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35
333화 두 번째, 세 번째 (2)
유현이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결국 화 속성 마석을 준비해 오겠다고 하였다.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병원에서가 낫지 않겠냐는 설득 덕분이었다. 흑룡 심장에, 깜둥이도 이참에 넣을까. 딱 깜둥이까지만 넣고 끝내야지. 디아르마처럼 너덜너덜해지는 건 싫다. 내 몸으론 감당도 안 될 테고.
“…은혜야, 이건 좀 너무.”
– 삑!
파랑새가 항의하듯 소리 높여 울었다. 그리곤 은혜, 그러니까 자기 본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렇잖아도 화려한 이어커프에 장식사슬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귀만 희생해도 된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지만, 이어커프는 길게 사슬로 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 연회장에나 어울릴 법한 화려한 목걸이와.
은혜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들여 정교한 장식품을 만들어 냈다. 자신의 취향을 듬뿍 넣어서. 내가 싫어한 탓에 평소에는 작은 보석 한두 개에 사슬 한두 줄로 참아 줬지만 가끔은 마음껏 변하게 해주었다. 물론 집에서만. 그런데 오늘은 유독 화려한 데다 시간도, 공도 많이 들이고 있었다.
이린과 싸운 탓인가.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 같았다.
‘은혜가 정신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게 이린이겠지.’
예림이 말로는 갑자기 둘이 싸워댔다고 했다. 은혜는 아직 말을 잘 못 하고 이린은 입을 딱 다물어 버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거 말고 은혜가 먼저 덤벼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린이 녀석, 흑룡이나 막아 주지. 아니, 그랬다면 어린 혼돈이 유현이를 가르쳐 주는 일도 없었겠지. 은혜가 있었으면 유현이가 스스로를 상처 입히지도 않았을 거고 흑룡도 깨어나지 못했을 테고.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잘했다.
“아저씨, 완전 멋진데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있던 예림이가 웃음을 눌러 참으며 말했다. 잔뜩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냥 웃어라, 웃어.
“그래도 은혜가 착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옷까진 요구 안 하잖아요. 그치, 은혜야.”
– 삐이.
은혜가 부리 끝을 까딱하며 치렁치렁한 목걸이 장식을 살짝 바꾸었다. 이어 내게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보라는 듯 한쪽 날개를 파닥거렸다. 정말 눈이 부시는구나.
– 삐이?
– 삐약!
– 삑.
은혜와 삐약이가 장식에 대해 의논이라도 하듯 삐삐거렸다. 대화가 통하는 걸까. 벨라레도 꽤 흥미 있게 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스만이 소동에서 빠져 얌전하게 침대 아래에 지키듯 앉았다. 내 상태가 안 좋다고 무릎 위로 올라오지도 않았다. 착하기도 하지.
“손톱 그대로 뒀음 잘 어울렸을 텐데요.”
“유현이가 나 안 지우면 자기도 그대로 두려 들었잖냐. 그 상태로 돌아다니게 하긴 좀 그렇지.”
상급헌터 전용 병원 직원들은 비밀유지가 기본이라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도 손톱칠하고 있는 게 어색했고.
“TV는 볼 수 있게 해주지.”
“독서와 산책은 가능하잖아요.”
뉴스나 헌터 관련 방송 보면 괜히 신경 쓴다고 내일까지 금지당했다. 못 봐도 걱정은 되건만.
“피스 인형 발매 이벤트는 참석해야 하는데.”
“아저씨 퇴원 후로 미뤘대요. 빌딩 1층 카페 공사 시작한 건 아시죠?”
“응, 들었어. 옆에 인형가게도 들어갈 거고 편의점 입점도 예정이라더라. 그리고 은행도.”
“은행이요?”
“헌터들 현금 많잖아. 한참 전부터 연락 왔었어. 근처에 다른 은행도 있긴 한데, 빌딩 내에 자리 잡으면 훨씬 유리하니까.”
나만 해도 입점하는 은행이 주거래 은행이 될 듯하고. 내가 직접 오갈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가까운 게 좋잖아.
“일본은 언제부터 갈 예정이야?”
“빠를수록 좋대서 원래라면 내일 출발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입원했잖아요.”
“가도 돼. 물론 안 가도 되고. 코앞이긴 한데 그래도 혼자 보내려니 걱정이다.”
“혼자 아니고 팀원 다 있는데요 뭐. 일본 가지고 걱정하면 어떡해요. 나중엔 미국에 유럽에 중동이며 다 갈 건데.”
“뭐?!”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예, 예림이 네가 거길 왜 가? 게다가 중동은 여전히 치안 나쁘다고! 헌터 관련 분쟁도 얼마나 심한데!”
“지금 말고요. 나중에 성인 되면요.”
예림이가 한쪽 다리를 가볍게 탁탁, 의자 다리에 부딪치게 하며 말했다.
