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46
644화 내 이야기
내가 멱살을 잡고 흔들든 머리채를 뜯어 뽑든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거라는 듯 태연자약했다. 실제로 그렇긴 했고. 원래도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인간인데 지금은 더하겠지. 멱살 말고 바리깡으로 머리를 확 밀어 버리겠다고 할 걸 그랬나. 그럼 제아무리 잘난 인간이라 해도 조금쯤은 피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자른 머리카락은 세성 길드장 인증받아서 경매장에 올려 버리는 거다. 저 인간 머리칼이라면 비싸게 팔릴 거 같아. 막 뜯어 와 싱싱한 성현제 머리칼입니다. 무농약 유기농 자연산, 은 아니고 초승달표 강제 초월 재배당했답니다.
멱살 잡는 척하다가 머리를 확 잡고 흔들까 생각하며 성현제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형, 잠깐만.”
유현이가 나를 말리고 송 실장님이 성현제 앞을 가로막아 섰다.
“섣불리 접근하지 마십시오.”
“송 실장님?”
“평소의 세성 길드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감각 공유 덕분인가 확신을 한 듯 송태원이 무겁게 말했다.
“한유진 씨를 대하는 성현제 헌터의 태도가 반년 전의 것과 비슷해 처음에는 기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가 성현제를 흘끔 돌아보았다.
“제 움직임을 지금보다 더욱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제 능력치를 조금 낮게 평가하는 기색도 느꼈습니다.”
“송태원 씨도 여전하군.”
성현제가 입술 끝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송태원의 눈썹이 기우뚱이 찌푸려졌다.
“…회귀 전의 성현제 헌터입니까.”
“박수라도 쳐야 할까. 그렇게나 정확히 알아봐 주니 기쁘기 그지없어.”
비꼬는 듯도 했지만 진심인 것도 같았다. 반갑긴··· 반갑겠지. 지금의 성현제 입장에서 송태원은 죽은 사람이 되돌아온 것일 테니까. 송태원을 바라보는 성현제의 시선이 퍽 다정한 듯 보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건강하고, 어디 손실된 부분도 없고. 좀 더 부드러워진 느낌도 드는데- 송태원 씨, 혹시 연애라도 하십니까?”
“아닙니다.”
“회귀하고는 아직인가. 송태원 씨의 결혼식은, 꽤나 즐거웠지.”
성현제가 그립다는 듯이 말했다. 뭐? 잠깐만.
“송 실장님 결혼하셨어요?!”
헐, 대체 누구랑? 상대가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각관실 헌터 중 하나? 송 실장님 성격에 비각성자나 하급 헌터와 결혼했을 거 같진 않은데 설마 현아 씨? 송 실장님이 짧게 한숨을 내쉬곤 나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한유진 씨.”
“···네? 아니, 전 아무 생각 안 했는데요.”
“당연히 농담입니다. 문현아 헌터처럼요.”
무, 물론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송태원이 다시 성현제를 딱딱하게 바라보았다.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잃어버린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었어.”
송태원과는 반대되게 성현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엽서라도 보낼 수 있었던 나와는 달리 송 실장님은 무덤 한번 제대로 찾아가질 못했을 것이다. 괜히 속이 쓰리게-.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송 실장님이 헛 수작 말라는 듯 냉랭하게 재차 물었다. 어, 그야··· 성현제가 정말로 인사나 하겠답시고 이런 식으로 나타날 리는 없겠지. 원래의 자기 자신도 아닌 덧씌워져서는 진짜 아니다. 설사 현재의 성현제가 자기 자리 양보해 준다고 해도 하찮고도 불쾌해하며 거절하지 않을까. 억지로 빼앗는 거야 할 것도 같지만.
“매정하기는. 해연 길드장님도 좋아 보이는군.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어. 송태원 씨가 사망하기 보름 전쯤이던가. 만취한 형을 감추듯 하곤 더는 건드리지 말라며 내게 경고했었지.”
“···유현이가요? 직접요?”
“세성 길드장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으니. 그때는 한유진 씨를 부축하는 손길이 무척 어색하고 불안했었는데.”
성현제가 나와 유현이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머금었다.
“자연스러워졌어.”
무심코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유현이의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다. 회귀 전의 일을 듣는 건 역시 불편하겠지.
“송 실장님이 돌아가시고 한국을 떠나서, 정말로 한 번도 돌아온 적 없었습니까? ···굳이 혼자 떠나야 했어요?”
송 실장님의 무덤은 물론이고 세성 길드까지 버려 두고서.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 인간이라 해도 길드에 애정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터였다. 미련이 정말로 없지는 않았을 텐데.
“저는 그렇다 쳐도요, 세성 길드원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쪽 잘 따랐잖아요. 소영 씨도 나름 성현제 씨 좋아하는 거 같았다고요. 그리고 반테스 씨와 에블린 씨···….”
