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2
2. 꿈인가 현실인가
눈앞이 아득해졌다.
유행운의 눈에 다시 환한 빛이 쏟아졌을 때는 날아오는 공이 눈에 보였다.
유행운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허리도 굽혔다.
“허억!”
파앙-
뒤늦게 놀란 숨을 내뱉었을 때, 귀에는 포수가 힘겹게 포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숙인 채로 놀란 눈을 깜빡였다.
심장이 뛰었고 정신이 없었다.
“괜찮아?”
뒤늦게 고개를 드니 포수 마스크를 벗은 앳된 얼굴이 보였다.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은 유행운은 놀란 눈으로 포수를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투수를 본다.
역시나 앳된 얼굴이었다. 볼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투수 이현서가 모자를 벗으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유행운, 계속할 수 있겠나?”
감독 이형호가 더그아웃에서 걸어 나오며 유행운에게 말을 걸었다.
머리를 향해 공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타자가 몸을 숙여 피했다.
공을 맞은 건 아니었기에 계속 경기를 해도 무리가 없었지만, 유행운의 행동이 정상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뭐지?’
지금 유행운은 투수를 멍하니 보다가 자신의 볼을 꼬집고 있었다. 그러다, 투수 뒤를 버티고 있는 야수들을 본다.
지금 유행운이 있는 공간은 야구장이었다.
외야 담장에는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유행운은 현수막을 멍한 눈으로 보았다.
[경원상고 야구부 재창단을 축하합니다!]경원상고 야구부.
그 글자에 유행운의 눈이 커졌다.
“괜찮나?”
이형호 감독은 퍽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행운을 보고 있었다.
머리에 맞은 건 아니었는데, 꼭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 감독님?”
“그래. 머리 맞은 거야?”
“아, 아니요. 아닙니다.”
“근데 왜 그러고 있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유행운은 말없이 제 손바닥을 보았다.
낡은 야구장갑에는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이 장갑은 유행운의 기억에 선했다.
중학교 시절에 사용하던 배팅장갑이었고 프로 진출해서도 버리지 않은 추억의 물건이었다.
‘이 장갑을 끼고 있다면-’
유행운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나무배트를 보았다.
경원상고에서 사용하는 연습 배트였다.
‘이 경기장이 경원상고 전용 연습구장이라면.’
이 현실이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이 흔들렸다.
“감독님 교체할까요?”
타격코치가 경기가 지연되자, 조심스럽게 이형호 감독에게 의견을 묻는 그 순간.
짜악!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장갑을 벗은 유행운이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친 것이다.
“음, 그래야겠지······?”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이 충격으로 정신을 놓았다고 판단했다.
교체를 위해 타격코치가 더그아웃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재창단되는 경원상고 야구부의 신입 부원을 공개 테스트하는 날이었다.
부원을 채우기 위해서 진행한 테스트였고 사실상 즉전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원상고 코칭스태프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키워서 쓸만한 재목을 찾는 것.
“괜찮습니다.”
뒤늦게 유행운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유행운은 배팅 장갑을 끼고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형호 감독은 다른 선수를 기용할 생각이었다.
1차 기초 체력 테스트를 통과한 인원은 유행운 포함 35명이었다.
합격자 수는 정해놓지 않았다.
이 안에서 단 한 명만 합격할 수도 있었고 열 명이 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야구를 중도에 그만 둔 유행운은 탈락에 가까운 참가자였다.
“그, 그래?”
이형호 감독은 미심쩍다는 눈치였다.
“네.”
차분한 목소리.
유행운은 바닥에 떨어진 배트를 주워 들고 또렷한 눈빛으로 이형호 감독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고 고민하던 이형호 감독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감이 없는 선수였지만, 타석 하나는 부여해야 공평했다. 그렇기에 참가 조건을 걸지 않았다. 체력 테스트에서 통과하면 그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었고 순수하게 경쟁으로 신입 부원을 뽑을 생각이었다.
“좋아. 안 되겠으면 말하고.”
“아닙니다.”
유행운은 헬멧을 고쳐 쓴다.
이게 꿈이라고 해도 이 타석은 지키고 싶었다. 과거 숱한 실패를 겪었던 유행운은 그 수많은 실패 중에서 이 자리에서 겪은 실패가 가장 뼈아팠다.
‘꿈이라도 좋아.’
배터박스에 선 유행운은 가볍게 땅을 고르고 스윙을 크게 했다.
‘이번에는 그냥 물러서지 않아.’
경원상고 야구부.
유행운을 다시 야구의 길로 부추긴 팀이 경원상고였다.
부친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야구를 못한다는 충격과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에 유행운은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다.
공부에 뜻이 없었던 유행운은 경원상고에 입학했고 야구는 의도적으로 피하려 했다. 그랬던 경원상고가 30년 만에 야구부를 재창단했다.
그때 유행운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다.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이현서가 로진백을 손으로 두드린다.
후, 손바닥을 불자 하얀 가루가 사방에 퍼졌다.
‘만약 내가 야구부에 들어왔더라면.’
조금 더 빨리 야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면.
유행운에게는 후회로 점철된 순간이었다. 평범했던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야구부가 재창단할 거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유행운은 경원상고 야구부원이 되고 싶었다. 중간에 그만둬야만 했던 야구를 가까이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었다.
“후욱!”
