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22
122. 상여자
이선영은 방구석 여포다.
쉽게 말하면 소극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에 쌓아 놨다가, 집에 돌아와서 터트리는 성격이었다.
그녀가 은행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속에 쌓아 놓고 집에 돌아와서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선영은 아들이 공에 맞아 쓰러지는 그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졸도할 뻔했다. 손이 덜덜 떨렸고 눈물이 맺혔는데, 다행히 아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부터는 화가 치밀었다.
욕을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보는 사람이 많다.
유행운이 하도 잘해서 엄마인 이선영까지 유명해지고 있었고 이제 직관을 오면 여기저기서 힐끔거리며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상황에서.
“이 시발 새끼야!”
백유정이 화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며 욕을 하는 모습에 속이 시원해졌다.
“투수 같지도 않은 새끼가 감히 누구를 쳐!”
맞다.
다 옳은 말만 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대담하게 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지금 이선영의 눈에 비치는 백유정은 자신감 넘치는 대단한 여자처럼 보였고 그게 곧 호감으로 다가왔다.
“야야! 윤서준, 너 공 못 던지면 집에 짜져 있어! 왜 야구를 하고 지랄이야!”
백유정도 마찬가지였다.
유행운이 공에 맞아 쓰러질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순간에는 너무 놀라서 입을 가린 채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유행운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활화산처럼 분노가 터져 나왔다.
“뭘 꼬라봐, 야! 윤서준, 뭘 꼬라보냐고! 뭐!”
어찌나 목청이 큰지 어느 정도 상황이 무마되자, 윤서준의 귀에도 닿을 정도였다.
“네가 투수야? 네가 투수냐고!”
눈이 마주치고 있음에도 백유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우렁찬 목소리는 야구장에 퍼졌고 관계자가 다가와 백유정을 저지했다.
“그만하세요. 그만.”
팔을 붙잡힌 상황에서도 백유정은 여전히 욕을 쏟아 냈다.
“저 씹새끼가 예쁜 여자 처음 보나! 눈깔 파 버린다, 확!”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빈볼 시비를 가리기는 쉽지 않았고, 투수에게 업어 치기를 했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한 상황에서 최정환 감독이 강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빈볼 시비가 있었으니 유행운만 퇴장당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누나 멋있다.”
여전히 관계자와 아웅다웅하며 윤서준에게 쌍욕을 쏟아 내는 백유정을 보며 유행운이 헤벌죽 웃었다.
유행운 입장에서 백유정은 온전한 내 편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욕을 해도 화를 내도 소리를 질러도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저게 멋있다고?”
“응. 남의 시선 생각 안 하고 할 말 다 하잖아.”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다.”
백유진이 혀를 내둘렀다.
오늘 백유진은 누나에게 욕을 먹었다. 왜 매형이 빈볼에 맞았는데 상대를 조지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고 있었다.
백유진은 투수다. 그것도 마무리 투수였다. 괜히 이 상황에 휘말려서 출장 정지라도 당하면 큰 문제였다.
[시발 미친 거 아님??? 빈볼 존나 확실한데 행운이가 퇴장???]└ 응 아니야 윤서준 제구레기임 ㅇㅇ
└ 미친놈아 타자는 맞는 순간 알아 이게 빈볼인지 아닌지
└ 유행운 올 시즌 몸맞공 8개 나왔음 얘가 이렇게 항의하고 화난 거 보면 백퍼 빈볼임 ㅇㅇ
└ 행운이 몸맞공 날아오면 일단 피하는데 저 공은 못 피했엌ㅋㅋㅋ 시발 저건 노린거라 못 피한 거 ㅇㅇㅇㅇㅇ
└ 대구 놈들 눈깔 삐었나????
└ 윤서준도 퇴장시키라고 미쳤냐고
└ 헐 이러다 감독도 퇴장당할 각
└ 행운이 출장 정지당하면 어쩌냐;;;
└ 유행운이 때렸음?? 그 전에 윤서준이 글러브로 얼굴 패던데?
