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86
284화 태우는 것도 깔끔하죠 (3)
“어휴, 멀쩡한 건물 많네.”
안타까운 척 주위 풍경을 둘러보았다. 수도 수준은 아니었지만 제법 발전한 도시 정도는 되어 보이는 동네였다. 피난은 끝마쳤는지 사방이 조용하다. 어둑어둑해져 가는 하늘 아래 불빛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백 명의 일본 상급 헌터가 4차선 도로를 꽉 채우며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이크.”
내민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다. 아아, 소리 잘 나오나. 인도에 세워진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한 볼라드 위에 올라섰다. 이제 좀 뒤쪽 사람도 눈에 들어오네. 내 키가 작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SS급 몬스터와 맞붙을 것으로 생각해서인가 다들 얼굴에 긴장이 한가득이다.
“친애하는 한국 헌터 여러분, 그리고 안 친애하는 일본 헌터 여러분. 거기 뭘 쏘아봅니까. 댁들도 나 싫어하는 거 훤한데. 도와줘서 무조건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 있으심 손 들어 보시든가.”
없네. 있다고 해도 눈치 보여서 못 들겠지만. 코앞에 아마테라스 길드장님께서 부글부글 끓는 얼굴 하고 있으니.
“우선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 이거 보이십니까? 이게 무엇이냐, 하면 주위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끌어모으는 광범위 떡밥입니다. 요건, 음, 딸기 향이네요.”
빨간색 말랑한 구슬을 가볍게 눌러 보이며 말했다.
“잠시 후 떡밥을 터뜨리고 약 30분간 여러분께서는 살아남아 주시면 됩니다. 길면 한 시간까지도 걸려요. SS급 몬스터의 최고 속도가 시속 200km쯤은 될 테니 한 시간을 넘기진 않을 겁니다.”
예전의 거대두꺼비처럼 느린 놈도 있지만 대체로 빠르다. 덩치도 크다 보니 한 번에 수백 미터를 뛰어넘기도 했다.
“S급 헌터들이 최대한 보호해 줄 테니 괜히 튀어나가지 말고 자리 지키는 게 더 안전합니다. 경력 있는 분들이니 잘 아시겠죠? 저쪽에서 대기 중인 보조계들이 보조 스킬 잔뜩 걸어 줄 테니 뭉쳐서 잘 버티십쇼.”
S급 헌터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열 명 정도는 줄어들어도 괜찮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스킬 창을 확인했다. 이번에 내가 쓸 스킬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에 더해,
[우리 애가 이렇게나 잘났다(SS) – 키워드를 이해 가능한 다섯 명 이상의 지성체 앞에서 키워드 감화 대상을 키워드로 응원 시 대상 능력치 및 스킬 효과 + 지성체의 숫자%(최대치 100%)지속시간 30분
사용 대기시간 10일
※대상 및 주변 지성체가 키워드의 효과를 인지하고 있을 시 적용 불가]
무려 스탯과 스킬을 최대 100퍼센트 더해 주는, 즉 두 배로 뻥튀기해 주는 바로 이 스킬이었다. 그동안은 제대로 쓸 환경도 못 되었고 키워드 들통날까 봐 사용하기 꺼려지기도 했던 스킬인데.
‘단순히 사랑한다고만 말하면 당연히 들키겠지.’
유현이는 물론이고 주위 다른 사람들도 눈치채고 말 것이다. 그럼 1회용짜리 스킬이 되는 셈이겠지만.
‘스킬 설명을 미리 해준다면 어떨까.’
물론 다른 내용으로 말이다. 사랑한다는 키워드 때문이 아닌, 다른 행동으로 스킬이 발동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용한다면. 안 되면 뭐, 스킬 없는 셈 쳐야겠지만 이런 편법은 허용되지 싶었다.
“그럼 이어서, 스킬 설명이 있겠습니다. 거기 사자왕 씨, 아이템 정보 탈탈 털리게 되었다고 억울해하지 마세요. 저도 털어놓습니다. 진짜 아끼고 아껴서 꽁꽁 감춰 놓았던 스킬인데 말이야. 심지어 이건 보상도 안 받잖아요.”
내가 손해 본다는 티 팍팍 내주며 말을 이었다.
“스킬 적용 대상의 능력치 및 스킬 효과를, 두 배로 강화해 주는 보조 스킬입니다.”
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놀라 굳어 버리기도 하고 자기가 제대로 들은 건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 배라니, 진짜 미친 효율이긴 하지. 시시오도 뭐라 말 못 하고 눈만 끔벅였다.
모두가 경악에 빠진 사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유현이였다.
“무슨 짓이야, 형!”
단숨에 나를 감싸 당기며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어차피 쓰면 들통날 수밖에 없으니 진정해. 그리고 조건도 까다로워.”
평생 안 쓸 거 아니면 결국 걸리게 되는 스킬이다. 목격자가 최소 수십 명은 되어야 쓸 만한 효과를 보이니까. 유현이를 달래며 설명을 이었다.
