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61
459화 제자들(2)
그냥 나무 막대기였다. 등급이 있는 무기도 아닌 듯했다. 그런데도.
카드득!
피스의 이빨 사이에서 금 하나 가지 않았다. 내밀어진 막대를 화염뿔사자가 강하게 깨물고, 어린 혼돈이 낚시하듯 휘익, 막대를 들어 휘둘렀다. 공중으로 떠오른 피스가 막대를 놓고 날개를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린 혼돈의 손이 피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 캬릉!
나는 물론이고 피스도 따라잡지 못한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어 붉은색 털 뭉치가 멀리 내던져졌다.
“아이고, 피스야!”
피스의 모습이 순식간에 붉은 점이 되고 호수에 풍덩 빠져 버렸다. ‘피스, 물 싫어하는데!’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어린 혼돈이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섰다.
“무기 써도 된다. 나는 지금 S급이니 반항해 봐라.”
그 말과 동시에 앞이 시커멓게 가려졌다. 텅, 소리도 들려왔다. 어느새 내 앞을 유현이가 막고 있었다. 얼른 선생님 스킬을 동생에게 쓰자, 군림자의 검이 내리쳐진 나무 막대와 맞부딪친 게 보였다. 와… SS급 무기가 무색하네.
“근데 왜 막아 주는 거야?”
몸에 좋다며 안 막을 것처럼 굴더니. 내 말에 동생이 나를 돌아보았다.
“형이 맞는 걸, 어떻게 보고만 있어.”
몸이 먼저 움직여 버렸다는 소리에 어쩐지 찡해졌다.
“유현아…….”
내 동생 착하기도 하지.
“뭐 하는 거냐, 둘이.”
“집에서도 툭하면 저래요. 좀 짜증난다니까요.”
한유현도 문제지만 아저씨도 심각하다며 예림이가 투덜거렸다.
“셋째가 고생이 많다.”
“그쵸!”
나무 막대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은 같은 S급인데도 군림자의 검이 뒤로 서서히 밀렸다. 이게 힘을 쓰는 효율의 차이라는 거겠지. 유현이의 발아래에서 으드득 땅이 짓눌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티고 있는 뒤꿈치에 흙과 풀잎이 밀려 나가며 조금씩 솟아오른다.
나 때문에 물러서지 못하는 것이 뻔해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마자 어린 혼돈이 주고 있던 힘을 단숨에 확 올렸다. 미친, 거기서 더?
지이익- 유현이의 두 발이 땅에 끌리고 동시에 나무 막대가 옆으로 미끄러진다.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교묘하게 휘어지며 유현이의 허리를 노렸다. 강력한 힘에 눌려 몸의 균형이 잠시 무너진 순간이다. 대비가 되어 있어도 피하기 힘든 공격이건만 유현이는 당황하지 않고 군림자의 검을 연검 형태로 바꾸었다.
시커먼 칼날이 순식간에 길게 늘어난다. 카가각! 나무 막대가 연검을 스쳤다. 쉽게 휘어지는 연검으로 저런 강한 힘을 품은 공격을 정면에서 막기란 힘든 일이었다. 자칫하다간 검이 밀려나, 도리어 자신의 칼날에 다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유현이는 막대의 공격 경로만 약간 틀어 놓았다. 동시에 연검의 끝이 바닥에 박히고, 몸에서 힘을 빼며 검을 다시 상대적으로 짧은 장검화했다.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던 유현이의 몸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검을 따라 끌려가듯 움직인다. 유현이가 옆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찌이익-!
나무 막대의 끝이 예장의 허리 부분을 길게 찢어 놓았다. 스쳤는데도 저 정도라니, 어르신! 이러다 애 다치겠네!
“너무 힘이 들어간 거 아닙니까!”
“둘째면 이 정도는 피해 줘야지.”
