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91
91화 맞춤형 기승수(?)
선생님 스킬을 해제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움푹 패고 쩍쩍 갈라진 바닥에 시원하게 뚫려 무너진 벽. 참으로 기가 차는 광경이었다. 옥상정원에서 그 난리 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러다 건물 수리비로 돈 다 털어 넣겠다.
금빛 작은 드래곤은 벽이 부서진 그 자리에 웅크리듯 엎드려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눈을 굴린다.
“스킬까지 써서 막다니, 너무 감싸는 거 아냐?”
유현이 놈이 다가와 불만 짙은 얼굴을 쑥 내밀었다.
“감싸긴 무슨.”
“그렇잖아. 먼저 피해를 입힌 건 저놈인데. 게다가 형, 박예림 헌터 꽤 아끼지 않았어?”
“예림이가 다쳤으니까 죽이지 말라고 한 거지. 사람 패지 말라는 게 아니라.”
어차피 나야 자업자득인 셈이고.
“그리고 상대가 누가 되었든 가족이 사람 죽이겠다고 날뛰는 걸 반길 사람이 어디 있냐. 보통은 기겁하지. 맨손 주먹질 싸움이라도 하지마 소리부터 나올 텐데.”
일반인이면 그렇다. 그리고 나는 각성했다고 해 봤자 정신력 스탯 보정도 얼마 못 받는 스탯 F급에 던전도 신줏단지 모시듯 보호받으며 돈 게 다다. 눈앞에서 사람 잡아 죽이겠단 소리 하면 질색하는 게 평범한 반응이라는 소리다.
내 말에 유현이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 무섭지 않다고 해서 괜찮다는 건 아닌데. 형이 헌터에 너무 익숙해 보여서 깜박했어.”
“뭐, 비각성자 수준은 아니니까. 내가 깜박할 만하게 행동하기도 했고.”
생각해 보면 상급 헌터들 중에 내가 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송태원뿐이었다. 정확히는 눈치채고 신경 써 준 사람, 이라고 해야 하나. 성현제도 모를 것 같진 않은데 신경 안 쓸 거 같고 문현아는 겁 없으면 좋은 거잖아, 하고 넘어갈 거 같다.
유현이와 예림이야 그런 거 세세히 챙기기엔 아직 어리고.
“아무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냐?”
화상에 날개도 찢어졌고 많이 맞았다. 유현이도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형을 해치려 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오늘 일은 그 반대였잖아.”
“그것도 이상해.”
“노아 씨가 너를 보고 자기 누나를 떠올려서 그런 거야.”
나를 리에트라고 생각하고 덤벼든 건 키워드 효과 없이는 솔직히 그냥 미친놈이네 싶어 설명하기 곤란했다. 하지만 유현이와의 관계까지 더해지자 그럭저럭 해명할 만해졌다.
노아가 원래 A급 헌터였다는 것도, 리에트의 목소리만 듣고도 얼마나 겁먹었는지도 털어놓았다. 당사자 앞에서 아픈 속사정 늘어놓기 좀 그래서 통역 아이템은 벗어 든 채였다. 노아에게도 통역 아이템이 있었지만 용으로 변한 지금은 벗겨지기라도 했는지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래서 약하다는 소리에 나를 자신과 겹쳐 본 게 아닐까 싶어. 그렇잖아도 누나의 부탁을 망쳐 놓은 것 때문에 불안해진 탓도 클 거고.”
“나한테 덤벼드는 거야 환영이니 상관없지만.”
유현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환영할 일이냐. 던전에서도 그렇고 S급들 역시 욕구 불만인 게 아닐까. 랭킹전 빨리 안 생기면 사고 치는 거 아닐까 몰라.
“아무튼 그런 사정도 있고 너랑 나이도 비슷하다 보니까 신경이 쓰일 수밖에. 따지고 보면 학대받은 어린애잖냐. 잘해 주라고까진 말 안 하겠다만 아까처럼 도발하고 그러진 마라.”
통역 아이템을 다시 착용하며 노아를 돌아보았다.
“노아 씨.”
늘어져 있던 용의 머리가 약간 움직이며 눈을 깜박인다.
“일단 유현이는 리에트 씨와 다릅니다. 제게 나쁘게 대한 적 없어요.”
– 그르르.
무어라 웅얼거리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말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고 해 보세요. 스킬 사용하듯이요.”
전신 수화했을 때는 평범하게 사람 말을 할 수 없다. 노아가 머뭇거리다가 다시 소리를 내었다.
– 역시 전 약합니다…….
완전히 풀이 죽은 목소리다. 다가가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약하다니요, 전혀 아니에요. S급 헌터가 뭐가 약합니까. 저만 해도 스탯 F밖에 안 되는걸요. 노아 씨가 비교도 못 하게 더 강하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회색 동그란 눈이 젖어든다. 그리곤 뚝뚝 서러운 눈물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헉, 아니 울긴 왜 울어.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노아 씨?”
무심코 다가가려다가 겨우 참았다. 이러면 안 되지.
