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62
761화 유성우 (2)
어디선가 화재가 났는지 탄내가 흘러들어왔다. 하늘은 쉼 없이 번득이고 있었다. 푸른빛 붉은빛 노란빛 구름과 뒤섞여 어지럽게 산란한다. 콰아앙- 떨어지던 별이 또 다른 별과 부딪쳤다. 무언가의 으르렁거림이 아득하게 들려온다.
온갖 힘으로 두들겨 맞은 하늘이, 구름이 이윽고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투둑 툭. 떨어지는 빗방울에 한유현은 옅은 화기를 주위로 둘렀다. 얼어붙은 겨울 폭우가 쏟아진대도 그에겐 스치는 이슬과 다름없었지만 품 안의 형에겐 아니었다. 몸이 젖어 식으면 쉽게 감기에 걸린다. 체온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치이익-
화기에 닿은 물방울이 희미한 소리를 내며 증발한다. 아스팔트가 더욱 거뭇하게 젖어 들어간다. 한유현은 발길 닿는 대로 달렸다. 피스가 왜 자신을 타지 않느냐는 몸짓을 보여 왔지만 모른 척했다.
물기가 짙어가면서 젖은 도시 특유의 냄새 또한 짙어져갔다. 이제는 영향을 받지도 끼치지도 못하는 꿈의 사람들의 유령처럼 흐릿하게 흔들린다.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구분 가지 않는 둥그름한 형상들. 한유현에게는 항상 이와 같았다. 그렇기에 한유진의 감정을 그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심지어 한유진을 아끼고 위하는 것조차 한유현의 것이 아닌 한유진으로부터 습득한 행동이었다. 한유진은 한유현에게 참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의 본모습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유현의 본성은 한유진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득히 멀었다. 한유현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불의 심지.
“…여긴.”
어느새 길이 좁아졌다. 오래된 건물들이 눅눅하게 모여 있었다. 한유현은 눈을 깜박였다. 익숙한 길목, 익숙한 풍경. 무심코 이곳으로 오고 말았다. 지금의 집을, 사육소를 떠난 발걸음이 또다시 집을 찾았다.
한유현은 어둑한 건물 출입구로 들어섰다. 피스가 유체화하며 따라 들어왔다. 우편물이 간간히 꽂힌 우편함이 보였다. 그중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유진은 이곳을 팔고 떠났다. 한유현은 옛 집을 사들였다. 챙겨간 짐도 얼마 되지 않아 큼직한 가구들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보존했다. 처음에는 이따금 집을 찾았다가 점차 가지 않게 되었다. 한유진이 없는 집은 결국 그의 집이 아니었기에.
삑삑삑- 도어록의 비밀번호는 예전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깨끗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찾지는 않았지만 담당자를 두고 카드키를 주어 관리는 하고 있었다. 낡은 소파에 한유진을 내려놓았다. 창문을 빗방울이 톡톡톡 두들긴다. TV는 없이 색 바랜 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자주 썼던 서랍의 손잡이에 손때가 묻은 것이 보였다.
– 끄웅.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피스가 소파 아래에 몸을 말았다. 한유현은 멍하니 집을,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한유현’이 태어난 공간이었다. 한유현과는 다른 ‘한유현’이 한유진에 의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검은 시선이 자신의 손을 향했다. 불의 시초가 손등을 부드럽게 휘감는다. 붉은 도마뱀이 펄쩍 뛰며 한유진에게로 옮겨갔다. 걱정스럽게 한유현을 올려다봐온다.
– 유현아, 여기 앉아 봐. 형이랑 있자. 응? 형도 유현이랑 같이 있고 싶어 할 거야!
한유진과 함께. 한유현의 상체가 한유진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그때였다.
“…….”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직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가까워지고 있다. 그와 같은 존재가. 곧 이 세계에 발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형이 찾고 있는 것은 시체였다.
* * *
쿠구궁- 크게 잘려나간 건물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린다. 빗속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다가 이내 젖어 가라앉았다. 색 바랜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진다. 사슬이 움직일 때마다 물이 튀었다. 구두 굽 아래 짓밟힌 형체가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또 하나의 마석이 성현제의 입술에 물렸다.
