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52
루그 마을의 촌장, 덱스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덱스가 일행을 안내한 곳은, 덱스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누추한 곳이었다.
“너희는 밖에 있어라.”
프라이스가 다른 기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전원이 들어가기에는 집이 너무 작았다.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프라이스의 시선이 라덴에게서 멈추었다.
“귀 경은 어찌 할 텐가?”
“가능하다면 함께 듣고 싶습니다만.”
라덴은 태도를 낮추어 말했다. 프라이스와 굳이 부딪칠 생각은 없다. 병사들의 지휘권에도 욕심은 없다. 가능하다면 프라이스가 하라는 대로 하고서 이 퀘스트를 끝내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하지 않겠나. 이 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촌장인 덱스다. 가능하다면 프라이스와 함께 덱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뭐, 상관없겠지. 그렇다면 귀 경은 나와 함께 촌장님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
프라이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덱스를 힐긋 보았다. 덱스는 프라이스의 높임말이 영 어색하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을의 촌장이라고 해도 인구가 500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촌장이라고 해 봐야 평민이다. 그런 평민에게, 수도 경비 기사단 소속 하위 기사단의 단장인 프라이스가 말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기사라 하면 준 귀족이고, 수도 기사단 소속이라면 어지간한 하급 귀족 이상이다.
하지만 프라이스는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덱스는 헛기침을 하면서 프라이스와 라덴을 안으로 안내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추한 건물이었지만, 안은 제법 깔끔했다.
“제 집입니다.”
덱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이라고 해 봐야 낡은 테이블을 두고 의자를 둔 것이 전부였다. 덱스는 부랴부랴 차를 준비하려 했지만, 프라이스가 머리를 흔들었다.
“냉수나 주시지요. 날이 더워 목이 마릅니다.”
“아, 아. 예. 알겠습니다. 그… 그쪽 기사님은?”
“저도 냉수로 괜찮습니다.”
이 빠진 찻잔에 차가운 물이 담겨져 나왔다. 프라이스는 마른 입술을 물로 축이고서 덱스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 시선에 덱스는 머뭇거리기만 할뿐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프라이스가 말문을 열었다.
“부끄럽고 죄송한 말이지만. 저희는 이 마을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조직하여 보냈던 토벌대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 그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저희가 괜히 도움을 요청하여…”
“아니. 촌장님이 죄송하다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희가 무능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저희 수도 경비 기사단은 두 달 전에 이 일에 개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고, 마을이 지속적인 피해를 입도록 두었습니다. 저희가 무능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아, 아니,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촌장님.”
프라이스가 손을 들어 덱스의 말을 제지했다. 프라이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덱스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을을 습격하는 몬스터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잠깐 동안 머뭇거리던 덱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초의 습격은 두 달 전이었다. 마을 인근에 있는 숲에서, 고블린 몇 마리가 밤 중에 마을의 목책을 넘으려 들었다. 마을 청년들로 이루어진 자경단이 목책을 경비하고 있었고, 고블린 몇 마리와 자경단이 충돌했다.
쌍방에 죽음은 없었다. 자경단 중에서 상처를 입은 자도 없었다. 고블린은 그 정도로 약한 몬스터였고, 자경단의 단원들은 몬스터나 짐승 따위의 습격에 익숙했다.
그렇게. 첫 습격은 아무 문제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숲의 몬스터가, 그것도 무리를 짓는 고블린 중 일부가 야밤에 마을로 기어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기는 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흘 뒤, 목책이 무너졌다. 밀려온 것은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었다. 기이하게도, 이번에도 마을 쪽의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목책을 무너트리고 들어 온 몬스터들은 마을 안을 한참이나 쏘다녔고, 주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몸을 떨었다. 마을로 들어 온 고블린들은,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을을 배회했다.
사흘 뒤. 고블린들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놈들은 기껏 보수한 목책을 무너트리고 넘어왔고, 마을 안을 배회했다. 보다 못한 청년들 몇몇이 고블린을 공격하였고, 청년들은 고블린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것이 쭉 반복되었다. 놈들은 기본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배회하기만 할뿐. 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을 안으로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 들어오는 것이다. 놈들이 마음을 바꿔먹고 주민들을 습격이라도 한다면 버틸 수가 없다.
그래서 수도 경비 기사단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 루그 마을에 도착했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이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은 눈치였다. 고블린들의 이상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고블린은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수백 마리라고 해도 수도 경비 기사단 소속의 기사라면 혼자서도 상대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감을 품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에 찾아 온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이 숲에 들어가고 있습니까?”
“고블린이 마을로 기어 나오기 시작한 후로는 숲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비축해 두었던 식량이나 작물도 다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알겠습니다.”
프라이스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들어야 할 이야기는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프라이스는 덱스를 향해 살짝 머리를 숙였다.
“몬스터를 토벌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라덴은 프라이스와 함께 덱스의 집을 나왔다. 프라이스는 머뭇거림없이 기사와 병사들을 데리고서 마을을 떠나, 고블린이 몰려 온다는 숲으로 향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라이스의 행동이 빠른 만큼, 라덴은 프라이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마을 입구에 세워둔 용마에 올라타면서 프라이스가 말했다.
“숲 안에 있는 고블린 부족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그래서요?”
“상위 포식자가 기어 온 모양이야. 그래서 고블린이 숲 밖으로 나오고… 아,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세. 구멍이 많은 추측이야. 아마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 그런 것이라면 몇 백 마리나 되는 고블린이 마을까지 넘어와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설명되지 않아.”
