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30
628화 상속인
“아저씨가 아는 사람이었어요?”
“알긴 아는데, 아주 잠깐 본 거라… 유현이 너도 기억나지? 그때 영국 헌터 협회 대표로 방문했다던 중년 여성분.”
유현이가 목을 희미하게 기울였다.
“기억은 나지만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어. 마력을 감추거나 하지도 않았고. 적어도 내가 경계할 만한 감각은 느끼지 못했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분이시니까요.”
그레이가 말했다. 하기야 나도 특수 스킬을 잔뜩 가지고 있지만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르신 같은 초월자들은 존재 가치가 다르다니 어쩌니 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절 불러들일 생각이었던 겁니까?”
“저로서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을 겁니다.”
내가 어떠한 선택을 했든 예상 안에 있었을 거라는 소린가. 팔뚝을 따라 소름이 돋는 듯했다. 초승달도 마리사도 한참 위에서 나를,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길에 촘촘히 거미줄을 드리운 채.
“어쨌든 좋은 관계는 아니죠, 우리는. 멀쩡한 사람을 납치하지를 않나. 아프리카에서 쫓겨 다닌 것도 연관이 없진 않을 듯한데요.”
초화운 무리는 예언자 쪽이었지만 그들은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사벨라와 사미르도 잡으려 들었었다. 그 두 사람은 나보다는 성현제의 결혼식과 관련이 있었으니 아마도 누님, 마리사 쪽의 의뢰 같은 게 아니었을까.
“거기에 중국 일도 있지요. 그때 생각하면 제가 이 저택 날려 버려도 할 말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레이가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니 지금 이것은 단순한 손님 대접일 뿐 의미를 두진 말아 주십시오.”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해도요.”
“분명한 것은, 주인님께서는 사사롭게 타인을 해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니 받아들이라는 겁니까? 세상 구하려고 그런 거라고?”
내 목소리가 무심코 높아졌다. 나는 세상을, 다수를 우선시할 수 없었다. 그것이 보편적으로 옳은 일임에도.
“아닙니다. 다만 세상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욕망이 존재하며 그중 상당수의 욕구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입혀야만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합법적인 경쟁에서도 패배자는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적으로는 더욱더 많은 피해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인간의 욕망 자체가 거세되지 않는 한은 모두가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 사회를 유지하고 그 속에 자리 잡기 위해 평생을 참아 누를 뿐.
“사회에 속한 이들은 항상 어느 정도 양보하고 인내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인님께서는 모두를 위하는 대신 일부를 포기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변명할 생각은 물론이요 죄책감 또한 조금도 없는 대답이었다. 문득 예전의 신입이 떠올랐다. 지금과는 다르게 내 감정은 별달리 생각지 않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시스템을 우선시하던 태도가.
“결국 이쪽 입장은 생각하지 않겠단 소리잖습니까.”
“예. 동시에 저희 또한 대의를 내세우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저희와 같은 목적을 가지게 되신다면 언제든지 협력을 요청해 주십시오. 저희가 먼저 그 반대를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한유진 님께서는 세상을 구하고 싶은 쪽에 가까우시니 저희로서도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상황이 복잡해졌을 뿐이라고, 그레이가 말했다.
“적대시하였다더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러하지요.”
“그야 그렇겠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전 제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우선이라서요. 평생 작은 그릇으로 살 거라 마리사 무어 씨와는 별로 맞지 않을 것 같네요.”
내 그릇 작다. 세상 같은 거 다 못 담고 그냥 내 주위 정도나 감싸 안으면 딱 적당할 크기다. 몰라, 세상 다 품는 건 그릇 큰 사람들이 하라고 그래. 솔직히 그 정도 되려면 한계를 벗어나 그릇을 아예 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 죽어도 못 깨.
“나도 형만 있으면 돼. 형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 걸.”
-결이도 아빠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야.
내 어깨 위의 결이가 작게 속삭였다.
-아빠가 어떤 선택을 하든, 아빠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거야 물론 안 된다. 혼자 사는 게 아니고서야 주위 사람들 눈치도 보고 법과 규칙도 지키고 도덕도 챙겨야지.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결정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 자기 인생이잖아.
“많은 사람을 구하는 거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는데요.”
예림이가 나와 그레이 씨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막상 닥치면 저도 저 좋아하는 사람 먼저 구하지 않을까요?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그때 되면 몸이 먼저 움직일 거 같고요.”
“어떤 결론을 내리든 나는 예림이 네 편이야.”
“저도 당연히 아저씨 편!”
예림이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 근데 송 실장님은 좀 그러시겠다.”
송 실장님을 흘끔 쳐다보며 예림이가 말했다. 아무래도 송 실장님은 자기 자신을 챙기는데 소홀하시니까. 우리 시선에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두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결과라 하더라도 제가 지켜야 할 누군가를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선택할 입장이 아닙니다. 몇몇을 골라낼 자격 또한 없습니다.”
