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08
108. 사이다를 달라
야유가 쏟아진다.
다들 눈이 있다. 일개 팬도 야구를 하루 이틀 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늘 주심이 이상하다. 심지어 핸드폰으로 중계를 보며 직관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존 판정이 일관성이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 사시겠네요.”
유행운이 배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욕 많이 드실 거잖아요?”
주심과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는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물러서게 되었지만, 굳이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뭐야?”
유행운이 대꾸 없이 타석을 떠난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대놓고 장난질을 하는 심판 앞에서는 그 어떤 여지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안 되겠다 영호 트럭 바꾸자 개크보에 박아야겠다 좆판 OUT!]└ 동의
└ 영호보다 더 시급한 게 있었네 ㅅㅂ
└ 트럭 박고 전광판 추가
└ 미친 새끼들 감히 우리 황태자를 건드려???
└ 주심 이승윤 기억해라
└ 개크보에 박고 전광판 추가 ㄱㄱ 존나 이건 가만있음 안 됨
└ 솔까 우리가 만년 꼴찌팀이라고 얼마나 무시당했냐? 지금 성적 좋을 때 좆판이 재 뿌리는 거 보면 이거 가만있음 안 됨 ㅇㅇ
└ 지금 난리 나면 뭐해 팬들 사이에서나 난리지 개크보는 심각성 1도 모름 그냥 2군 잠깐 요양 보내고 말잖아
└ 월급 감봉 다 필요 없고 저딴 새끼는 진짜 아예 크보판에서 나가떨어져야 한다니까???
└ 담뱃값 모아둔 거 보냈다 가자
└ 이승윤 눈깔 똑바로 떠
어느 순간부터 크보판에는 트럭 시위가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보살이라 불리던 대전 호크스도 연달아 꼴찌를 하며 시위를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는데,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진행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단장 이영호를 압박하기 위해 준비했던 트럭의 타깃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에게로 바뀌었다.
이승윤 심판은 물론이고 물방망이 처벌만 반복하는 KBO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들어가 있었다.
[지나가던 꼴린스다 해도 해도 너무하더라 ㅈ판ㅋㅋ 커피값 보냈다]└ 고맙다
└ 이왕 하는 거 전국 돌자
└ 언론사 앞에도 박아
└ 지나가던 마법사 500원 넣었다
└ 우리도 지난번에 개같은 쓰리피트로 좆된 기억 있어서 동참함 (철팬)
└ ㅋㅋㅋㅋ 살다 살다 충청도 애들이 총대 매는 걸 다 보네 ㅋㅋㅋ
└ 다 모아 시바 화력 모아~~
일이 커진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심판과 맞붙는 일은 팀마다 최소 한 번은 생긴다. 그로 인한 피로도는 물론, KBO의 처벌은 늘 안 하느니만 못했다.
[볼 판정 항의하다가 1회 시작부터 퇴장당한 대전 호크스 최정환 감독]└ 강우성 존은 존나 쥐구멍이고 홈즈 존은 개구멍이네 ㅋㅋㅋ
└ 와 걸친 거 아예 안 잡아줬네
└ 미친;;;
└ 저거 보정 들어간 건데도 판정이 존나 에반데;;;
└ 항의할 만하네…….
└ 어느 미친놈이 감독을 1회 시작부터 퇴장시키냐? 개에바
└ 이승윤ㅋㅋㅋ 시발 네임드잖아!
└ 이승윤 김수원 이영후 얘네 진짜 네임드 중에 네임드 ㅋㅋ
└ 아오 혈압 올라
현재 경기는 서울 썬더스가 두 점 차로 리드하고 있다.
1회 말,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대전 호크스가 득점 기회를 좀처럼 만들지 못하고 있다.
2회 초에도 마운드에 오른 강우성은 완급 조절은 버리고 최대한 집중하여 타자를 압박했다.
존은 이제 파악이 되었고 그 안에서 실마리를 푸는 건 투수의 몫이었다.
실투 하나를 얻어맞아 안타를 내주긴 했지만, 미국에서 성공한 에이스 투수라는 명성답게 강우성은 더 이상의 실점 없이 2회를 마쳤다.
뒤늦게 안정을 찾은 강우성이지만, 전력투구를 하고 있었기에 오래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2회에 이미 투구 수 50구를 넘기며 여러 면에서 강우성 답지 않은 투구 내용이었다.
대전 타선은 여전히 고전한다.
2회 말에도 삼자범퇴로 시원한 공격력이 나오지 않았고 서서히 심판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갔다.
서울 썬더스가 두 점 리드한 상황.
1회를 제외하면 투수전 양상이 펼쳐졌고 강우성은 3회 삼자범퇴로 오늘의 임무를 마쳤다.
