약간 풀 죽은 목소리 속에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냥 흔한 사기꾼 같은 놈들이었지. 멋대로 착각하고 접근해 와서는 내게 별 가치 없다고 판단하자 자기 분을 못 이기고 폭력을 휘둘렀던.
“흔한 일인데 뭐. 네가 직접 나섰던 거냐? 별거 아닌 피라미였을 텐데 생일 파티 가지.”
“그때 그 기분으로 갔다간 득보다 실이 더 많았을걸. …미안해.”
“그런 소리 하지 마. 넌 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했어.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형이 왜?”
유현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야, 물론 그때 내가 다친 건 동생이 너무 잘난 탓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그냥, 뭐…….”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이린은 다른 곳에 있는지 검은 두 눈이 나를 마주봐 왔다.
“…요즘은, 괜찮지?”
“응?”
“혹시 힘든 일은 없나 해서. 좀 갑갑한 일이라거나.”
유현이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정도는 괜찮아.”
역시 없지는 않구나. 제대로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냥 계속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만약 공포 저항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돌려 묻는 것조차, 하기 힘들었겠지.
혹시라도 유현이가 나 때문에 참는 거라면. 아니, 아마도 분명. 틀림없이.
“뭘 그렇게 속삭여요?”
그때 예림이가 바싹 다가오며 물었다. 별거 아니라고 얼버무리자 수상쩍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늘은 너무 깊이 생각지 말고, 일단 묻어 두자. 곧 다시 꺼내야만 하겠지만.
“진짜 봐도 봐도 놀랍다니까.”
문현아가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련님이 누군가에게 강아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 못 했지.”
강아지라니. 물론 우리 유현이가 귀엽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붙임성 좋았습니다만.”
“그 붙임성 좋은 형님의 귀염둥이가 죽은 윤경수를 어떻게 박살 내 놓은지 알아? 그놈이 먼저 꼰대같이 굴긴 했지. 도련님이 어리다고 기선제압이라도 할 셈이었는지 첫 만남에 대뜸 머리를 쓰다듬었거든.”
“방심해서 그런 거야.”
유현이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내가 아닌 예림이를 주시하면서. 예림아, 웃지 마라. 부디 아무 말도 하지 마. 헬기 타기도 전에 추락할라.
“이전에도 이후로도 그 비슷한 일조차 없었어. 물론 형 빼고.”
“그때 도련님 잠깐 멍해 있다가 바로 그 새끼 머리를 향해 칼 휘둘렀지. 아주 죽일 기세였는데 그래도 S급은 S급이라고 윤경수도 나름 잘 막아 내서~ 목숨은 붙은 채로 박살 났다고.”
진짜 구경할 만했다면서 문현아가 껄껄댔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애한테 짓밟히는 꼴 보여 주고 그 뒤로도 도련님이 한참을 죽일 듯이 굴어 대서 피해 다니기까지 하는 바람에 윤경수 쪽 진짜 많이 팔렸어. 수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못한 게 그 탓이 팔 할이지. 애한테 얻어터진 꼴도 우습고 도련님이 이 드러내고 있는데 수담 가긴 무섭잖아.”
그래서 윤경수가 유독 유현이한테 이를 갈았던 건가. 전에도 그랬지만 자세히 들어도 역시나 자업자득이구만. 그때 예림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머리 한 번 쓰다듬게 해 주라, 길드장!”
“예림아!”
얼른 유현이를 끌어안았다. 어린애 도발에 휘말리지 말자, 응? 다행히 동생은 예림이를 차갑게 한 번 쳐다만 보고 무시했다.
그사이 이륙 준비가 끝나고 우리를 태운 헬리콥터가 날아올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바다 위에 화려하게 불을 밝힌 커다란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보자 더더욱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여했다고 쳐도 한두 푼이 아닐 텐데. 호텔보다 훨씬 비싸겠지.
헬기가 신호를 따라 배 위에 착륙하기 직전, 내 옆에 앉아 있던 유현이가 말했다.
“며칠간 은혜 쓸 일 없었으니 충전 다 되어 있지? 사용하고 있어.”
“은혜를?”
“응. 이왕이면 선생님 스킬도 쓰고.”
…여기 성현제 생일 파티 아니었나. 설마 S급 랭킹전 베타 버전, 뭐 이런 거였나. 일단 쓰라는 대로 썼다. 은혜도 켜고 선생님 스킬도 유현이에게 쓰고.
저번 생일 파티에도 참석했던 문현아가 유현이 대신 설명해 주려 했으나 헬기의 착륙이 더 빨랐다. 일단 착륙장에 내려서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송태원이다.
척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고급품은 아니지만 말쑥하게 무난한 정장 차림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옷걸이가 되니 상대적으로 수수한 차림도 괜찮아 보였다. 다만 표정만큼은 연회 참석이 아니라 잔업 하러 나온 사람 같았다. 실제로 야근이나 다름없지.
‘그냥 집에서 쉬셔도 될 텐데.’
육지가 아닌 해상이다. 난동을 부려도 민간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전무하다시피 할 터였다. 하지만 송태원의 성격상 근해에 S급들이 드글드글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두 다리 뻗고 눕진 못하겠지. 정말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성현제가 흥미를 가지는 거겠지.’
