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89
드루고라 공작의 명령이라는 말에 알크레토 후작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공작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수도 귀족들이 가진 라덴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그를 위해 전면전에 돌입하였던 것이지만, 결과는 이렇게 났다. 공작은 아직까지 중립의 입장에서 움직일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손해인 것은 아니다. 라덴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수도 귀족들에게 확실히 알렸다. 로얄 나이트의 단장을 쓰러트리고 제페르 백작이 영입한 플레이어 기사단을 압도하는 전적을 내었으니, 나중에 진짜 전면전이 일어났을 때에 중립에 선 귀족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벨레로크 후작의 편에 붙느나, 알크레토 후작의 편에 붙느냐에 대해서.
“제베른 숲이라. 위험한 곳으로 가는 군.”
알크레토 후작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중얼거렸다. 제베른 숲은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가장 가까운 도시로는 마론드가 있다.
“마론드가 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론드에서 제베른 숲까지는 말을 타고 일주일은 달려야 해.”
“왔다 갔다 하기 힘들겠네요.”
“그럴 필요는 없네. 제베른 숲의 바로 근처에는 군사기지가 있으니까.”
알크레토 후작이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말했다.
제베른 숲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지옥이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몬스터들이지만, 제베른 숲의 모두가 그런 몬스터인 것은 아니다.
제베른 숲은 일종의 유폐지다. 이백 년 전에 악희가 이끌었던 이종족들. 다크 엘프와 지능이 높은 배틀 오크들 같은 이종족들이 그곳에 유폐되어 있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인간과 섞이지 않고 무리를 이루는, 제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잔혹한 이종족들도 그 안에 갇혀 있다. 환룡의 용언 결계는 그들이 제베른 숲을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계를 마냥 믿을 수는 없지. 그래서 제베른 숲 근처에 군사기지가 있는 것일세. 제베른 숲의 상황을 감시하기 위한 군대가 그곳에 있지.”
“그 군대의 지휘관은 누구입니까?”
“팔라레스 후작.”
“아.”
제국에는 한 명의 공작과 세 명의 후작이 있다. 알크레토 후작, 벨레로크 후작. 그리고 팔라레스 후작. 알크레토 후작과 벨레로크 후작은 수도에 거하면서 정계를 주무르는 거물들이지만, 팔라레스 후작은 다르다. 그는 정치같은 머리 아픈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데글러 팔라레스. 무가武家로 유명한 팔라레스 가문의 가주이면서, 제국의 세 번째 후작. 그는 제베른 숲 군사기지의 주인이면서, 몇십 만에 달하는 병사의 군권을 손에 쥐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 데글러 후작은 알크레토, 벨레로크 같은 다른 후작들 이상의 권력자이기도 하다.
“팔라레스 후작은… 으음…”
팔라레스 후작에 대해 일러주려던 알크레토 후작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잠깐 동안 머뭇거리다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자네가 직접 보고 겪어보는 것이 나을 걸세. 그는… 그러니까… 드루고라 공작과 비슷한 인물이지. 팔라레스 가문은 전통있는 무가일세. 뛰어난 장군을 많이 배출했던 가문이야. 그러면서 제국 황실에 굉장히 충성적이지. 제국을 위한 가문. 그 말이 딱 맞네. 하기에 그는 나와 벨레로크의 알력 싸움에서 완전히 손을 때었어.”
“…좋은 사람인가요?”
“좋은… 사람이지.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아마 자네를 보면 마음에 들어 할 거야. 그는 뼛속까지 무관이니까.”
팔라레스 후작에 대해 말할 때에, 알크레토 후작의 목소리에는 그리 자신은 없었다. 그는 팔라레스 후작을 꺼리고 있었다. 알크레토 후작과 팔라레스 후작은 소년기를 같이 보냈던 소꿉친구였다.
건강해도 너무 건강해서, 힘이 넘쳐 팔팔했던 팔라레스 후작과 병약했던 알크레토 후작. 죽은 제법 잘 맞았다. 팔라레스 후작에게 끌려다니느라 몸이 약했던 알크레토 후작이 진짜로 몇 번은 죽을 뻔 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팔라레스 후작에게 편지를 써주지. 가지고 가게.”
말이 나온 즉시 알크레토 후작은 펜을 들었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 알크레토 후작은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알크레토 후작의 머릿속에 있는 팔라레스 후작은. 편지를 건네주면 첫 문장을 읽고서 재미 여부를 판가름하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다면 읽지 않고, 재미가 있으면 계속 읽는다.
“…끄응.”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알크레토 후작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
제베른 숲의 감찰. 위험도가 꽤 높은 만큼, 기사를 데리고 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라덴은 자신의 저택에서 사흘을 보냈다. 죽은 기사들이 부활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기사들이 모두 부활하고서, 라덴은 수도를 떠났다. 라덴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플레이어였기에, 커다란 짐 같은 것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인벤토리에 넣으면 되니까, 몸만 가면 된다.
제베른 숲 근처 군사기지로 가기 위해서는, 군사 기지와 마론드 사이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군사기지 안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두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중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에는 황제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고위 귀족이라 하더라도 황제의 허락 없이는 군사기지 근방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다. 황제가 쓰러진 지금, 황제 대리를 맡고 있는 드루고라 공작이 라덴과 라덴의 기사들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내려 주었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텔레포트 게이트에 도착하자, 억세 보이는 인상의 마법사가 대뜸 그렇게 질문했다. 이 텔레포트 게이트가 가동되는 경우는 몇 개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식량을 비롯한 물자들이 보내질 때. 군사기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휴가를 갈 때.
