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43
수도 귀족들이 흔히들 하는 말이다. 기사는 귀족의 ‘재산’이라고. 수도에서 살고 있는 귀족들은 영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영지전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지만, 사교회가 성행하는 덕에 귀족과 귀족 사이의 ‘불편한 사건’은 흔히들 일어나곤 한다.
가령 예를 들자면, 젊은 귀족과 귀부인이 눈이 맞아버렸다던가. 들키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귀족의 이성관계라는 것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서 결국에는 들키고 만다.
그리 된다면? 고귀한 귀족 나으리들은 서로 주먹 다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우아한 손짓으로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거나, 혹은 끼고 있는 장갑을 벗거나. 그 다음은? 그것을 상대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
그것이 ‘결투’다. 그렇게 결투를 신청한다고 해서, 귀족이 직접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귀족의 결투는 귀족이 가지고 있는 기사가 나서는 대리전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기사는 귀족의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혹은 칼과 방패.
작위가 낮은 귀족이어도 뛰어난 기사를 가지고 있다면, 결투에 있어서는 우월한 강자가 된다. 기사 서약을 맺은 기사는 함부로 모시는 귀족을 바꿀 수 없다. 물론, 바꾸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약이라고 해도 결국은 신뢰로 이루어진 약속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사는 자신의 장래를 위해 서약을 함부로 깨지 않는다. 모시는 귀족을 갈아 치웠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평판이 시궁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귀족이 바라는 기사의 모습은, 배신하지 않고 충성스러우며, 주군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기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그런 복잡한 처지에 놓여 있기에, ‘첫 서약’을 신경 써야 한다. 함부로 모시는 귀족을 바꿀 수도 없고, 모시는 귀족을 잘못 선택했다가는 온갖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독한 바람둥이 귀족을 주군으로 모시게 된다면 주군을 대신해서 주야장천 대리전을 치러야 한다. 기사를 내세운 대리전에서 상대를 죽인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기사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힘없는 귀족을 모시게 된다면 여기저기서 채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라덴이 잡은 ‘알크레토 후작’이라는 줄은 나쁜 줄은 아니었다. 비록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해도, 알크레토 후작은 제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고위 귀족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후작의 권위는 그리 의미가 없다.
‘이것’은 살롱에 참가한 귀족들을 위한 ‘쇼’다. 살롱에 참가한 귀족들은 일반 평민이 몇 달을 일해야 간신히 한 병을 살만한 술을 물처럼 들이 키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요리사가 온갖 진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안주를 먹는다. 하룻밤 불장난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찬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계속 먹으면 물리는 법. 이야기꽃을 쉼 없이 피어내도 언젠가는 대화거리가 떨어지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침체되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쇼.
“다시 말하지. 죽이면 안 돼.”
알크레토 후작이 라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는 친히 술병을 들어 라덴에게 비싼 샴페인을 따라 주었다. 라덴은 잔을 반쯤 채운 황금색 샴페인을 흔들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안 죽입니다.”
“사실 죽여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아. 하지만, 이것은 결투가 아닐세. 어디까지나 친목. 흥을 돋우기 위한 광대놀음이니까.”
“광대 짓은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해야 해.”
“알고 있습니다.”
라덴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알크레토 후작이 말한 대로다. 이것은 광대놀음이다. 살롱에 참가한 귀족들을 위해, 그들을 주군으로 모시는 기사들이 나서서 결투를 한다.
결투. 거창하게 들리지만, 어디까지나 친목성의 결투다. 귀족들의 흥을 돋우기 위한 광대놀음. 그 말이 딱이다.
“플레이어 출신의 기사. 이 내가 직접 골라 데리고 온 기사니까, 다른 귀족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을 걸세.”
“부담스럽게.”
“조심하라는 말을 해야 하는가?”
“뭐, 보고만 계시죠.”
라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몸이 가볍다. 컨디션은 최고였다. 사실, 컨디션이 나빴던 날은 없었다. 특히나 이런 싸움을 앞에 두고 있을 때에는.
“다른 분들도 궁금해 하고 계실 겁니다.”
프로메토 남작이 나섰다. 그는 살롱에 참가한 젊은 귀족들의 중심이었고, 벨레로크 후작의 뒷구멍을 살뜰하게 핥으며 높은 작위의 귀족들과도 관계를 만들었다. 알크레토는 프로메토 남작을 약삭빠른 여우라고 칭하면서 노골적으로 싫어하였지만, 벨레로크 후작을 포함한 다른 귀족들은 프로메토 남작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이런 경우에서, 프로메토 남작은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만든다. 체면을 따지며 먼저 나서지 않는 귀족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알크레토 후작님께서 데리고 온 기사 말입니다. 최근 몇몇 영지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플레이어 출신의 기사. 이야기를 듣자 하니, 무술로 유명한 도시 ‘서량’의 비무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플레이어라 하더군요.”
“나는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알크레토 후작이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프로메토 남작은 용케 알크레토 후작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벙긋 웃으면서 알크레토 후작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제가 호기심이 많아 알아보았습니다.”
알크레토 후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프로메토 남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서량에는 많은 무술관이 있지만, 그 중에서 네 개의 무술관이 종가라 할 수 있지요. 저 플레이어는 그 종가 격 무술관 중 하나인, 백호 무술관의 제자라 합니다.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그 백호 무술관에는 괴물 중 하나인 ‘염화’가 제자로 들어가 있답니다.”