프라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쩌면 상위 포식자가 몬스터가 아닌 다른 것일지도 모르지. 마법사… 이 경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흑마법사인가. 흑마법사가 고블린을 부린다? 그래. 그것도 그럴 듯한 추측이 되겠군. 하지만 역시, 왜, 고블린이 마을 주민을 습격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겠어. 어쩌면…”
“누군가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죠.”
라덴이 슬며시 의견을 발했다. 프라이스의 시선이 라덴에게 향했다.
“누군가를 부른다. 누구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수도 경비 기사단, 몬스터 토벌부일세. 우리를 부른단 말인가?”
“그런 것… 일 수도 있죠.”
“왜. 라고 생각하나?”
“…죽이기 위해서?”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군.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불러들여서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다는 건가? 누가?”
“그건 모르죠.”
“맞아. 우리는 아무 것도 몰라. 라덴 경. 나도 경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는 있네. 하지만… 납득이 안 돼. 이런 식으로 토벌 기사단을 불러들여 사냥하는 이유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토벌대 수준이 아니라 정말 ‘군대’가 나서게 될 지도 몰라. 저들이 그것도 모르는 바보인 것일까?”
아. 이것은 고블린을 부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하는 말일세. 프라이스가 고삐를 당기면서 그렇게 덧붙였다.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겠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어떻게든 확인을 해야만 하네. 라덴 경. 아까도 말했지만… 귀 경의 역할에 대해서 말일세. 나는 귀 경과 함께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플레이어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까.”
프라이스가 숲을 보았다.
“우리가 모두 죽게 된다면. 귀 경은 이 숲에서 본 모든 일들을 공작님에게 전해주게. 그렇다면 공작님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실 거야.”
스무 명의 기사와 백 명의 병사, 한 명의 플레이어가 숲으로 향했다.
숲의 이름은 모른다. 그냥, 숲이다. 어쩌면 루그 마을의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을 지도는 모르겠지만, 라덴은 숲의 이름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새가 지저귀고 벌레가 운다. 용마의 발이 풀이 수북이 자라난 땅을 밟는다. 병사들이 입은 갑옷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난다. 선두에 선 프라이스는 말없이 벗었던 투구를 다시 올려썼다. 프라이스 뿐만이 아니었다. 지독한 더위에 벗었던 투구를, 모든 기사들이 머리에 썼다.
살롱에서 보았던, 허세가 가득 찼던 귀족 휘하 기사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귀족의 허영심을 위한 기사와 수도를 지키기 위해 조직된 기사의 차이일 것이다.
‘뭔가…’
감각이 미묘하다. 라덴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언젠가 느껴보았던 감각이다. 감각이 뒤엉킨 느낌. 분명 보았던 풍경인데, 낯설게 느끼는.
“아.”
곧, 라덴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보았는지.
알라베스 산이다. 그 산에 처음 올라갔을 때, 라덴은 이런 기분을 느꼈다. 감각이 뒤엉킨다. 앞으로 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앞으로 가지 않고.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위로 올라가지 않는. 알라베스 산을 공략하는 것에 많은 난항을 겪게 했던, 감각의 엉킴.
‘이게 왜?’
그것을 느끼고, 경고하려는 순간이었다. 찌릿! 라덴의 전신 털이 곤두섰다.
[살기가 감지되었습니다!]포식감지 특성이 경고를 발했다. 라덴은 급히 용마의 움직임을 멈추고서 손을 들어 올렸다. 기사들이 멈칫하여 멈췄고, 그 소리에 프라이스가 뒤를 돌아 보았다.
“무슨 일인가?”
“…뭔가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알림이 계속해서 울린다.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알림이 울린다. 프라이스가 뭐라고 말을 더 하려는 순간이었다. 수풀이 흔들리더니, 고블린들이 걸어나왔다.
“뭐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기사들이 놀란 소리를 발했다. 그들 역시 훈련되어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이다. 저리 많은 고블린들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감각이 엉켜버린 탓이다. 프라이스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주변을 쓱 돌아보았다.
많다. 대체 이 많은 고블린이 어디에 숨어있던 것인지.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 이미 기사단과 병사들의 포위를 끝낸 상태였다.
“…음.”
프라이스가 낮은 신음을 발했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용마에서 내려왔다. 숲에서 말을 타고 기마전을 펼치는 것보다는, 그냥 내려와서 두 발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판단한 것이다.
“토벌 기사단의 검이로군.”
프라이스가 중얼거렸다. 고블린들은 대부분 이가 빠진 검이나 나무에 날카로운 돌을 묶어 단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그 중 몇몇은 제대로 된 검을 들고 있었다.
토벌 기사단의 검이다.
“설마 고블린 따위에게 몰살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프라이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검을 높이 들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다른 기사들이 용마에서 내려와 검을 빼들었다. 병사들도 창을 들거나 방패를 들었다.
“뭔가 더 있겠지.”
병사들이 빠르게 산개하여 주변을 둘러 싼 고블린들을 가로 막는다. 기사들도 움직였다. 그들은 병사들과 섞여 고블린과 대치했다. 프라이슨느 라덴을 힐긋 보았다.
“귀 경은 어찌할텐가?”
“싸워야죠.”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망토자락을 여몄다. 흔들거리던 무르시엘라고의 어둠이 천천히 확장되었다.
“몸풀기 정도로.”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