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29
627화 아침 식사
부드러운 카펫이 깔리고 커다란 벽난로가 발간 불을 피우는 방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원형 식탁이 놓이고 눈 덮인 나뭇가지가 드리워진 커다란 창문 앞으로 편안해 보이는 긴 소파가 자리 잡았다. 원래는 응접실이었지 싶은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딱 적당하게 안락한 식당이었다.
반테스 씨와 다른 한 명, 샬롯 그레이 씨는 우리에게 먼저 식사할 것을 상냥하게 요구해 왔다. 그 후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겠노라면서.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두 사람 다 무척이나 정중하면서도 칼같이 단호한 태도였기에 순순히 아침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놈들이 협박해 온다면 같이 무기 들고 이놈저놈 하겠지만 어른들이 친절한 미소 띠는데 뭘 어쩌겠어.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니고 밥 먹으려면 얌전히 따라야지.
“따뜻한 차입니다. 혹시 감기 기운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식후 독 저항이 통하지 않는 약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찻잔에 차를 따르며 반테스 씨가 말했다. 이어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레이 씨가 돌아왔다. 그녀의 뒤로 서빙카트가 줄줄이 따라붙었다.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잠깐만, 이거.
“된장국이에요?”
예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각자의 앞에 수저가 놓이고 갓 지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이 담긴 밥그릇이 차려졌다. 아니 세상에, 한식이라니.
“개별 반찬보다는 따로 담아 드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레이 씨가 집게와 국자, 가위가 담긴 긴 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식탁 가운데 가장 먼저 놓인 것은 갈비찜이었다. 그 옆으로 단호박에 넣어 구운 훈제오리가 자리 잡고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양쪽으로 차려졌다. 각종 나물에 멸치볶음, 진미채 볶음에 김치도 세 종류나 되었다. 해파리냉채에 잡채, 불고기, 젓갈과 게장, 생선구이 등등 온갖 반찬이 끝이 없었다. 피스에게도 몬스터 고기와 마석가루가 담긴 그릇이 주어지고 마지막으로 밥솥을 얹은 서빙카트가 한쪽에 놓였다. 모자라면 더 먹으라는 듯 주걱과 함께.
“아니 이걸… 어느새 다 준비했대요. 성현제, 세성 길드장님 밖으로 나간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암만 봐도 한국에서 공수해 온 듯한 상차림이었다. 프랑스에도 한식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본격적이잖아. 성현제 연락 받고 오기엔 비행 시간만 해도 한참이었을 텐데. 내 물음에 반테스 씨가 대답했다.
“길드장님을 찾으러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준비하여 출발했습니다. 길드장님께서는 분명 한유진 님과 송태원 님, 두 분을 챙기고 싶어 하실 테니까요.”
…성현제 보좌역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나.
“그럼 편안한 식사 되십시오.”
반테스와 그레이를 포함해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문까지 확실하게 닫혔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주는 거니까.
“혹시 모르니 내가 떠줄게. 그러라고 앞접시를 여럿 준 걸 거야.”
내가 손대면 해독이 되니까. 일어나서 집게와 국자를 들고 갈비찜부터 펐다. 나이순으로 송 실장님에게 앞접시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직접 떠먹겠습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설사 독이 있다고 해도 S급인 만큼 즉사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그러니 중독된 후 도움을 받아도—”
“아프잖아요. 뭐 하러 괜히 그래요. 자, 제일 큰 갈비!”
제일 어른이고 고생도 많이 하시니까 많이 드셔야지. 십자 모양으로 예쁘게 갈라진 표고버섯도 담았다.
“난 형이랑 같은 그릇 써도 괜찮아.”
– 결이도. 결이는 조금만 먹잖아.
요정용의 크기에 맞춘 포크를 들고서 결이가 말했다. 유현이야 어릴 때부터 냄비 하나 두고 먹은 적 많았으니까 뭐. 예림이에게 갈비찜을 산처럼 가득 쌓아 주었다. 불고기도 잔뜩 쌓았다.