“역시 종속자로는 부족하군.”
다른 세계에 억지로 들어서며 힘이 줄었다곤 하나 마석의 질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성현제의 몸에 차오른 시간에 비하면 모래알갱이에 불과했다.
“괜찮은 겁니까.”
한발 늦게 성현제를 뒤쫓아 온 송태원이 엉망이 된 주위를 살피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도 않아. 초월자쯤 되어야 기별이 올 듯하군.”
성현제가 노리는 것은 쌓인 힘을 흔들기 위한 외부의 압력이었다. 그에게 쌓인 것은 마석과 같은 단순한 힘이 아닌 경험이 깃든 시간이었다. 온갖 세상의 온갖 존재들을 보고 듣고 느껴온 세월 자체가 힘으로 쌓여왔다.
말 그대로 세계의 축적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마석은 그 쌓인 것에 곧장 섞이지 못하는 이질적인 덩어리로 구분이 되었다. 마석을 삼키는 것만으로 유사 근원을 만들 수 있었다면 초승달은 진작 수많은 초월자를 제물로 바쳤을 터이니.
하니 그 섞이지 못한 힘의 덩어리를 키워 쌓인 힘을 흔들고 빼내어 조금씩 소화시키기를 노리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길고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을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단축시키고자 했다. 자연히 위험성은 훨씬 높아졌다. 자칫하면 마석이 섞여들며 단숨에 채워져 만월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송태원 씨야말로 괜찮은 건가.”
젖은 시선이 역시나 흠뻑 젖어든 남자를 향했다.
“한유진 군을 구하는 길은 내가 근원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해도.”
“제게는 그렇게라도 살아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송태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 한유진 씨가 원하기 전까지는 당신을 돕겠습니다.”
“한유진 군의 편을 들겠다니, 조금 섭섭한데.”
“지금의 성현제 헌터는 살고자 하나 동시에 죽음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태원 실장님은 살아가려는 사람의 편이로군. 나 또한 그렇다네.”
하늘이 흔들렸다. 빛의 길이 빗물과 함께 떨어진다. 쿵! 바로 앞의 도로가 움푹 꺼지며 부정형의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짐승의 형상으로 변한다. 커다란 늑대화한 물체가 단숨에 성현제 앞으로 뛰어올랐다.
– 나는.
“라임 젤리.”
– 뭐?
이름을 내뱉으려던 늑대를 향해 사슬이 휘둘러졌다. 금색 고리의 한쪽 면이 변형하며 칼처럼 날을 세운다. 늑대의 한쪽 앞다리가 서걱 잘려 나가고.
“…….”
“성현제 헌터!”
동시에 성현제의 같은 쪽 팔이 피를 뿜었다. 성현제가 떨어지는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송태원이 곧장 인벤토리에서 최상급 포션을 꺼내 던졌다. 사슬의 끝이 포션을 깨고 내용물이 정확히 잘려나간 팔에 흩뿌려진다. 팔을 치유하는 성현제를 부정형 종속자가 비웃듯 바라보았다. 늑대의 앞다리가 순식간에 재생하고 떨어져 나간 부위가 꿈틀거리며 본체로 흡수되었다.
– 내게 가해진 공격은 그대로 되돌려지니.
“저주의 일종인가. 한유진 군이 그립군. 역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 회복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은.
파지직! 전류가 늑대를 향해 파도쳤다. 물컹한 몸체를 순식간에 헤집고 훑는 동시에 성현제의 몸이 비틀거렸다. 강력한 전기 저항을 지니고 있으나 대미지가 그대로 주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 소용없다.
늑대가 이를 드러낸다. 송태원이 나서려는 것을 성현제가 손을 들어 막았다. 직후.
콰득-!
사슬의 끝이 부정형 덩어리의 한 곳을 꿰뚫었다. 가슴이었다.
– 무, 슨.
생명체의 심장이 있는 곳에 핵을 숨겨 둔 것이었다. 전류를 흘려 핵을 찾아낸 성현제가 가차 없이 그것을 파괴했다. 동시에 성현제 또한 피를 울컥 토해낸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군.”