“성인이라도, 굳이 갈 필요 없잖아.”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 안 갈 이유도 없죠. 게다가 제가 위험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하지만. 혹시…….”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독립하고 싶어서, 그래? 성인 되면?”
“네? 아뇨, 전혀요~”
예림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반대라고?”
“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으니까 마음껏 돌아다닐 거예요.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예요. 그러다 저 혼자 감당 못 할 사고 칠 수도 있겠지만, 그럼 아저씨가 제 편 들어주겠죠.”
“그야 물론이지.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다 예림이 네 편이야.”
내 말에 예림이가 볼우물이 패도록 활짝 웃었다. 정말 예쁜 미소였다.
“전쟁 나도요?”
…말하는 건 살벌했지만.
“그, 그래. 아저씨가 힘낼게. 그래도 가능한 평화롭게 해결하렴.”
“옙!”
뭐… 송 실장님도 전차부대 박살 냈다니까. 그 정도면 준전쟁 아니냐.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야 좋지만, 그래도 벌써 쓸쓸해지네.”
“에이, 그래 봐야 던전 공략 들어가는 거랑 별 차이 없을걸요. 비행기 타면 하루도 안 걸리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던전 들어가면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하니까. 그래도 해외 나간다고 하면 정말 멀리 떨어지는 느낌이라. 손거울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예림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림이가 성인이 된다, 라.
‘많이 다른 느낌이겠지.’
이미 한 번 봤다. 하지만 내가 본 예림이와 지금 눈앞에 있는 예림이는 달랐다. 혼자서도 꿋꿋이 잘 자랐지만, 충분히 강한 헌터였지만, 지금보다는 분명 메말라 있었다. 방송을 통해서나 몇 번 봤을 뿐이지만 지금처럼 환하게 웃은 적은 없었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부모님만 무사하셨더라도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텐데. 예림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어, 귀여움?”
“…….”
…뭐 왜.
“…한유현이라면 없는 꼬리 치면서 좋아라 했을 텐데 제가 한유현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예림이가 정중하게 머리까지 숙이며 사과를 해왔다. 그렇게나 이상했나. 블루 요즘 인기 정말 많다, 사육소 이름은 언제 지을 거냐, SNS 업데이트 좀 하라는 등의 잡담이 오갔다. SNS에 올리기 위해 삐약이와 벨라레, 은혜를 촬영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노크 소리가 들려오기도 전에 예림이가 인상부터 찌푸렸다. 누군지 안 봐도 알겠다.
“병원 소유자라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네요. 우리 길드는 병원 지을 생각 없대요?”
“세성도 원래 있던 대형병원을 인수해서 헌터 전용 병동만 더 붙인 거야. 기존의 의사들을 헌터 친화적으로 교육시키기도 했지만.”
이정도 규모를 뚝딱 만들긴 힘들다. 헌터용 병원이 하나 더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꼭 해연 소유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대답은 없었지만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 선 성현제가 가지고 온 선물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쇼핑백 하나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고, 다른 하나는…….
“…두유?”
성현제가 두유를 들고 왔다. 병문안 선물로 무난한 거긴 한데, 그래도 성현제가 두유라니. 심지어 특별한 것도 아닌 그냥 흔한 시판 두유였다. 설마 직접 산 건 아니겠지. 병원 앞 편의점에서 두유 박스를 사는 성현제의 모습을 떠올리다 말고 급히 지워냈다. 아니 왜 두유야.
“저… 혹시 세성길드 건물 재건축하느라 긴축재정에 들어갔다거나, 한 겁니까?”
“짧은 사이 한유진 군의 취향이 독특해진 듯하군.”
웬 동문서답… 악! 은혜야!
“제가 이런 게 아니고요! 은혜야, 은혜야!”
– 삑.
은혜가 작은 머리를 갸웃했다가 포르르 사라졌다. 모르는 척하기냐! 그사이 성현제가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뜯자 나온 것은.
“선물이라네.”
“…우리 예림이 화장 안 하는데요.”
화장품이었다. 모양새를 봐선 립스틱이 아닐까. 근데 저 인간이 남의 병문안 오면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감히 예림이한테 찝쩍거리다니 마침 병원이니 내가 뒷목 잡고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뒷목 잡기 전에 네놈 목부터 베어 주겠다는 각오의 눈빛을 보내자 성현제가 립스틱을 열며 말했다.
“당연히 한유진 군의 선물이네만.”
“…예림아, 저런 변태랑 가까이 있으면 안 돼.”
돌으셨나 진짜. 내 말에 성현제가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유진 군이 먼저─”
“아저씨!”
갑자기 예림이가 버럭 소리쳤다.
“요샌 남자도 화장해요.”
“으, 응?”
