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90
ⓒ 목마
브레이크-6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였다. 라덴은 백설의 반응을 살피면서 자신이 겪고, 유의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백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 백설은 이미 분노해 있었고, 분노는 줄어들지 않았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백설의 뒤편에 앉은 청아가 이를 가는 소리였다. 뚜둑, 하고 뼈 소리가 들렸다. 호량이 목을 꺾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나는.”
라덴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백설이 다물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황혼이라는 새끼들이 뭐하는 새끼들인지는 모른다. 관심도 없었다. NPC를 위한 뭐 그런 것들, 내 알 바는 아니다. 나는 놈들이 안 챙겨줘도 존나 잘났으니까.”
백설은 옆에 두었던 담뱃대를 잡고서 몸을 일으켰다.
“놈들이 개짓거리를 하든 말든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아. 그래, 나는 그런 새끼다. 그런데… 놈들이 나를 건드리는 군. 나를, 건드려.”
백설은 등을 돌리고 서서 우두커니 창밖을 보았다. 그는 담뱃대를 입에 물고서 천천히 연기를 빨았다.
“나를 직접 건드렸다면 차라리 문제는 없겠지. 내가 다 죽여 버렸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아닌, 내 제자를 건드렸어. 그것도 비열한 방법으로.”
차라리 유의가 직접 싸워서 패배한 것이라면, 백설은 납득했을 것이다. 유의의 패배에 분노는 했어도, 그 일로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백설은 그런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경우가 다르다. 유의가 당한 것은 세뇌. 마법이다. 놈들은 유의를 세뇌하여 꼭두각시처럼 조종했다. 그것이 백설을 화나게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타악. 백설이 담뱃대를 내려 놓았다. 그는 빙글 몸을 돌려서 라덴을 보았다.
“…내가 왜 서량에 남아 있는 줄 아냐”
“…관주님은 백호 무술관의 관주니까요.”
라덴이 대답했다. 그 말에 백설은 낄낄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유쾌해서 웃는 것이 아닌, 자조섞인 웃음이었다.
“나는 서량을 나갈 수 없어.”
백설이 중얼거렸다.
그에 대해서는 라덴도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NPC에게 걸린 제약. 저만한 힘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힘에 자부심이 넘치면서. 단순하게 서량제일권으로 남아 있는 백설. 라덴이 아는 백설의 성격이라면, 진즉에 서량을 뛰쳐나가 발할라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도 남았다.
하지만 백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발할라 NPC들에게 걸린 제약. 그것은 백설 정도 되는 NPC의 행동조차 구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난다.”
콰직. 백설의 손 안에서 담뱃대가 박살났다. 답답한 분노였다. 당장이라도 서량을 뛰쳐나가, 어딘지도 모르는 키아미르라는 도시로 가서 유의의 정신에 장난질을 한 놈들을 모조리 때려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NPC인 백설은 그런 행동이 불가능하다. 그는 백호무술관의 관주이기 때문에 서량을 나갈 수 없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바스라진 담뱃대의 부스러기를 창 밖으로 집어 던지면서 백설이 중얼거렸다.
“나는 서량을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놈들은 서량 밖에 있지. 놈들이 서량으로 오는 것을 기다려야 할까”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네 실력으로”
라덴의 대답에 백설이 이죽거렸다. 그는 빙글 몸을 돌려서 라덴을 노려 보았다.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냐. 키아미르에서 만났던 황혼의 칼잡이. 네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플레이어인 네 성장력이 빠르다는 것은 나도 인정해. 그래서. 그 빠른 성장력으로 언제쯤이 돼서야 그 칼잡이 새끼를 잡고, 놈과 비슷한 급인 마법사를 잡아다가 내 앞에 대령할 셈이냐.”
비꼬는 질문에 라덴은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라덴이 느꼈던 흑월과의 차이는 그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넌 약해.”
백설의 발이 들렸다. 그는 라덴에게 천천히 다가오면서 말했다.
“내가 내 제자들한테 누누이 말하던 것이 있어. 밖에 나가서 맞고 오지 말라는 거였지.”
라덴도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다.
“네가 정말 날 위해서, 유의를 이 모양으로 만든 마법사를 데리고 오고 싶다면… 지금 네 수준으로는 턱도 없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 글쎄요…”
“글쎄는 뭔 글쎄야. 네가 밖에서 맞고 오지 않을 정도로, 그 새끼를 데리고 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말하고서 백설은 아직 눈을 감고 있는 유의를 힐긋 내려 보았다.
“…널 내 후계자로 삼으마.”
“…예”
툭, 하고 백설이 내뱉었다. 별로 무게가 없는 말이었고, 그리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백설이 내뱉은 말에 라덴의 입이 벌어졌고, 청아와 호량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제 정신이십니까”
호량이 물었다. 백설은 빙글 몸을 돌려 호량을 보았다.
“왜. 억울하냐”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이 상황에서 막내를 후계자로 삼으시겠다니…!”
“호량의 말이 맞아요.”
청아가 손을 들어 호량의 말을 멈추었다.
“막내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관주님도 잘 아시잖아요. 나나 호량, 무풍, 그리고 유의 사형. 이렇게 넷이 딱히 후계자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지 않다는…”
“너희는 그게 문제인 거야.”
백설이 내뱉었다.
“나한테 잘 배워놓고서 후계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지. 자기들 무술 수행하는 것은 좋아하라하면서 후계자가 되어 백호의 차기 관주가 되고 싶어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 아니야”
“그건… 아직 우리 무술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
“맞아. 청아 너는 발길질은 잘하지만 주먹질은 어설퍼. 호량 너는 주먹질은 잘해도 발길질은 어설프고. 무풍은 둘 다 어느 정도 하기는 하지만 힘이 부족해. 그나마 유의가 대부분 잘하기는 하지만, 기공적인 면에서는 또 부족하지.”