└ ㅇㅇ 정당방위임 행운이는 공도 맞고 글러브로도 맞음
└ 미친 거라고 아무리 드래곤즈 홈이어도 퇴장시킬 거면 둘 다가 맞지
└ 아 개빡치네 우리 행운이 귀한데
└ 야, 아무리 그래도 투수를 저렇게 패냐? 저러다가 허리 나가면 너희가 책임질 거?
└ 지랄노 행운이가 언제 팼냐 곱게 바닥에 눕혀 드렸지 ㅇㅇ
└ ㅇㅈ 유행운이 언제 사람 팸? 하도 야구 못해서 걍 누워 쉬라고 눕혀 준 건데??
└ 지나가던 마린스 팬이다 이건 윤서준이 ㅈ같은 놈이다 저 새끼 우리한테도 빈볼 졸라 날림
└ 윤서준 특 : 만만한 신인한테만 몸맞공 던짐
└ ㅇㅈ ㅋㅋㅋㅋㅋㅋ
└ 윤서준 저 새끼 경기 안 풀리거나 마음에 안 들면 일부러 몸쪽 던지는 거 모르는 인간도 있냐???
└ 야 지금 1등이라고 눈 감고 사냐?? 그냥 제구레기라고 시발 그렇다고 선배를 때리냐? 인성 무엇???
└ 아 시발 너희는 안 때림??? 윤서준이 일부러 공으로 맞추고 글러브로 먼저 선빵 깠다고 했다
└ ㅋㅋㅋㅋ 맞혀놓고 글러브로 패면 후배여도 눈 돌죠? 당연하죠? 맞죠?
└ 드래곤즈 새끼들은 야구공이 말랑한 줄 안다 ㅅㅂ
└ 저거 목에 맞았으면 시발 목뼈 부러질 뻔했어 윤서준이 유행운 담그려 한 건 안 보임??? 시발럼들
└ 이제야 윤서준 퇴장시키노 ㅅㅂ 왜 감독까지 퇴장??? 심판 눈깔 어케 됐냐??
└ 아오 시발 퇴장이면 행운신 출장 금지도 때리는 거 아니냐…….
└ 시발 억울해 우리 행운이가 뭘 잘못했는데!!!
팬들 분위기도 활활 타오른다.
그 증거로 지금 관중석에서 야유 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지금 대전 호크스를 이끌고 있는 슈퍼 루키였다.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유격수 포지션이었고 더불어 타격을 제외하고도 수비 전 지표에서 상위권을 달리는 선수.
그런 선수가 한순간에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할 뻔했다. 팬들의 분통이 터지는 건 당연했다.
그 결과, 유행운은 물론 빈볼 시비를 일으킨 윤서준도 퇴장 처분 받았으며 최정환 감독은 덤이었다.
여러모로 대전 호크스 입장에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얘들아 지금 대전 요정 퇴장당함 ㅇㅇ]└ 시발?
└ 미친 거 아님??
└ 욕을 좀 심하게 하긴 하더라
└ 퇴장당하면서도 윤서준 조져버린다던데???
└ ㅇㅇ 백유진도 조진대 이유는 유행운이 맞았는데 아무것도 안 해서
└ ㅋㅋㅋㅋㅋ 존나 상여자
└ 화끈하네
└ 행운이 든든하것다 ㅋㅋㅋㅋㅋㅋ
└ 존나 멋있다 상여자 ㅇㅇ
└ 키야~~~!!!
* * *
경기장 밖에 나온 백유정은 살짝 아찔해졌다.
예비 시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욱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경기장에서 퇴장당한 후였다.
“유정아!”
그리고 그 뒤를 허겁지겁 예비 시어머니가 따라왔다.
“어머니!
“괜찮니? 저 사람이 해코지하지 않았어?”
“네, 그냥 여기 구장 관리하는 사람이었어요.”
“정말 다행이다.”
이선영이 웃는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겪게 된다. 누군가가 대신해서 화를 내 주는 모습을 보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커피 마실까? 경기 끝나려면 좀 걸릴 텐데.”
지금 백유정은 사실 걱정하고 있었다.