“방금 설마-.”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다네. 일종의 생존 본능으로 생명 하나 분의 힘을 끌어 쓴 셈일까.”
늑대가 녹아내리고 마석이 남았다. 사슬이 마석을 휘감아 들어 올린다. 빗속에서 유성이 추락하는 소리가 연이어 쿵, 쿠웅 울렸다. 편의점을 뚫고서 절걱이는 금속의 거인이 걸어 나온다. 다른 쪽에선 팔뚝만 한 벌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개를 움직였다.
직후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둘 다 무사하냐!”
문현아가 소리쳤다. 그녀가 타고 있는 건 고성능 하이퍼카였다. 운전석 전면과 천장이 아낌없이 뜯겨 나가고 그 앞으로 거창이 세워 들렸다. 생물은 내기 힘든 엄청난 속도의 돌진이 피할 틈도 없이 금속 거인과 부딪쳤다.
콰아앙-
쿠드득, 소리와 함께 창의 끝이 압축 프레스에 들어간 듯 짓눌려 뭉개진다. 차가 박살 나고 문현아와 금속 거인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르고 착지한 문현아가 곧장 포션을 꺼내 팔에 부었다. 가슴이 크게 일그러진 금속 거인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다가 다시 쓰러진다.
“엄청 단단하네!”
부러졌던 팔을 빙글 돌리며 문현아가 일어났다. 그사이 벌이 위잉거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벌 주위의 건물 잔해들이 떠오르더니 모체와 같은 벌로 그 형태를 바꾼다.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벌이 만들어지고 일제히 성현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리필 신청은 하지 않았는데.”
수색자의 사슬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금속 고리가 나누어졌지만 벌의 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벌떼가 사납게 가시를 세운다. 꽁무니만이 아닌 전신에서 독기를 품은 가시가 솟아났다. 송태원이 성현제의 앞으로 나서며 쾅, 무게를 증폭한 발길질로 바닥을 두들겼다. 물결치는 도로를 다시 한번 강하게 내리찍자 벌떼 앞으로 파도처럼 아스팔트와 흙더미가 치솟는다.
카가가가가-
벌떼가 회전한다. 돌연 생긴 벽을 순식간에 파헤친다. 한쪽에서는 문현아와 금속 거인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전기가 통할 것 같습니까?”
“글쎄. 그보다는.”
금빛 사슬고리가 쩌엉, 흔들리더니 산산조각 났다. 수백 개를 넘어선 수천 개의 파편이 벌떼를 감싸고 그것을 둘러 전류가 흐른다.
“뭐야, 성현제 사슬 저런 것도 되었냐?”
“본질은 빛이니. 평소의 나로서는 컨트롤이 불가능해 쓰지 않지만.”
사슬로 구체화되었을 뿐 그 실상은 무형의 빛이다. 벌떼가 마치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팝콘용 옥수수알처럼 펑펑 터져 나간다. 유일하게 남은 모체만이 요란한 날갯짓으로 전류의 감옥을 빠져나갔지만.
쇄액!
날아든 얼음 창에 꿰뚫려 추락했다. 빗물이 자석에 이끌리듯 한곳으로 모인다. 문현아 앞의 거인의 두 다리가 얼어붙는다. 쿵! 새로이 떨어진 유성을 향해 수십 개의 얼음 창이 쏟아져 내렸다.
“예림아? 형님은 어쩌고!”
“한유현 있잖아요! 그리고 아저씨는, 세성 아저씨를 도와주고 싶어 했으니까요!”
한유진의 바람, 한유진의 안전. 박예림은 어느 쪽도 선택하기 힘들었다. 어느 쪽이 한유진을 위한 일인가 판단 내릴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박예림은 한유진이 안전하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자신의 욕심대로 한유현을 막지 않고 욕심을 부린 대신 이곳으로 왔다.
“아저씨 대신이에요! 뭐, 저도 세성 아저씨 도와줄 생각은 있고요!”
“꼬마 아가씨가 그렇게나 내 생각을 해줄 줄이야.”
“다 아저씨 덕분인 줄 아세요. 아저씨 없는 세성 길드장은 저도 관심 없었을 테니까. 세성 아저씨가 그랬을 것처럼요.”