– 그러니까 더 약합니다. 한유진 씨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보다 훨씬 약해도 아무 문제 없는데. 역시 누님 말대로 제가 잘못된 거겠죠.
“아뇨, 아니에요! 잘못된 건 리에트죠!”
나랑 유현이가 잘 지낸다더라도 모든 S급 헌터와 그보다 약한 가족도 멀쩡하리란 법은 없다.
“사람은 다 달라요. 헌터가 아니라 일반적인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은 가족 구성에 환경이라도 사이가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좋다가도 나빠질 수도, 나빴다가도 좋아질 수도 있죠.”
우리도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금 전만 해도 말 더럽게 안 듣는다고 투덜거렸었고.
“그런 사람 관계는 한쪽의 문제일 수도, 양쪽 모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노아 씨가 아니라 리에트의 문제로 보였습니다. 물론 제가 두 사람 사이를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느낀 건 있어요. 리에트는 노아 씨의 말을 듣지 않아요. 자신의 의견이 우선이고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이었죠. 귀를 틀어막은 상대가 힘마저 훨씬 강한데, 대체 어떻게 상대하겠습니까.”
내가 강하고 내가 잘났고 보호자이기까지 하니까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다. 그게 물속이든 불속이든 가시밭길이든 간에.
“그러니까 노아 씨는 약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댑니다. 강하게 잘 버텨 왔어요.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드도 만들었고, 저까지 도와주고 싶어 했잖아요. 그냥 손 놓는 게 더 편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요. 노아 씨는 충분히 강합니다. 정말 잘 버텼어요.”
– …한유진 씨.
그만 울어라. 왜 달래도 소용이 없냐.
– 가까이 와 주면, 안 될까요……?
울먹이는 말에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그 스킬 다시 써.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지?”
“선생님.”
앞부분은 잘랐다. 살벌한 병아리반 선생님이라니, 웃기지도 않다. 조금 전까지 살벌하긴 했지만.
스킬을 다시 노아와 유현이에게 사용했다. 노아는 이번에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여 주었다. 유현이에게 노아의 감각을 일방적으로 연결해 준 뒤 웅크리고 있는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서 보니 되레 더 작아 보인다. 전체 길이가 대략 5미터쯤 될까. 몸통만 치면 그리 크진 않다. 촘촘하고 매끄러운 비늘은 금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 빛이 줄어들 때면 백색에 가까워졌다. 날렵한 몸의 예쁜 용이다.
날개 크기와 몸의 형태를 보아선 익숙해지기만 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날 수 있을 터다. 저주독룡은 날개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다. 여기에 S급 독 스킬에 독기까지 뿌려대니 독 저항이 높은 헌터에겐 정말 좋은 기승수… 아니, 사람이지만.
‘치유 스킬에 스탯 대여는 보조일 거 같고. 그 밖의 보조 스킬도 있을 거 같은데.’
사람이지만 아무리 봐도 정말, 진짜 좋은 기승수처럼 느껴진다. 원래 S급인 데다가 전신 수화까지 했으니 튼튼하기도 튼튼할 테고.
다만 독 저항 강한 헌터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리에트 외엔 없다. 국내엔 확실히 없고, 해외엔 있겠지. 유현이도 중독 상처 잘라 낸 걸로 봐선 웬만한 아이템으론 못 막을 듯하고. 그 전에 사람이지만.
– 한유진 씨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 눈물은 얼추 그쳤지만 눈을 깜박일 때마다 고여 있던 물기가 방울이 되어 또르르 구른다. 반짝거리는 비늘 위라, 무슨 보석처럼 덩달아 빛을 낸다. 쓸데없이 예쁘네, 정말.
“그럼요. 물론이죠. 남을 생각하는 사람치곤 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 누님이 여전히 무서운데도요?
“저도 노아 씨였으면 무서웠을걸요. 그리고 장담하건데 노아 씨 말고도 리에트 무서워하는 사람 널리고 널렸을 거예요. 틀림없습니다.”
전 세계 이곳저곳에 못해도 백 단위로 있을 거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노아가 머리를 앞으로 조금 내밀어 왔다. 바로 옆에 버티고 선 유현이와 반대쪽에 붙어 선 영 심기 불편해진 피스 눈치를 살피며 손을 뻗었다.
파충류라 차가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온기가 서려 있다. 아직 어린 코메트보다 훨씬 단단한 비늘이다. 강소영이 노아를 타도 드래곤라이더 스킬 적용될까.
– 누님이 무서워지지 않을 때까지, 옆에 있고 싶어요.
“안 돼.”
유현이 놈이 딱 잘라 말했다. 어찌나 단호하신지 슬쩍 들어 올려졌던 노아의 날개가 다시금 축 처진다.
“왜, 괜찮지 않냐? 어쨌든 S급 헌터잖아. 물론 여기는 좀 그렇고 옆의 빌딩 쪽에 있어 줬으면 하는데. 피해 보상받긴 해야 하니까 공짜로 경비나 서 달라고 하지 뭐. 어때요, 노아 씨?”
– 좋아요.