뻗어진 막대가 그대로 방향을 바꾼다. 땅에 박힌 검을 중심축으로 삼은 채 유현이가 빙그르르, 기울어진 몸을 반 바퀴 돌렸다. 검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식간에 몸을 옮기고서, 벌떡 일어서기 무섭게 어린 혼돈의 손바닥이 군림자의 검 손잡이 끝에 닿았다.
텅!
혼돈의 손바닥에 눌린 검이 땅을 더욱 깊게 파고들고, 검 손잡이 끝을 내리친 손이 유현이의 손목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S급의 시선으로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몸이 반응할 틈은 없었다!
손목이 잡히고, 연이어 발길질이 날아든다. 작은 소년의 몸이 유현이의 몸을 파고들며 가슴을 걷어찼다. 동시에 검을 쥐고 있던 유현이의 손목이 비틀려졌다. 지지대까지 놓친 몸뚱이가 그대로 뒤로 훅 날려간다.
쾅!
거의 십여 미터 이상 밀려간 유현이가 나무에 부딪혔다. 우지끈, 굵은 나무 기둥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유현아!
“저기, 잠깐, 악!”
아파! 등을 맞긴 했는데 이건 뭐 내 눈으론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다.
“첫째 너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와.”
귀신처럼 내 앞에 불쑥 나타난 혼돈이 혀를 쯧 차며 막대를 휘둘렀다. 내게 맞춰 준 건지 나무 막대가 날아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급히 뒤로 피하며 나도 일단 칼을 꺼내 들었다.
“눈은 제법 잘 따라오는데.”
휘익, 나무 막대가 옆구리를 후려쳤다. 따끔한 통증에 절로 윽, 소리가 나왔다.
“몸뚱이가 굼벵이야.”
“그야 보는 건 많이 봤, 아야!”
공격을 막으려 노력은 해 보았지만 말 그대로 허우적거림이었다. 주위에 S급들이 득실거리고 선생님 스킬도 있다 보니, 보는 눈은 높아졌다. 저렇게 들어오는 공격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머릿속으로는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몸뚱이가 문제였다.
칼을 이렇게 돌려서 비스듬히 흘려내고, 발을 요렇게 움직이며 몸을 빼냅시다. 하고 생각하면 뭐 하냐. 느린데. 힘도 속도도 유연성도 부족했다.
“저 수술한 지도, 윽, 며칠 안 지났다고요!”
“그래서 운동은 꾸준히 했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해야지 마음먹긴 했는데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최근에도, 음. 근데 아직 다 안 나은 건 맞잖아. 나름 상체 스트레칭은 했는데.
“아저씨…….”
예림이가 나를 무척이나 짠하게 바라봐 왔다. 예림이한테도 선생님 스킬을 써 봤더니 나도 내가 짠해졌다.
예림이 눈에는 장난처럼 툭툭 가볍게 치는 걸로 비치는 공격에 조금도 반항하지 못한 채 허둥대기만 하고 있는……. 아, 진짜 저걸 못 피하냐, 나란 놈은. 정말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몸을 추스른 유현이도 나를 안타까워하고 날아서 돌아온 피스도 끄응거렸다. 심지어 신입마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첫째야.”
“…네.”
“넌 그냥 여기 앉아 있어라.”
[맞아요, 허니. 의자 줄게요.]신입이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의자를 만들어 냈다. 다리 없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의자였다.
“아직 괜찮긴 한데요.”
“형, 얼른 앉아. 여기 멍도 들었잖아.”
유현이가 나를 의자에 앉히며 내 손목을 살펴보았다. 유체화한 피스가 쪼르르 내 발치로 와 나를 걱정스럽게 올려다봐 왔다.
“다른 데도 멍든 거 아냐? 이거 봐, 팔에도.”
“할아버지, 아저씨한텐 살살 하셔야죠.”
“살살 한 거다. 그리고 멍 좀 들어야 나으면서 더 튼튼해져. 딱 적당히 때린 거니 걱정 마라.”
