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55
453화 축 개업
– 끄우웅.
“피스야, 착하지.”
불만이 가득한 피스를 살살 달랬다.
“이건 그냥 인형이고 피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갈 거야.”
그간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피스는 자신을 본뜬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림이 인형은 신경 안 쓰는 걸로 봐선 자기 인형이라는 걸 인식하는 듯한데, 똑똑하기도 하지.
“초상권 계약도 없이 멋대로 만든 게 마음에 안 들어?”
“아저씨, 피스가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그것까진 모를걸요. 그냥 질투하는 거 아니에요? 강아지들처럼.”
예림이가 핀잔을 던져왔다.
“그런 거야? 우리 피스랑 인형은 비교도 안 되는데.”
– 끼앙.
“피스가 훠얼씬 귀엽지. 털도 부드럽고 따뜻하고 똑똑하고 착하고. 우리 피스는 왜 이렇게 다 잘났니. 못난 구석이 하나도 없네!”
– 갸르르릉.
“인형은 그냥 인형일 뿐이야! 피스 최고!”
내 무릎 위의 피스가 발라당 뒤집어지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드러난 배를 살짝 거칠게 쓰다듬어 주자 웃듯이 입을 살짝 벌리며 갸르릉거린다. 아이 귀여워. 보송한 앞발이 허공을 툭툭 치며 꼼지락거렸다. 발가락도 예쁘고 발바닥도 예쁘고 톡 튀어나오는 발톱도 귀엽네.
– 꺄아웅.
한참을 귀엽다 귀엽다 해주자 만족했는지 더는 자신의 인형을 물어뜯으려 들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피스 인형 가져다 놓는 건 포기해야겠다. 종류별로 진열해 놓을 예정이었는데 아쉽네.
“어제부터 줄 섰다는데, 아세요?”
민소한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줄을 서다니?
“설마 인형 사려고요?”
“그럼 뭐가 또 있겠어요.”
“…왜 줄까지 선대요. 많은데.”
인형이야 계속 판매될 거고 포토카드가 초판 한정이긴 하지만 초판 자체도 많다고 들었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고.
“S급 헌터는 연예인 뺨치게 인기 많잖아요. 근데 방송 출연은 잘 안 하죠. 그나마 박예림 헌터는 학교 다시 다니면서 보기 쉬워졌지만 다른 S급들은 아니잖아요.”
“아, 유현이 보러 오는 거구나.”
줄 설 만하네. 해연 길드장님 실물 볼 일이 얼마나 있겠냐. 그나마 요새는 출퇴근이라도 하지만 이사하기 전에는 길드 내에 자택이 있어서 진짜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출퇴근도 바로 옆이다 보니 길드 건물에서 그냥 바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고, 주차장도 전용이고.
“TV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낫죠. 예림이도 그렇고요.”
“피스랑 소장님이 목적인 사람들도 많을걸요.”
“맞아요, 피스도 줄 설 만하죠. 그치, 피스야.”
나는 뭐, 그래도 희귀하긴 하니까. 볼 건 딱히 없지만.
“출퇴근 시간이면 복잡해지니까 오전 6시에 번호표 배부하고 해산시켰어요. 박예림 헌터, 비각성자들 놀라지 않게 기세 잘 줄여 주시고요. 피곤하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언니. 학교도 다니는데 그 정도야 기본이죠~”
소한이가 이것저것 세심하게 체크했다. 헌터계에 발 들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처리가 능숙했다.
“사육소 이름 공모전 했었잖아요. 공모전에 참가한 페이지를 보여 주면 10퍼센트 할인 쿠폰과 사은품 추첨 기회를 드리기로 했어요.”
“사은품 추첨도 해요?”
“인형 하나 구입할 때마다 한 번씩이요. 특대형 피스 인형, 포토카드 컴플릿 세트, 일반 피스 인형들, 피스와 삐약이 잠옷, 삐약이 프린팅 우산, 피스 프린팅 물티슈.”
뭐? 우산도 있어?
“1등 상품은 피스 발바닥 황금 모형이에요.”
역시 금이 최고 아니냐며 민소한이 말했다. 금값 여전히 비싸지. 던전 나오고 통화 안정성이 떨어지자 확 올랐다. 나라가 진짜 망하면 금덩이도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그래도 종이쪼가리보단 나을 테니까. 던전 광물이 대체해 버린 다른 희귀보석과 달리 금은 지금도 가격 유지되고 있고.
나도 살짝 탐나네.
문 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매장 쪽으로 향했다. 원래 가게도 작지 않았지만 임시로 옆쪽까지 터서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어른도 탈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피스 인형과 아직 출시되지 않은 삐약이 인형, 그리고…….
“으, 저게 뭐야…….”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저번에 찍은 사진들로 피스와 유현이는 물론이요, 나도 보였다.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겠네.
“너무 크잖아… 무슨 연예인 광고도 아니고…….”
