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44
044/ 고독한 사냥꾼-1
설마 루아노스와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만, 당장 길드에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성공했다. 라덴은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텔레포트 게이트 쪽으로 이동했다.
‘아직은 안 돼.’
루아노스가 아무리 대우를 잘해준다고 해도, 당장 가진 기반이 없는 지금 길드에 소속된다는 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그 길드에 묶인다는 뜻이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어. 루아노스가 나를 영입하고 싶어하는 것은, 다른 길드를 상대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야.’
지금의 라덴의 레벨은 낮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진다면? 지금의 라덴도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보다 레벨이 10 높은 상대까지는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라덴이 가진 섭식 특성. 이것은 라덴의 레벨이 오를수록, 라덴이 몬스터를 많이 잡을수록 라덴을 강하게 만든다.
‘흑접에는 정면에서의 전투에서 쓸만한 카드가 없다.’
유명 길드의 전력 조사는 대략적으로 해두었다. 언젠가 길드에 들어가게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흑접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길드이지만, 해외로 나간다면 그렇게 큰 경쟁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다른 길드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시즌마다 열리는 던전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흑접은 이번 시즌에 불칸에게 벨라프릭스를 빼앗겼어. 지난번 시즌에 자루안을 잡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미 뽕은 빠졌지. 불칸과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결국 흑접이 손해를 보는 동맹이야. 언제까지 불칸 아래에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래서 기를 쓰고 라덴을 영입하려 드는 것이다.
‘흑접 자체는 PVE에 뛰어나다고 볼 수 없어. 당장 길드장인 루아노스부터가 PK 전문 캐릭터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루아노스는 정면에서의 PVP가 아닌 뒤통수를 치는 암살 계열이다. 판타지아에서부터 어쌔신 클래스로 유명했던 여자고, 발할라에서도 똑같이 어쌔신 직업을 가지고 있다. 고유특성까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루아노스의 흑접이 뚜렷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에도 손에 꼽히는 것이 루아노스의 PK실력과, 흑접 자체가 PK 전문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레이드에는 안 맞아. 일단 상황을 보고.’
주목받는 루키는 많은 길드가 노리는 표적이 된다.
‘이빨을 움직였던 것은 루아노스. 앞으로는 이빨이 나를 노리는 일은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플레이 영상의 공개는 나중으로 미룬다. 당장 이익이 없는 것이 뼈가 아프지만, 지저분한 꼬리를 달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몸값을 올리는 것이다.
라덴은 텔레포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흘 만에 돌아 온 아카이드 숲이지만 그리 반가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전보다 나은 것은 늑대 고기에 뿌려 먹을 소금과 후추를 가지고 왔다는 것 뿐이었고,
애초에 이번에 라덴이 노리는 목표는 그레이 울프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간다.’
재수 없으면 카할과 다시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위험으로 포기하기에는, 아카이드 숲은 너무 좋은 사냥터였다. 비싼 귀환석 값이 아깝기도 하고, 지금 레벨에서 이만한 효율을 뽑아낼만한 사냥터도 흔치 않다.
‘카할과 마주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언젠가는 빚을 갚아 줄 생각이었지만, 아직은 안 된다. 지금 레벨로는 아무리 컨트롤로 받친다고 해도 카할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못해도 레벨을 10은 더 올려야 해.’
숲으로 들어가는 라덴의 걸음이 빨라졌다. 지금 라덴의 레벨은 28.
‘일단 40을 찍고, 그 뒤에 찾아 봐야지.’
라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게임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선사해 준 놈이니, 보답은 확실히 해 줄 생각이었다.
*
그레이 울프의 영역을 지난 숲의 깊은 곳. 이곳에서 출현하는 것은 ‘스캇 몽키’다. 놈들은 높은 나무의 가지에 매달려 빠르게 이동하면서 먹잇감을 노린다.
그런 변칙적인 움직임도 스캇 몽키를 까다로운 몬스터로 평하게 만들지만, 사실 스캇 몽키를 상대할 때 가장 큰 난적은 놈들의 독특한 공격이다.