굳은살이 박이는 거 같은 건가. 혼돈이 저걸 어쩌냐,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번에는 예림이를 향해 돌아섰다.
“어르신, 예림이 아직 어려요!”
나랑 유현이는 그렇다 쳐도, 예림이 상대로는 조심하셔야지!
“그렇다는데, 셋째야.”
“저 S급 헌터거든요?”
예림이가 창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리고 체술은 꼭 배워야 해요. 할아버지가 제일 강하다는데 당연히 이런 기회 놓치면 안 되죠!”
오세요! 하고 소리치자마자 혼돈이 순간이동이라도 쓴 것처럼 예림이의 바로 앞에 다다랐다. 창처럼 직선으로 찔러 드는 나무 막대를 예림이가 급히 막으려 했다. 창대와 나무 막대가 부딪치는가 싶더니, 막대 끝이 미끄러지듯 방향을 틀며 위로 훅 솟구친다.
“윽!”
어깨를 호되게 찔린 예림이가 비틀거렸다.
“하체에 힘이 없다.”
아래로 뚝 떨어진 나무 막대가 이번에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쳤다. 동시에 혼돈이 소리쳤다.
“창을 지팡이처럼!”
다리를 맞고 넘어지던 예림이가 얼른 창을 세로로 세워 땅에 박아 몸을 지탱한다. 스킬을 쓰면 쉽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데 체술을 배우고 싶어서인가, 자신의 신체와 무기 외엔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예림이를 몰아붙이던 혼돈이 유현이를 흘끔 돌아보았다.
“셋째 너, 둘째 보고 따라 하려 들었구나.”
“네? 아닌데요! 제가 왜요!”
“제일 강하니까. 셋째 네 주위에선 말이다. 창과 검이 비슷하게도 느껴졌겠지.”
하긴 예림이 주변에서 예림이가 따라 할 만한 상대 중 가장 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유현이였다. 성현제야 사슬을 주로 다루니 논외고, 현아 씨도 거창이라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예림이 팀에 창을 쓰는 헌터도 있었지만 유현이를 계속 봐 왔으니 아무래도 눈에 차질 않았겠지.
예림이가 목덜미를 살짝 붉혔다.
“진짜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많이 보긴 했으니까, 무의식중에 뭐어, 그럴 수는…….”
“창과 검은 다르다. 검신에는 날이 있지만 창대에는 없어.”
그런데 예림이에게는 창을 휘둘러 상대를 베려 드는 버릇이 있다고 혼돈이 말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따라 하려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다. 특히나 그 상대가 자신에게 우호적이라 생각하게 되면 더욱 쉽게 물들게 되지. 둘째가 첫째 외의 타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거다.”
유현이는 충분히 강한 데다가 주위에 우호적으로 여기는 강자가 없기 때문인가. 그나마 중립적이고 자주 부딪쳤던 송 실장님의 영향 정도나 좀 받았고. 애가 다른 사람에게 우호적이기는커녕 관심 자체가 별로 없긴 하지…….
“그럼 고쳐야 해요?”
“두 가지가 있다. 창 위주로 뜯어고치거나, 검을 함께 사용하거나.”
“후자요! 이것저것 다 잘하면 좋잖아요.”
“한 번에 여럿 잡으려다간 다 놓치기도 한다만, 둘 정도야 괜찮지. 그럼 이번에는 검을 꺼내 봐라. 예비는?”
“있어요.”
예림이가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장검을 쓴 적은 없었을 텐데 의외로 자세가 익숙했다. 그리고 확실히 유현이 모습이 비쳤다. 지금 이 상황이 퍽 즐거운 듯, 예림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품고 있었다.
“다리에 힘주고, 발밑에 신경 써!”
카강! 검을 향해 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혼돈이 지적했다.
“비행과 순간이동 때문에 하체 다루는 게 어설프다.”
“네!”
