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39
라덴은 눈을 끔벅거리면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알크레토 후작. 고위 귀족. 라덴이 알크레토 후작이라는 귀족에 대해서 받는 인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라덴은 귀족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이번 비무에 알크레토 후작이 참관한다는 사실조차 백설에게 전해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나?”
알크레토 후작이 물었다. 백호 무술관의 응접실. 응접실이라고 해 봐야 제자들이 쓰지 않는 빈 방일 뿐이다.
알크레토 후작의 방문은 갑작스러웠다. 오늘 정오. 비무회의 이전처럼, 라덴은 발할라에 접속하여 백설의 수행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알크레토 후작과 그의 호위기사가 백호 무술관을 방문한 것이다.
백설은 후작의 방문에, ‘엮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지랄맞은 백설의 성격에, 이렇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는 것만 해도 백설이 귀족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네.”
“내가 이 비무회를 참관하고 있다는 것도?”
“따로 설명은 듣지 못해서.”
“흐음. 꽤 놀라운 말이로군.”
알크레토 후작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현무 무술관의 관주인 무선은 자신의 체면도 모르쇠하면서 알크레토 후작의 비위를 맞추려고 들었었다. 사실 알크레토 후작에게는 그런 것이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제국의 후작.
정계와 군계를 통틀어, 알크레토 후작은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히는 귀족이다.
그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크레토 후작의 비위를 맞추려 든다. 어떻게든 후작의 눈에 들어, 후작의 후원을 얻고 싶어 한다.
“나는 무술에 관심이 많다네.”
후작은 라덴의 얼굴을 들여 보면서 그렇게 말을 꺼냈다. 태어났을 때부터 병약했고, 타고난 체질은 고위 신관의 축복을 받아도 호전되지 않는다. 그나마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신관의 축복들 때문이다.
“이런 몸이라서 말일세. 대리만족같은 것이지.”
“…그렇습니까?”
라덴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귀족을 떠올려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제노미아의 전대 영주였다. 황혼의 세뇌가 풀리고서 잃은 손해를 메꾸겠답시고 영지민들을 핍박하려 했던 영주. 퀘스트 완수를 위해서, 라덴은 제노미아의 전대 영주와 유지들을 도시에서 쫓아냈었다.
그런 추잡한 귀족과 눈앞에 있는 알크레토 후작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특히, 라덴은 이쪽을 보고 있는 알크레토 후작의 시선을 껄끄럽게 느꼈다. 뭔가… 깊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후작이라는 고위 귀족과 독대하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무슨 자신감인지, 알크레토 후작은 자신의 호위기사조차 방 안에 들이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자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네.”
길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주제다.
“자네의 능력을 사고 싶은데. 어떤가?”
알크레토 후작은 상인이 아니다. 애초에 그 정도 되는 귀족이 상인 행세를 할 이유가 없다. 심리전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알크레토 후작은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확실한 ‘약점’과, 그 약점을 불쾌하게 느끼지 않게 할 만큼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설마 알크레토 후작이 그것에 대해 물을 줄은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라덴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제 능력을 사고 싶다고요?”
“비무회에서 자네의 싸움은 보았네. 훌륭하더군. 세 번의 싸움에서, 자네는 언제나 압도적이었어. 천재라 이름 높던 현무의 제자와 싸울 때에도… 자네는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 왜 청룡의 제자와 싸울 때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야.”
“…뭐, 그때에는 아직 힘을 숨기고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보네. 자네가 첫 날부터 전력을 다하였다고 해도, 일성은 자네와의 싸움에서 우세를 점할 수 없었다고 보니까.”
알크레토 후작은 그렇게 말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런 몸이지만 눈은 좋아서 말일세.”
“아, 네.”
“자네는 눈 부실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재능 뿐만이 아니야. 그 재능을 뛰어나게 체화하였어. 나는 많은 무술가를 보았지만, 자네만큼 장래가 유망한 무술가를 본 적은 손에 꼽아.”
