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71
171. 이 정도면 열심히 했어
오랜만의 휴식일.
전날에 비를 맞으며 야구를 했더니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다. 오랜만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오늘 밤에는 원정길을 떠나야 한다. 한국처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용기를 타고 편하게 간다. 서비스 역시도 아주 좋았다. 마이너리거와 달리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클러비와 직원들이 알아서 장비와 유니폼을 챙겨 준다.
모든 시스템이 선수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원정길을 떠난다고 해서 그리 고되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그 후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곳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행운아.”
“응, 엄마.”
“우리 아들, 한번 안아 보자.”
이제 다시 원정길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유행운이 두 팔을 벌려 엄마를 안아 주었다. 미국으로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사람은 역시 엄마였다. 하지만 다행히 엄마는 아들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었다.
일찍 결혼해서 좋은 건 역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이선영도 의지할 사람이 생겼고, 덕분에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다.
“나 군대 가는 거 아니야.”
“너 군대 안 갔잖아.”
“응.”
유행운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아시안게임에 차출되어 민현웅의 병역 특례를 도왔는데, 그 일 덕분에 민현웅에게서 값비싼 야구 장비를 선물 받았었다.
물론 군 복무 대신에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했으니, 아예 군복을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가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해, 엄마.”
“괜찮아,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 너 뛰는 것도 보고 엄만 즐거웠어.”
그래 보인다.
이선영은 남편이 죽은 후로는 제대로 된 여행을 가 보지 못했다. 물론 유행운이 야구로 성공하면서 비시즌에 여기저기 놀러 다니게 됐지만, 미국은 처음이었다.
“자, 줄 서서 용돈 받으세요.”
유행운이 미리 준비한 달러를 봉투에 담아 인원수에 맞게 나눠 주었다. 그 줄에는 딸도 있었는데, 당연한 듯 엄마 손을 잡고 작은 손을 내민다.
“우리 이현이는 사탕.”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돈보다는 간식이다.
옆에 서 있던 아내가 노려보는 게 느껴졌지만, 유행운은 모른 체했다. 생각보다 엄한 엄마인 백유정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딸에게 군것질을 허락하지 않았다.
먹인다 하더라도 유기농으로 만든 몸에 좋은 쿠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니 지금 이현이가 눈을 빛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다음에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잘하고 와.”
“네.”
차에 올라탄 유행운이 가족들에게 손을 흔든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고 이제 원정길을 떠나러 하나둘 선수들이 모일 것이다. 유행운이 음악을 들으며 운전에 집중했다.
* * *
새벽에 일어난 유행운은 부스스한 눈으로 노트북을 켰다.
훈련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건 아니었다.
[깝수: 나 오늘 선발 출장인 거 알지???] [깝수: 씹지마 제발 민현웅은 씹었단 말야] [깝수: 거기 몇 시야? 일어났어? 행운님 제발 제 경기 좀 봐주세요]바로 강수현 때문이었다.
강수현은 유행운의 1회차 인생과는 다르게 프로 진출에 성공했다.
그에게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대학을 다니며 참가한 얼리 드래프트에 실패하고 졸업 후에도 프로 입단을 하지 못했다.
바로 군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몸을 만들며 프로리그 문을 두드린 강수현은 숱한 위기 끝에 창원 파이터즈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입단 후 주로 2군에서 경기를 뛰며 좀처럼 1군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었는데, 올해 드디어 1군에 입성했단다.
아주 기나긴 세월이었다.
[유행운: 축하한다]담백하게 답장을 보냈다.
유행운 역시도 강수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평소와 다르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유행운: 뒷발 고정 잘 하고]물론 잔소리는 뒤늦게 덧붙인다.
[유행운: 볼 끈질기게 봐 네가 선발 출장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독도 생각이 있겠지 너한테 원하는 롤은 출루인 거 알지? 탐욕질 금지 ㅇㅋ?]유행운은 미국에 가기 전에 강수현에게 배트를 선물했다. 강수현이 가난하다는 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야구 선수에게 가장 귀중한 선물은 역시 야구 장비였다. 배트를 여러 개 선물해 주었는데, 강수현은 그걸 받으며 울었다.
물론 감동받아서 운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부러워서 우는 거였다. 같은 경원상고 동기인 유행운이 KBO를 씹어 먹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떠나니, 몹시 부럽고 질투도 났을 것이다.
이제는 그게 적응됐는지 그리 싫지도 않았다. 사람이 순식간에 바뀌면 몸져 앓다가 죽는 법이었다.
[강수현: 꼭 나 살아남을게] [유행운: 살아남고 말해라] [강수현: 재수없는 새끼]뭐, 결말은 늘 똑같았다.
유행운이 기지개를 켠다. 물을 데우고 백유정이 챙겨 준 자스민 티백을 텀블러에 넣는다.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하지만 강수현의 경기가 궁금하기는 했다.