백설이 늘어놓는 말은 모두가 사실이었고, 바로 앞에서 듣고 있는 청아와 호량도 공감하는 것들이었다. 질풍각 청아. 그 별명에 맞게, 청아는 바람처럼 빠르고 날카로운 각법의 고수다. 하지만 주먹은 잘 쓰지 않는다. 벽력권 호량. 호량의 주먹은 패도적이고 무겁다. 하지만 다리는 잘 쓰지 않는다.
유의와 무풍도 마찬가지다. 백설은 입을 다문 호량과 청아를 보면서 혀를 찼다.
“너희는 자신이 잘하는 것만 열심히 하고 있어. 뭐, 그쪽으로 최고가 된다면 문제는 없는데. 그런데 막내는 어떠냐 막내는 플레이어라서 뭘 가르쳐도 곧잘 해. 사용도 잘 하고. 그리고 가장 큰 이점은… 플레이어니까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이겠지.”
백설은 라덴을 힐긋 보았다.
“내 후계자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막내가 백호 무술관의 관주가 되는 것은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다. 막내를 후계자로 두고, 백호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그렇게 막내를 강하게 만들어서, 유의를 이 모양으로 만든 새끼를 잡아오게 시킬 셈이다.”
“그… 뒤에는”
“유의가 정신 차리고 무풍이 돌아오면, 너희 넷 수준 봐서 후계자를 다시 뽑을 거다.”
“후계자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평생 백호 무술관의 관주를 해야 하잖아요.”
“이 개새끼들아, 누구는 좋아서 이 빌어먹을 무술관 관주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줄 알아”
백설이 얼굴을 구기면서 고함을 질렀다. 오가는 이야기를 불안한 얼굴로 듣고 있던 라덴은, 호량과 청아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뜸 백설이 후계자로 삼겠다기에, 다른 사형들이 질투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니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어… 그런데. 후계자가 되면 뭘 하는 건데요”
“뭘 하기는.”
백설이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따라 나와, 새끼야. 뒈졌다고 생각하고.”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퀘스트 브레이크”
앨리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토끼를 바라보았다. 그 매서운 시선에 토끼는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식은땀을 흘리면서 손수건을 들었다.
“네, 넵.”
“퀘스트 브레이크라고 진짜로”
“네… 진짜로요.”
이마에 타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토끼가 대답했다. 앨리스는 까득 이를 갈고서 스크린을 향해 다가갔다. 스크린을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진행 기록을 확인한 앨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식으로 비틀어버리다니.”
“…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죠. 원래 황혼 에피소드는 첫 공개 후에 본격적인 스토리 시작을 3년 후쯤으로 잡았던 거니까요.”
발할라 전체를 관통하는 황혼 스토리를 공개한 것은, 플레이어에게 ‘알라베스 산 공략’이라는 목적성을 제대로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앨리스를 비롯한 임원들의 예상은, 스토리 퀘스트와 접촉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협력을 구해 대대적으로 알라베스 산 공략대가 조직되는 것이었지만-
생각처럼 안 되었다. 스토리 퀘스트와 접촉한 플레이어들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력하지 않고서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라덴이 혼자서 알라베스 산을 넘어버렸다. 이것 역시 임원들의 생각을 아득히 넘은 일이었다. 3년 후를 보고 있던 퀘스트가 대뜸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3년 후쯤이면 알라베스 산 너머의 도시 대부분이 황혼과 결탁하고, 발할라 수도만이 고립된 상황이 만들어졌겠죠. 거기서 플레이어들이 발할라 수도의 지원군이 되어 자연스럽게 황혼과의 전면전 구도가 되겠지만…”
“너무 빠르게 시작해 버렸어. 아직 황혼도 제대로 자리를 못잡았고, 플레이어들도 준비가 안 되었지.”
앨리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3년 후쯤 본격적으로 스토리 퀘스트가 시작되었다면, 라바로크도 황혼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추고서 플레이어의 지원군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황혼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놈들이 빠르게 스토리 퀘스트를 눈치 챈 탓에 대응할 시간을 얻은 탓이 커요. 제노미아 사건만 아니었더라도 놈들이 라바로크를 통해서 스토리 퀘스트를 망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노미아 건이 문제가 아니라, 놈들이 수도를 제외한 도시 장악에 성공한 후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
“어찌 되었든 스토리 퀘스트가 망가져버렸어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임원 회의라도 열어서 중간 스토리 삽입 방안을 구해 봐 괜히 그렇게 했다가는 스토리 충돌이 일어날 걸”
앨리스가 이죽거리며 하는 대답에 토끼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헤헤 웃었다.
“역시 선배님이시라니까.”
“됐고, 일단은 보류시켜. 오히려 이번 기회에 시간을 두고서 플레이어들을 성장시키는 쪽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으니까. 최상위 랭커 50명이 붙어도 황혼 처형대 대주 하나 잡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고.”
“너무 이르잖아요, 너무. 3년이나 이른데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죠.”
“이번 일로 임원 회의가 소집 될 것 같기는 한데… 모르겠다, 모르겠어. 너무 잘나도 문제라니까…!”
앨리스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스크린의 한 가운데에서 라덴이 백설에게 신명나게 얻어맞는 것이 보였다.
“…아, 그리고.”
토끼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라포니아 건 말인데요.”
“그것때문이라도 임원 회의가 열릴 거야.”
앨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띠링.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핸드폰이 소리를 냈다.
“양반은 못 된다니까.”
앨리스는 핸드폰에 온 연락을 확인하고서 미간을 찡그렸다.
“회의 소집됐으니까 준비해.”
앨리스의 말에 토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브레이크-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