“이 스킬은 저와 긴밀한 유대관계에 있는 상대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몬스터를 키울 수 있다는 건 다들 잘 아시죠? 그쪽 특성 계열로, 일종의 양육 스킬이죠. 그래서 나이 제한도 있습니다. 서른 살 이하로요.”
처음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고 하려다가 문현아 씨도 있고 만일을 대비해 서른 살로 바꾸었다. 유현이 기준 5년이나 남았으니 넉넉할 거고, 아니면 5년 뒤에 스킬이 성장해서 제한 범위 늘어났다고 하면 되니까.
“그래서 아쉽지만 세성 길드장님께도 못 써드려요.”
실제로는 키워드 적용을 안 해서지만. 성현제는 별말 없이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워낙 예민한 사람이다 보니 그냥 호텔에 있으라고 할까 고민되었었는데 두고 오긴 능력이 또 너무 좋으셔서.
“그럼 저는 되겠네요?”
“그래. 예림이 너는 물론 되지. 노아 씨도요. 하지만 사용 대기 시간이 있어서 한 번에 한 명밖에 못 써줘.”
아니었으면 예림이와 노아는 물론 피스와 현아 씨한테도 써서 화끈하게 밀어 버렸겠지.
“사용 조건은 백 명 이상의 사람들 앞에서 대상자를 향해 애정을 듬뿍 담아 응원의 말을 하며 포옹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모아 달라 한 것이고요. 살짝 낯부끄럽기는 하죠.”
애정을 담은 응원의 말이면 사랑한단 소리가 들어가도 이상할 게 없다.
“많은 수의 인원이 필요하기에 던전 안에서는 쓸 수 없는 스킬이기도 합니다. 시간제한도 있거든요. 고작 30분이라 밖에서 쓰고 들어가도 1층도 클리어 못 하겠죠.”
일부러 던전에서는 쓸모없어요, 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건 제한이 줄줄이 덧붙자 나를 향한 뜨끈한 시선들도 적당히 식었다. 유현이도 한결 마음이 놓이는 표정이었다. 던전 내에선 쓸 수 없고, 나이 제한도 있고, 억지로 사용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이 정도면 효과에 비해선 스킬 가치가 낮은 편이었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거 그야말로 그림의 떡 아닌가.
“정리해서, 여러분은 잘 버티다가 해연 길드장에게 스킬이 적용되는 즉시 정해진 경로로 빠르게 퇴각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준비하시고.”
내 손짓에 따라 보조계 헌터들이 우르르 스킬을 썼다. 그리곤 준비된 차량을 타고 이곳을 벗어난다. 방금 떠난 보조계 헌터들과 나중에 퇴각할 헌터들은 산 너머에 설치한 대피소로 피할 예정이었다. 이쪽으로 몰려들 SS급 몬스터들의 예상 경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신호탄이 올라오고 직후 딸기향 떡밥 구슬을 들어 올려 강하게 눌렸다. 픽, 소리와 함께 구슬이 터져 나갔다.
– 크흥!
피스가 코끝을 실룩이며 머리를 거칠게 털었다. 은혜를 사용하며 덩치를 키운 피스 옆에 섰다.
“유현이 넌 최대한 나서지 마. 잔챙이들은 신경 꺼.”
중요한 건 SS급 몬스터다. 긴장감이 옅게 깔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떡밥에 반응이 나타났다.
– 크르… 켁!
“한 놈 잡았고!”
불쑥 튀어나온 몬스터의 머리를 문현아의 창이 단숨에 꿰뚫었다. 동시에 예림이가 한국어로 번역한 지도를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언니, 저랑 내기할래요?”
발랄하게 외치면서 지도에 표시된 부분들, 소화전을 펑펑 터뜨리기 시작했다. 치솟은 물이 수십 개의 얼음화살로 변하며 접근해 온 몬스터들을 향해 쏘아졌다.
“너무 힘 빼면 안 돼! 버티는 게 목적이야!”
“걱정 마세요!”
안전하게 놀게요! 하고 예림이가 소리쳤다. 노는 거 아니다! 등 뒤쪽으로 번개가 치고 금색 용이 날아올랐다. 시시오를 비롯한 일본의 S급 헌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SS급 몬스터들의 위치는요?”
“아, A, B, C, D, E 전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상 경로를 벗어나지 않은 채 이곳을 향해 직진 중입니다.”
“위치와 속도 계속 보고해 주세요.”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쿠르릉,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채만 한 크기의 몬스터가 높게 점프하며 쿵, 떨어져 내렸으나 땅에 네발 닿기가 무섭게 솟아오른 물줄기에 튕겨 나간다. 차디찬 안개가 퍼져나가고 동작이 둔해진 몬스터들을 바이크에 탄 문현아가 창으로 휩쓸었다.
“또 고장 났네! 새 거!”
란체아 것과 달리 평범한 바이크다 보니 이내 힘을 못 이기고 박살 났지만. 노아는 백 명의 상급 헌터들 위를 배회하며 그들을 지켜 주고 있었다. 비행형 몬스터들이 접근할 때마다 재빠르게 처치하고 버겁다 싶으면 다른 S급 헌터들에게로 유인해 주었다.
