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60
458화 제자들 (1)
다리 상태를 재차 점검하고 깁스를 풀었다. 다리의 마비 또한 풀리자 제법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 정도 통증은 참아! 아파야 무리를 안 한다.”
호연 선생님이 성현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말은 내게 하는 것이었다.
“며칠은 조심해서 걸어 다니고.”
“네.”
“전의 둘은 너무 어렸는데, 내가 딱 십 년만 젊었어도.”
“…예?”
그, 성현제한테 하는 말씀이신가? 십 년 젊으셔도 띠동갑이 넘으실 텐데. 뭐, 띠동갑이 넘는데도 스물과 서른 중반이면 서른 중반이 개새끼에 죽일 놈이지만 서른 후반과 쉰은 알아서 하세요, 긴 하지.
“영광이군요.”
성현제가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호연 선생님이 으으음, 하고 턱 아래를 매만졌다.
“생각해 보니 우리 나이에 스물 차이면 적당하지. 데이트하련?”
아니 스물보다 더 나시지 않습니까.
“죄송하지만 선약이 있습니다.”
“뭐, 누구. 이놈이랑? 골고루 데리고 다니는구나. 부럽다.”
부럽다고 하셔도……. 그보다 성현제한테는 뭔가 직설적이시구만. 나이대가 있어서 그런가. 송 실장님에겐 뭐라고 하실지 살짝 궁금해졌다. 호연 선생님이 손을 내밀자 성현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명함을 건네주었다. 주름진 손가락 사이에 명함을 끼우고는 팔랑 흔든다.
“내가 아직 전화번호가 없어서. 다음에 술 한잔 사마.”
“선생님이 사신다고요?”
저 인간 돈은 썩어 넘치는데.
“얼굴값은 내줘야지.”
그리고는 흰 가운을 펄럭이며 미련 없이 돌아서신다. 병실 문이 여닫혔다.
“진짜 술 얻어 마실 거예요?”
“대접은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내 파트너가 신세를 졌으니.”
“예비 해연 길드원이신데 왜 세성 길드장님이요. 혹시 제 핑계 대실 거면 거절하겠습니다.”
성현제 보면 은근 연상 취향인 거 같던데. 아무튼 드디어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해연에 연락 넣고 성현제를 쳐다보았다.
“저한테 고백할 거 진짜 없으시죠?”
“물론 많지.”
많지가 아니라 없지라고 말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당당한 태도였다.
“…뭐가 그렇게 많습니까.”
“가장 최근이라면 점심때 먹은 디저트가 다이어트용이 아니라는 것.”
“아니 무슨 칼로리 없는 감미료 쓴 거라면서요!”
“한유진 군은 좀 더 살이 쪄도 괜찮아. 몸에는 좋은 거라네.”
“그, 됐고요. 시시콜콜한 거 말고 말입니다. 중요하고, 저나 초월자들과 관련 있는 거요.”
“그런 건 주고받아야지.”
주고받는다고 해도… 난 이미 웬만한 건 다 털어놓았다. 지금 내가 감추고 있는 중요하달 만한 정보는 밝힐 수 없는 것들뿐이다.
“없어요, 전.”
“그럼 나도 없어.”
미덥지 않은 미소를 띤 얼굴을 빤하게 쳐다보았다. 요정용이 내 어깨로 올라오며 소곤거렸다.
– 저건 그냥 무시하자, 아빠.
무시하기에는 저 인간이 쓸데없이 유능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캐물을 방법은 없고, 일단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면 의심을 받을 텐데.”
“명우가 투명화 옵션 붙여 줬습니다.”
완전히 자연스럽게 걷기는 불가능하겠지만. 포션에 힐러도 있고 아낄 위치도 아니다 보니 다리 다쳤어요, 라는 건 그야말로 헛소리였다. 그렇다고 포션 안 통하는 저주나 기타 스킬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시끄러워질 테고.
“어차피 제 발로 걸어 다닐 일도 별로 없잖습니까. 조금만 조심하면 돼요.”
“하긴 내가 들어다 주면 되겠군.”
해연에서 헬기가 올 예정이니 사람 물려 놓은 옥상까지야 직접 걸어가도 되는데. 하지만 다리가 조금 아프긴 하다 보니 끌리긴 했다.
“그럼 신세─”
– 결이도 있어, 아빠!
요정용이 파르륵 날개를 떨며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성현제를 날카롭게 노려본 결이의 몸이 순식간에 커졌다. 분홍빛 도는 은발의 성현제가 침대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크흥, 하고 피스가 당황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안고 가면 돼. 저건 필요 없어.”
아니, 넌……. 결이가 두 팔을 뻗어 나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덩치만 커졌지 힘은 나보다도 약한 요정용이다. 당연히 몇 번 끙끙거리며 내 몸을 들썩거리게만 하다가 울상을 짓는다.
“아빠…….”
결이가 못 들겠다며 울먹거렸다. 애를 달래줘야 하는데…….
“괜찮아, 이리 와. 일단 요정용으로, 아님 어리게라도 변하자.”
