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93
가상현실게임 BJ라고는 해도 루벡, 이근성은 공인이다. 게다가 가상현실게임의 아바타 외에도 현실에서도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하는 탓에 자기관리는 필수적이다.
침대에서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하고, 가볍게 세안을 한 뒤에 프로틴 셰이크를 흔든다. 2040년이 넘어도 여전히 땅값이 비싼 강남, 그 중 노른자배기 땅의 최상층 오피스텔에서 사는 남자의 아침은,
맛대가리 없는 프로틴 셰이크와 컴퓨터 앞에 앉는 것으로 시작된다.
버추얼 피버에서 루벡의 방송은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 7시의 황금시간대에 방영한다. 인터넷 방송이라고는 해도 루벡의 방송은 그 시간대에 방송하는 공중파 예능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가상현실게임을 주 컨텐츠로 삼은 탓이었다.
던전과 몬스터 공략부터 시작해서 탐험. 그 외에도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컨텐츠와 게스트를 초청하여 가상현실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방송하고 있다.
최근 루벡이 잡고 있는 방송 컨텐츠는 ‘요즘 뜨는 루키들’이다. 발할라 안에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루키들을 게스트로 초청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사냥을 하고, 투기장에서 친선 PVP 등을 하는 것을 주제로 잡고 있다. 루벡의 방송을 고정 구독하는 시청자들은 최근 한 달 동안 진행하는 요즘 뜨는 루키들에 열광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고정화 된 최상위 랭커들의 이야기보다는, 언젠가 랭커의 자리까지 오를 지도 모를 루키들에게 몰입하고 응원하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쪽지 답장은.. 없군.’
이근성은 한 손으로 셰이크를 흔들면서 마우스를 조작햇다. 아스가르드의 쪽지함에는 이근성에게 보낸 온갖 쪽지들이 넘치고 있었지만, 정작 이근성이 원하는 쪽지는 없었다.
요즘 뜨는 루키들을 기획하면서, 이근성이 가장 게스트로 초빙하고 싶었던 것은 둘이었다. 하나는 최근 몇 달 동안 투기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새턴. 얼음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로, 예쁜 외모와 상반된 화려하면서 깔끔한 PVP 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HS1123. 새턴도 초빙하고는 싶지만, 이근성이 진심으로 초빙하고 싶었던 것은 HS1123이었다. PVP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토벌하는 동영상은 이근성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동영상도 잘 안 올리던데.’
이근성은 아쉬움에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도대체 누구일까? 아무리 봐도 게임을 처음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분명 발할라 전에도 가상현실게임을 경험한 사람일 텐데.. 아니면 본래 발할라를 하다가 새로 계정을 만든 것일까?
“어?”
별 생각 없이 HS1123의 채널에 들어가고서, 이근성은 놀란 소리를 냈다. 동영상이 새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고서 시간이 별로 안 된 탓인지 조회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회수는 빠르게 오를 것이다. 카할 솔로 토벌 동영상 덕에 HS1123 채널의 구독 독자는 꽤 많았기 때문이다.
‘투기장 영상이군. 그리 좋은 컨텐츠는 아닌데..’
루벡은 내심 아쉬워서 그렇게 생각했다. 투기장 영상은 인기가 많은만큼 레드 오션이다. 탑 BJ를 꿈꾸는 발할라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쉬운 것이 투기장 PVP 영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도전하는 사람도 많고, 투고자도 많다. 하루에 쏟아지는 투기장 PVP 영상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투기장 영상은 꽉 잡고 있는 상위 플레이어들이 많다. 그나마 중간층 플레이어 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새턴 뿐. 그것도 새턴이 여자라서, 예뻐서, 그런 외모에 걸맞지 않게 누구나 인정할만큼 PVP 실력이 뛰어나서 주목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은? 이근성은 HS1123이 투고한 동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이번에도 얼굴은 흐릿하게 처리를 해서 보이지 않는다. 발할라 내에서 동영상 촬영을 할 때에 얼굴이 보이지 않게 편집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HS1123의 영상은 여전히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강했다.
“음..”
그것이 아쉽다. 동영상은 리얼리티만큼 연출이 중요하다. 발할라의 동영상 촬영 기능은 굉장히 뛰어나다. 시점 변화도 3인칭에서 1인칭 모두를 잡아준다. 그 이후는 연출의 영역이다. 3인칭과 1인칭을 적절히 섞고, 몰입할 수 있는 부분과 필요없는 부분을 걸러내고.
HS1123의 영상은 적당히 잘라낼 부분을 잘라두기는 했지만, 편집이라고 해 봐야 자른 부분을 다른 부분과 이어 붙이는 것 정도다.
“오..”
아쉬운 한숨이 작은 감탄으로 변했다. 동영상의 제목은 심플했다. ‘투기장 입문.’ 총 10분 정도의 영상이었고, 영상을 보면서 이근성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HS1123은 닥치고 PVP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PVP가 아닌 PK를.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PK 영상은 인기가 많으니까. 문제는 영상의 마지막이었다. 영상의 마지막. 쓰러진 상대 플레이어를 보던 도중,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40연승을 기록하셨습니다!] [16단으로 승급하셨습니다!] [특수 업적, ‘너무 약하잖아?’를 획득하였습니다!] [특수 타이틀, ‘불패의 권투사’를 획득하였습니다!]-불패의 권투사.
-투기장 입문 첫 승부터 40연승을 기록한 플레이어게 주어지는 타이틀.
-모든 스탯 +15.
-이 타이틀은 성장형 타이틀입니다.