[민현웅: 님 일어남?]테이블로 돌아와 노트북을 보는데, 그 옆에 둔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유행운: 네가 이 시간에도 일어나네] [민현웅: 뭐래 나도 타격 안 풀리면 일찍 일어나서 특타라는 걸 하거든???] [유행운: 요즘 좀 해야겠더라 그 특타] [민현웅: ㅗㅗㅗㅗ] [유행운: 깝수 경기 보려고 일어난 거지?] [민현웅: ㅇㅇㅇ 무안타각] [유행운: 너는 애가 아직도 철이 없냐] [민현웅: 뭐 시바] [유행운: 나도 뭐, 친정팀하고 대결이라 썩 유쾌하지 않지만…….]요즘 대전 호크스는 4강 싸움을 하고 있다.
확실히 유행운이 빠지고 점점 나이가 들어 가는 중심 타선의 위력이 예전만 못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대전 호크스는 오랜만에 FA 영입에 박차를 가한다고 들었는데, 잘될지는 모르겠다.
그 팀은 항상 입만 동동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올 시즌은 가을야구에도 합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번 폭락하기 시작하면 바닥이 어딘지 모르고 땅굴까지 파서 추락하는 게 대전 호크스의 특징이기 때문이었다.
[유행운: 그래도 깝수가 잘했으면 좋겠어] [민현웅: 왜?? 무안타 치면 놀리고 싶은데] [유행운: 열심히 했잖아]유행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인생을 다시 살게 되면서 달라진 것이 몇 개 있다면 바로 인간관계였다. 별 접점도 없었던 민현웅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 실없는 농담도 하는, 나름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강수현과는 서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생각보다 추억이 많이 쌓였다.
사실 강수현을 다시 보게 됐다.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고 항상 현실에 안주하기 급했던 인간이었는데, 노력이라는 걸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프로 문턱을 넘지 못한 강수현이었기에 그 성격에 금세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군대를 일찍 다녀오고 회사나 다니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끈질기게 야구를 해서 기어코 프로 문턱을 밟았다.
그 노력을 결코 타인이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민현웅: 나도 열심히 하는데?] [유행운: 모든 걸 너와 비교하면 안 돼 너는 진짜 언제 철들래? ㅉㅉ]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는다.
[4위 창원 파이터즈와 5위 대전 호크스가 창원에서 맞붙습니다. 오늘 대전의 선발 투수는 이승하, 창원은 정지현이 준비합니다.]세월이 흐르면서 KBO도 세대교체라는 걸 한다.
대전 호크스는 어느새 이재희가 선발의 한 축이 되었고 지금은 무난하게 4선발로 뛰고 있었다. 예전보다는 노련미가 생겨서 볼질을 하다가도 정신을 잘 차린다.
이승하는 대전 호크스가 왕조를 세울 때 1번으로 지명한 선수로 일찌감치 군대를 해결하고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는 유망주였다.
담담한 성격에 위기 상황에서도 긴장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점으로 본 최정환 감독이 그를 키워 보겠다고 나섰다.
현재 평균 자책점은 4점 후반대로 시즌 초라는 걸 생각하면 높은 자책점이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행운: 승하라면 깝수가 공략할 만한데…….]운이 좋다.
만약 대전의 1선발인 윤규민과 붙었다면 안타는커녕 빈손으로 물러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첫 실전 경험 상대가 5선발이라는 건 아주 호재였다.
[민현웅: 넌 뭘 원하냐? 깝수 안타?] [유행운: 깝수의 안타와 대전의 승리를 원한다] [민현웅: 욕심 많은 새끼]경기가 시작되었다.
창원의 선발 투수 정지현은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을 잡아냈다. 그 이후에는 땅볼을 유도하며 더블 카운트,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2루수에는 강수현이 있다. 강수현도 뒤늦게 운이 따라 준다면 따라 주는 케이스였다. 창원의 2루수에는 견고한 벽이 있었다. 그러나 그도 이제 나이를 들었는지 예전만 못했고, 서서히 여러 유망주를 기용하며 키워 보는 단계였다.
강수현에게도 겨우 기회가 왔다. 2군에서 4할을 치며 폭격한 덕분에 눈에 띈 셈이었다.
[이승하가 똑같이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했지만, 땅볼 유도를 잘 이끌어 내며 실점 없이 1회를 끝냅니다.]강수현의 타순은 8번.
이번 이닝에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 * *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네.”
“잘할 수 있지?”
“넵!”
잘해야 한다.
강수현이 배트 손잡이에 미끄럼 방지 스프레이를 뿌렸다. 사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다.
야구에 그리 진심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심이 되고 있었다. 앞서가는 동기들을 보며 질투에 눈이 멀어 잠들지 못하고 서럽게 운 적도 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야구고 뭐고 그만하겠다고 집어던졌을 텐데, 이상하게 다시 그라운드에 섰고 배트를 들었다.