성현제와 너무 똑같다 보니 기분이 요상해졌다. 저 얼굴로 울상을 한 채 동글동글하니 눈을 뜨고…….
“내가 저러고 있으니 새로운 기분이로군.”
“뭘요, 댁도 저더러 아빠 소리 한 적 있잖습니까.”
요정용으로 돌아간 결이를 안아 주며 말했다. 정신세계에서의 일은 기억 못 하겠지만. 내 말에 성현제가 입술 끝을 올렸다. 불길한 느낌이 확 드는데.
“잠깐만요─”
“아빠.”
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충격받은 표정으로 빼액 비명처럼 외친다.
– 저거 진짜 싫어어!
“한유진 군이 듣고 싶다는 줄 알았지.”
“아니거든요!”
– 삼촌이랑 고모 오라고 하자, 아빠. 아님 피스 타도 되잖아.
“금방 올 거야.”
피스는 안장이 있다 해도 은근 타고 있기 쉽진 않단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서 성현제에게 짐 챙기는 거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현이와 예림이가 도착했다. 둘 다 괜찮냐고 내게 물어왔다.
“약간 욱신거릴 뿐 움직이는 덴 지장 없어. 통증은 일부러 남겨 둔 거래.”
“다행이네요. 이젠 몸조심하세요, 아저씨.”
“맞아, 형.”
나도 그랬으면 정말로 좋겠구나.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니라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가 지나자 다리의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다. 한동안은 제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만큼 나름 느긋하게 일하고 애들을 돌보았다. 사실 밀린 일들이 제법 많아 느긋하게까진 아니었고.
게다가.
“서울 교대 근처의 C급 던전이야.”
유현이가 말했다. 던전도 한번 가야지.
“가깝네. 바로 갔다 오면 되겠다. 결아, 넌 삐약이랑 벨라레랑 호랑이랑 같이 집에 있어. 삼촌에 이모에 피스도 있으니 아빠 걱정할 필욘 없어.”
– …응.
결이가 조금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전과 다르게 내 몸 안에 들어올 수도 없고, 또 신입에게 데려가기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효도중독자인 디아르마와 그 수하 용인종의 마석에서 태어났으니 저번 유현이 때처럼 자동으로 방어 시스템이 움직일지도 몰랐다.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지만 조심은 해야지. 신입은 초월자이기도 하고.
“아저씨, 여기요.”
예림이가 선크림을 건네줬다. 한동안 피부 관리 좀 하려 했더니 뭐가 그렇게 복잡한 건지. 예림이는 물론이고 유현이도 S급인 덕에 세수만 하고 끝이었다. 예림이가 가끔 기분 내기 정도로 팩 같은 걸 쓰는 정도였다. 시커먼 팩 하고 삐약이나 벨라레 놀래키기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해연 코디 팀 쪽에 슬쩍 물어봤더니 제일 순한 거예요, 하며 이것저것 한 세트를 안겨 주었다.
아침이니 자기전이니 눈이니 목이니 다양했지만 결국 기본적인 것만 쓰게 되었다.
“근데 갑자기 너무 챙기시는 거 아니에요? 전엔 선크림 바르는 것도 싫어하셨으면서.”
예림이가 눈을 가느스름히 뜨며 말을 이었다.
“혹시 아저씨,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요?”
“뭐? 아냐.”
회귀 전부터 좋아했으니 새로 생긴 건 아니지. 예림이가 말하는 좋아한다의 뜻도 다를 거고.
“설마 호연 선생님은 아니죠?”
“…아들뻘이다 못해 늦둥이 수준이다만. 멋진 분이긴 해도 당연히 아니야.”
현아 씨나 하얀 씨, 하다못해 리에트도 아니고 뜬금없이 호연 선생님이라니.
“새로 온 사람은 몇 없는데. 아님 소한 언니?”
“아니야. 애초에 난 연애 같은 거 할 생각 없다니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제일 빨리 연애하고 결혼한다던데요.”
나이 생각한다면 이중에선 당연히 내가 제일 빨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래도 생각 없고 상대도 없다.
엉뚱한 소리 그만하라고 하곤 집을 나서서 던전으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눈밭 대신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에는 큼직한 호수도 보였다.
[허어니~!]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배구공이 통통통 튀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허니! 허니 동생! 작은 물방울! 고양아!]작은 물방울이라고 하니 예림이가 꼭 물방울, 인어여왕의 후계자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어느 정도 힘을 이어받긴 했지.
[허니를 위해서 이 공간도 열심히 바꿨어요. 이젠 전보다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시간도 바깥보다 빠르게 흘러가요!]바깥보다 시간이 빠르다니, 진짜 교육받기 딱 좋겠다.
[물론 전 공간 제공밖에 해줄 수 없지만요. 혼돈 님은 전에 말씀드렸듯이 예외죠!]그러니 아무 문제 없다며 배구공이 통통거렸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천만에요!]빙글빙글 도는 배구공를 쓰다듬어 주자 퐁, 하고 하늘 높이 튀어 오른다. 나름 귀엽긴 하단 말이야.
“셋째도 같이 왔냐.”