본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준 것에 대한 여파가 어떻게 미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예비 시어머니는 여전히 살가웠고 방금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이미 승부의 추가 많이 기울은 상황 아닙니까? 백업 강수호가 유행운 빈자리를 채웁니다. 이미 대전 호크스는 주축 멤버 일부를 교체한 상황이었어요. 지금 최정환 감독도 퇴장당했지만, 저는 충분히 항의할 만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맞은 부위가 위험했어요. 만약 고개를 숙이면서 피했다면 목에 맞을 수도 있었거든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백유정이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커피 마시면서 야구 보는 것도 괜찮지 않니?”
“네, 어머니. 여유로워서 좋은 것 같아요.”
구장 근처 카페에서 케이크와 함께 커피를 마신다.
이선영은 어느새 입고 있던 유니폼을 벗었고 백유정은 여전히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다.
“저…….”
“응?”
“죄송해요……. 제가 욱해서 저도 모르게…….”
“아니야, 덕분에 속 시원했어.”
“다행이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
“뭘 이런 거 가지고. 얼른 먹으렴.”
“네.”
요즘 이선영은 살맛이 난다.
살면서 다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자살한 후에는 삶에 여유도 없었고 감정도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아들과의 사이도 벌어졌고 웃는 날이 사라졌었다. 그런데 이렇게 꿈처럼 다시 행복이 돌아왔다. 그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이선영이었다.
“유정이는 우리 아들이 어디가 그렇게 좋아?”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선영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아들은 능력은 있지만, 남자로서 보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행운이가 내가 보기에는 성실한 아이기는 하지만, 사실 좀 답답한 구석이 있잖니.”
“어, 어머니도 알고 계셨어요?”
“알지, 내가 키웠는데.”
“처음에는 저도 답답하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는 사용법은 찾은 거 같거든요.”
“그래? 나도 아직 못 찾은 사용법을 익혔어?”
“네, 단순해요. 저는 이제는 그런 행운 씨가 좋아요.”
“왜?”
남자로서 매력이 있나?
진지하게 이선영이 고민했다. 항상 아들로서만 봤기 때문에 남자로서의 모습은 전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행운 씨는 한눈팔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야구 아니면 가족. 머리에 그거만 있는 사람 같아요. 바람피울 걱정도 없고 술, 담배도 안 하니까 좋고. 거기다가 도박할 성격도 전혀 아니고. 같이 평생 살아도 마음이 불편할 일은 없을 거 같았어요. 그 생각을 하니까,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했구요.”
백유정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이제 고작 22살이었고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그럼에도 결혼을 결정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고마워. 내 아들 좋게 봐 줘서.”
지금 이선영은 어떤 거라도 다 상관없었다.
아들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도 기뻤고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는 순간 심란했지만, 아들의 여자친구를 직접 보고 난 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예뻐서 놀라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강단 있는 친구였다. 가끔 유행운은 무를 때가 있어서 이런 강단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앞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저 마음에 드세요?”
“그럼.”
“이유가 궁금해요.”
미소를 지으며 이선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고개를 들어 백유정을 보면 그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연다.
“우리 행운이한테 과분한 사람 같아서 그냥 미안하지.”
백유정은 사랑받고 살았다는 게 느껴지는 여자였다.
밝고 활기차며 싹싹하다. 어른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아들이 백유정 옆에 있으면 굉장히 편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저한테도 행운 씨는 과분해요.”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테이블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을 일으키며 울린다.
백유정의 핸드폰이었다.
“어, 행운 씨 카페로 온대요. 아까 이 카페 알려 줬거든요.”
“지금?”
“네, 감독님이 외출 허락해 주셨대요.”
“그래?”
이선영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무래도 제 배로 낳은 자식을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백유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운 씨 커피 사 가지고 올게요.”
“여기, 이걸로 계산해.”
“아니에요. 저도 돈 벌어요.”
씩, 미소를 지으며 백유정이 카운터로 향했다.
이선영은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상을 살다 보면 지나간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대체로 남편이었다.
이 자리에 남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그랬다. 행운이가 홈런을 치는 그 모습도 남편과 함께 보았다면 더 기뻤을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더욱 불어난다.