“설마 지금의 밀러 헌터는 나를 좋아하는 건가?”
성현제가 깜짝 놀랐다는 듯 말했다. 어, 음.
“물론이죠. 지금은 한국에 와 있다니까요.”
한국까지 들어와서 상사 대접해 주는 것만 봐도 호감이 있긴 있는 게 아닐까. 어쨌든 소영 씨도 얼굴은 좋아한다 했으니 에블린 씨도 그럴지도 모른다. 최소한 길드장한테서 나오는 연봉이나 아이템은 좋아하겠지.
“그런데도 혼자서. 그냥 집에 박혀 있어도 될 일이잖습니까.”
굳이 집 나가서 엉뚱하게 양이나 친다느니 하며 빌어먹을 엽서나 보내고. 또 속이 울컥거렸다. 남의 기억을 지우고 스위스로 튀어? 말이냐 그게.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열받았다.
“송태원 씨에게 받은 선물을 풀어 보기 위해서였지.”
약탈. 성현제가 그 힘을 그냥 놓아 두었을 리가 없었다.
“나를 삼키기 위한 힘이니 자칫 그 이상을 덮치게 될 수도 있었어. 공들여 만든 무덤을 파헤쳐 놓을 수야 없지 않나. 비록 텅 비었다 하더라도.”
“···주위의 안전을 위해서라고요?”
“또한 내가 가꾸어 놓은 것들이.”
금색 눈동자가 일순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날이 선 미소가 그 안에 맺혔다.
“짓밟히는 꼴은 충분히 봐 왔다, 라고 해 둘까.”
성현제의 손가락 끝이 가볍게 제 관자놀이를 톡 건드렸다.
“비록 기억은 지워졌지만 감정은 남아 있으니.”
성현제를, 성현제가 가꾸어 온 것을 짓밟는.
“초승달입니까.”
“벗어나려 드는 나를 내버려 둘 리 없으니까. 계약을 잘라 내서든, 혹은 그림자에 삼켜져서든.”
“···후자는 성현제 씨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데요.”
약탈을 성현제가 가지게 되었으니 결국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성현제가 대답 대신 목을 희미하게 기울였다. 무슨 꼴을 당하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할 사람은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버텨 온 것만 봐도 그랬다. 하지만 초승달의 손에 만월로 차오르는 순간, 그는 그가 아니게 되고 만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잠깐만요, 혹시.”
성현제는 회귀 전의 자신의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덮어씌워졌다. 결혼식장은 알프스 산맥이었고 성현제가 회귀 전 머물렀던 곳도 알프스였다. 보통은 회귀 전 흔적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초승달이 정말로 나타난 겁니까? 그러니까 스위스에서 말이에요!”
“던전 브레이크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지.”
“무슨 일이 있었어요? 네?”
성현제가 자신의 목깃을 손으로 매만지며 대답했다.
“한유진 씨, 승리의 대가는 정보가 아닌 멱살이 아니었던가.”
···치사하게! 그래, 내가 억울해서라도 멱살 잡아 준다!
“유현아, 놔 봐.”
“하지만 형. 지금의 세성 길드장은 위험해.”
“괜찮아, 약속은 지키는 인간이잖냐. 송 실장님, 걱정 마시고 잠깐만 비켜 주세요.”
유현이의 손을 뿌리치고 크게 걸음을 내딛었다. 송 실장님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순순히 물러섰다. 저벅저벅 성현제 앞으로 다가갔다. 성현제가 다시 허리를 살짝 굽혀 주었다. 대놓고 목을 내어 주는 꼴이 여전히 여유로웠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굴어도 넌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
하찮아 죽겠지, 아주. 사양 않고 손을 내밀어 성현제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힘껏 당겨 보았지만 숙여 준 그 위치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딱 자신이 봐주는 선 이상은 넘게 해 주지 않는다. 일견 선을 넘은 듯 보여도, 실상은 자신이 허락한 이내일 뿐.
“성현제 씨.”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 그래. 내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할 수 있는 일 없이 선 밖에서 지켜볼 뿐인 외부인이었을지도 모르지.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기억도 결국 지워지고.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내 이야기야.”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너무 잘나셔서 남의 기억 지운 인간을 누르고 멱살도 잡는 이야기.”
금색 눈이 웃었다.
“물론, 한유진 씨의 이야기지.”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기억을 지운 것에 대해서는, 사과해 둘까.”
“입으로만?”
“뭘 원하지.”
“별거 아닌데, 멱살 잡는 것과 비슷한 정도.”
“그 정도야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그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 성현제의 머리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투예지가 있어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을 거다!
“이 망할 자식아! 머리털 다 뽑아 버리겠어!”
“형!”