세상을 구한다는 대의를 지녔다 하더라도. 예림이가 팔꿈치로 나를 가볍게 툭 찌르며 속삭였다.
“송 실장님 말이 모범 답안인 거 같은데요.”
그러게 나도 그런 거 같아. 다만 송 실장님은 자기 몸을 갈아대시니까 문제지. 그레이 씨가 송 실장님을 향해 살짝 고개 숙여 보였다.
“훌륭한 분이시로군요.”
“제 일입니다.”
공직자가 다 송 실장님 같았으면 세계평화가 이루어졌을지도. 그레이가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어느 쪽도 틀렸다 할 수는 없겠지요.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톱니바퀴로는 그저 단순한 움직임만 계속될 뿐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한유진 님의 이해를 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뭐, 피해 본 거 없는 쪽에서야 아무래도 좋겠죠.”
말은 참 잘한다만 역시 저쪽과는 맞질 않는 듯했다.
“게다가 크기와 모양이 너무 다르면 삐걱거리다 망가지기나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예. 강요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불만은 많았지만 길게 이야기해 봐야 다람쥐 쳇바퀴일 듯했다. 차라리 그냥 대놓고 적이다, 가 맘 편하지 애매하게 정중한 태도가 더 골치 아팠다.
“예언자인가 하는 쪽은요?”
“필요에 의해 잠시 계약한 관계입니다. 의뢰는 실패하였으니 지금으로서는 저희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러다 필요하면 또 손잡겠지요.”
역시 싫어. 좋게 말해서 한번 적이 영원한 적인 건 아닙니다, 지만 다르게 말하면 언제든 뒤통수 때릴 수 있습니다 아니냐. 그래도 싫은 기색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어쨌든 초승달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까.’
속은 뒤틀려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편할 것이다. …이런 건 역시 안 맞아. 석시명 씨 데려다 놓으면 나 대신 잘 할 거 같은데.
그때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스윽 들어선다.
“…석 팀장님?”
석시명이었다. 그가 환한 얼굴로 서류가방을 든 채 유현이와 내게 인사했다.
“한유진 소장님! 오늘도 신수가 정말 훤하십니다!”
뭐, 뭐야. 석시명 저 아저씨 왜 갑자기 호구 잡은 세일즈맨처럼 구는 거지? 날 아주 눈빛으로 녹여 먹을 듯한 표정이었다. 어찌나 열렬한 시선이던지 유현이가 나를 슬쩍 감싸려 하고 피스가 경계 어린 기색으로 이를 드러낼 정도였다.
“원래는 서 팀장이 맡아야 할 일이지만 그 사람은 아직 익숙지가 않을 거라 제가 대신 왔습니다. 미국에서 고생 좀 했지요.”
…미국? 석시명은 여전히 기분 나쁠 정도로 싱글벙글한 얼굴로 식탁 위에 가방을 얹었다. 그러곤 반테스와 그레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로군요, 반갑습니다. 이분이 샬롯 그레이 씨입니까? 덕분에 일 처리가 편했습니다.”
일 처리? 대체 뭘 한 거지. 석시명이 활짝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노트북과 서류들이 식탁에 늘어졌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사망한 채터박스 씨의 상속인은 바로 한유진 소장님입니다!”
“…예? 아, 그…….”
상속인? 아니, 분명 그 비슷한 말을 듣긴 했는데.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오르자 내 입술도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법적으로 확실하게 내가 유산 상속받게 되는 거야?
“우선은 가볍게 부동산 목록입니다~.”
석시명이 신나 하며 노트북을 켰다. 그가 마우스를 클릭하자 우리가 묵었던 뉴욕 호텔 사진이 나타났다.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 특급 호텔!”
이어 사진이 넘어가고.
“역시나 맨해튼 소재 펜트하우스! 뉴욕 소재 호화 리조트! 미국 LA 호화 저택, 하와이 별장, 프랑스 파리 펜트하우스─.”
자, 잠깐만! 뭐? 아니 난 아이템 정도나 생각했지 무슨 부동산이 줄줄이 쏟아지냐 미친 저게 다 얼마야! 채터박스 놈 무슨 돈으로… 아니면 그 몸 주인의 재산인가? 재벌 몸에 들어간 거야?
“부동산만 십억 달러는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 아니 무슨 집값이…….”
“펜트하우스만 해도 한 채에 천만 달러가 넘으며 호텔과 리조트가 특히 고가입니다.”
“와… 아저씨 이러다 세성 아저씨보다 더 부자 되는 거 아니에요?”
…설마. 아니 그래도 진짜, 헐, 진짜. 와, 이거…….
‘…채터박스 제사상도 차려 줘야 하나.’
루가 폐야는 챙겨 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재수 없긴 하니 채터박스 놈은 대충 맨밥에 숟가락 하나 꽂아서 정원에 내놓자.
“그리고 채널 채터박스의 가치 또한 수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예?”