“비슷하죠. TV에도 나왔으면서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아저씨!”
자신감을 가져요, 하며 예림이가 나와 유체화 피스 사진 포스터 앞에 서서 셀카를 찍었다. 저거 예전에도 본 것 같은… 아, 일본. 그래, 밖에다 실물크기 사진 세워 놓는 것보단 낫다.
“이쪽으로는 인원을 제한하여 출입시킬 예정입니다. 포토타임은 오전 11시부터 12시, 오후 3시부터 4시 두 번 있습니다.”
몬스터인 만큼 피스와 함께 사진 찍는 것은 금지되었다.
“정식 이벤트는 포토타임뿐이니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롭게 움직이셔도 됩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매장 내에 머물러 주세요.”
오늘 하루만큼은 특별히! 하고 해연에서 나온 사람이 말했다. 이어 김하연이 감출 수 없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그녀의 머리 위로 웬 귀와 뿔이 솟아나 있었다. 그러니까 저거.
“피스 머리띠입니다.”
“아…….”
“매장 직원용이지요.”
판매용은 아니구나. 이러다 인형 탈까지 나오겠다. 김하연이 나와 예림이에게 피스 귀와 뿔이 달린 머리띠를 내밀었다. 예림이는 귀엽다며 덥석 썼다. 내 나이가 체감상 서른인데 이런 걸……. 하지만 김하연 팀장님 앞에서 나이 타령을 할 순 없고, 그냥 썼다.
– 끼앙! 꺙!
붉은 귀가 쫑긋하고 금빛 뿔이 솟은 머리띠를 쓰자 피스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신이 난 듯 폴짝 뛰었다.
“아빠도 피스 같은 귀 생기니까 좋아?”
– 꺄앙!
자기와 비슷해진 게 좋은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맴돈다. 가끔 껴줘야 하나. 잠깐만.
‘…혹시 몬스터 새끼와 비슷한 모습을 하면 키워드 적용이나 성장에도 도움이 될까?’
같은 털색으로 염색하거나 귀와 꼬리, 날개 같은 걸 다는 식으로. 뿔여우야 쉽고 페가수스는 날개? 수룡은… 난이도가 높구나.
그러는 사이 매장이 오픈했다. 우르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자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속으로는 민망한데 몸은 손님에 반응하고 있었다.
“…여기 앉아 있지 말고 일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막 드는데요.”
예림이도 나와 비슷한 느낌인 모양이었다.
“단체 손님 든 거 같아요. 주문받아야 하고, 음식 날라야 하고.”
“이제는 안 그래도 돼.”
하지만 여긴 내 가게기도 하니까. 여기저기서 피스 귀여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은 이벤트 페이지 확인하고 설명해 주고 결제하느라 바빴다. 일손이 좀 모자라 보이는데.
“피스야, 여기 얌전히 있어.”
네 팬들이 많아서 밖에 나가면 안 된다. 피스를 푹신한 애완동물용 침대 위에 내려놓고 판매대 쪽으로 나갔다. 그러잖아도 이쪽을 흘끔거리던 시선들이 내 움직임을 따라 우르르 몰려들었다. 진짜 쑥스럽네.
“안녕하세요~ 뭘 찾으시나요?”
“피스 인형 종류별로 다 살 건데, 사진 같이 찍어도 돼요?”
“손이 참 크시네요! 죄송하지만 사진은 포토타임 때 외엔 금지되어 있답니다. 매장 내부가 혼잡하니 조금만 양해 부탁드려요~ 대신 제일 귀여운 인형을 찾아드릴게요. 이 아이 어때요? 피스랑 정말 많이 닮았네요.”
특히 요 동글동글한 볼살이 피스 어릴 때랑 판박이다.
“상품 추첨 줄은 이쪽입니다! 대형 삐약이 인형 뒤쪽으로 서주세요! 사진 촬영하실 분 포토타임 티켓 받아가는 거 잊지 마시고요.”
아직 촬영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전시관 쪽으로 간 몇몇 사람이 피스를 향해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자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던 예림이가 큼직한 물방울을 만들어 내더니 휘익, 카메라 앞으로 장벽처럼 펼쳤다. 물의 벽이 새하얗게 얼어붙으며 시야를 가린다.
“촬영 금지!”
그것을 본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언니 너무 좋아요!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애들이 우르르 예림이에게 몰려가 눈을 반짝거리고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사인을 받아갔다.
“피스야아아아!”
피스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았다. 애초에 피스 인형 파는 곳이기도 하고. 접근하지 못하게 쳐놓은 선 밖에서 피스 너무 귀여워, 하고 거의 울먹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피스가 데굴, 몸을 굴리거나 뒤척이거나 꼬리를 흔들거나 귀를 쫑긋거릴 때마다 저것 봐, 어떡해, 귀여워가 연신 쏟아졌다.
“차례차례 출구로 나가 주세요!”