차르르─ 소리와 함께 금빛 사슬 또한 경쾌하게 제 영역을 지켰다. A급 이하 몬스터들은 금색의 경계선을 넘지도 못한 채 거멓게 타들어 갔다. S급이라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버틸 뿐이었다.
“아직 경로를 벗어난 SS급은 없습니다. B의 속도가 가장 빠르고 C는 뒤쳐졌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차는요?”
“10분 이하입니다.”
“그 정도면 괜찮아요.”
현대 문물이 좋긴 좋다. 위치추적기를 붙이는 데 성공하고 무인기를 동원해 촬영까지 하고 있다 보니 놓칠 일이 없었다. D의 위치추적기는 부서졌지만 나머지는 제 몸에 조그만 기계장치 하나 달라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마력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흙먼지가 묻은 정도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몬스터의 시체가 쌓여 갔다. 눈 닿는 거리에 멀쩡한 건물이 없었다. 도로 또한 쩍쩍 갈라지고 마지막 남은 바이크마저 두 동강 났다.
“B, 도착 예상시간 5분입니다!”
시간이 되었다. 백 명의 헌터는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이크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전투 중 죄송합니다만 소리를 약간만 줄여 주세요.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몬스터 멱따는 소리까지야 어떻게 줄이겠냐. 막상 입을 떼려니까 쪽팔렸지만 머뭇거리기엔 시간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선 유현이를 바라보았다. 동생이 나를 마주 보며 생긋 웃었다.
“언제 봐도 잘생겼죠, 제 동생은.”
“아아악, 아저씨! 전 안 들어도 되죠? 귀 막을게요!”
아니 왜, 이 정돈 사실이잖아.
“착하기도 착하고 어릴 때부터 못하는 게 없었고. 가끔은 이렇게 잘난 녀석이 내 동생이라니, 싶어지기도 한다니까요. 모자란 곳 하나 없이 번듯하게 잘 커서는 하나 있는 형이랍시고 또 얼마나 잘 대해 주는지.”
“뭐 하는 거야, 형님! 아, 나도 못 참겠다!”
아 뭐 왜. 근데 응원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긴 했다.
“지금도 저만 믿고 이렇게 위험한 일을 흔쾌히 받아들였고요. 하지만 너라면 분명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유현아, 사랑한다 내 동생. 난 항상 널 믿고 의지하고 있어.”
사랑한다는 말에 맞추어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스킬, 제대로 적용되었나?
“유현아?”
“응, 형.”
동생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좋아, 성공이다.
“퇴각! 즉시 퇴각하세요! 경로대로!”
외침과 동시에 미니미니 쿠키 두 개를 꺼내들었다.
“피스야!”
피스가 쿠키를 받아먹곤 훅 줄어들었다. 유체화까지 하자 조그만 장식용 인형 같다. 만에 하나 SS급 몬스터를 다 잡지 못하고 우리 애 스킬 시간이 소모되었을 경우 탈출을 위해 피스는 남기로 하였다. 속도는 유현이보다 피스가 훨씬 빠르니까.
이어 나 또한 쿠키를 먹고 피스를 품에 안아들었다. 작아진 우리를 유현이가 재빨리 집어 들어 예장 안에 입은 옷의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천둥새의 예장은 약간 느슨히 걸친 채였지만 그래도 시야가 가려지는 편이라 공격 스킬 두 배 공유에 더해 선생님 스킬을 유현이에게 사용했다.
빠르게 후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심해, 길드장님!”
예림이가 순간이동으로 옆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노아와 문현아도 한 마디씩 던지고 멀어져 갔다. 성현제 또한 뒤따라 붙은 몬스터를 사슬로 휘감아 내던지곤 후퇴하는 사람들과 합류했다.
그들이 완전히 자리를 뜨기 전.
– 캬아아!
사나운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맹수가 나타났다. 빠르게 달려온 듯 시커먼 터럭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발톱 아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드르륵 갈려 나간다. 놈이 멈춰서는 기세만으로도 주위의 건물 잔해가 돌풍 맞은 낙엽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유현이가 움직였다.
푸른 버들잎이 펼쳐지고 가볍게 이파리를 밟고 서며 한쪽 손을 앞으로 내민다. 그 손끝에서 검푸른 불길이 피어올랐다. 작은 불꽃이었다. 장식용 촛불처럼 자그마한 불꽃이 버들잎과 뒤섞여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 크르르.
경계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건만 몬스터는 무엇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화르륵. 땅에 닿은 불꽃이 단숨에 높게 치솟았다. 몬스터가 사람들을 뒤쫓지 못하게 하려는 듯 세워진 불의 장벽을 뒤로한 채 유현이가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시작할게, 형. 꽉 잡고 있어. 조금 어지러울지도 몰라.”
“노아 씨 곡예비행도 겪어 봤거든? 걱정하지 마.”
검은 맹수의 뒤를 이어 역시나 어두운 비늘을 지닌 용종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두 마리, 그리고 세 마리째. 흉흉한 기세가 공기를 두드리다 못해 눈에 보일 듯 짙어졌다. 그 속에서 한유현이 여유롭게 검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