“송 실장님, 김치? 된장? 아니면 둘 다요?”
“…김치찌개의, 감자와 두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송 실장님이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감자랑 두부 좋아하시는구나. 양념 자작하게 배어든 감자 두부 맛있지.
“전 된장찌개요! 저도 두부랑 감자 많이 주세요!”
“그래, 그래. 많이 먹으렴.”
밥그릇과 작은 반찬그릇은 내가 한 번씩 손으로 감싸고 돌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나도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갈비찜을 한입 베어 물자 고기가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았다. 전혀 안 질기네. 맛있다.
“아저씨, 고기랑 냉채랑 같이 먹으니까 맛있어요.”
예림이가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비웠다. 노아 씨도 같이 올 걸 그랬나. 너무 한식뿐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정말로 나와 송 실장님을 따로 챙기긴 한 건지 내 앞의 계란프라이는 반숙이었고 송 실장님 앞에는 쌈 채소가 놓여 있었다. 송 실장님 그릇도 금방 비워졌다.
“유현이 너도 많이 먹어야지. 자.”
“응, 형도.”
“결아, 더 작게 잘라 줄까?”
– 아니야, 혼자 먹을 수 있어.
결이가 조그만 나이프로 오리 고기를 썰며 말했다. 맛있게 먹다 보니 괜히 또 성현제 생각이 났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건지 몰라.
“…역시 성현제한테 미안하긴 해.”
눈치 빠르다고 해도 자세한 사정도 모른 채 쫓겨난 거나 마찬가진데. 그런데 난 이렇게 밥상이나 받아먹고 있고. 내 손놀림이 느려지자 예림이가 너무 걱정 말라며 말했다.
“세성 아저씨는 신경도 안 쓸걸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아저씨가 맛있게 잘 먹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
“그렇긴 하겠지만…….”
“아님 이따 전화해 보세요. 지금쯤이면 휴대폰 새로 생겼을 거고 아저씨 전화면 바로 받을 텐데.”
“아니 뭘 전화까지야. 아니야.”
내보내고 아직 하루도 채 안 지났다고. 전화통화를 했다간 내가 잘못했다 다시 돌아와라, 라고 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놓고 막상 얼굴 보면 또 속이나 앓겠지. 지금은 등 따시게 밥 먹고 있으니 괜찮아도, 만약 다시 힘든 일이 생기면 망설이게 될 게 분명했고.
역시 초승달과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 할 텐데 여전히 답은 없었다. 벽난로에 고구마라도 구워 먹어야 할 판이다.
“근처 던전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죠. 지금쯤이면 그쪽에서도 뭔가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니까요.”
초승달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도 있을 거고. 신입이 이번 결혼식에 대해 눈치챘을까? 그렇게 막 참견해도 되는 거냐고. 이건 확실히 항의해야 한다.
“그리고, 애들은 한국에 먼저 보냈으면 싶은데.”
– 결이는 안 가!
“저도 안 가요!”
“예림이 너 말고. 너도 가면 좋긴 하겠지만.”
“저 말고요? 그럼 피스?”
애들이랬잖아요, 하고 예림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세 그릇째 밥을 펐다. 잘 먹는 게 최고다.
“그게 말이야.”
내 앞의 빈 그릇들을 치우고 손을 올렸다. 펼쳐진 손바닥 위로.
– 뀩!
“헉, 귀여워!”
꼬마가 튀어나왔다. 예림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새 몬스터예요? 언제 데려왔어요? 진짜 귀엽다!”
“실은, 잠깐만! 안 돼!”
꼬마가 곧장 갈비찜을 향해 달려들었다. 급히 붙잡았지만 동그란 털뭉치는 내 손을 쏙, 쉽게 빠져나가 버린다. 그대로 꼬마가 갈비찜 그릇에 빠져 버리기 직전.