-이전의 연승기록에서 10연승을 추가로 기록할 때마다 추가 스탯이 2씩 오릅니다.
칭호에 대한 설명을 보여주고서 영상은 끝난다. 이근성은 입을 멍하니 벌리고서 종료된 영상을 바라보았다. 투기장 40연승? 아니, 연승은 둘째치고.. 투기장 입문 첫 승부터 40연승.
“이런 미친.”
이근성은 그렇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40연승이지, 투기장에서 40연승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승을 거듭할수록 자신보다 레벨이 높거나 단이 높은 상대와 싸우게 된다. 그런 투기장에서 40번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이겼다는 말이다.
1단부터 시작해서 40연승을 기록하고, 마지막에는 투기장 16단. 이렇게 초고속으로 단수를 올린 전례가 있을까?
‘게다가 특수 타이틀이라고? 불패의 권투사.. 들어본 적도 없는 타이틀이야.’
모든 스탯을 15나 올려주는 타이틀이라면 최상위 랭커들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게다가 성장형 타이틀. 추가로 10연승을 할 때마다 타이틀의 추가 스탯이 2씩 더 오른다.
‘얻고 싶어도 못 얻는 타이틀이야. 누가 40연승을 해?’
발할라 투기장에서 가장 단이 높고 승률이 높은 것은, 랭킹 2위인 불독의 카란이다. 레벨 50부터 투기장을 시작한 카란의 최대 연승 기록은 28연승. 이후 28연승을 기록한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고, 카란 본인도 자신의 연승 기록을 깨지 못했다.
‘10연승 더 하고서 영상 올릴게요.’
영상의 마지막, 불패의 권투사 타이틀을 클로즈 업 하면서 나왔던 목소리. 이근성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잡아야 돼.”
이근성은 홀린 얼굴로 중얼거리면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쪽지를 보내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이근성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근성의 머릿속에서 프로틴 셰이크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
김현성이 올린 영상에 주목한 것은 루아노스, 연민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세하라의 왕릉 공략은 끝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루카스의 불칸 쪽과 미리 이야기를 해 두어 쉬기로 한 날이다. 최근 던전 공략에 힘을 주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에스테틱 샵에 가기 전에 컴퓨터에 앉았는데..
“이, 이건 또 뭐야?”
방금 잠에서 깬 탓에 잠옷 차림 그대로인 연민서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HS1123이 올린 영상의 조회수는 연민서가 새로 고침을 누를 때마다 쭉쭉 오르고 있었다. 각종 발할라 커뮤니티에도 HS1123의 영상은 이슈화 되고 있었다.
투기장 40연승. 1단부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40연승은 이슈가 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물론 발할라의 투기장은 비교적 자신의 레벨과 가진 단에 맞춘 상대가 나오는 방식이지만,
영상 내에서, HS1123의 레벨은 58이었다. 그런 HS1123은 영상 속에서 검강을 사용하는 검사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었다. 아무리 컨트롤이 좋다지만 강기까지 사용하는 레벨 80 이상의 검사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동영상에 달린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그런 이야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왜이리 눈에 띄는 짓을 하는 거야!”
연민서는 빽 고함을 지르면서 씨근거렸다.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다면 온갖 곳에서 러브 콜이 날아오르게 된다. 카할 때에도 그랬지만, HS1123은 이번 영상을 통해 자신이 얼마큼의 포텐셜을 갖춘 존재인지를 입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민서의 예상대로였다.
레이크 로스필드. 파라곤의 길드장이자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재벌가인 로스필드 가문의 상속자. 재벌가의 황태자라고는 하지만, 레이크의 옷차림이나 방은 제법 소탈했다. 당장에 그는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법한 커다란 박스 티와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레이크는 모니터에 재생되는 동영상에 몰입하고 있었다. 투기장 40연승. 레이크가 집중하고 있는 영상은 그것이었다.
“흠.”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레이크는 짧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턱을 어루만지면서 방금 자신이 본 영상을 떠올렸다. 차림새. 레이크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것이었다. 그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굳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번 본 것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잊지 않는다. 특히 자신이 주목해서 본 것이라면 더더욱.
‘그때 그 플레이어야.’
얼마 전의 보하미르. 그곳에서 레이크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관심을 끄는 플레이어를 보았다. 그렇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러면서 잔혹하면서 효율적인 PVP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현 발할라 랭킹 2위이자 투기장 랭킹 1위인 카란의 PVP도 그런 성향이기도 했지만, 검을 사용하는 카란의 PVP와는 다른.. 맨 몸으로 싸우는 PVP.
레이크는 그때 자신이 본 것에 깊은 감명을 느꼈다. 예전의 누군가가 떠오른 탓이기도 했고, 저만한 포텐셜을 갖춘 플레이어라면 어떻게 해서든 영입하고 싶었다. 설마 스카웃 제의를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여지를 두고서 호감을 주기 위해 인벤토리 안에 두었던 휘광 루드베라도 아낌없이 넘겼었다.
“레벨이 58이었군. 너무 높은 아이템을 줬었나.”
레이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쓰게 웃었다. 휘광 루드베라의 레벨 제한은 95. 못해도 레벨 70은 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60도 되지 않았을 줄이야.
“아예 이쪽에서 떠난 줄 알았는데.”
레이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사실, 지난 번 처음 보았을 때에도 느끼기는 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런 위화감은 이번 영상을 통해서 확신이 되었다. 레이크는 커피 잔을 입술로 가져가면서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어려서 못 알아 봤어.”
라덴. 레이크는 그 이름을 떠올렸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