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54
느리지 않았다.
위협용으로 쏜 것이 아니다. 견제용도 아니다. 죽이기 위해. 그렇게 쐈다. 그것을 앞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였는데 피해버렸다. 그냥 피한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피하고서… 이렇게. 바로 앞까지 왔다.
“…웃.”
다크 엘프. 브라셀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보지 못했다. 화살을 피하는 것. 이렇게 바로 앞으로 오는 것.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왜 이 녀석의 손이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인지.
왜 자신을 공격하지 않은 것인지.
“인… 간…!”
브라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시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라셀은 고함을 내지르면서 바로 앞에 있는 라덴의 안면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묘해.’
주먹이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빠르다. 분명 빠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덴은 주먹이 빠르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이 거리인데도. 조금 늦게 반응한다고 해도 상당히 여유가 있을 정도다.
‘뭐지? 레벨이 꽤 오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반사신경이 너무 좋아졌는데…’
아바타의 능력은 스탯에 영향을 받는다. 레벨이 오른다면 동체시력이 좋아진다. 반응속도가 빨라진다. 낮은 레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움직일 수 없었던 속도로 움직이게 되며, 들 수 없었던 것을 들어오게 된다. 레벨이 오르면서 얻게 되는 스탯을 어찌 투자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다.
수도로 오게 되면서, 라덴은 다양한 업적을 독접하는 것으로 레벨을 상당히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레벨을 올렸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감각이 크게 상향될 줄이야.
‘아니. …상향… 되었나?’
이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다. 서량 비무회에서, 알케나와 싸웠을 때. 스스로 체술을 봉인하였기 때문에 꽤나 고전하였지만. 마지막에는 어찌어찌 이길 수 있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때의 알케나는 강했다. 체술을 봉인하고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체술을 사용할까,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전투 도중, 갑작스러운 고양감을 느꼈다.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전투가 끝나 버렸다. 발끝이 이상하게 무겁다고 느꼈고, 주먹이 이상하게 가볍다고 느꼈다. 그래서 무거운 발을 더 빠르게, 가벼운 주먹을 더 무겁게 치려고 했다.
그렇게 승리했다.
지금의 감각은 그때와 비슷했다. 고양감은 드물었지만, 감각이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전투가 시작되면서 마치 스위치를 올려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피할 수 있다. 브라셀의 주먹이 허공을 때렸다. 피해? 이 거리에서? 브라셀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브라셀이 물러서자, 주변의 다른 다크 엘프들이 움직였다. 스무 명의 다크 엘프들이 라덴을 빙 둘러쌌다.
다크 엘프는 전투 종족이다. 정령의 사랑을 받지 않는 대신에, 그들은 뛰어난 마나 감응력과 뛰어난 육체를 갖는다. 나약한 유아기만 견뎌낸다면, 다크 엘프는 뛰어난 전사로 성장한다. 그런 전사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위험하다고. 저곳에 건재한 수도 경비 기사단이나 병사들은 조무래기다. 마음먹는다면 어렵지 않게 몰살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너… 대체 뭐냐? 너 정도 되는 녀석이 왜 수도 경비 기사단에 있는 것이지?”
브라셀이 라덴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그 질문에 라덴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난 수도 경비 기사단 소속이 아니야.”
“그러면… 뭐냐? 로얄 나이트? 그래, 로얄 나이트구나? 설마 로얄 나이트가 벌써 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
“아니. 로얄 나이트도 아니야.”
라덴이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 싼 다크 엘프들을 쭉 둘러보았다.
“알크레토 후작가의 기사. 라고 하면 너희가 아냐?”
브라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다크 엘프들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서량 백호 무술관, 백설의 후계자라고 하면. 너희가 알아?”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다만, 다크 엘프들은 확실하게 알았다. 라덴이 로얄 나이트 소속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다크 엘프들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왜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로얄 나이트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거 봐. 모르잖아.”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양 손을 들어 올렸다. 새하얀 강기가 라덴의 양 손을 감쌌다.
“말해도 모르는 놈들한테. 내 설명을 왜 해야 해?”
투덜거림이 끝나면서, 라덴의 발이 움직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빨랐기에,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라덴이 이동한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콰득! 뒤쪽에 있던 다크 엘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공격의 직전, 간신히 팔을 들어 막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힘을 주어 주먹을 휘둘러 쳐 주었다.
“큭…!”
다크 엘프가 신음을 흘린다. 뼈가 부러졌다. 오우거의 일격을 정면으로 먹어도 부러지지 않는 뼈인데… 인간의 일격을 맞고서 부러져 버렸다.
“뭐야 넌…!”
다크 엘프들에게서 당황이 번진다. 그들은 즉시 라덴을 향해 덤벼들었다. 칼이 뽑히는 소리, 휘둘러지는 소리. 라덴은 사방에서 덮치는 공격을 느끼면서 자세를 낮추었다. 카카캉! 크게 몰아 친 무르시엘라고의 어둠이 다크 엘프들의 공격을 거두어 낸다. 다크 엘프들은 손이 저릿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놈이!”
이런 식으로 공격이 거두어지다니! 다크 엘프들은 당황을 숨기면서 재차 공격했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라덴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라덴의 주변에서 흔들리는 무르시엘라고가 라덴의 손과 발이 되었다. 공격이 가로 막힌다. 라덴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석궁을 들고서 공격의 틈을 엿보고 있던 브라셀은 그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틈이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이고 석궁을 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공격을 감행한다고 해서 놈의 몸을 꿰뚫을 수 있다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인간은 뭐야…?’