– 퓨익!
유현이의 손이 꼬마를 낚아챘다. 꼬마가 항의하듯 삑삑거리며 꼬리의 털을 세웠다.
“형이 안 된다고 하잖아.”
– 삑, 피잇!
“착하지, 아빠가 잘라 줄게. 자.”
고깃덩이 하나를 입에 물려주자 그제야 얌전해진다. 애가 먹는 거 참 좋아하는구나. 원래 그렇긴 했지. 조금 우물우물하더니 입에 별로 안 맞았는지 남은 고기는 내려놓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 뀨이?
어색하게 굳어 있는 결이를 발견했다.
– 아, 안녕?
– 삑!
– 머, 먹는 거 아냐!
“안 돼!”
꼬마가 결이의 반짝거리는 날개를 잡고 대뜸 입에 넣어 버렸다. 반투명하고 분홍색으로 예쁘게 빛나는 게 사탕 같긴 하겠지만 먹으면 안 돼!
“날개야, 날개! 형, 아니 오빠 날개!”
– 가, 간지러워!
“착하지, 분홍색이라고 다 과자는 아니에요. 누가 단거, 단거 좀!”
“여기, 형.”
유현이가 망설이면서 작은 유리병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안에는 말린 과일이 두 개 들어 있었다. 그게 아직 남아 있었니?! 마지막으로 준 게 두 달은 더 전인 거 같은데…….
“집에 가면 많이 만들어 줄게. 자, 꼬마야. 이거 먹자. 달아요.”
과일 하나를 꺼내 입가에 대자 꼬마가 코끝을 움찔거리다가 결이를 놓아주곤 과일을 덥석 받아들었다. 결이가 비틀거리며 식탁에서 내려와 인간 어린애 모습으로 변했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던 꼬마가 덩달아 인간으로, 악! 꼬마야!
챙그랑! 갑자기 커진 꼬마의 몸에 밀려 그릇들이 서로 부딪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식탁 아래에 앉아 있던 피스가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꼬마를 쳐다본다. 다행히 카펫 위라 깨진 그릇은 없었지만 식탁이며 바닥이 엉망으로 더러워져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꼬마가 이제는 작아진 말린 과일을 한입에 앙 넣고 만족스럽게 우물거렸다.
“우와! 결이 같은 거예요? 아저씨랑 닮은 거 같아요!”
“나도 해.”
꼬마가 결이를 보며 말했다. 그리곤 손을 흔들었다.
“안—녕.”
“으응, 안녕. 그러니까, 결이 오빠야. 한결이.”
“난 고모! 예림이 고모! 여자애예요? 진짜요?”
예림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반면에 결이는 조금 쑥스러운 듯했다. 꼬마가 자신의 빈손을 바라보다가 유현이를 빤하게 쳐다보았다. 요구하는 것이 분명한 그 눈빛에 유현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남은 과일을 마저 꺼내 주었다. 내 동생, 착하다.
인간 모습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는지 하나뿐인 말린 과일을 아껴 먹고 싶은 것인지 꼬마가 다시 조그만 새끼 몬스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앞발로 과일을 잡고 만족스럽게 빨고 있는 꼬마를 예림이가 홀린 듯 바라보았다.
“아직 이름은 안 지어 주셨죠?”
“일단 꼬마라고 부르고 있어.”
“결이처럼 사람 이름 같아야겠어요. 지인짜 귀엽다. 옷 사줘야지.”
“결이도, 잘 해줄 거야.”
결이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다가 우물거렸다. 이거…….
“생각해 보니 결이한테 용돈 줘야겠네. 꼬박꼬박.”
“진짜요?”
“그럼, 물론이지. 설날에 세뱃돈도 주고.”
