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53
스멀거리며 퍼져나가는 무르시엘라고의 어둠. 그것을 보는 프라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설마 ‘망토’라는 것이 저렇게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군.’
퍼져나간 망토의 형태가 바뀐다. 그것은 열 개의 칼날이 되어, 마치 날개처럼 라덴의 뒤에 펼쳐졌다. ‘고블린.’ 강하다, 약하다로 구분한다면 누구나 말할 것이다. 약하다고. 고블린은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도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다. 무리를 짓고, 독침을 쏘는 등의 공격이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해독 포션만 구비한다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있겠지.’
고블린들이 발하는 살기 속에서 꺼림칙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 라덴은 그를 경시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이곳에 왔던 기사단들이 몰살당했다는 것을 보면, 이 숲에는 고블린을 제외한 무언가가 있다.
‘아직 나오지는 않았는데… 고블린을 내세워서 상황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건가?’
라덴은 성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라덴의 움직임에 고블린들이 키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병사들 틈에 섞여 흩어진 기사들과 병사들도 무기를 빼들고서 고블린을 위협했다.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었지만, 그들은 고블린에게는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고블린 외의 무언가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키에에엑!”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덤벼들었다. 놈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는 무기와, 노획한 수도 경비 기사단과 병사들의 무기를 휘둘렀다. 타닥! 라덴의 발이 빨라졌다.
등 뒤를 따르던 열 개의 칼날이 활짝 펴진다. 촤아아악! 칼날이 전면을 크게 휩쓸었다. 전방에 있던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칼날에 베어졌다. 그들 중에서는 노획한 갑옷을 뜯어다가 몸을 보호한 놈들도 있었지만, 고블린들의 방어는 라덴의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나 얄팍했다. 흑익 무르시엘라고의 공격력은 아바타 스탯에 비례한다. 거기에 강기까지 입혔으니, 하위 몬스터인 고블린이 라덴의 공격을 막아낼 리가 없는 것이다.
사방에서 고블린들의 비명이 울렸다. 기사들은 묵묵히 검을 휘둘러 고블린을 베어냈고, 병사들도 창을 내질러 고블린들을 꿰뚫었다. 일반 병사라고 해도 수도를 지키는 병사들이다. 고블린 정도는 우습게 상대하는 강병이란 말이다.
‘이상해.’
검에 묻은 고블린의 피를 털어내면서 프라이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는데,
그냥 고블린이다. 어느 숲에나 있을 법한 고블린. 특별히 빠른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단단한 것도 아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블린이다.
‘이상해.’
그렇지만 이상하다. 그런 평범한 고블린이 왜 이렇게 덤비는 것일까. 고블린은 약하다. 약하고, 비열하다. 놈들은 부족 생활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부족의 고블린에게 의리 따위는 갖지 않는다. 놈들은 강자에게 덤비지 않는다. 수가 틀린다면 망설임 없이 도망친다. 비굴한 몬스터다.
그런 고블린이. 지금은 악다구니를 내지르면서 몰려 들어오고 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백 마리의 고블린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블린은 더 이상 덤벼들지 않는다. 개개인의 생존욕구가 강한 놈들이니, 이 정도의 피해가 나온다면 서로 끽끽거리면서 도망치는 것이 고블린다운 행동이다.
‘왜 도망치지 않지?’
고블린이 고블린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 무언가가 고블린을 강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체 무엇이? 이상을 느낀 프라이스가 입을 벌려 기사와 병사들에게 조심하라는 것을 전하려 할 때.
푸확!
프라이스의 바로 앞에서, 기사 중 한 명의 머리가 사라졌다.
“뭣…!”
프라이스가 놀란 소리를 냈다. 마법? 아니, 마법이 아니다. 땅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 온 화살이 머리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 것이다.
“…윽!”
무감각하게 고블린을 학살하던 라덴은, 포식감지의 경고에 크게 뒤로 물러섰다. 콰아앙! 바닥에 내리 꽂힌 화살이 지면을 크게 패었다. 무르시엘라고의 보호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공격자는 나보다 레벨이 높아.’
무르시엘라고 특수 스킬 중 하나. ‘사역마의 보호’는, 착용자보다 레벨이 낮은 상대가 한 공격을 자동으로 방어한다.
하지만 이번 공격에서 무르시엘라고는 반응하지 않았다. 공격자가 라덴보다 레벨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플레이어라는 보장은 없다. NPC 역시 가진 능력치의 총합으로 레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꺼림칙한 살기가 다가온다. 고블린들이 움찔거리더니 움직임을 멈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기사들도 공격을 멈추었다. 프라이스는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딜 보는 거냐?”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프라이스가 흠칫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올려 보았다. 멀찍이 있는 나무 위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엷은 갈색의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그 안에서 빛나는 노란색 눈동자.
길쭉한 귀.
“엘프?”
라덴이 놀란 소리를 냈다. 엘프라면 라덴도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었다. 보하미르의 유성. 몇 십 년 전에 악희를 봉인했던 용사 중 하나. 창의 명수로서 라덴에게 회전격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엘프다.
“…아니. 다크 엘프일세.”
프라이스가 신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는 검을 들어 올리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왜 다크 엘프가 이곳에? 다크 엘프는 극서의 제베른 숲에서 살고 있을 텐데…”
“맞아. 너희가 가두어 놓은 곳 말이야.”
다크 엘프가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라이스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엘프는 저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는 만큼 청력이 좋다. 땅에 내려 온 다크 엘프는 쥐고 있던 석궁을 흔들면서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왜 그러나? 기사 나리. 처박아 둔 다크 엘프가 기어 나와 있으니 놀랍나? 아니면, 그 잘난 기사가 다크 엘프에게 죽어서 놀랍나?”