엘프는 인간보다 우월하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것? 무슨 상관인가. 그까짓 것, 엘프에게는 결함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인간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그렇게 몇 대를 이어가 봐야 엘프 한 명이 살아가는 삶보다 못하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 엘프는 현자가 되고 전사가 된다. 제베른 숲에 유폐되어 살고는 있지만, 모든 다크 엘프가 알고 있다. 자신들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모든 인간’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이 인간… 그 인간이랑 비슷해.’
제베른 숲을 감싸고 있는 용언결계龍言結界를 우습다는 듯이 통과했던 남자. 다크 엘프들의 마을에 찾아 와, 젊은 다크 엘프들을 유혹하고서 의견에 동조하던 이들을 데리고 떠난 자.
“…너. 너도 황혼이냐?”
브라셀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질문에 라덴의 표정이 멈칫 굳었다.
“뭐?”
“너도… 황혼이냐고 물었다. 이 힘. 인간답지 않은 힘! 인간이 가질 리가 없다. 황혼… 황혼이지?”
“너도. 라는 건.”
라덴은 눈썹을 찡그리면서 브라셀을 노려 보았다.
“너는 황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운이 좋아. 라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키아미르에서 암검과 적야의 대주를 만났고, 그들에게 유의가 세뇌되었다. 기껏 잡고 있던 스토리 퀘스트가 놈들에 의해 브레이크되었다. 퀘스트의 중요 축을 맡고 있던 라바로크는, 퀘스트와 관련되었던 기억을 상실하고서 서량 객잔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게 스토리 퀘스트와 멀어지고… 스토리 퀘스트와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이 좋다. 설마 이런 식으로 황혼과의 연결 고리를 만나게 될 줄이야.
“나도 좀 익숙해지고 싶어서, 느긋하게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기묘해진 감각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느긋하게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황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느긋하게 할 수는 없다. 괜히 틈을 주어서 놈들이 허튼 짓을 하게 두었다가는 골치 아파 질 테니까.
넓게 펼쳐졌던 무르시엘라고가 다시 망토로 돌아 온다. 새하얀 강기가 라덴의 팔을 감싸고 회전을 시작한다. 서량 비무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던 기술.
백호류 전사경.
백렬白裂.
양 팔에 새하얀 강기의 회전을 담고서, 라덴은 천천히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는 바로 앞에 있는 다크 엘프들을 겨누면서 말했다.
“맞으면 죽는다.”
그것은 친절한 경고였다. 상대의 목숨까지 친절하게 챙겨줄 수는 없었다. 서량 비무회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곳은 비무장이 아니고, 앞에 있는 것은 비무 상대가 아니다.
“피… 피해!”
브라셀이 고함을 질렀다. 본능의 경고였다. 맞으면 죽는다. 다크 엘프들은 라덴이 경고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다. 다크 엘프들이 몸을 날렸다. 동시에 라덴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콰콰콰콰! 강기의 소용돌이가 전방을 휩쓸었다. 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면이 날아갔다. 나뒹군 다크 엘프들에게 몸을 추스를 시간으 주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튀어나간 라덴은 가까운 곳에 있는 다크 엘프의 몸을 걷어찼다.
“커읍…!”
내장이 박살났다. 다크 엘프가 피를 토하면서 땅을 뒹굴었다. 맞으면 죽는다. 그것은 굳이 백렬 뿐만이 아니었다. 라덴의 공격의 무게, 공격이 날아가는 속도. 모두가 일격필살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봐줄 상대가 아니다. 놈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고블린들을 조종했고, 마을을 습격했다. 마을에도 적기는 하지만 사망자가 나왔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던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스무 명 전부한테 들을 필요는 없겠지?”
라덴은 배가 박살난 모습으로 쓰러진 다크 엘프를 힐긋 보고서는, 브라셀 쪽을 보았다. 시선이 맞닿은 순간, 브라셀은 흠칫 몸을 떨었다. 다르다. 브라셀의 심장이 쿵쿵거리면서 뛰었다. 저것이 인간의 시선이란 말인가? 브라셀은 라덴의 눈동자 안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두려운 짐승이었다.
“으… 으아아아!”
“정했다.”
라덴은 비명을 지르는 브라셀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입은 너 하나로 하자.”
공포는 전염된다. 다크 엘프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주를 시도했다. 라덴은 혀를 차면서 다리를 들어 올렸다.
현재 라덴의 레벨은 133. 수도에서 업적들을 달성하면서, 라덴은 이 레벨에 도달했다. 이벤트 타워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 레벨이라면 한국 랭킹 10위 이내에는 랭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벤트 타워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가속이 붙어 버렸다.
‘상위 랭킹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애초에 랭킹에 그리 구애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져서 좋은 것은 있다. 예를 들자면,
새로운 고유 특성을 얻게 되는 것.
들어 올린 다리가 쩌억하고 갈라진다. 그것은 마치, 크게 입을 벌린 파충류의 주둥이와 같은 형태였다. 갈라진 다리의 안쪽에서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번뜩거린다. 라덴은 숨을 삼키면서 크게 다리를 휘둘렀다. 휘두른 순간, 다리는 커다랗게 변하면서 다리를 휘두른 궤적 내의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리바이어던.”
따악! 이빨과 이빨이 서로 부딪힌다. 브라셀을 제외한 모든 다크 엘프들이 허리 위부터 사라져 있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리바이어던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베헤모스보다는 쓰기 편하네.”
라덴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 온 다리를 아래로 내리면서 투덜거렸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