자기도 동생에게 뭔가 사주고 싶었던 거겠지. 새해 용돈은 받았지만 일시적인 거고. 결이의 인간 모습이 알려진 김에 슬슬 신분 조작을 해야겠다. 세성 길드장의 먼 친척인데 부모를 잃고 각성을 했다, 그런데 능력이 몬스터 관련이라 도담에서 보호해 주기로 하였다. 정도가 괜찮겠지?
과일을 다 먹은 꼬마가 이제 들어가겠다는 듯 내 손을 잡아 당겼다. 꼬마를 들여보내자 만져 볼 기회를 노리고 있던 예림이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름을 받게 되면 계속 나와 있을 거야. 지금은 위험해서라도 일부러 지어 주지 않은 거고.”
“아저씨 혼자서는 절대 지어 주면 안 돼요! 근데 먹을 거 정말 좋아하네요.”
“아무래도 좀… 잘 못 먹기도 했거든. 내가 데려오기 전에 말이야.”
그때 그 망할 놈들이 깜둥이를 제대로 돌봐 줬을 리가 없었다. 먹이인 마석은 등급이 낮아도 비싸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만 줬겠지. 양껏 잘 먹이다 보면 식탐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 한…명뿐입니까?”
어느새 일어서서 묵묵히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던 송 실장님이 말했다.
“하나 더 있긴 한데 그 앤 아직 못 나오는 거 같아요.”
“한국으로 따로 보내기는 힘드니 우선은 작명은 미뤄 주십시오. 한유진 씨가 함께 귀국한다면 괜찮겠습니다만.”
“아니에요. 천천히 이름 짓고 있죠 뭐. 결이 넌—”
“안 가, 안 가, 안—”
떼를 쓰듯 말하던 결이가 돌연 자세를 바로 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안 갈 거예요, 아빠.”
그동안 잔뜩 어린애처럼 굴더니 동생 봤다고 어른스러운 척을 하네. 귀여워라.
“그래, 혼자 보내는 것도 걱정되니까. 얼른 정리하고 다 같이 집에 가자.”
결이는 다시 요정용으로 돌아가고 예림이가 밥을 마저 먹은 뒤 호출 벨을 눌렀다.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식탁을 정리하고 후식을 내어왔다. 예림이와 결이가 과자와 초콜릿을 슬쩍 따로 챙겼다. 몸에 비해 너무 큰 초콜릿 두 개를 겨우 안고 방황하는 결이에게 과일을 담았던 빈 병을 건네주었다.
“고모가 가지고 있어 줄게.”
꼬마를 위한 것일 과자와 초콜릿이 병에 가득 담겼다. 시원한 음료를 반쯤 비우자 반테스와 그레이가 다시 나타났다.
“승용차와 헬기가 있습니다.”
“차로 부탁드려요. 그리고 왜 여기 계신 거죠? 세성 길드장님은요?”
“이곳에서 한유진 님과 송태원 님의 식사와 편의를 챙겨드리라 명하셨습니다.”
그랬으니 대접해 준 거겠지만.
“…여기는, 세성 길드장님을 납치한 사람들의 저택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레이를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납치범들과 함께 있는 꼴이잖아. 이상하지 않나.
“분명 그렇습니다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반테스 대신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저희 주인님 역시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잘 대접해 드리라 하셨으니까요. 서로의 목적이 동일하니 자연스럽게 협력한 것일 뿐이랍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말이야. 세상사 서로 싸우다가도 상황에 따라 손잡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냐.
“그 주인님이 누구신데요. 마리 양은 아닌 듯합니다만.”
“한유진 님께서는 이미 만나 뵈셨습니다.”
“…예?”
“마리사 무어 님이십니다.”
마리사 무어라면,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 영국 협회 사람? 잠깐만, 그럼!
‘…성현제 결혼식 초대받았던 거였어?’
갑자기 웬 모르는 사람 결혼식 초대인가 했더니 아는 사람이었냐! 그보다 그 사람이? 박하율의 그 누님이자 마리의 어머니이자 성현제의 장모님 될 뻔하신 분이라고? 그냥 인상 좋은 여성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