“한유진 소장님께서 직접 유지하기는 힘드실 테니 판매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미 매수를 원하는 곳이 여럿입니다. 현재로서 최고의 이미지와 시청자 수를 가진 헌터 전문 채널이니까요.”
화제성이 떨어지기 전에 매도하는 것이 낫다며, 사인만 해 주시면 바로 경매가 진행될 거라며 석시명이 말했다.
“채터박스 소유 아이템은 모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S급 이상 아이템의 가치는 부동산과 채널 이상이지 싶습니다만 아쉽게도 파티 참가자들에게 일부 배분해 주어야 할 듯 싶습니다.”
“아, 네. 그거야 대부분은 저와 제 일행들이 가지게 될 테니까요.”
“예. 아이템의 대부분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금고는 소유자만이 들어갈 수 있더군요. 한유진 소장님께서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
이 서류들에 사인해 주시면 된다며 석시명이 종이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번역해서 봐도 뭔 소린지 알아듣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
“…진짜 사인해도 되는 거죠?”
“아무렴 제가 한유진 소장님의 재산에 손해가 가게끔 하겠습니까.”
하기야 빼돌린다고 해도 해연 쪽으로 빼돌릴 인간이지. 석시명이 내가 사인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하였다. 뭐가 이렇게 많아. 많아도 좋지만.
“상속세를 낸다더라도 십억 달러 이상 남으실 겁니다. 헌터 아이템은 아직 세법을 비틀 여지가 있으니 최대한 절세하도록 하겠습니다. 채널 채터박스를 먼저 매도 후 그걸로 세금을 처리한 뒤 부동산은 천천히 정리하시면 됩니다. 지금 최고가인 채널과 달리 부동산은 급매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호텔의 경우 전체적인 보수가 필요하니 향후 미국 헌터계를 대비한 길드, 사육소 지부로 삼으셔도 괜찮으실 겁니다.”
해연 길드 미국 지부 만들고 싶으시구먼. 심지어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건물이다. 돈 주고도 쉽게 못 살 대형 건물이 굴러들어 온 셈이니까 얼마나 좋으시겠어. 뭐, 부동산들은 나중에 예림이가 해외 진출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있음 편하긴 하겠지.
열심히 사인을 끝낸 서류들을 석시명이 소중하게 챙겼다. 아주 날아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좀 얼떨떨하긴 해도 기분 좋았다. 채터박스 녀석, 알뜰히도 벌어 놓았구나. 고맙다. 아이템 정도나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많이 남겨 놓고 가다니. 맨밥만 주긴 그렇고 나물도 하나쯤 곁들여 차려 주마.
“그럼 저는 다시 뉴욕으로 가 보겠습니다. 길드장님,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유현이가 내 얼굴을 보더니 짧게 고개를 저었다.
“형의 일을 잘 부탁드립니다.”
“예! 걱정 말고 맡겨 주십시오!”
행복한 석시명이 방을 빠져나갔다. 어째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거 같아. 반은 해외 진출용 기반이고 나머지 반은 아이템이겠지.
‘SS급도 많을까?’
나도 뉴욕 따라가고 싶어졌다. 일단 여기서 초화운 일당을 적당히 처리하고 얼른 뉴욕 가서 금고 털어야지. …성현제 지분도 꽤 있으니까 그때 자연스럽게 부르면 되지 않을까.
“아이템까지 하면 진짜 아저씨가 제일 돈 많은 걸지도요!”
“아이템이야 너희들 줘야지. 내가 묵혀 둬서 뭐하겠냐.”
“공짜로 받긴 미안하잖아요. 저도 돈 버는데!”
“파티에서 활약 많이 했잖아. 당연한 대가야. 송 실장님도요! 제가 딱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 드리겠습니다.”
“괜─.”
“법적으로 드려야 해요! 법!”
어휴, 역시 돈이 좋긴 좋아. 비록 세상 망하면 휴지 조각 되는 거라고 해도 좋은 건 좋은 거였다. 이제 나가자며 일어나면서 반테스 씨에게 슬쩍 작게 물었다.
“세성에도 SS급 아이템은 몇 없죠?”
진짜로 내가 성현제보다 개인 자신은 더 많아지는 건 아니겠지. 반테스 씨가 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역시나 작게 말해 주었다.
“예. 물론이지요. 궁금해하시는 듯해서 한유진 님께만 살짝 말씀드리자면, 길드장님께서는 드마송 사의 최대 주주이십니다.”
…드마송? 거기면, 마석 에너지와 헌터 아이템 거래 초기주자인 헌터계 초대형 기업 아니냐. 내가 성현제 자산을 궁금해했다는 사실이 훤히 보인다는 듯 반테스가 설명을 이었다.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으시나 초기에 상당한 투자를 하신 덕이지요. 물론 그것도 일부입니다.”
…아, 네. 역시 잘나셨어. 십억 달러 완전 푼돈 아니냐. 그 말을 들으니 얄미우면서도 성현제 걱정은 덜해졌다. 어딜 가든 잘 먹고 잘사시겠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