“아저씨가 입원도 했으니까, 안색 나쁘니까. 입술 색 좀 환해 보이라고 사가지고 온 모양이죠.”
아니, 그래도. 나도 방송 출연할 땐 가볍게 화장하긴 했지만……. 예림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쇼핑백 안을 확인했다.
“한두 개가 아니네요. 제가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 봐줄게요.”
“괜찮…….”
“립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요즘 젊은 남자죠!”
…5년 후에도 연예인 아니고선 입술 칠하고 다니는 거 잘 못 봤는데. 사람 많은 곳은 거의 안 나기긴 했지만. 예림이가 립스틱을 줄줄이 꺼내 놓곤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곤 손등에다 하나씩 칠하기 시작했다. 왜 얼굴도 아니고 손등이지.
“어때요?”
“어떠냐고 해도… 내가 뭐 알겠냐.”
“저도 잘은 몰라서요.”
역시 이런 건 얼굴에다 해봐야 알지. 성현제에게 가까이 와달라고 불렀다.
“고개 좀 숙여 보세요. 입 다물고. 살짝 벌려야 하나?”
성현제의 입술에다가 핑크빛 도는 립스틱을 꾹꾹 눌러 발랐다. 그리곤 예림이와 함께 입술 칠한 면상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저래서 도움은 안 되네.”
“그쵸. 숯으로 찍 그어도 어울릴 얼굴이라.”
“좀 짜증 난다.”
“아저씨도 잘 어울리긴 했, 할 거예요.”
“나보단 유현이가 훨 낫겠지. 송 실장님도 은근 어울릴 거 같지 않냐.”
“노아 오빠는 어때요? 새빨간 걸로. 명우 오빠도 어색한 듯 괜찮을 거 같은데.”
노아 씨는 진짜 예쁠 것 같았다.
“어쨌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유 잘 먹을게요.”
“천만에. 파트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입원했으니 전에 말한 약속은 미뤄지는 건가.”
“아뇨.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병원에 오래 있지도 않을 거예요.”
병원에서도 뭐 피로회복 정도나 시켜 주는 거지. 관리를 해주니 집에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성현제가 고개를 끄덕이곤 예림이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예림이가 뭘 쳐다보냐는 듯 시선을 마주했다. 자리를 비켜 줄 마음은 조금도 없는 모양이다.
“그럼 기다리고 있지.”
“예. 아니 잠깐만요!”
미친, 그러고 나가려고! 어울리긴 해도, 그래도!
“아저씨, 링거! 바늘 빠져요!”
돌아서는 성현제를 붙잡아 입술을 지웠다. 유현이도 그렇고 이 인간도 그렇고, 태생 S급은 수치심이 삭제되었나 왜 아무렇지도 않게 엉뚱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저녁쯤에 헌터마켓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주문한 시계가 한두 달 내로 완성된다는 소식이었다.
시계 만드는 스킬이라니, 일하던 도중에 각성한 것일까. 그래도 선주문이 꽤 있어서 반년 가까이 기다려야 했는데 특별히 신경 써서 빨리 만들어 주는 거라고 했다.
“새치기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네요.”
극소수만 살 수 있는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라 양심은 별로 안 아팠지만.
[혹시 다른 분들에게도 선물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했습니다. 박예림 헌터님이나 유명우 헌터님, 노아 헌터님 같은 분들 말입니다.]“명우 헌터는 S급이 아닌데요? 저도 물론 아니라 조건 미달이잖습니까.”
[같은 장인으로서의 예의라고 하더군요.]그러면서 슬쩍 타 브랜드와의 경쟁 심리도 있을 거라 말했다. 유현이도 그렇지만 예림이와 노아, 명우도 첫 시계라 의미가 크다나. S급 헌터들이 제일 많이 선택한 시계! 뭐 그런 거려나.
병원 밥인데도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게 잘 나온 저녁을 먹고 실내 정원에서 운동 삼아 산책하고 있을 때 유현이가 나타났다. 동생 녀석이 영 언짢은 얼굴을 하고선 나를 지키고 있던 상급 헌터를 내보냈다.
“마석은 가지고 왔어?”
“…응.”
“얼굴 좀 펴라. 병실로 가자.”
가볍게 손짓하며 앞장서자 동생이 축 처져서 따라왔다. 동물병원 알바할 때 이따금 본 모양새다. 주로 순한 대형견이 주인 눈치 슬금슬금 보며 꼬리 팍 내린 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오곤 했었지. 빙글빙글 돌다가 숨겨 달라는 듯 내 다리에 머리 푹 묻는 거 정말 귀여웠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몽이 쿠키 초코 모모 보리 다롱이 백설기 등등.
병실로 가 문을 잘 잠갔다. 누가 보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침대에 가 앉자 유현이가 한숨을 삼키며 마석과 군림자의 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