“…그래서 제 능력을 사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저보다 강한 사람은 많을 텐데요. 당장 저희 관주님만 하여도…”
“하지만 백호의 관주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지. 내가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확히 짚었군. 라덴은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 말은. 저 정도면 후작님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까?”
“내 말이 불쾌하게 들렸나? 흐음, 확실히.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기는 해. 사람이 사람을 사는 일이니까 말이야.”
발할라의 세계에 노예제도는 없다.
“오해를 풀기 위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나는 자네를 후원하고 싶은 것이네. 그 대신에… 자네는 내가 후원해준 만큼의 소일거리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고.”
“…제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저는 딱히, 후작님의 후원은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후작님도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플레이어고, 아무리 후작님이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기야 하겠지. 이 세계의 가치라고 해 봐야 플레이어인 자네에게는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몰라. 평민 NPC 중에서는 귀족과의 연줄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자네는 NPC가 아니지.”
후작이나 되는 귀족의 후원을 받는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덴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돈? 돈이야 넘치도록 있다. 원한다면 돈을 벌 방법도 많다. 명예? 그것도 마찬가지다.
“제노미아.”
알크레토 후작의 입이 열렸다. 라덴의 표정이 멈칫하고 굳었다.
“솔직히 모르고 있었네. 제노미아는 관심에 두지 않고 있었거든. 내가 모른다는 것은, 수도 내에서도 제노미아 영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야. 하지만 내가 알게 되었지.”
“…무슨 말입니까?”
“영주가 되는 것은 황제 폐하에게 영지를 하사받은 귀족들 뿐. 하지만 자네는 귀족이 아니잖은가? 영지 내에서 반란을 일으켜 영주가 된 것이지. 이 사실이 수도 귀족들에게 알려진다면 어찌 될 것 같나?”
“자, 잠깐만요. 저는 영주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자네의 사정은 상관없네. 중요한 것은 자네가 제노미아의 영주가 되었고, 영지민들이 자네를 받아들였다는 거야. 아니, 어쩌면 영지민들 전체가 반란에 가담한 것일 수도 있겠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도시 제노미아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도시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타 영지와 제국군의 습격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 주십시오.
제노미아의 영주가 될 것을 받아 들였을 때, 시스템은 축하와 함께 그런 경고를 했었다. 아하베스 교의 대주교인 로만에게 영주 대리를 맡기기는 했지만, 라덴은 ‘제노미아의 영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알크레토 후작이 말하는 것은 시스템이 경고한 최악이었다.
“제국법은 반란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다스리고 있네. 주모자뿐만이 아니라 가담자들까지. 연관 된 모든 일들을 죽여 버리지. 자네는 플레이어다보니 조금 다르게 적용이 될 거야. 이 세계. 이 세계가 자네를 쫒게 될 걸세. 그 어떤 도시에 가도 경비병들의 추격을 받게 될 것이고, 자네의 목에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붙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자네는 꽤나 곤란하고 귀찮은 상황에 놓이게 되겠지.”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아니. 자네를 도우려는 것이지.”
알크레토 후작이 웃으며 말했다.
“뭔가를 착각하고 있군. 나는 자네를 협박할 생각은 없네. 다만, 내 입장은 헤아려주기를 바라네. 나는 제국의 후작이고, 법을 존중하는 사람일세.”
“결국은 협박 아닙니까? 제가 후작님의 후원을 거절한다면, 후작님은…”
“귀족다운 일을 하겠지.”
후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네.”
“…제가 후작님의 후원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자네를 귀족으로 만들 걸세.”
알크레토 후작의 말에 라덴의 입이 쩍하니 벌어졌다.
“귀족이 그리 쉽게 되는 것입니까?”
“말하지 않았나. 나는 후작이라고.”
알크레토 후작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사람일세. 나보다 못한 귀족들도 얼뜨기 귀족을 만들어대는데, 나라고 만들지 못할 것 같나?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여태까지 많은 평민들을 귀족으로 만들어 왔네. 물론 아무나에게 그런 기회를 준 것은 아니야. 내 ‘눈’으로 보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인재에게 기회를 준 것 뿐이지.”