[3회 초, 창원 파이터즈 공격. 8번 타자 강수현 선수가 타석에 섭니다.]해설에게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강수현은 무명이었고, 육성 선수 신분으로 창원에 들어와 1년 동안 2군 생활을 한 끝에 1군에 올라왔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선수가 바로 강수현이었다.
“후우…….”
배팅 장갑을 동여매며 긴장되는 마음을 털어 내고 있는데, 상대 포수가 말을 걸었다.
“네가 행운이 친구지?”
“아, 넵.”
“나도 육성 선수 출신이다.”
“네.”
“이번에 잘하라는 건 아니지만, 다른 팀에서는 잘해 봐.”
강수현이 대답 없이 크게 배트를 돌렸다. 연습 스윙을 하고 자세를 잡는다.
초구는 강하게 몸쪽을 윽박질렀다. 강수현이 한 발 물러서며 공을 피했다. 볼 판정을 받고 헬멧을 벗었다가 다시 쓰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 정도면 열심히 했어.’
그런 생각을 가끔 했었다.
이 정도면 강수현치고는 열심히 했다고. 끈질기게 도전했고 연습했고 창원 파이터즈 유니폼을 입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그럼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올 시즌, 시작부터 2군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그 시점은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한 후였다.
이 정도면 열심히 했다.
그 말을 지우기로 했다. 이 정도여서 실력이 더 오르지 않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야구에 더욱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볼.”
투 볼.
공을 집중하여 지켜본다. 빠지는 공에 손대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라고 유행운이 말했다. 너처럼 마른 애들은 빠지는 공이 아니라 실투나 존에 머무는 공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 새끼도 참 그 새끼였다.
시차가 달라서 답장해 주는 것도 귀찮을 수 있는데, 항상 늦더라도 답을 해 주었다. 타격 영상을 보내고 조언을 해 달라 하면 해 준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놈이기도 했다.
딱!
강수현은 배트를 휘둘렀다. 존에 걸리는 공이었지만, 반응이 늦어 커트해 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타이밍을 조금씩 맞춰 간다.
마운드에 있는 대전의 선발 투수는 강수현보다 어린 친구였다. 대전에 1번으로 지명되었으니 팀에서 받는 대우도 다를 것이다.
부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고등학생 때 더 열심히 할 것을…….
“볼.”
포수가 인상을 찌푸린다.
유인구에 좀처럼 달려들지 않는다. 유행운에게 무슨 조언이라도 받았는지, 선구안이 제법이었다.
하위 타순에게 볼넷을 내주면 안 된다.
풀카운트도 아니었기에 답은 정면 승부밖에 없었다. 투심 사인을 보내고 타자 몸쪽으로 바짝 붙었다.
투수 손에서 공이 빠져나왔고 강수현은 빠르게 배트를 냈다.
강수현은 원래 몸쪽공에 거의 대처하지 못하는 타자였다.
그래서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타격폼을 조정했고 군대에서도 유행운의 타격폼을 보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강수현이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타격폼은 유행운이었다. 체구도 비슷하고 야구 선수로서 성공했으니, 배울 수밖에 없었다.
두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허리를 틀며 부드럽게 타격한다.
따아악!
배트를 집어 던지고 1루로 내달렸다.
힘이 실리긴 했지만, 상대 투수의 구위가 좋아서 눌렸을 수도 있다. 1루를 밟고 2루를 향해 달려가던 강수현이 미간을 찌푸린다.
[멀리 가는 타구를 우익수가 점프하여 잡아 냅니다. 이야, 이거 머리 위로 넘어가는 장타거든요? 타구질도 좋았고요. 수비가 너무 좋았네요.] [강수현 선수에게는 참 아쉬운 장면입니다. 올해 처음 1군에 입성해서 첫 타석이거든요. 아무래도 첫 타석에 안타를 신고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여유도 생기는데, 이걸 잡아 내네요.]역시…….
내게는 운이라는 게 없다.
강수현이 눈물을 참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침울한 얼굴에 동료 선수들이 다가와 괜찮다며 위로해 주었지만, 위로가 귀에 닿지 않았다.
그사이.
“타구질 괜찮은데?”
“네, 타석에서도 끈질기고요.”
“안타 코스였어. 잡아 낸 놈이 미친놈이지.”
감독이 뒤를 돌아보았다. 침울한 얼굴로 보호대를 풀고 있는 강수현을 보았다. 2군 선수를 여럿 둘러보고 자료를 검토해서 선택한 내야수가 강수현이었다.
작년에도 선구안도 좋고 발도 빠르다는 말을 들어서 영상을 보긴 했지만, 1군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일단 내야 멀티가 안 된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콜업할 수밖에 없었다. 4할 타율을 올리고 장타력도 좋아졌는데, 이 정도로 소란스럽게 시위를 하면 콜업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괜찮네.”
계산을 마친 감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며칠 더 지켜보지.”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거라고 낙담하는 강수현의 머리 위로 아주 미약한 빛이 내려왔다. 스스로는 그걸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