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87
285화 태우는 것도 깔끔하죠 (4)
먼저 도착한 세 마리의 몬스터 모두 내 기억에 있는 놈들이었다. 회귀 전 난이도가 올라간 던전에서 등장한 몬스터들. SS급이지만 당시엔 헌터들 수준도 지금보다 더 높았기에 모두 공략 완료되었다. 유현이만 해도 SS급에 가까웠다고 했었지.
“저 검은 표범 같은 건 단거리 순간이동 가능하니까 조심해. 기본 움직임도 빨라. 용종은 이빨과 발톱에 닿는 무기를 약화시켜. S급 이하 무기는 단숨에 부러진다. 그 옆의 거대 풍뎅이 같은 놈은 닿으면 폭발하는 연기를 내뿜는데 지금 네 화염 저항이면 무시해도 될 거야.”
떡잎 스킬로는 스킬명만 알 수 있다. 그러니 스킬 핑계를 대기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유현이에겐 조만간 털어놓을 테니까.
“속도만 따라잡을 수 있다면 제일 만만한 건 표범이지. 풍뎅이는 단단하고 화염 저항도 있어서 귀찮지만, 저놈 공격도 너한텐 안 통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유현이가 미끄러지듯 몬스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칼날이 향한 곳은 의외로 풍뎅이였다. 위협적인 상대가 접근해 오기 무섭게 풍뎅이가 전신을 떨었다.
푸드득, 단단한 껍데기가 서로 맞부딪치는 사이로 스멀스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순식간에 퍼지는 연기에 당황한 것은 유현이가 아닌 다른 두 몬스터였다.
– 크헝!
표범이 앞발을 휘젓기가 무섭게 펑! 폭발이 일었다. 폭발을 버틸 수 있는 용종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표범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연기는 순식간에 넓게 퍼져 단거리 순간이동 정도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같은 SS급 몬스터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다. 하나 잠시 정신을 빼놓기에는 충분했다. 전신을 휘감는 화염 속에서 표범이 머리를 내젓다가 무언가를 느낀 듯 사납게 눈을 치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불길을 가로지르며, 한유현의 검 끝이 표범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예장의 순간 속도 상승 스킬까지 더해진 습격에 공격을 적중시키긴커녕 스치는 것조차 힘들기로 유명했던 SS급 몬스터가 그대로 급소를 내주고 만 것이다.
– 캬륵!
표범이 괴상한 소리와 함께 반항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박힌 칼날을 타고 불길이 퍼져 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검푸른 불길이 새카만 터럭을 태우며 가죽과 뼈 안쪽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사람 몸집의 서너 배쯤 되는 머리통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진다.
쿵! 소리를 내며 표범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유현이가 버들잎을 밟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 캬아아!
용종이, 그리고 그사이에 나타난 원숭이와 개를 합쳐 놓은 듯한 몬스터가 제 앞발에 움켜쥐고도 남을 조그만 인간을 잡으려 날뛰었다. 동급의 몬스터가 삽시간에 머리를 잃고 쓰러진 것을 보아서인지 더욱 사납게 덤벼든다.
자신의 연기가 적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풍뎅이가 연기 내뿜는 짓을 멈추었다. 맑아진 공기 위로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전기가 끊기고 사람들이 대피한 지상 또한 어두워야 했지만, 검푸른 불길이 달빛보다 더 환하게 빛을 흩뿌렸다.
불꽃을 담은 잎사귀들이 하늘하늘 춤춘다. 마수들의 괴성과 바닥을 긁는 발톱, 딱딱이는 송곳니는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한가하게 흔들린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잎이 떨어지는 곳마다 불길이 치솟고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닥이 온통 검푸르게 물들어간다. 털과 비늘과 껍데기와 그 안까지 태우는 불에 몬스터들이 날뛰었다. 필사적으로 원흉인 유현이를 뒤쫓았지만, 예장 끝자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 캬악!