낯익은 듯 낯선 목소리와 함께 어린 혼돈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리다는 말이 무색한, 훤칠한 성인의 몸으로. 성현제와 맞먹을 정도로 큰 키에 유현이와 비슷하지만 한층 더 성숙한 얼굴이었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웬일로 어른 모습이시네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
혼돈이 다시 소년으로 변했다. 머리카락 또한 짧아졌다. 성인이 원래 모습일 텐데.
“어르신은 근접계 같으시던데 머리카락 안 거슬리세요?”
근접 전투계 헌터가 머리를 기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체와 달리 컨트롤이 어려운 머리카락은 약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꼭 근접계가 아니더라도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가 대체로 선호되었다. 후방의 보조계라 하더라도 갑자기 튀어나온 몬스터에게 머리채 붙잡힐 수는 있으니까.
“애송이들이나 그런 거고. 일정 이상이 되면 머리카락이 나부끼든 옷이 치렁거리든 아무 문제 없다. 그것들도 전투에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야.”
애송이라니.
“제 동생도 머리카락쯤은 방해 안 되거든요. 그냥 우리 동네 남자 헤어스타일이 짧은 게 보편적이라서지. 그치, 유현아.”
“형은 짧은 게 더 좋댔잖아.”
“그, 그건, 뭐든 다 잘 어울리기도 한다고 했잖냐.”
그때는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고…….
“긴 것도 물론 좋아, 긴 것도. 어르신도 잘 어울리시더라.”
내가 변명하는 사이 예림이가 손을 들었다.
“그럼 저는요? 원거리 위주긴 한데요.”
[마법계는 제가 잘 알아요!]배구공이 빙그르 돌며 끼어들었다.
[긴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촉수나 지느러미를 추천합니다!]머리카락은 그렇다 쳐도 촉수와 지느러미라니. 왜 또 촉수야.
“신입 너 촉수 좋아하냐.”
[지느러미도 가지고 있어요. 마력을 담기 좋거든요. 머리카락과 지느러미 같은 건 신체 외적으로 마력을 따로 담아서 이중으로 사용이 가능해요. 그럼 마력을 좀 더 다양하게 조절해서 쓸 수가 있죠. 작은 물방울에겐 아직 이르지만요.]“머리 길면 귀찮은데.”
예림이가 고민하며 말했다.
“촉수는 싫고 지느러미는… 그것도 불편하지 않을까? 옷 입기가. 날개는 안 돼?”
[날개도 물론 돼요.]“노아 오빠처럼 없앴다 생겼다 할 수도 있고?”
[물론이죠. 그 정도 조절은 되어야 쓸 만하니까요.]“그럼 날개 할래! 어떻게 얻는데?”
[작은 물방울이 직접 만들어야죠. 마력으로.]예림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감도 안 잡힌다는 표정이었다.
[길어도 백 년 이내론 만들 수 있을 거예요.]얼마 안 걸린다는 신입의 말에 예림이가 어… 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백 년이면 보통은 한평생이라고.
“그럼 몸뚱이 상태부터 확실하게 살펴볼까.”
어린 혼돈의 손에 긴 나무막대기가 들렸다.
“역시 두들기는 게 최고지.”
“…예?”
아니, 어르신! 나는 깜짝 놀랐지만, 유현이는 물론이요 예림이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거 결국 때린다는 거 아닙니까! 살살 하세요, 살살! 폭력 반대! 요즘은 학교에서도 체벌 금집니다!”
“체벌이 왜 금지야.”
“그야 인권이─”
“그럼 너도 같이 맞자.”
…네? 당황하는 내 앞을 유현이와 예림이가 가로막았다. 피스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성체로 커졌다.
“형은 안 됩니다.”
“아저씨 안 그래도 연약하다고요. 다리 수술한 지도 얼마 안 됐고요.”
녀석들. 고맙긴 하다만 너희들 몸도 좀 챙기렴. 어린 혼돈이 둘을 쳐다보더니 툭 말을 던졌다.
“건강에 좋다.”
“…예?”
“건강에요?”
“나는 딱 적당할 만큼 팰 수 있으니까. 아프긴 해도 혈액순환도 되고 마나 흐름도 약간 좋아지지.”
마사지라도 되는 겁니까. 그 말에 유현이와 예림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형… 몸에 좋다는데.”
“아저씨, 좀만 참아 보실래요?”
순식간에 넘어가 버렸구나. 하지만 나도 살짝 혹하긴 했다.
“저야 뭐, 괜찮습니다만. 애들은 좀 살살 부탁드립니다. 이미 건강하다고요.”
“살살 할 거면 시작도 안 해.”
“아 너무하시네! 요즘 세상에 누가─ 헉!”
휘잉, 나무막대가 공기를 갈랐다. 아슬아슬하게 내 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격에 피스가 이를 드러냈다.
– 크르릉.
어린 혼돈의 눈이 피스를 향해 스르륵 움직였다.
“그래, 너도 맞자.”
아니 이 어르신이! 그거 동물 학대예요! 피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기도 전에 매타작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