“아, 젠장.”
라덴은 콧잔등을 팍 찡그리면서 나무 구석을 바라보았다. 수북이 쌓인 것은 다름아닌, 동물의 똥이었다. 저 악취를 폴폴 날리는 똥 무더기들이 이곳이 스캇 몽키의 영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스캇 몽키의 똥은 독성이 강하다. 장시간 냄새를 맡는다면 일시적 스탯 하락의 상태 이상이 걸리고, 만약 몸에 똥이 닿기라도 한다면 독에 중독되어 지속 데미지가 들어온다.
스캇 몽키의 독특한 공격법은, 바로 저 똥을 던지는 것이다. 온 몸에 똥칠을 하고 덤벼들거나, 아니면 똥 묻은 손으로 할퀴거나. 라덴은 코를 찌르는 악취에 손을 올리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냥 늑대나 잡을까.’
라덴은 진지하게 그것을 고민했다. 하지만 스캇 몽키가 주는 경험치는 그레이 울프의 것보다 많고, 더럽고 까다로운 대신에 스캇 몽키의 체력은 그리 높지 않다. 라덴의 공격력과 특성이라면, 광란 중첩이 어느 정도 쌓였다는 가정 하에서는 스킬 두 번이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라덴의 공격법이 근접 타격밖에 없다는 것이다. 몸에 똥칠을 한 놈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때려 죽여도 중독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일단 한 번 해봐야지.’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똥무더기를 지나쳤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레이 울프를 조금 잡았고, 스캇 몽키를 몇 마리 더 잡으면 레벨이 오를 것이다.
“우끼끽!”
그런 소리가 났다. 볼 것도 없이 원숭이 울음이었다. 라덴은 소리가 난 머리 위를 올려 보았다. 길쭉한 꼬리로 나무 가지에 매달린 스캇 몽키 한 마리와 라덴의 눈이 마주쳤다.
살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호전적이었던 카할이나 그레이 울프와는 달리, 스캇 몽키는 호기심이 강하다. 놈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라덴을 살피듯 내려 봤다.
“내려 와라.”
라덴은 삐딱하게 서서 스캇 몽키에게 말을 걸었다.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나뭇가지에 매달린 스캇 몽키는 몸을 앞 뒤로 흔들면서 데롱거리기만 할 뿐, 아래로 내려오지는 않았다.
결국 라덴은 바닥의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었다. 말로 해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내려오게 만들 수밖에. 집어 던진 돌멩이가 스캇 몽키의 머리로 날아갔다.
투척술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스캇 몽키는 머리를 옆으로 젖히는 것으로 라덴의 공격을 피해냈다. 맞지는 않았지만 도발로 써먹기에는 충분했다. 스캇 몽키의 눈이 부릅떠지고, 놈이 크륵거리는 거친 소리를 발했다.
나도 알아. 라덴은 주먹을 쥐었다. 나뭇가지 위에서 빙글 회전한 스캇 몽키가 아래로 떨어졌다. 우선, 라덴은 놈의 몸을 살폈다.
‘똥은 없고.’
이 경우에는 운이 좋다. 그것을 확인한 즉시 라덴은 놈에게 달려들었다. 구부러진 손톱을 꺼내고 양 팔을 들던 스캇 몽키가 공격 태세를 잡는 것보다, 라덴이 내지른 주먹이 놈의 안면에 박히는 것이 더 빨랐다.
정타. 제대로 들어간 공격이 스캇 몽키의 머리를 뒤로 젖히게 만들었다. 거기서 허리를 비틀어 반대쪽 주먹으로 훅. 갈비뼈가 아작나는 소리가 났다.
“끼힉!”
뒈져가는 놈이 비명을 질렀다. 콰직! 그 뒤를 따라서 내리 찍은 주먹이 놈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움찔거리며 몸을 떨던 스캇 몽키의 몸이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자아.”