– 키르르!
SS급 몬스터들의 덩치 아래, 잔챙이들이 짓밟히고 타버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부나방들 같다. 떡밥에 이끌려 기어든 S급 이하 몬스터들은 유현이가 손댈 것도 없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그 시체를 살라먹으며 불길은 더더욱 넓게 퍼져 갔다.
성장이라도 하듯 도시를 전부 삼켜간다.
휘리릭, 최소한의 동작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던 유현이가 와이어를 꺼내 들었다. 암만 봐도 우리 세상 물건은 아니다. 아마 포인트로 바꿔 왔지 싶었다.
‘스킬 사고 남은 걸로 교환한 걸까.’
그 동네 와이어 성능 좋긴 했지. 부가기능 없이 튼튼하기만 한 건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길게 뻗어 나간 와이어가 용종의 주둥이를 휘감았다.
– 크륵!
동시에 와이어를 강하게 당기며 용종의 주둥이 위를 유현이의 발끝이 내리찍었다. 으득, 소리와 함께 비늘이 움푹 패고 용종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 끼이이!
유현이가 용종을 상대하느라 눈 돌린 틈을 놓치지 않고 개원숭이가 덤벼들었다. 길게 돋은 오른쪽 앞발의 발톱은 어지간한 칼날보다도 날카로웠다. 심지어 제각각의 스킬을 품은, 무기와 다름없는 발톱이었다.
튼튼하기도 튼튼할 뿐더러 중독, 마비, 회복저하, 방어력 하락, 시야 교란까지 다섯 가지의 효과를 지녀 한 번 할퀴어지기라도 하면 상급 힐러 없이는 죽은 목숨이라는 SS급 몬스터. 유현이에게도 설명은 해두었기에 피하는 게 낫지 싶었지만.
팍! 한유현은 회피 대신 와이어를 거칠게 치켜올렸다. 용종의 주둥이가 반쯤 꺾여 들리며 툭 튀어나온 송곳니가 개원숭이의 발톱과 맞부딪쳤다.
카가각!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개원숭이의 발톱에 금이 갔다. 용종의 이빨은 무기 약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개원숭이의 발톱에도 그것이 통한 것이었다.
– 끼익!
개원숭이가 놀라 물러났지만, 그보다 먼저 유현이가 몬스터의 품을 파고들었다. 주요 무기인 오른쪽 앞발톱은 휘두르지 못한 채 왼 앞발이라도 마주 뻗어온다. 하지만 왼쪽은 아무 능력 없이 평범한 발톱뿐이었다.
발톱은 단숨에 잘려 나가고 거침없이 몬스터의 아래턱까지 다다른 유현이가 검을 수직으로 들어 그대로 찔러 올렸다. 검날이 파고듦과 동시에 불길이 휘감기며 피를 태우고 가죽 안쪽으로 스며든다. 썩둑, 개원숭이의 머리통이 길게 갈라졌다.
쓰러지는 몬스터의 몸뚱이를 유현이가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 키리릭.
날아든 몬스터의 시체를 풍뎅이가 굵게 돋은 뿔로 쳐냈다. 그사이 와이어에 묶인 용종의 목도 잘려 나갔다.
쿠르르릉!
그때 땅이 크게 울렸다. 지면이 들썩이며 열기가 훅 치솟아 오른다.
“지각자 등장하셨네. 저 용종, 머리 세 번 잘라내야 한다는 거 기억하지?”
“응.”
용종의 잘려나간 목에서 새로운 머리가 빠르게 돋아났다.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단 두 가지인 놈이다. 머리를 세 번 쳐내거나 전신을 잘게 다져놓는 것. 당연히 전자가 더 편하다.
마지막 한 놈은 나도 모르는 몬스터였다. 상대적으로 둔하고 느리며 땅을 파 뒤집기도 한다는, 일본에서의 관찰결과 외엔 정보가 없다.
– 쿠룩, 크룩.
