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72
172. 나만 빼고 봄
강수현은 첫 타석에서 장타를 만들 뻔했다.
아쉽게도 상대의 호수비에 막혔지만, 아주 잘 친 타구였다. 무엇보다 강수현이 버거워하던 몸쪽 공을 공략했다는 것이 아주 긍정적인 요소였다.
[민현웅: 수비도 좀 늘었는데??] [민현웅: 쟨 내가 알던 애가 아니다 뭐 약을 먹었나???]민현웅은 여전히 강수현을 무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나이를 먹고도 철이 덜 들어서 강수현을 아직도 예전 그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당연히 고등학생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수현은 달라졌다. 수비도 보완했고 타격에서도 발전을 이뤘다.
[유행운: 괜히 얘가 1군에 있겠냐] [유행운: 노력한 거야 멍청해서 노력이라는 말도 모르냐??]유행운은 노력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지난 1회차 인생에서 유행운은 강수현처럼 계속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어렵게 입단하여 1군에 콜업된 후로도 불운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처음 강수현이 잘 맞은 타구를 만들었을 때, 순간 유행운은 안도했다. 첫 타석에 장타를 생산하면 없던 기대감도 생긴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 호수비에 막혔다.
[강수현? 얘 처음 보는데 괜찮은 듯???]└ 듣보이긴 한데 2군 폭격했더라
└ 지금까지 봤던 2루수 후보 중에 가장 나음
└ 2군은 솔직히 다 폭격해;;; 1군에 있는 애들치고 2군 폭격 못 하는 애들이 어디 있겠냐
└ 가끔 마산 애들 경기 보면 눈에 띄긴 해
└ 얘 유행운 친구래 ㅋㅋㅋㅋ
└ 짭행운 같네 유격수가 아닌 거 빼면 ㅋㅋㅋㅋ
└ 발 빠르고 수비도 저정도면 2루수로는 ㄱㅊ
└ 아까 그 타구도 존나 아까웠음 그거 빠졌으면 2루 밟았고 무난하게 1점 낼 수 있었는데 ㅉㅉㅉㅉ
└ 최소 보름은 봐야 함 마산에서 콜업해서 아름다운 일주일 보내는 애들 존나 많아 ㅋㅋㅋㅋㅋ
└ ㅇㅇ 분석도 안 됐고 최소 보름은 잘해야 쓸 만한 애임
과거 강수현에게는 독기가 없었다. 반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요즘 강수현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분명 강수현이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없었다. 이제는 야구에 진심이 되었다. 반드시 야구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해 눈빛이 달라지고 그 일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면, 자연히 한 단계 스텝업 하게 된다.
[1, 2간을 꿰뚫는 날카로운 타구! 어! 2루수가 몸을 던집니다! 슈퍼 캐치!]지금 강수현이 그랬다.
발 빠르게 빠지는 타구를 따라간 강수현이 몸을 던졌고, 벌떡 일어나며 1루수에게 송구했다.
1루수에게 더 가까웠던 타구인 만큼 강수현이 커버하기 어려운 위치였다. 그럼에도 강수현은 빠르게 타구를 판단해 스텝을 밟았고 깔끔하게 몸을 던져 공을 건져 냈다.
[아, 좋은 수비입니다! 1루수가 손을 뻗으며 타구를 건드렸는데, 그 순간 속도가 줄어들었거든요. 물론 2루수가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이 타구는 당연히 안타가 되었을 겁니다.] [강수현 선수, 생애 첫 1군 출장인데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첫 타석에서 장타를 만들 수 있었는데, 호수비로 막혔거든요. 이번에는 본인 스스로 호수비로 상대의 안타를 앗아 갑니다.] [제대로 복수를 하네요.]더 이상 강수현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유행운의 눈에는 달라진 강수현이 보였다.
KBO에서 일곱 시즌을 보냈으니, 어느 수준의 선수가 성공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강수현은 유행운의 잔소리를 착실히 들으며 자신의 약점을 보완했다. 듣기로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한동안 경원상고에서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수비에 관해서는 이형호 감독이 탁월했다. 후배들과 훈련하는 한이 있어도 자존심을 버리고 수비를 늘리기 위한 선택을 했다.
이형호 역시도 최선을 다해 강수현에게 수비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결과가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민현웅: 쟤 군필이지?] [유행운: ㅇㅇ] [민현웅: 군대 빨리 잘 해결했네]이제야 민현웅도 강수현을 제대로 보고 있는 듯했다.
[창원 파이터즈, 8회 말 공격 시작합니다. 현재 예상치 못한 투수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각 팀 1점씩을 나눠 가진 상황, 팽팽한 승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선발 투수가 내려간 후로 양 팀 모두 펀치 한 방씩을 주고받았는데요. 이번 이닝에 창원이 리드하는 점수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8회 말.
강수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에서는 상대 호수비에 막혀 돌아가야 했고 두 번째 타석에는 3루수 정면 땅볼이었다.
강수현은 배트를 짧게 쥐고 타석에 바짝 붙었다.
반드시 출루하여 득점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투 볼. 강수현이 공을 잘 골라냅니다. 지난 두 타석을 떠올리면 이 선수, 볼을 제법 잘 골라내요. 선구안이 좋은데, 눈이 좋다는 건 1군에서 좋은 활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죠?] [그렇죠. 유인구에 속지 않으면 투수는 정면 승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강수현이 자세를 잡는다.
[볼. 이제 타자에게 완벽한 히팅 타이밍이 만들어졌습니다.]투수가 제구 난조를 보인다.