성현제는 원래 저렇다, 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따금 느껴지는 차가움이 섭섭하긴 했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박예림 또한 한유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성현제에겐 지금처럼 정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예림아, 조심해!”
꽈앙, 몸이 굳은 금속 거인의 머리를 대형 해머로 내리찍으며 문현아가 소리쳤다.
“걱정 마세요. 마침 비도 내리고 정 안 되면 한강으로 튀면 돼요! 한강 엄청 크잖아요~.”
그에 대답하듯 후두둑, 내리꽂힌 얼음 창을 털어내며 검은 연기로 얼굴과 상체를 휘감은 인체가 걸어 나온다. 박예림과 문현아 앞에 메시지 창이 반짝 떠올랐다.
[조심하세요! 종속자가 강할수록 길을 여는 게 힘들어서, 오래 걸리거든요!]다시 말해 갈수록 더 강한 적이 나타날 것이란 뜻이었다. 쿵, 쿵, 쿵. 별이 떨어진다. 하늘의 별은 아직 무수했다.
* * *
“형! 장난 아니에요!”
호들갑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겹게 눈을 떴다. …다시 감아 버리고 싶어졌다.
“엄청나다니까요!”
상체를 벗고 근육을 뽐내는 박하율이 보였다. 머리 크기는 그대로인데 어깨 넓이는 두 배 넘게 커졌다. 저놈은 대체 왜 저럴까.
“너… 이게…….”
“여긴 제 세계잖아요! 그래서 꿈꾸는 사람들의 힘에 저도 영향을 받고요!”
멍하던 머리가 갑자기 불을 켠 듯 밝아졌다.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여긴, 그러니까 꿈? 내가.
‘…유현이가.’
날 기절시켰었다. 아직 정신을 잃은 채구나.
“근데 엄청 강한 존재들이 막 들어오고 있잖아요! 저 더 강해졌어요!”
박하율이 우후후 웃다가 시무룩해졌다. 커진 상체도 바람 빠지듯 원래대로 돌아온다.
“제 힘에 비례해서 계약하는 바람에 깨어나진 못하지만요. 형 진짜 계약 잘하시네요. 이럴 줄 아셨어요?”
“…초월자들의 영향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만. 그래서 네가 더 강해졌다고?”
“네! 자느라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요!”
그럼 무슨 소용이냐. 박하율을 다시 깨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봤자 초승달의 힘을 늘려 주는 꼴이 될 것이었다. 이놈은 그냥 잠들어 있는 편이 낫긴 하지.
“그래도 이렇게 형 만나는 건 쉬워졌어요. 자주 오면 안 돼요? 형이 원래 세상에 돌아가도요, 제 생각하고 잠들면 만날 수 있는데.”
“어, 응, 뭐.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식으로 간섭할 수 있는 거냐?”
“모르겠어요. 형은 저랑 계약했잖아요. 게다가 전 형에게 충성을 맹세했죠!”
…네가 언제. 박하율이 뭐 필요한 거 있으시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의자와 티테이블이 나타났다. 일단은 앉았다. 유현이가 걱정되었다.
“필요한 거라고 해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둘 다 가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전부 끌어안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 듯했다.
“난 우리 애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동생 곁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도 않아. 내가 지금까지 버텨온 게, 무너질 것만 같아서.”
단순히 성현제를 돕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내 생애였다. 유현이의 손을 잡기로 하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동생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했을 때도 버텼다. 그리고 회귀하고, 스물다섯 살의 동생을 알게 된 후 솔직하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잔뜩 있었거든.”
막막했다. 동생을 되찾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거듭 말하면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사실은 한구석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그냥 버텼다.
“F급이 S급 따라잡으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했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은 꺾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힘들어졌다.
“…박하율 널 두고 무슨 소릴 하는가 싶지만 말이다.”
“그럼 다른 사람 만나 볼래요?”
“응? 누구?”
“제가 힘 쎄지고 꿈에서나마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가 형이랑 똑같은 사람도 봤거든요. 형 동생이랑 똑같은 사람도 봤어요!”
“…뭐? 나와 유현이를?”
“한번 불러 볼까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하율이 허공에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그러길 한참,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