네 다리가 달린 길쭉한 흙덩어리처럼 생긴 몬스터가 지면을 박차며 튀어 올랐다. 암석형 몬스터인가. 그럼 불은 잘 안 통할 터였다. 역시나 바닥에 깔린 불길에도 크게 영향이 없어 보였다.
“조금 귀찮겠네.”
“아니, 전혀.”
그냥 담담한,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저런 거 상대로 자신 있어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처럼.
“저게 끝이지?”
“응. 마지막이야.”
그럼, 하고. 유현이의 주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마치 여태까지는 가벼운 장난이었다는 듯 검푸른 불꽃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퍼져 나간다. 짙은 마력을 담아,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화력으로.
땅이 녹았다. 공기가 흐물거리고 지독한 열기에 하늘마저 뚝뚝 녹아떨어질 것만 같았다. 세 마리의 몬스터와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자잘한 몬스터들까지, 순식간에 검푸른 파도에 휘말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캭, 캬아아!
용종의 머리는 물론 몸뚱이도 타오르고, 다시 재생했다가 다시 검게 타버렸다. 세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재상 가능한 괴물이었다 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풍뎅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 속성 내성이 있는 놈이었지만 버티지 못했다. 작은 불 따위 더 큰불에 삼켜지면 끝이다.
마지막에 나타난 돌덩어리도 녹아내렸다. 바둥거리며 땅을 파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 땅 또한 흥건하게 녹고 타올랐다.
닿는 모든 것을 녹이고 태우면서도 불길은 힘을 잃을 줄을 몰랐다. 압도적인 화력이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 떡밥에 이끌려 들어온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살아 나가지 못했을 불의 대지.
과거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없이, 공평하게 녹아 섞이고 엉긴다.
유현이의 입술 위로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만족스러워하는 동생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저거, 다른 곳까지 옮겨붙는 거 아니냐? 다른 덴 몰라도 산 쪽으론 안 돼.”
“그 정도 제어는 할 수 있어. 도시 내 피해는 상관없다며.”
“…제어가 돼? 저렇게 퍼진 불길도?”
“내 거니까.”
유현이의 말대로 우리 주위의 불길부터 화악,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둥글게 드러나는 녹은 대지가 천천히 굳어간다. 불길이 스쳐 지나간 곳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검고 검은 땅만이 펼쳐져 있었다.
공포와는 다른 느낌의 소름이 등을 타고 흘렀다.
“도시 밖으로 나가도 괜찮았다면, 어디까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의 배 이상은 가능할 거 같아.”
유현이가 즐거운 듯 말했다. 기분이 퍽 좋아 보인다.
“최소치로. 아직 30분 안 지났지? 바닥 뜨거우니까 조심해. 피스 먼저 나가게 하는 게 좋겠다.”
열기는 제법 가라앉았지만 달궈진 땅이 그리 쉽게 식진 않을 것이다. 피스를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날개를 팔랑 펼치고 주머니 밖으로 날아가는 게 진짜 너무 귀여웠다. 폰 하나 달라고 할걸. 미니미니 쿠키 아껴야 하는데 또 언제 먹여 보냐. 완전 요정이네, 요정.
– 끼앙!
공중제비를 빙그르 돌고는 나도 나오라는 듯 다시 다가온다. 아성체 정도로 몸을 키우며 가르릉대기에 그 위에 올라탔다.
“유현이 너 엄청 커 보인다!”
몇 번 쿠키 먹긴 했지만 바로 앞에서 차분히 살펴볼 여유는 별로 없었지. 유현이가 웃으며 손을 뻗어오자 피스가 으르렁거렸다. 작아진 상태에서 손을 대려 하니 위협적으로 느껴진 걸까. 내가 보기엔 귀엽지만 피스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쿠키 시간이 조금 남았음에도 원래 크기로 돌아가 버렸다.
“으악, 피스야!”