유현이도 빌딩 쪽이라는 말에 더 반대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S급 몬스터든 헌터든 하나 어떻게든 들여놓고 싶었는데 알아서 굴러들어와 주면 나야 고맙지.
“노아 씨, 치유 스킬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해요?”
– 네. B급입니다.
“정말요? 대단하네요.”
– 다른 힐러계 스킬은 없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기본 치유만 가능해도 그게 어디냐. 심지어 S급 헌터다. 몸 사릴 필요도 없으니 그야말로 비상시에 최고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른 스킬도 말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스킬이야 감추는 게 기본이니까요.”
– 그게…….
노아가 유현이 눈치를 살핀다.
“유현아, 통역 아이템 잠깐만 벗어 줄래?”
그럼 내 말이야 알아듣겠지만 노아 말은 못 알아들을 테니. 유현이가 순순히 통역 아이템을 벗었다. 그러자 노아가 다시 입을 연다.
– 대부분 보조 스킬입니다. 디오 발쉐시스의 쌍둥이 칭호로 독과 수화를 얻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공격 스킬이 없어서, 길드 자체도 그리 키우진 못했습니다. S급 던전 공략을 하기엔 부족했으니까요…….
하긴 보조계 S급이라면 괜찮은 A급 헌터를 모으기 힘들었을 거다. S급 헌터가 길드장인 것치곤 작았겠지.
노아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술술 자기 스킬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스탯 대여 스킬의 설명에 귀가 번쩍 뜨였다.
무려 지정 스탯을 절반이나 빌려줄 수 있단다.
“정말로 반이나요?”
– 네. 빌려오는 것도 가능한데 상대가 동의해야만 합니다. 지속 시간은 30분이고 하루에 한 번 가능해요.
30분이면 그리 길지 않지만 무려 S급 헌터의 스탯 절반이다. 보조계면 정신력도 높은 편이겠지. S급 정수 증가 아이템을 박박 긁어모아 최대한 착용해 봤자 노아의 스탯 반의반도 채 못 될 텐데. 이거 다른 헌터에게도 좋긴 하지만 나한테는 진짜 대박 아니냐. 노아가 내게 스킬을 쓰는 거니 라우치타스의 천적 스킬 두 배 효과는 아쉽게도 못 받겠지만.
‘…잠깐, 스킬 칭호 공유로도 두 배 효과 적용이 되나?’
그럼 베테랑 F급 공격 스킬 강화 효과가 무려 네 배… 참, 이건 칭호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써 보고 싶다. S급 독 스킬이 네 배 강해진다면 1급 용종도 독 저항 없이는 녹아내릴 텐데. 공유 스킬은 확실히 두 배 되겠지? 동시에 두 개가 공유되려나, 아니면 대기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려나.
이거 가슴이 살짝 두근거린다. 쓰기 힘들겠지만 우리 애 어쩌고도 스킬스탯 최대치 200%가 더해지는 건가. 이것도 배수였으면 네 배까지 갔을 텐데 아쉽다. 내새끼 성장 속도도 두 배일 거고.
리에트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여자한테 키워드 적용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가만, 독 스킬은 나한테 안 먹히니 독기 두른 채로 용으로 변해 나 태워 줄 수도 있지 않나. 공격 스킬 두 배 적용하면 A급은 물론이고 S급 비행몬스터도 접근 못 할 거 같은데. 그렇다고 S급 던전에 들어갈 거라는 건 아니고…….’
아니긴 한데, 진짜 좋은 스킬 활용법이 생각났는데. 이거 되면 진짜 대박인데. 아무튼 정말.
“노아 씨, 진짜 최고예요.”
– …네?
노아가 당황하더니 꼬리 끝을 살랑 흔든다.
– 그렇게, 쓸모 있지는…….
“아뇨, 진짜 다 좋아요.”
– 그, 그리고 칭호 스킬 외에도 S급 공격계 스킬이 하나 있긴 한데요. 제 상처의 통증을 두 배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네?”
그… 소리 없는 비명 스킬인 건가. 스킬명도 살벌하다 생각했지만 효과도 정상이 아닌 거 같다.
“아까는, 안 쓰셨던 거 같은데요.”
– 아, 사람한테는 날개가 없어서요. 부위도 같아야 합니다. 횟수 제한이 있어서 자잘한 걸론 쓰기 아까웠고요. 대신 이건 제가 알기론 방어가 불가능해요.
…유현아, 알고 보니 너 좀 위험했다. 근데 비명 스킬도 두 배 공유받으면 네 배네. 노아가 다쳐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장난 아니긴 하다. 내가 노아랑 같이 보조로 던전 공략 참가하면… 던전 깨고 다닐 입장이 아니긴 하지만 한 번쯤 해 보고 싶다.
아무튼 정말 대단하다고 재차 칭찬을 쏟아붓는데 유현이가 영 못마땅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저 사람 스킬이 그렇게나 좋아?”
“좋긴 한데. 혹시 질투 나냐? 아무리 좋아도 네가 최고지.”
유현이는 만족했고 노아는 침울해졌다. 이것 참. 그나마 피스는 말을 못 알아듣는 게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