예림이의 다리와 팔을 이리저리 두들겨 교정시켜 주며 혼돈이 유현이에게 손짓했다. 둘이 같이 상대해도 충분하다는 건가. 충분해 보이긴 하지만. 유현이가 머뭇거림 없이 땅을 박찼다. 거리가 좁혀진다 싶자 혼돈이 발끝으로 돌을 차올렸다. 공중으로 떠오른 돌을 팔꿈치로 강하게 치고, 유현이를 향해 날아간다.
그 정도야 피하기 어렵지 않다 싶었는데,
파직!
동생의 앞에 다다른 돌이 갑자기 산산조각 났다. 뭐야, 저게. 스킬… 은 아닌 듯하고, 힘 조절로 타이밍 맞춰 터지게 한 건가? 진짜로?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파편이 유현이의 시야를 가리기 무섭게 혼돈이 바싹 접근해 왔다. 그새 예림이는 옆구리를 호되게 찔린 채 끙끙대고 있었다.
그리고 유현이도.
“윽!”
어깨를 향한 공격은 피했지만 허리는 얻어맞고 말았다. 아이고, 얘들아.
“살살하시라니까!”
내 말은 귓등으로 흘린 채 어린 혼돈의 손에 들린 나무 막대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이고오.
“신체 마력을 최소로 줄여라.”
한바탕 애들 상태 확인을 한 혼돈이 유현이와 예림이를 나란히 세워 놓고 말했다. 둘 다 흙투성이에 머리칼도 잔뜩 흐트러졌다. S급답게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쓰라렸다. 애들이 땅을 몇 번이나 구른 거야. 눈물 나네.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고 생각해. 말하자면 마석이 자리 잡는 곳이지. 너희들은 아직 없겠지만, 인간도 일정 등급 이상이 되면 마석이 생겨난다.”
혼돈이 자신의 심장 쪽을 가리켜 보였다.
“인간 형태면 보통 심장, 혹은 머리. 이 두 곳에 주로 자리 잡는다. 머리는 위험하니 심장 쪽으로 모아 봐라.”
“어… 힘이 좀 빠지는 기분인데요, 할아버지.”
“마력이 사라지면 신체 능력도 자연히 떨어지게 되니까. 그래도 S급이라 하급보다는 강하겠지만. 그 상태로, 뛰어.”
“뛰어요?”
“호수 한 바퀴 돌고 와. 마력 쓰지 말고, 너희들 몸뚱이만 가지고서. 효율적으로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무(無)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특히 처음부터 강한 놈들은 말이다.”
가라, 하는 혼돈의 말과 함께 유현이와 예림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력을 최소화한 상태다 보니 확실히 평소보다 느렸다. 우리 애들, 고생이 많구나…….
“첫째 넌 상의 벗고. 토끼야, 의자 등받이 없앨 수 있냐.”
[네!]주섬주섬 상의를 벗자 혼돈이 다가와 내 등을 살펴보았다.
“안정화된 그대로야. 다행히 다시 뒤틀리거나 하진 않았어.”
“그래요? 다행이네요.”
“둘째 태도 보니 여전히 말하진 않은 모양이지.”
네? 했다가 수명에 대해서구나 하고 떠올렸다.
“그걸 어떻게 말합니까.”
“아무한테도 말 안 했고?”
“네. 아는 사람은 물론 없어요. 앞으로도 비밀 좀 지켜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어린 혼돈이 내 등과 뒷덜미를 꾹꾹 제법 아프게 몇 번 누르더니 다시 옷을 입으라 손짓했다.
“그놈도 데려오지 그랬냐.”
“그놈이요?”
“새끼 달.”
…성현제 말인가. 새끼 달이라니, 작은 달일 때와는 영 다르게 들리네.
“아직 아무 말이 없었다면, 진심인 건가.”
“뭐가요?”
“아니면 그 반대거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저도 좀 알아듣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