[시발 우리 황제님이 3회 동안 70구나 던진 게 말이 됨?]└ 존이 코딱지만 해서 던질 곳이 없음 ㅋ
└ 황제님 미국에서 별명이 아티스트였잖아 제구가 예술이어서 그 장점 좆판이 다 죽임
└ 시벌 갓우성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했을 때보다 오늘이 더 심한 게 말이 됨?
└ 우성 형님 표정 개썩었네…….
└ 형, 그래도 우리 팀에서 오래 있어……. 형은 미래의 영구결번이잖아
└ 트럭 시위 홍보 왔다 문구 모집 중이다 그리고 오늘 경기 끝나고 회의 있으니까 많관부
└ ㅇㅋㅇㅋ
* * *
4회 초.
채수영이 마당쇠답게 마운드에 올랐다. 강우성이 이렇게 오래 공을 못 던지고 내려온 건 올 시즌 처음이었고 채수영도 분위기가 위태롭다는 걸 알기에 많은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하, 씨…….”
직접 이승윤 주심을 경험하니 알겠다.
강우성이 2실점을 했을지언정, 그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고 버틴 게 용한 거라는 걸.
“그냥 박아.”
“알았어.”
“어차피 저 새끼 눈 돌았어.”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심판 욕을 한다.
포수 입장에서도 속이 터질 일이었다. 공을 던지는 사람도 스트레스겠지만, 주심 바로 앞에서 공을 받아야 하는 포수도 만만치 않게 혈압이 오를 일이었다.
“가운데로.”
“응. 전력투구할게.”
시작부터 볼넷을 내주고 아예 정면 승부로 방향을 틀었다.
강우성처럼 제구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 나은 점은 구속이었다. 오늘은 오래 던지겠다는 생각보다는 최대한 실점을 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섰다.
“후욱!”
채수영은 미트만 보며 존에 공을 쑤셔 넣는다는 생각으로 덤볐고 타자 역시도 한가운데에 들어오는 공을 가만 보지 않았다.
그 결과, 땅볼 유도를 통해 병살타를 잡아낼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내야 뜬볼로 간신히 이닝을 정리했다.
“와, 대놓고 존에 박아 넣어도 공략을 못 하네.”
직접 내야 뜬볼을 처리한 김지환이 심판 수혜를 받고 있는 썬더스의 타자들을 겨냥한다.
평소 김지환은 트래시 토크를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오늘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4회 말, 타선이 한 바퀴 돌았고 상위 타순부터 시작된다. 포수로서 생각했을 때 이번 공격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을 끌어안은 채 타석에서 물러서는 타자를 보았다. 서로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그것도 잠시 상대가 먼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채수영, 오늘 공 좋다.”
“그래?”
“어, 1이닝 더 던질 거지?”
“그, 그렇지.”
“왜?”
“아니야.”
어떻게 솔직히 말하겠는가.
멀티 이닝을 소화하기에는 벌써 힘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연거푸 전력투구를 했다. 온 힘을 실어서. 구속도 계속 최대한 끌어올린 탓에 벌써 손에서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4회 말.
1번 타자 박준용이 타석에 섰다. 이미 한번 주심과 신경전을 펼쳤던 박준용은 웃지도 않고 투수를 응시했다.
타석에 바짝 붙는다.
오늘 도미닉 홈즈는 몸쪽 제구가 잘 되지 않는다. 바짝 붙고 과장된 몸짓으로 연습 스윙을 하며 상대를 자극했다.
1구, 바깥에 꽂히는 투심.
“스트라이크!”
그럼 그렇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인터넷 상에서 본인이 욕먹고 있을 거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심판들은 항상 팬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들이었다. 욕을 먹으면서도 피해 의식에 가득 찬 모습을 보였다. 왜 욕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을 했는데 욕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이었다.
2구, 큰 궤적으로 떨어지는 커브.
“볼.”
바닥에 패대기치는 공에는 차마 스트라이크 선언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박준용은 배트를 내지 않았고 더욱 바짝 타석에 붙어 섰다.
‘슬라이더.’
지금 박준용이 노리는 구종은 슬라이더였다.
홈즈는 좌타자인 박준용에게 슬라이더를 던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맞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3구, 바깥에 꽂히는 투심.
“스트라이크.”
기다린다.
포수가 사인을 보낸다. 몸쪽 승부는 피하고 철저히 낮은 볼과 바깥 승부를 권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위치를 옮긴 포수가 미트를 들었다.
딱!
커트.
이번에는 배트를 내며 커트를 해 낸다.
파울 타구에 발등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픔보다는 분노가 더 강했다.
발을 탈탈 털어 내고 다시 타석에 섰다.
5구, 몸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
박준용이 끈질기게 기다렸던 공이 도착했다.
좌타자 기준,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몸쪽으로 휘는 슬라이더였다.
타석에 바짝 붙은 박준용이었기에 홈즈의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평소와 달리 각이 예리하지 않았다.
벼락같은 스윙.
박준용이 평소 하던 밀어 치기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해 공을 후려쳤다.
따아아악!