동시에 내 몸뚱이가 붉은 털에 푹 파묻혔다.
“형?”
– 끄응.
“아니, 아니. 괜찮아.”
털을 헤치고 일어나려다가 그냥 나도 쿠키 효과 취소하고 원래대로 돌아갔다.
“위험해!”
올라선 자리가 갑자기 좁아진 탓에 비틀거리는 나를 유현이가 얼른 붙잡아 주었다.
“아직 은혜 쓰고 있어.”
“그래도. 아직 덜 굳은 부분도 있어서 발이 빠질지도 몰라.”
피스 등에 제대로 자리 잡고 앉자 유현이가 슬쩍 몸을 기대왔다. 아까부터 그러긴 했는데 확실히 기분 좋아 보인다.
“형, 그 스킬 말이야. 추가 효과도 있는 거 같아.”
“응? 왜?”
“원래도 던전 공략하며 몬스터 사냥하는 거 좋아하는 편이었어. 특히 공격 스킬을 마음껏 쓰고 나면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거든.”
개인적으로 즐기는 취미 같은 게 별로 없는 유현이었지만 전투만큼은 다르긴 했다. 평소 성격 대비 호전적인 편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만큼 기분 좋은 적은 없었어. 단순히 능력치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형이 걸어 준 스킬 자체의 영향도 있는 게 아닐까.”
홍콩 때와는 다른 감각이라며 유현이가 꼬리치는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그런 부가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스킬 이름부터가 상대를 칭찬하고 있고, 누구든 칭찬받으면 기분 좋을 테니까?
“어쩌면 단순히 좋은 말 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가?”
동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유현이 녀석 표정도 개운하고 약간 들뜬 것도 같고. 도시 하나 날려먹은 게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던전 안에선 백 명 모아 쓸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무인도 하나 사서 마음껏 날뛰게 해줄까?
“안 나온 척 빼돌릴 수도 있으니 SS급 몬스터 마석은 수거해 가야 해.”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텐데.”
“마석 탐지 아이템 챙겨 가지고 왔지.”
쓸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라도 빼먹을 순 없다. 고급형이라는 마석 탐지 아이템을 사용하자 여기저기서 수많은 신호가 떴다. 이게 다 몇 개냐. SS급은 다섯 개 다 나왔고 S급 마석도 수두룩했다.
“제일 가까운 게, 바로 그 앞이네. 땅이 녹아서 여기까지 흘러왔나 보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유현이가 칼끝으로 크게 파냈다. 아직 흐물한 땅덩어리가 튀며 반짝거리는 마석이 나타났다. 이어 두 개째 마석을 수거하는데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공중에서 멈춘 헬기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전부 헌터였다. 일본 헌터.
“수고가 많았다.”
가장 마지막에 내려선 시시오 놈이 근엄한 척하는 얼굴로 말했다.
“계약은 지키겠다. 다만 계약서에 무사히 보내, 윽!”
탕! 소리와 함께 탄환이 갈기 같은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F급이 쏜 거지만 S급 마탄이랍니다. 살쾡이 총을 그대로 겨눈 채 웃어 보였다.
“설마 이렇게 뻔한 짓거리를 할 줄 몰랐는데. 명색이 사자왕님께서.”
내 말에 시시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얼씨구, 부끄러운 줄 알긴 아나 보지.
“내 명예보다는, 길드가 더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더러운 진흙탕에 뛰어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제왕의 의무!”
“아, 사자가 아니라 돼지셨구나. 몰라뵀네. 좋은 진흙탕 하나 소개해 드려?”
“네, 네놈! 스킬 때문에 오냐오냐했더니!”
“저 돼지 말 몰라요.”
돼지가 꽥꽥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어쩔까? S급들 죄다 끌고 온 모양인데. 30분도 지났고.”
“여기서 구경하고 있어.”
아무 걱정 말라는 듯이 유현이가 눈매를 휘며 웃었다. 든든하기도 하지, 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