국가 소속 S급 헌터가 타국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송태원 같은 사람은 송태원 그 한 명뿐이었다.
다른 나라의 국가 소속 S급 헌터는 일종의 영웅이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나라를 지키고 봉사하는 히어로. 특히 원래도 영웅숭배사상이 짙었던 미국이 그런 경향이 컸다. 말만 국가 소속이지 완전히 독립된 권력자로 활개 치는 타국의 S급 헌터들과 진짜 공직자 노릇을 하려 드는 송태원은, 당연하게도 전혀 달랐다.
그래도 3년이나 비슷한 모습을 봐 왔다면 성현제 성격상 슬슬 질렸겠지만 최근에는 내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 회귀 전의 성현제에게 있어 송태원은 죽은 사람이니까.’
심지어 그에게 자신의 스킬을 건네고 사망했다. 정황상 그가 보는 눈앞에서. 하니 회귀 전 일에 기시감을 느끼는 성현제라면 송태원이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제 앞에서 죽은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니다 못해 약간씩이나마 변하려고까지 하고 있다.
정말로 이상하고 새롭게 느껴질 수밖에.
“여기까지 오시다니, 수고가 많으시네요.”
내 말에 송태원이 예의 그 복잡한 시선을 보내 왔다. 송태원이 저렇게 쳐다볼 때면 뭣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비슷한 취급이려나.
“한유진 씨까지 오셨군요.”
“저는 이번만큼은 정말로 무고합니다.”
그냥 생일 파티 참석해서 선물만 주고 갈 생각이다. 정확히는 뇌물에 가깝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꾸미는 것도 없고 진짜로 그냥 가볍게 왔을 뿐이랍니다.
“한유진 씨는 스스로가 어떻게 비칠지 좀 더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여러모로 쓰기 좋은 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파티 참석자들은 명우에게 더 관심을 보일 거 같은데. 나는 아직은 기승수 사육과 각성 등급 확인 외의 능력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보다는 S급 무기 만들어 낸 명우가 최고로 탐나겠지.
“걱정 마, 송 실장님.”
문현아가 환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덤비는 놈 있으면 전부 깔끔하게 반으로 접어다 바다에 던져 버릴 테니까!”
“그러시면 안 됩니다.”
송태원이 한숨을 섞어 말을 이었다.
“가급적 폭력 대신 신고 부탁드리겠습니다. 폭력을 사용한 후에도 자세한 정황을 신고해 주십시오. 위험 요소가 크다고 판단된 해외 S급 헌터는 이후 입국 금지 또는 주의대상 처리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인벤토리에서 파티 참석자 목록을 꺼내 들었다. 송태원은 시선을 천천히 움직여 나와 유현이, 문현아, 예림이와 명우, 노아까지 차례차례 얼굴을 확인한 후 펜으로 목록을 체크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았다.
“조심하십시오.”
“네. 걱정하시지 않도록 몸 잘 사리겠습니다.”
송태원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문현아가 말했다.
“예림아, 무기 꺼내라.”
“네, 언니!”
잠깐만, 무기는 왜? 문현아가 거창까지는 아니지만 자기 키는 가볍게 넘는 늘씬한 창을 손에 들었다. 예림이 또한 얼음나무 창을 꺼내고 숄을 한쪽 팔에 휘감았다. 심지어 유현이까지 칼 하나를 꺼내 든 채다.
“여기서 싸움이라도 하려는 거냐?”
내 물음에 유현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작년에 안 와서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자리 마련해 놓았는데 조용히 지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맞아, 형님. 제 버릇 개 못 주지. 미친놈들이 남의 파티 왔다고 하루아침에 순한 양 되겠어? 조금 덜하긴 해도 안 하진 않는다고.”
맞는 말인 거 같지만 정말 뒷목 잡을 소리다.
“그러다 배 침몰이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그 정도 조절도 못 하는 놈이 S급 명찰 달고 있으면 빠뜨려 죽여야지!”
웃지 마십쇼. 당황스러워하며 명우와 노아를 돌아보았다.
“전 그렇다 쳐도 명우는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잘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명우 형 스탯이 그리 낮은 것도 아니고 방어용 아이템도 가지고 왔어요.”
“그래, 걱정할 거 없어, 유진아. 피해 무효화 아이템도 남아 있고 여차하면 대장간으로 피하면 되니까. 그리고 너나 나한테 시비 거는 놈이 있으면 이 기회에 확실하게 기억해 둬야지.”
대장간에 직접 찾아오거나 대리인을 보낼 때는 본성 숨기고 점잔 빼고 있을 테니 속내 확인하기 좋지 않으냐며 명우가 말했다. 그래도 안전이 제일 중요한데.
“과열되진 않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형.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형이 오게 놓아뒀을 리 없잖아.”
“맞아, 형님. 가벼운 파티라니까~ 구경만 해.”
…대놓고 신난 문현아만큼은 아니지만 유현이 너도 은근 즐거워 보이는 거 같다만. 예림이야 날아오를 기세고.
그래, 파티구나. S급들 파티. 부디 배까지 침몰시키진 말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