피스 본다고 꿈쩍을 하지 않는 바람에 내가 다가가 퇴장 안내를 해주었다. 나를 본 피스가 벌떡 일어나며 끼앙, 하고 울었다. 그 직후 환호성이 일었다. 아이고, 귀여운 건 알겠지만 여기서 계속 이러시면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옵니다.
자리를 비켜달라며 손짓을 하는데 매장 쪽의 웅성거림이 돌연 잦아들었다. 피스 앞에 모인 사람들도 뒤를 돌아보더니 헉, 하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앉아 있지 왜 일어서 있어.”
일 때문에 늦게 도착한 유현이였다. 유현이가 나를 향해 미소 짓자 조그만 소곤거림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예림이나 피스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일단 내 가게이기도 하잖냐. 생각보다 일찍 왔네?”
“응. 빨리 끝났어.”
사진만 몇 번 찍으면 되는 거 아니었냐며 유현이가 나를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테이블의 의자를 빼어 앉히고는 오래 서 있지 말라며 작게 속삭여왔다.
“호연 헌터 수속 마무리되었으니까 내일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어.”
“그래? 다른 사람들은?”
“며칠 더 걸리겠지만 문제는 없을 거야. 우선 호연 헌터 가족들은 함께 입국승인 났고.”
호연 선생님만이었으면 더 빨리 진행되었을 텐데 가족과 동시에 들어오길 원해서 조금 더 지체되었다고 하였다.
“타국 국가 소속 A급 힐러를 빼내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선 좋을 게 없으니 아예 한국인으로 위장하기로 했어.”
속사정이야 어떻든 중국 군부에 속해 있던 헌터다. 그러니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해도 감추는 편이 나을 것이라 말했다. 일단 내 다리 치료만 하고 한동안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새롭게 각성한 한국 A급 힐러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신변보호를 핑계로 개인정보는 싹 감춘 채로 말이다.
“치료가 잘 끝나야 할 텐데……. 형은 포션이나 치유 스킬도 함부로 못 쓰잖아.”
내 옆에 앉은 유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주위는 여전히 조용했다. 아예 떠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 전과 비교하면 수업 중인 교실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걱정하지 마. 다른 곳도 아니고 다리인데 뭐.”
최악이라고 해봐야 자르기밖에 더하겠냐. 목숨에는 지장 없다.
다행히 얼마쯤 지나자 찬물 끼얹은 듯한 분위기가 다시금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특대형 피스 인형에 당첨된 사람에게 특별히 피스 사진을 찍어가게 해주고 매대의 인형이 절반 가까이 사라졌을 즈음이었다.
“언니! 사랑해요!”
“국대 때부터 팬이었어요!”
갑자기 가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확 띄는 붉은 머리칼이 나타났다. 문현아였다. 성큼성큼 걸어온 그녀가 손에 든 개업축하 화분을 턱, 내려놓았다.
“안녕, 형님.”
“어서 오세요, 현아 씨!”
“현아 언니! 안녕하세요!”
“그래, 예림아. 머리띠 귀엽네. 도련님은 안 쓰나.”
안 그래도 하나 가져다 씌워 볼까 했는데 길드장님 이미지 관리해야 한다며 거절당했다.
“인형가게 말고 사육소도 정식 개관행사 한번 해야 하지 않겠어? 이름 지어졌다며.”
“문 연 지가 언젠데 새삼스럽죠.”
“소식 들었어.”
문현아가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작게 말했다.
“해연의 힐러 말이야. 좋은 소식이란 게 그거?”
“눈치도 빠르셔라. 네, 정확합니다. 별일 없으면 MKC의 힐러는 해연에서 손 뗍니다.”
내 말에 문현아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 정도면 돼.”
“안 도와줘도요?”
“문제없어. 이번에도 형님이 한 건 했지 싶은데, 맞아?”
“음, 네. 그런 셈이지요.”
얼굴이 너무 가까운데. 반사적으로 머리를 뒤로 빼자 현아 씨가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무심코 멍하게 바라봐 버릴 정도로. 문현아가 내 어깨를 툭 치곤 몸을 바로 했다.
“귀 빨개졌다.”
“아니, 그게요.”
“농담이야.”
뭐?
“형님 나 좋아해?”
“좋아하는 거야 당연히 좋아하고요. 아니 그러니까, 현아 씨가 좀 많이, 뭐냐, 매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그런 거죠. 솔직히 그렇잖아요.”
진짜로. 문현아가 껄껄거리며 웃고 유현이와 예림이가 형, 나는? 아저씨, 저는요? 하고 물어왔다. 너희 둘도 당연히 그렇고.
그리고 잘나신 걸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분이 납시셨다. 왜 안 오나 했네.
“개업 축하하네, 한 소장님.”
병원 특실도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하고 성현제가 속삭였다.
예정보다 훨씬 화려해진 포토타임이 진행되고 피스 인형 출시 행사가 무사히 끝난 다음 날, 나는 조용히 세성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