유행운이 심상치 않은 타구음을 듣고 눈이 커진다.
박준용은 홈런 타자가 아니었다. 통산 홈런이 고작 4개밖에 안 되는 타자였고 그만큼 그의 홈런은 굉장히 귀했다.
“오.”
박준용이 시원하게 배트를 던지고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홈런을 맛본 지 너무나 오래되어서, 손맛을 느꼈음에도 이 타구가 담장을 넘어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헬멧이 중간에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전력 질주.
[넘어갑니다! 와, 그 보기 힘든 박준용 홈런이 오늘 터지네요. 잠시만요, 무려 2001일 만에 터진 홈런입니다!] [통산 5호 홈런을 가장 중요할 때 터트리네요. 박준용 선수, 그만 뛰어도 되는데요. 아, 이제 봤나 봅니다.]박준용의 전력 질주는 2루를 지나고 나서야 멈췄다.
뒤늦게 홈런이라는 걸 알았고 이제는 전력 질주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순식간에 홈 플레이트를 밟은 박준용이 유행운의 손바닥을 거세게 내리쳤다.
“형, 속이 시원해요?”
“사이다 먹긴 했는데, 좀 김 빠졌어.”
“그래요?”
“사이다가 부족하다, 행운아.”
“아하.”
그 말인즉슨.
김 빠지지 않은 시원한 사이다를 달라는 뜻이었다. 유행운이 그 말뜻을 이해하고 타석에 섰다.
포수가 마운드를 방문했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투수가 흔들린다.
심판을 등에 업고도 홈런을 얻어맞았다. 그것도 박준용이라는 똑딱이에게.
그건 굉장한 충격이었다.
‘몸쪽 승부 하지 말걸.’
작게 후회하고 김수한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유행운은 배팅 장갑을 동여매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투수가 흔들린다면 그만큼 제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즉, 그만큼 실투가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자, 여기서는 어떤 승부가 이어질까요. 유행운 선수, 첫 타석에서는 아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지금 설욕을 꿈꿀 텐데요.] [네, 맞습니다. 박준용 선수의 홈런도 보았고 지금 대전 분위기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거든요. 항상 그렇듯 유행운 선수는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재주도 있지만, 무엇보다 분위기를 타고 상승할 줄도 아는 선숩니다.]지금까지 짧았던 홈즈의 인터벌이 순간 길어진다.
로진백을 주무르고 스파이크에 박힌 흙을 긁어내고 그것도 모자라 마운드를 한 바퀴 돌고 어깨도 가볍게 푼다.
심호흡을 하고 사인을 교환하는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심지어 이 직전에 포수가 마운드 방문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 경기 진행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다.
끄덕.
계속 고개를 저었던 홈즈가 드디어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유행운이 타격 자세를 취한다.
[지금 김수한 선수 리드는 집요하게 바깥쪽이거든요. 오늘 홈즈 선수가 바깥 승부에서 재미를 봤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바깥 공 요구를 하죠?] [네, 맞습니다.]유행운 역시도 예상한 대로였다.
포수 미트는 바깥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홈즈가 미트를 응시하며 공을 강하게 뿌렸다.
유행운이 힘을 모으는 동작을 간결하게 소화하며 중심 이동과 함께 배트를 낸다.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확인하는 순간, 실투라는 것을 느꼈다. 구종은 볼끝이 지저분한 투심.
말 그대로 못 먹으면 아쉬울 코스.
따아아악!
“Shit!”
타격음을 듣는 순간, 투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유행운은 배트를 손에서 놓으며 쭉 뻗어 가는 타구를 바라보았다.
[유행운의 동점타! 시즌 25호 홈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슈퍼 루키 그 자체 유행운!]아무리 심판이 장난질해도 뒤바뀐 분위기를 다시 돌려놓을 수는 없다.
결국 야구는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잘 받아 치면 이긴다. 아무리 완벽한 투수라도 한 번은 실투를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 기회를 살리면 분위기는 반대로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이놈!”
박준용이 헛기침을 하며 배를 내민다.
“사이다를 아주 잘 말았구나!”
그 말에 유행운이 그 배를 찰싹 치며 말했다.
“저도 김 빠졌습니다.”
“왜.”
“아직 역전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순간, 시선이 조석찬을 향해 흘러간다.
유행운과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바닥을 내밀었던 조석찬이 멋쩍은 듯 웃었다.
“선호가 해 줄 거야.”
“잉?”
“난 일단 출루는 해 볼게.”
“엥?”
“선호가 쳐 줄 듯.”
“에잉?”
지선호가 어이없다는 듯 조석찬을 보았다.
“사이다를 달라!”
박준용이 소리쳤고 이제 부담감은 조석찬과 지선호에게 전달되었다.
중심 타선의 시작.
밥상을 차리는 업무를 주로 하는 테이블세터가 연달아 홈런을 터트리며 동점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중심 타선은 역전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