“제베른 숲의 감찰 일로 왔다.”
라덴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그 말에 마법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곧,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웃음을 흘렸다.
“감찰? 이거 참 갑작스러운 일이군요. 제가 이곳에 복무한 지 십 년이 되어 가는데, 수도에서 숲의 감찰을 위해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입니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라덴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는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두었던 휘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라덴의 작위를 상징하는 백작의 휘장과, 드루고라 공작에게 받은 감찰관의 휘장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잘라 라덴은 드루고라 공작이 직접 써준 감찰권에 대한 증명 서류도 보여 주었다.
“확인했습니다.”
태도가 불량스러운 주제에 서류는 꼼꼼히 살핀다. 마법사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라덴에게 서류를 넘겨주었다. 십 년만의 감찰. 아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일 테지.
“이 텔레포트 게이트에서 군사기지까지는 말을 타고 반나절은 가야 합니다.”
“말이 없는데.”
“어이구, 그러십니까. 빌려드립디까?”
마법사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라덴은 뚱한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텔레포트 게이트에 말을 태울 수도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라덴과 기사들은 마법사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흑접 기사단과 쥐굴 기사단이 제외되었다고 해도 칠십 명이 넘는다.
텔레포트 게이트의 바깥으로 나가니 무장한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텔레포트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는 라덴 일행을 힐긋 보면서도 다가오지는 않았다. 라덴은 뒤를 돌아 텔레포트 게이트를 보았다. 도시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는 건축물로서도 화려했지만, 이곳의 텔레포트 게이트는 달랐다. 의미 그대로 텔레포트 마법만 가능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제베른 숲의 용언 결계가 해제되기라도 한다면, 제베른 숲의 몬스터들이 뛰쳐나올 것이다. 그런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때. 팔라레스 후작이 이끄는 군대는 제베른 숲의 몬스터를 가로 막는다. 동시에 텔레포트 게이트는 이곳에서 보초를 서는 병사들에게 파괴된다. 일반 몬스터라면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수 없겠지만, 다크 엘프를 비롯한 이종족들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강탈할 시에 일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마굿간에는 잘 조련된 용마들이 묶여 있었다. 다행히 라덴이 데리고 있는 기사들 중에서 용마를 타지 못하는 이들은 없었다.
용마를 빌리기 전에, 라덴은 텔레포트 게이트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을 만났다. 그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담당하던 마법사처럼 라덴에게 그리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서류 확인은 꼼꼼히 했다.
“…괜찮다면. 왜 갑자기 감찰을 온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휘관이 물었다. 수염이 거칠게 난 거구의 기사였다. 라덴은 자신을 보는 지휘관의 부리부리한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아니.”
“알겠습니다.”
라덴의 짧은 대답에 지휘관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는 의자를 뒤로 빼고서 몸을 일으켰다.
“용마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영리한 놈들이니, 고삐만 잡고 계시면 알아서 군사 기지로 향할 겁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시다면 길잡이를 붙여드리지요.”
“붙여줘. 불안요소는 없애고 싶으니까.”
괜히 길을 헤메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휘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77마리의 용마가 준비되었다. 병사 중 하나가 길잡이를 맡았다.
라덴 일행을 보내고서, 지휘관은 곧바로 마법사를 불러 통신 마법을 준비했다. 군사기지 쪽에 이 일에 대해 전하기 위해서였다.
마법사가 말했던 대로, 용마는 반나절을 꼬박 달렸다. 길잡이는 선두에 서서 용마들을 이끌었다. 용마는 확실히 영리했다. 고삐만 잡고 있으면, 놈들은 알아서 선두에서 달리는 용마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대열도 제들끼리 알아서 착착 맞춰대니 라덴과 다른 기사들이 할 일은 들썩거리는 엉덩이의 저릿함을 참는 것이 전부였다.
“곧 도착합니다.”
선두의 병사가 소리 높여 말했다. 그가 말해줄 것도 없었다. 높다란 벽이 보인다. 그 위는 대포 따위의 화약 병기이 쭉 도열해 있었고, 커다란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군사기지 보가르도. 제베른 숲의 바로 근처에 있는 거대한 기지다. 저 안에서 생활하는 병사의 숫자만 하여도 몇 십 만에 달하니, 사실상 도시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라덴 일행이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라덴은 그것에 조금 의아함을 품었지만, 병사는 그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성벽의 앞에서 병사가 탄 용마가 멈추었다. 다른 용마들도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섰다.
“뭐야? 왜 멈추는 거야?”
“대뜸 성문을 열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병사가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쿠구구궁…! 성벽 위의 대포들이 움직인다. 라덴은 움찔하고서 성벽 위를 올려 보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포의 포신이 아래를 겨누고 있었다.
“뭐하자는 거야?”
“만약의 사태를 위한 겁니다.”
포문이 이쪽을 향하는데도 병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태도였다.
“뭐하는 놈들이냐!”
성벽 위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라덴은 화들짝 놀라 다시 성벽 위를 보았다. 거대한 체격의 남자가 성벽 난간 위에 발을 걸치고서 아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커다란 망토가 펄럭거리고 난발인 머리와 거친 수염이 바람에 휘날린다.
“팔라레스 후작님이십니다.”
병사가 소곤거렸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