염화의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그 소문이 여기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프로메토 남작의 이야기를 들은 귀족들이 흥미로 눈을 빛내면서 라덴을 보았다.
“그리고 저 플레이어는, 그 백호 무술관의 후계자라고 합니다. 듣자 하니…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더군요.”
프로메토 남작은 ‘가장’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아무래도 어지간한 정보는 이미 다 확보해 둔 모양이었다. 라덴은 자신을 보는 귀족들의 시선에 조금의 부담을 느끼면서 슬쩍 머리를 숙여 주었다.
“센스는 있군.”
라덴의 곁에 서있던 알크레토 후작이 중얼거렸다. 그는 라덴의 얼굴에 힐긋 시선을 주었다. 라덴은 알크레토 후작과 눈을 마주하면서 살짝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누가 나설텐가?”
알크레토 후작이 샴페인이 담긴 잔을 흔들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을 들여 새로 들인 기사일세. 실력은 내 눈으로 보았으니 확실하지. 나도 귀족이라, 이번에 새로 들인 기사를 자랑하고 싶기는 해.”
“그렇다면.”
알크레토 후작의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멀찍이 있던 귀족 중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였다.
“제 기사를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로일란. 자네의 기사라면 여흥거리는 되겠지.”
로일란 백작. 라덴의 머릿속에 있는 이름이었다. 알크레토 후작이 심드렁한 얼굴로 하는 말에 로일란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작위가 다르고 가진 권력이 다르니 감히 내뱉지는 못했지만, 로일란은 부글거리며 끓는 가슴의 열기를 식히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데라드!”
로일란에게 호명 된 기사가 걸어 나왔다. 걸을 때마다 철컥거리며 쇳소리가 나는 전신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흥을 돋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노골적인 명령이었으나 데라드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허리춤에 건 검에 손을 올리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이미 귀족들은 라덴과 데라드를 빙 둘러싸고 서서, 이쪽을 흥미 깊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툭. 라덴의 옆에 서있던 알크레토 후작이 라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곤 몸을 돌렸다.
“투구.”
라덴은 자신을 바라보는 데라드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입을 열었다. 툭 내뱉은 말에 데라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 했나?”
“투구 쓰라고.”
데라드가 입은 번쩍거리는 전신 갑옷과는 다르게, 라덴의 갑옷은 어두운 색이었다. 흑익 무르시엘라고의 어둠은 라덴의 어깨 너머에서 불길하게 일렁거렸고, 전신을 감싼 마갑 데모니스도 검은 색이다.
“쓸 필요가 있…”
“후회하지 마라.”
쓰기 싫다는데 억지로 씌울 필요는 없겠지. 라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란 듯이 양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것을 보면서 데라드는 허리춤에 걸어 두었던 검을 뽑았다. 스릉거리는 쇳소리가 났다.
“로일란 백작님의 기사, 데라드 구스페라고 한다.”
“알크레토 후작님의 기사, 라덴이라고 한다.”
가볍게 통성명을 나눈다. 그것으로 끝이다. 승패를 가려 줄 자는 없이, 단순 흥미를 빛내는 관중들만 있을 뿐이다. 데라드에게는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이미 그는 몇 번이나 로일란 백작을 따라 살롱에 왔었고, 주군의 체면을 세우고 다른 귀족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몇 번이나 이런 식의 결투를 했었다.
‘플레이어라고는 해도…’
데라드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항상 로일란을 따라 살롱에 온다는 것 자체가 데라드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데라드가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로일란은 데라드를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주군과 살롱에 함께 올 수 있다는 것은, 주군을 모시는 기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라는 증명이다.
‘알크레토 후작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것에 대해서는 데라드가 신경쓸 것이 아니다. 죽일 생각은 없다. 아니, 죽여도 되는 것 아닌가? 플레이어는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고 들었는데. 시험해 볼까. 데라드는 양 손으로 검을 잡았다.
“오오.”
데라드가 쥐고 있는 검에서 새파란 강기가 치솟았다. 이 역시 광대놀음이었다. 오러가 번쩍거리면서 빛나는 검은 눈으로 보았을 때에 굉장히 멋지기 때문이다. 양 손을 들어 올린 라덴은, 오러가 피어난 검을 쥐고 있는 데라드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참나.”
평소라면 선공을 양보했을 것이다. 그래, 평소라면. 오늘은 평소처럼 하지 않을 뿐이다. 단번에 거리를 좁힌 라덴은 아직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검을 곧추 세우고 있는 데라드의 어깨를 잡았다.
“응?”
데라드가 그런 소리를 냈을 때, 라덴의 손등이 데라드의 턱끝을 갈겼다. 빠각! 깔끔한 소리가 울렸다. 턱 관절이 빠지는 소리였다.
“억!”
“그러니까.”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턱을 후려쳤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불룩하게 내민 손가락 관절을 써서 데라드의 인중을 갈긴다.
“악!”
데라드가 아픈 비명을 지으면서 검을 놓았다. 라덴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서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투구를 쓰지 않은 어리석음에 대한 징벌이었다. 라덴의 주먹이 데라드의 광대를 때리고, 코를 때려쌋다.
“투구 쓰라고 했잖아.”
마치 찌그러진 감자처럼. 데라드는 그렇게 변한 얼굴을 부여잡고서 땅에 쓰러졌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