스캇 몽키의 습성은 동료를 부르는 것. 라덴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우두커니 섰다. 찾아갈 필요도 없이 다음 사냥감들이 와 줄 테니, 발 아프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
“우끼기긱!”
그런 소리들이 뒤섞였다. 화악! 수풀에서 튀어 나온 스캇 몽키가 손을 휘둘렀다. 끈적한 갈색 덩어리가 라덴의 얼굴로 날아왔다.
맞는다면 상태 이상은 둘째 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생각할 정도로 기분이 더러워질 것이다. 라덴은 자세를 낮춰 날아 온 똥을 피하고서, 지저분한 똥덩어리에 범벅이 된 스캇 몽키의 손을 힐긋 보았다.
‘안 맞으면 돼.’
그것을 주문처럼 되새기면서 라덴의 발이 움직였다. 완전히 접근하는 대신에 조금 거리를 두어 휘두른 발끝이 스캇 몽키의 턱을 갈긴다. 질풍연각의 시작이다. 휘두른 발을 새로운 디딤대로 삼아, 다른 다리가 크게 회전했다. 콰직! 정확히 관자놀이에 꽂힌 발뒤꿈치가 스캇 몽키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오히려 그레이 울프보다는 낫군.’
체력도 적고, 원숭이는 결국 인간형이다. 라덴의 전문 분야라는 말이다. 라덴은 버둥거리는 스캇 몽키의 머리를 발로 한 번 걷어차서 마무리를 지었다.
스캇 몽키가 드랍하는 것은 스캇 몽키의 발톱. 가끔 원숭이 고기가 드랍되기는 했지만, 라덴은 그 고기는 죽어도 먹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비위 문제였다.
*
레벨 28에서 레벨 30이 되는 것에는 하루가 조금 넘게 걸렸다. 레벨이 오를수록 요구 경험치량이 늘어난다는 것이 확실히 체감이 되었다.
‘원래는 아카이드 숲에서 30을 찍고,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었는데.’
레벨 30부터는 이런 필드 사냥터보다는 인스턴트 던전을 도는 것이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30레벨을 찍게 되니, 라덴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특수 퀘스트.
그레이 울프 0/250
스캇 몽키 0/200
스케일 재규어 0/150
아나코브라 0/100
퀘스트 완료 보상.
특수 타이틀.
고독한 사냥꾼.
“아, 이거 갈등 때리게 만드네.”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퀘스트 창을 노려보았다. 레벨 30을 달성하고서 퀘스트 목록에 추가 된 특수 퀘스트다. 타이틀의 추가 효과는 나와있지 않았지만, 특수 타이틀이라는 것을 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독한 사냥꾼. 아카이드 숲에서 솔로 플레이를 어느 정도하면 생기는 퀘스트인 것 같은데..’
이름부터 ‘고독한’이 붙는 것을 보니, 파티 플레이를 하면서는 얻을 수 없는 타이틀인 것 같았다. 일단 검색은 해 보았지만, 타이틀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획득한 놈이 없을 리는 없고..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이겠지. 특수 타이틀이라면 독점하고 싶을 테니까.’
아니면 레벨 제한이 붙어 있는 것일까? 라덴은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특수 퀘스트를 포기하고 인스턴트 던전을 가느냐, 아니면 아카이드 숲에서 좀더 처박혀 있느냐.
스케일 재규어와 아나코브라는 보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놈들이다. 스케일 재규어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우글거리는 그레이 울프나 스캇 몽키와는 다르게 아나코브라는 숲 안에서는 만날 수 없다.
‘뱀굴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조금 불안거리였다.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퀘스트 창을 껐다.
‘버리기에는 아깝네.’
두 달 안에 벨코브의 검은 성을 공략하고, 벨코브의 이빨을 가져가야 한다. 현재 라덴이 소모한 시간은 일주일쯤. 남은 시간은 7주.
“제기랄, 해야지 뭘 어쩌겠어?”
일단 그레이 울프부터 잡도록 할까.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몸을 돌렸다.
일주일 안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런 불안감이 조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