이현서가 공을 뿌린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이현서는 평균 구속이 132km/h였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1군에 콜업된 프로 선수였던 유행운에게는 가벼운 구속이었다.
이현서는 투피치 투수였고 구사할 수 있는 변화구는 슬라이더가 유일했다.
그리고 한복판에 꽂힐 것 같았던 공이 유행운의 배트를 유혹했다.
유행운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공을 그대로 타격했다.
배트 스피드도 좋았고 가볍게 결대로 밀어 쳤다.
“괜찮을까요?”
“글쎄.”
따아악!
경원상고 코칭스태프가 우려 섞인 대화를 주고받던 그 순간, 호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뜬볼?”
타격코치가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이형호가 고개를 젓는다.
“저게 뜬볼로 보이나? 타격코치 때려쳐라.”
“네?”
기대치가 원체 없었던 선수라 타격코치는 날아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걸 알면서도 ‘뜬볼’이라 말했다.
“최소 2루타야.”
“넘어가는데요.”
기대감이 없던 건 이형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예리한 타격이었다. 맞는 순간, 정타였고 장타를 예상했다.
“최소라고 했잖아.”
사실 홈런을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발사각이 그리 높지 않았고 밀어 치기로는 담장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운일까요?”
“운?”
그럴 리가.
“정확히 밀어 쳤어. 당겨 친 거라면 휘두른 거에 운 좋게 배트 중앙에 맞았다고 할 수 있겠지. 실투도 아닌 슬라이더를 밀어 쳐서 넘겼는데.”
별 볼일 없는 선수라고 생각했던 이형호가 혀를 찼다.
선수를 쉽게 판단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게 운일 리가.”
* * *
정작 홈런을 친 유행운은 배트를 든 채로 넘어가는 타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미 공은 담장을 넘어갔지만, 유행운은 베이스를 돌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
타격을 한 후에 손바닥이 울렸다.
슬라이더를 그대로 밀어치는 그 순간, 홈런을 직감했다.
그 직감은 타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이현서는 공이 배트에 맞는 그 순간, 홈런임을 깨닫고 주저앉았다.
“뭐해?”
주심이 유행운에게 눈치를 준다.
“아.”
“베이스 안 돌고 뭐해?”
다시금 질책하는 주심을 보며 유행운이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뒤늦게 그라운드를 돈다.
1루로 향하며 이현서에게도 늦게 베이스를 도는 것에 미안함의 제스처를 취했다.
‘분명 삼진이었지.’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현서가 던지는 공에 손도 못 대고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당연히 테스트에 합격하지 못했고 다음 타석은 서보지도 못하고 교체되었다.
“유행운!”
홈플레이트를 밟고 들어오는 유행운을 이형호 감독이 불렀다.
“네?”
“잘했다.”
손을 내미는 이형호 감독을 보던 유행운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과거에는 짧게 스쳐 지나간 인물이었지만, 유행운에게 이형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직 테스트를 통과하지도 못한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인성이 잡힌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야구할 수 있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실력이 부족했기에 야구부 탈락은 당연했다.
여러 가지 후회는 남는다.
수능 공부에 매진해야 할 나이에 야구에 재도전하는 자신과 경원상고 야구부에 속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좋은 지도자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서글픔.
“감사합니다.”
“홈런은 네가 쳤다.”
“그럼 홈런 친 제게 감사하겠습니다.”
이형호 감독은 정강이 보호대를 푸는 유행운을 가만 쳐다보았다.
“너 야구 얼마나 쉬었지?”
이미 기초 테스트 후에 합격자를 상대로 간단하게 면담을 진행했었다.
유행운은 또렷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야구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야구를 그만둔지 너무나 오래되었다는 것.
그 순간, 이형호는 유행운이 경원상고 야구부에 합격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오늘 유행운은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구미가 당겼다.
“4년 정도 야구 못했습니다.”
“음.”
침묵이 흐른다.
이형호는 그 순간, 유행운의 공백기가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을 했다.
“수비는 어느정도 하지?”
“구멍은 아닙니다.”
“그래?”
“네.”
유행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유행운은 타격 재능은 있었지만, 기본기 부족으로 수비에서 애를 많이 먹었다.
중학 시절에는 내야수로 뛰며 괜찮은 센스를 갖췄지만, 실전 경험이 뚝 끊기며 기본기도 무너졌다.
독립 야구단에서 다시 기본을 잡고 프로에 진출해서는 1루수와 2루수를 오가며 야구를 했다. 그렇기에 수비에 관해서는 아무리 과거 경험이 있다고 해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확인해 보면 알겠지.”
이형호는 문득 어서 유행운이 수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기대가 없었던 선수가 처음으로 이형호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감독님.”
“응?”
“이거 꿈은 아니죠?”
유행운의 질문에 이형호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꿈이길 바라냐?”
그 물음에 유행운이 고개를 저었다.
“꿈 아니니까, 수비 준비나 해.”
“네.”
“너 포지션이 2루수라고?”
“네.”
“기대하마.”
유행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자리로 돌아온 유행운은 이어지는 경기를 보며 낡아빠진 글러브를 들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글러브.
사실 지금 유행운은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소중하게 글러브를 쓰다듬던 유행운이 작게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 순간, 유행운의 심장이 뛰었다.
다시 야구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행운의 심장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