프라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다크 엘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대체 뭐에요? 뭔데 그러는 건데요?”
라덴은 눈에 띄게 굳어 있는 프라이스의 표정을 보면서 물었다.
“…서쪽 끝에는 제베른이라는 이름을 가진 숲이 있네. 거대한 숲이지. 제국 법 상, 대륙의 모든 다크 엘프는 제베른에서 살아야 하며, 절대로 제베른에서 나와서는 안 돼.”
“멋진 숲이야. 오우거와 트롤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몬스터가 살고 있지. 오크나 고블린은 숲길 다람쥐 정도로 흔하고.”
“…그 정도의 몬스터가 다크 엘프를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너는.”
다크 엘프가 눈을 치켜떴다.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징그럽고 더러운 벌레랑 같은 방에 있는 것이 불쾌하지 않다는 거냐?”
프라이스의 말문이 막혔다. 다크 엘프는 프라이스의 침묵에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런 거야. 벌레랑 같이 있으면 싫다. 벌레를 죽이던가, 아니면 벌레가 없는 곳으로 나가던가. 죽이는 것보다는 나가는 쪽이 좋지. 벌레를 죽여 봤자 벌레 소굴 안에 있는 것은 똑같으니까.”
다크 엘프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랫입술을 핥았다.
“벌레 소굴과는 다른 재미도 있고 말이야. 기사를 죽이다니! 멋진 일이야. 정말 멋진 일이라고.”
다크 엘프는 살의와 적의를 함께 내비치고 있었다. 라덴은 프라이스를 힐긋 보았다. 서쪽 끝에 있는 제베른 숲. 제국 법에 의해 그곳에 갇혀 있는 다크 엘프.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어 보였지만
까놓고 말해서. 라덴이 알 바는 아니었다. 다크 엘프가 왜 갇혀 있는지. 왜 갇혀 있어야 할 다크 엘프가 이곳에 있는지. 라덴이 알 바는 아니란 말이다. 라덴이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은 간단했다.
“이 숲에서 기사들을 죽인 것은 너냐?”
“응? 아, 그렇지. 엄밀히 말하자면 나 혼자가 아니지만.”
다크 엘프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근처 나무에서 다른 다크 엘프들이 떨어져 내려왔다. 스무 명의 다크 엘프. 프라이스가 신음을 흘렸다.
그럴 만도 하다. ‘엘프’는 강하다. 그들은 인간이 살아갈 수조차 없는 긴 세월을 산다. 태어났을 때부터 마나를 느끼고, 정령의 사랑을 받는다. 육체는 병들지 않고 젊음은 길다. ‘자식을 낳을 수 없다.’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 세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엘프일 것이다.
모든 엘프는 생식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식을 낳을 수 없다. 다른 종족과 관계를 맺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들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가끔씩, 숲에서 엘프의 아이가 생겨나는 것만이 엘프의 숫자가 늘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엘프는 신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가진 종족이다. 인간이 따를 수 없는 압도적인 마나 감응력. 정령의 애정. 병들지 않고 긴 세월을 사는 육체. 특히나, 그 중에서 다크 엘프는. 정령의 사랑을 받지 않는 대신에, 일반 엘프보다 우월한 육체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다크 엘프는 온갖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제베른 숲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야 할 다크 엘프가 왜 이곳에 나와있는 것인지. 왜 기사들을 몰살시킨 것인지는 모른다. 의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고블린들은 다크 엘프들의 등장 이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다크 엘프들이 모종의 방법으로 고블린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고블린을 움직여 마을을 습격하게끔 하고, 토벌하기 위해 온 기사들을 죽인다. 그것을 반복한 것이리라.
‘단순한 원한…? 이런 식의 원한 풀이에 무슨 의미가…’
프라이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승산은 없다. 스무 명의 다크 엘프. 저들이 얼마큼의 세월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크 엘프가 스무 명이나 된다면 이쪽에 승산은 없다.
‘그래도 다행이야. 플레이어가 있으니까, 전멸해도 이쪽의 상황은 전해질 테니.’
프라이스는 죽음을 각오했다. 그것은 다른 기사,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라덴은 앞으로 걸어갔다.
“라, 라덴 경?”
프라이스가 당황하여 라덴을 불렀다. 라덴은 프라이스의 부름에 대충 손을 들어 흔드는 것으로 대답해 주었다. 다크 엘프들은 다가오는 라덴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먼저 죽고 싶어서 그래?”
“하나 묻자.”
라덴의 입이 열렸다.
“너희를 쓰러트리면. 마을을 습격하는 몬스터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뭐? 하하하! 그걸 우리가 말해 줄 이유가 있나? 그리고 우리가 쓰러질 이유가…”
“아, 됐어.”
라덴은 머리를 옆으로 가로 저었다.
“쓰러트리고 나서 물어볼테니까. 대답이나 미리 생각해 놔.”
“…이… 건방진 인간 놈이.”
다크 엘프의 눈이 찡그려졌다. 석궁이 들렸다. 화살은 이미 걸려져 있다. 단순히 쏘아낼 뿐인 병기이지만, 모든 무기가 그렇듯 무기의 위력은 사용자의 역량에 달려 있는 법이다. 단순히 쏘아낼 뿐인 석궁도, 다크 엘프가 쏘아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화살이 쏘아지는 속도는 빨라지고, 화살이 담은 위력은 강해진다.
화살이 쏘아졌다. 동시에 라덴의 발이 앞으로 크게 뻗어나갔다. 콰아앙! 화살이 박힌 지면이 폭발했다.
“느리잖아.”
툭. 라덴의 손이 다크 엘프의 어깨에 올라갔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