태도 봐라, 태도! 진짜 세상에서 자기만 잘났지! 색 바랜 머리칼을 양손 가득 움켜쥐고 매달렸다. 망할 S급이라 머리카락 뿌리도 튼튼했다. 유현이는 물론이고 송 실장님도 당황해했다. 심지어 성현제까지도. 명우의 유진아··· 하는 소리가 저만치서 들려왔다.
“잠깐-”
“잠깐은 무슨! 뽑힐 때까지 밤새도록 잡혀 있어!”
이야, 머리카락 진짜 튼튼하다! 어째 한 올도 안 빠지냐!
“야! 한유진의 이야기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었을지도 모르기는, 취소다! 그때도 내 이야기였고 지금도 내 이야기고, 계속 이어지고 있어!”
회귀했다고 싹 없는 일 됐으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어! 결국 그때가 있어 지금도 있는 거다.
“형! 그러다 다칠지도 몰라! 내가 잘라 줄게, 응?”
“한유진 씨, 머리카락에 손가락이 베일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무기를 쓰십시오!”
“유진아, S급 머리에도 통하는 가위 만들어 줄까? 머리를 쉽게 자를 수 있게.”
“있어 봐, 있어 봐! 딱 한 올만 뽑는다!”
성현제 어깨와 가슴에 발을 딛고 힘껏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성현제가 내 허리를 붙잡았지만 약속한 게 있어서인지 억지로 떼어놓지는 않았다.
“남의 이야기면 내가 왜 이 고생이냐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다! 그쪽 이야기지만 동시에 내 이야기야! 세상 혼자 사냐? 어? 내 거고, 이젠 안 뺏겨! 아니, 도로 내놔!”
“진정, 을. 한유진 씨가 뽑기는, 힘들 듯한데.”
“그러게 누가 S급으로 각성하랬냐! F급이면 진작 다 뽑고 끝냈지!”
“형! 손가락에서 피나!”
손가락에 휘감아 당기다 보니 결국 상처가 조금 생겨 버렸다. 더럽게 튼튼하네! 하기야 튼튼하지 않으면 던전 공략하다가 자칫 몬스터에게 머리칼 잡혀 우수수 뜯기는 불상사가 벌어지겠지.
“저를 걱정들 해서 봐주는 겁니다!”
머리칼 놓고 내려섰다. 그래도 속이 좀 풀리긴 했다. 유현이가 얼른 내 손바닥을 살폈다.
“손바닥 상처도 더 심해졌잖아!”
“아니, 그게. 못 뽑았으니까 무효예요! 한 번 남았어요!”
“각오해 두지.”
성현제가 엉망이 된 머리칼을 대충 정리하며 대답했다. 쥐어 뜯어 놔도 어울리네, 망할 얼굴. 그리고 내 허리를 잡았던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편다.
“조금 더 작아지고 근육도 줄었군.”
“···그야 걘 나보다 더 오래 헌터 일을 했으니까요.”
뭘 또 비교질이야!
“전체적으로 살이 빠진 듯하고 허리가 말랑-”
“내 몸뚱이에 참견 마시죠!”
아니, 그래도 없진 않다고! 나도 회귀하고 반년 넘게 열심히 뛰어다녔어! 근육이 그렇게 확 생기는 줄 아냐? 이래서 S급들이란!
“솔직히 형, 회귀 직전보다 지금이 더 마른 건 사실이잖아.”
내 손을 치료하며 유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땐 보통은 되었고 애초에 형 몸이 약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주위에 상급 헌터가 많아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아 보였을 뿐, 제 기억에도 평균 이상은 되었습니다.”
송 실장님까지 한마디 거들었다. 명우까지 끼어들세라 얼른 변명했다.
“아아니, 그래도 속 근육은 지금이 더 나을걸……? 규칙적인 운동을 안 했을 뿐이지 애들 돌보는 것만 해도 얼마나 운동이 되는데!”
“유진아.”
결국, 명우도 입을 열었다.
“건강에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중요하대. 최근 일주일간 세 끼 꼬박 같은 시간에 챙겨 먹었어?”
“그게, 시차! 시차 때문에! 프랑스잖아! 게다가 한국이랑 물부터 해서 다 다르고!”
열심히 말하면서 성현제를 슬쩍 노려보았다. 아니, 왜 쓸데없는 말을 해 가지고!
“이유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송 실장님이 성현제에게 말했다. 성현제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곤 무어라 작게 귓속말을 했다. 유현이를 돌아보자 고개를 작게 젓는다. S급도 엿듣지 못할 속삭임인 모양이었다.
송 실장님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묵묵히 듣던 그가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성현제가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한유진 씨가 내 메시지를 수락한다면 말해 주지.”
“됐네요.”
같은 팀 아니면 말 안 해 준다니, 치사하다.
[연습 게임이 끝났습니다.]뒤늦게 메시지가 떴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팀원들 불러다 패싸움이라도 벌여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