그걸 알고 있기에 아들이 좋은 여자를 만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엄마.”
유행운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달려왔다.
다행히 구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거 마셔.”
“고마워.”
백유정이 주문한 메뉴는 토마토 생과일주스였다.
시럽을 빼고 순수 얼음과 토마토만 들어간 건강 음료였다.
“감독님께서 나가도 된다고 하셔서 얼른 달려왔지.”
드륵, 의자를 뒤로 빼고 앉는다.
토마토 주스를 한 모금 마신 유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이야기 했어?”
일부러 오늘 경기 중에 있었던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걱정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등 괜찮아?”
하지만 백유정이 먼저 물어본다.
“응, 괜찮아. 멍 좀 든 거야. 다행히 위험한 부위는 빗나가서 큰 문제 없어.”
“걔 번호 알아?”
“누구, 윤서준?”
“응.”
“번호 몰라.”
“그래…….”
“누나, 나 괜찮아. 너무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백유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행운이 백유정을 달래 준다.
“고마워. 오늘 경기장에서 누나가 윤서준 욕해 줘서 힘 났어.”
그 말에 백유정이 미소를 지었다.
목이 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는데, 그게 살짝 마음에 걸렸다. 유행운에게는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나 당분간 휴식일 것 같아.”
“왜?”
“내일 상벌 위원회 열릴 것 같거든.”
외국은 벤클이 터지면 주먹질 정도는 가볍지만, 한국에서는 아니었다. 선후배 관계가 뚜렷한 나라였고 벤클 자체가 험악하지 않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용도로 사용할 정도였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백유정이 납득이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때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손을 댄 건 맞으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거니, 행운아?”
이선영은 엄마로서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유행운은 누군가에게 손을 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투수를 바닥에 집어 던지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었다. 저런 모습이 숨겨져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괜찮아요. 오늘 이기면 매직 넘버 하나 주는데, 앞으로 9경기만 이기면 되거든요.”
미리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퇴장은 당했지만, 주심 자체는 유행운의 행동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포수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고 유행운을 말릴 때도 오고 간 대화를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밥 먹으러 갈래요? 저 어차피 내일 출장 정지 먹을 거라, 감독님이 가족들과 시간 보내래요.”
“그렇게 속 편해도 돼?”
“뭐, 이미 벌어진 일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게 사실이다.
유행운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짧은 시간에 토마토 주스를 흡입했다.
“엄마, 소고기 좋아하잖아. 누나도 소 좋아하고.”
지금 유행운은 홀가분했다.
항상 경기 중에는 참는 게 습관이었는데 오늘은 투수를 바닥에 패대기친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소고기 사 줄게.”
* * *
이번 일로 예상치 못한 여유가 생겼다.
유행운은 함께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이 잡아 놓은 호텔로 향했다. 당분간 경기 출전이 어렵기 때문에 이선영과 백유정은 예매 티켓도 취소했다.
“잠깐만.”
유행운은 가방을 챙겨서 백유정 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에 백유정이 미간을 좁혔다.
“자기는 왜 내려?”
“응?”
“난 어머니 먼저 들어가서 쉬시라고 호텔 온 건데.”
“근데?”
“숙소 안 가?”
“응.”
그 순간, 백유정의 눈이 흔들린다.
“오늘 외출 허락받았다니까.”
“아니, 그래도 잠은-”
“여기서 자고 와도 된대.”
“…….”
“들어가자!”
유행운이 신나서 백유정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백유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함께 있는 건 좋지만, 오늘 밤이 몹시 길고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이선영은 쉬고 싶다며 호텔로 들어간 상황이었고 백유정은 주차하고 유행운의 손에 끌려갔다.
“아.”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집어 던지고 씻으러 들어가는 유행운을 보며 백유정이 중얼거렸다.
“오늘 나 또 죽겠네.”
오늘 다사다난했던 대전 호크스 경기는 마지막 공격에서도 점수를 따내며 대승을 거두었다.
압도적인 승리, 최종 스코어는 22: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