시선이 껄끄럽다.
“나는 자네를 내 눈으로 직접 보았네. 자네가 가지고 있는 빛나는 재능을 직접 보았어. 그 재능이 아직까지 완전히 피어나지 않았다고도 느꼈고. 자네는… 더욱 빛나게 될 거야. 그런 자네를 후원하여 귀족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라네.”
“…왜 나한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은 겁니까? 후작님도 자원봉사자는 아닐 겁니다. 단순히 ‘재능’이 있다고 해서, 이런 기회를 주는 겁니까?”
“물론 그것은 아니지. 앞서 말하지 않았나? 내가 자네를 후원해주는 대신에, 자네는 내 부탁을 들어주면 되는 것이네.”
“…그 부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만.”
“자네가 ‘내 사람’이 되는 것.”
우선, 알크레토 후작은 그것을 언급했다.
“현재 제국은 굉장히 혼란스러워. ‘황혼’이라는 이교도들이 알라베스 산 너머의 도시들 대부분을 장악했지. 아직 수도에는 이교도들의 신앙이 전파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수도는 고립 상태라네. 다른 도시의 영주들은 황제 폐하의 은혜를 잊고서,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사병단을 이교도의 성기사단으로 새로이 포장하였지.”
그에 대해서는 라덴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라덴이 알라베스 산을 넘으면서 블랙 벨트는 사라졌다. 많은 플레이어들에 의해 새로운 도시들이 열렸다.
제노미아를 제외한, 플레이어의 방문을 받은 도시들은 이미 황혼에 의해 깊이 잠식되어 있었다. 그들은 제노미아처럼 플레이어를 죽이려 들지 않았지만, 황혼의 사상에 의해 플레이어를 상대로 은연중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많은 도시들이 이교도들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은 그들의 목적과는 관계없이 위협스러운 일이지. 알라베스 산 너머에 있는 여덟 개 도시 중에서 황혼교에 점령당하지 않은 것은 자네가 영주로 있는 제노미아와, 수도인 아스가르드 뿐일세. 이런 상황이니 수도 귀족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지.”
“…반역도는 처벌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반역도가 아닐세. 영주는 그대로 있으니까. 황혼교는 그 도시의 신전과 협력하고 있어. 제국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교지만, 수도 내에서는 황혼을 제국의 종교로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네.”
“…끄응.”
브레이크 되었던 스토리 퀘스트가 떠올랐다. 만약 그 때, 퀘스트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아. 이것이 제국의 상황일세. 이제는 내가 왜 자네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말해야겠지. 간단한 일일세. 혼란스러워진 만큼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야. 자네 정도의 실력자라면 욕심이 날 만 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후작님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겠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나의 기사가 되도록 하게.”
알크레토 후작이 말했다.
“정식으로 기사의 서약을 맺고, 나의 기사가 되게. 기사가 되는 것으로 자네는 준 귀족의 계급을 얻게 되네. 기사 서약을 맺는 것도 보통의 경우에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 번거로운 일을 생략하기 위해 후원자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 뒤에는 자네를 데리고 바쁘게 돌아다니게 될 거야. 기사가 귀족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뭔지 아는가?”
“어… 공을 세우는 것?”
“아니. 사교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일세.”
라덴은 눈을 끔벅거리면서 알크레토 후작의 말을 경청했다. 아직 발할라 내에서 귀족이 된 플레이어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교회에도 급이 있지. 내가 참가하고 있는 사교회는 제국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모여있는 곳일세. 나는 그곳에 자네를 데뷔시킬 생각이야. 뛰어난 실력의 호위 기사라고 말이지. 그렇게 되면 어찌 될 것 같나?”
“…모르겠는데요…”
“관심을 받게 되는 거야.”
알크레토 후작이 턱을 어루만지면서 웃었다.
“귀족에 가까워지는 것이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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