완벽한 히팅 타이밍이 주어진 강수현은 뒤로 물러서며 숨을 골랐다. 지금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등 뒤로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배트를 쥔 위치를 조절한다. 이제 급한 건 투수였기에 강하게 배트를 휘두를 생각이었다.
강수현이 투수를 응시한다. 와인드업을 하고 강하게 공을 뿌리는 걸 뚫어지게 바라보며 강하게 공을 타격했다.
[따아아악!]유행운이 경기에 집중한다.
강하게 잡아당긴 타구가 1루수 키를 넘겼다. 그대로 날아가던 날카로운 타구는 파울라인 근처에 바운드되었고 우익수가 허겁지겁 수습하러 달려갔다.
좌타자인 강수현은 발까지 빠르다.
순식간에 1루를 지나 2루를 밟았고 우익수가 공을 수습하는 그사이에 3루를 향해 내달렸다.
“됐다.”
유행운이 3루를 향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강수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익수가 던진 공은 2루수를 거쳐 바로 3루수에게 전해졌지만, 이미 늦었다. 강수현이 베이스를 손으로 터치한 채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세이프! 정말 발 빠릅니다! 깊숙한 타구를 우익수가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여 3루까지는 막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뜬 볼 하나면 충분히 추가 득점이 나올 수 있습니다!]강수현이 손으로 베이스를 터치한 채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손과 발이 함께 베이스를 터치했고, 서서히 손을 뗀다. 베이스를 밟고 일어난 강수현의 얼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민현웅: 쟤 우냐?] [유행운: ㅇㅇ] [민현웅: 약 먹었냐? 좋다고 세리머니 하다가 아웃당할 상인데] [유행운: 확실히 예전에는 그랬지 ㅋㅋㅋㅋㅋㅋ] [민현웅: 진심 낯설다 낯설어]강수현이 눈물을 닦고 어딘가를 보며 손하트를 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그 어이없는 세리머니가 이제야 강수현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민현웅: ㅋㅋㅋㅋ 모솔이 무슨 하트 세리머니???] [민현웅: 존나 웃기넼ㅋㅋㅋㅋㅋ] [유행운: 야, 너 몰라?] [민현웅: ??? 뭐???] [유행운: 쟤 여자친구 있음] [민현웅: ????] [유행운: 몰랐음? ㅋ] [민현웅: 지랄 ㄴㄴ] [유행운: ㅉㅉ 진짜 모솔 새끼가 입은 잘 털어요 ㅋ] [민현웅: 닥쳐 닥쳐!] [유행운: 루저 새끼 ㅋㅋㅋㅋ]놀랍게도 강수현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다.
처음 썸은 대학 시절에 탔다. 같은 학교 출신인 상대는 무적야구를 응원하러 왔다가 강수현과 관계가 깊어졌다.
서로 관심이 있어서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마셨지만, 연애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강수현이 군대에 다녀온 후에 심란한 마음에 술을 사 달라 연락했던 날, 첫 키스를 했단다.
강수현에겐 첫 키스였고 그녀에게는 첫 키스는 아니었다. 그 이후에 강수현이 고백하여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민현웅: 세상이 나를 억까하나……???]민현웅은 이 순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강수현이 인생 첫 인터뷰를 경험했고, 하트 세리머니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강수현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여자친구를 언급했다. 유행운의 말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민현웅: 시발 나쁜 새끼들…….]유행운은 인터뷰를 보다가 끄고 이제 샤워를 하러 들어간 참이었다. 테이블에 둔 핸드폰이 반짝인다. 계속 민현웅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민현웅: 왜 나만 뻬고 다들 봄이냐……?왜 내 겨울은 끝나지 않는 건데.
* * *
유행운은 평소보다 빠르게 출근했다.
LA 에인절스와의 4연전이 끝나면 보스턴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볼 수 있다. 그 생각에 힘이 절로 나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가족들과는 영상 통화를 하며 인사를 대신했다. 이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밥도 잘 먹고 노래도 잘 불렀다.
이현이가 TV를 볼 수 있는 순간은 동요를 부르는 그 순간뿐이었다. 백유정은 한국어로 부르는 동요도 틀어 주었고 가끔은 영어로 부르는 동요 영상도 틀어 주었다. 유행운이 계속 미국에서 뛸 확률이 높으니, 미리 영어를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쩌면 이현이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능숙하게 할 수도 있다. 유년기에 더 가깝게 들을 언어가 영어였기 때문이다.
“럭키, 일찍 나왔네?”
하체 운동을 하고 있는데,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아카치가 서 있었다.
“너야말로 일찍 나왔네.”
“눈이 일찍 떠졌어. 내가 1등일 줄 알았는데, 네가 와 있는 거 보니까…….”
유행운이 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하체 운동을 이어 갔다.
“우리 운명인가?”
쿵.
기계가 거칠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유행운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아카치를 응시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네.”
마치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지 않았다는 말이나 똑같다. 유행운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아카치가 한국말로 응수하는 유행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새 그 옆에 다가온 아카치가 미소를 지었다.
유행운이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는 듯.
“나랑 오늘 훈련 같이 하자.”
유행운은 대답 없이 하체 운동을 이어 갔다.
“요즘 내 생각에는 네 기운이 좋은 것 같아. 부적도 좋지만, 너와 함께하면 뭐랄까…….”
또 쓸데없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든 잘 풀리는 느낌? 네가 2번 타순이라 좋아. 내 뒤에 있으니까, 요즘 내 성적이 좋은 거 같아.”
유행운이 한숨을 쉬며 잠시 운동을 멈추었다.
“내 덕분이 아니라, 네가 잘한 거야.”
“오!”
“…….”
“착하기까지!”
“…….”
“넌 천사야!”
미쳤나 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