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34
34. 식물타선
‘유행운을 뽑겠다고?’
서윤철 팀장은 경원상고 훈련이 방해되지 않는 공간에서 아주 조용히 유행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대전 호크스의 반응도 확인하고 있다.
‘웃기는 소리!’
그 수가 훤히 보인다.
부산 마린스가 유행운에게 관심 있다는 걸 알고 재뿌리기 위해 하는 말이 분명했다.
“솔직히 민현웅도 좋죠. 괜히 작년에 민현웅 먹으려고 난리났겠어요.”
옆에서 박 대리가 말을 건다.
민현웅은 2학년 때, 6할이 넘는 타율과 주말리그에서만 홈런을 10개를 때렸다.
고교 시절에는 홈런이 별로 없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활약이었다.
괜히 투수를 제치고 최대어라 불린 게 아니었다.
“알지, 민현웅 먹어도 완전 대박인 거.”
지금 그는 유행운의 타격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민현웅이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타고난 몸을 봐. 저기서 벌크업을 한다? 힘으로는 쟤를 이길 애가 어디 있겠냐. 게다가 힘만 갖춘게 아니라 전체적인 운동신경도 좋아서 아주 맛있겠지.”
민현웅은 근수저다.
뭘 하지 않아도 근육이 올라온다. 게다가 뭔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타고난 힘 자체가 장사였다.
그런데.
“쟤는 뭐냐고.”
여기서 서윤철은 의문이었다.
앞에서 열심히 스윙을 하고 있는 유행운.
그는 몹시 말랐다. 보통 사람보다도 말랐고 지금은 어느정도 살이 붙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른 멸치 같았다.
“어떻게 저 몸에서 그런 힘이 나오냐고.”
그게 의문이었다.
심지어 유행운은 홈런 개수로 민현웅을 앞섰다. 초반 민현웅이 상대에게 견제 당했다는 걸 감안해도 그 차이가 뚜렷했다.
“밀어치기를 하는 걸 보면 또래보다 기술이 뛰어난 건 알겠는데, 홈런은 다른 문제 아니야?”
그 이유다.
지금 서윤철이 투수 최대어를 버리고 유행운으로 갈아탄 이유.
“그래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뭘.”
“진짜 대전에서 유행운 픽할 수도 있잖아요. 거기 유격수 급한데.”
“그럼 민현웅 먹는 거지.”
유격수가 급한 건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부산 주전 유격수는 자동 열린문이 따로 없었다. 제대로 된 유격수, 아니 수비만 걸출한 유격수도 잘 팔린다. 그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다.
“민현웅 오면 최소 홈런 15개 이상이야.”
쩝, 입맛을 다시며 서윤철이 말했다.
“유행운을 뺏겨도 최소 미래의 4번 타자는 확보되는 거지.”
그리고.
“백유진 좀 체크하고 가자.”
사람 눈은 다 똑같다.
경원상고에서 노릴만 한 자원은 딱 셋.
유행운, 민현웅, 백유진이다. 그리고 백유진은 얼리픽이 예상되는 인재였다.
“2라운드 정도면 괜찮겠지?”
* * *
“2라운드에 뽑자.”
동시에 대전 호크스 최준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1라운드에 쓸만 한 투수는 다 빠져. 그럼 백유진이 남는단 말이야.”
이미 백유진의 로케이션은 많이 완성된 상태였다.
구속은 140km/h 중반을 던지고 구위도 좋다. 올해 선발 전환하면서 제구력도 한층 안정되었으며 여러모로 구미가 당기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2라 1번이면 거의 1라운드 급인데요?”
“알아. 거기서 안 뽑으면 다른 팀이 채갈거야.”
백유진이 이렇게 떠오른 이유는 최근 원일고와의 승부 때문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항상 넉넉한 점수 지원을 해주었던 타선이 침묵했다. 유행운과 민현웅을 거른 원일고의 작전에 그대로 뒤로 넘어진 격이었다.
그 상황에서 백유진은 흔들리지 않고 9회까지 마운드에 올랐다.
“너도 투수니까 알지 않냐?”
“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거 말이야. 프로 진출 후에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구속? 구위? 아니야. 정신력이야.”
“그럼 왜 이주영이 최대언데요?”
“그건 실링 때문이고. 타고난 재능의 차이 때문인데, 그걸 뒤로하면 가장 중요한 건 멘탈이라고.”
최 팀장이 답답하다는 듯 김 대리를 흘겨보았다.
“드래프트에서 투수 같은 경우는 최대한 그 재능의 크기를 본다. 이주영의 구속, 구위, 그리고 옆구리 투수라는 희소성이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최대어인 거야.”
“아, 네.”
“그리고 주태양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제구가 모래처럼 흩날리지만, 190이 넘는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타고난 손 크기가 재능이 크다고 보는 거고.”
그에 반해.
“백유진은 평범하지. 신체 사이즈도, 구속도 고교 치고 빠른 거지, 프로 오면 평범하고. 구위도 적당히 불펜 수준이니까.”
“평범이요? 팀장님은 저 얼굴이 평범해 보이세요?”
아, 죽일까?
“내가 지금 얼굴 얘기했냐? 실력 얘기했지!”
확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다.
“아무튼 이주영은 가다듬어야 하는 선수야.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 멘탈도 다지고, 지금까지 구속만 믿고 직구로만 승부했던 버릇도 고치고. 프로는 직구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반대로.
“백유진은 당장 써먹어도 돼. 로케이션이 안정됐고 저 정도로 멘탈을 갖춘 신인이 몇 없거든.”
그만큼 기대하는 크기가 이주영과는 다르겠지만, 즉전감으로 사용하기 딱이었다.
“유행운은 말할 것도 없다.”
탐난다는 듯 유행운을 바라보며 최 팀장이 말했다.
“쟤는 타고난 재능의 크기도 큰데, 심지어 수비는 완성형에 가까워.”
따아악!
그 순간, 유행운이 친 타구가 멀리 날아갔다.
“민현웅보다 더 즉전감이야. 방망이에 공을 맞추는 재능은 타고났고 수비는 프로에 놔도 문제가 없다. 신인이 수비 하나만 완성돼도 1군에 써먹는데, 타격까지 재능 있다? 세금을 먹더라도 1군에서 키워야지.”
“진심으로 유행운을 1픽 하실 거예요?”
언제나 그렇다.
김 대리는 안전한 선택을 하자고 설득했고 최 팀장은 계속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내가 왜 자꾸 유행운에게 집착하는 줄 알아?”
“유, 유격수라서요?”
“아니, 혼자 둬도 잘 클 애라 그래.”
슬프게도.
“우리는 야구를 못하지만, 육성은 더 못하잖아.”
유격수는 키우기 힘들다.
게다가 FA 시장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매물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대전 호크스는 지금까지 유재원을 유격수로 기용하고 있었다.
“황금사자기에서 경원상고가 8강에 올라가면 진지하게 단장님께 말씀드릴 생각이다.”
사실 지금까지 최 팀장은 누차 단장에게 유행운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민현웅이나 뽑으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단장님도 직접 보셔야 해.”
왜 지금 10구단이 유행운에게 집중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해.”
* * *
유행운은 스카우터가 보고 있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관종인 민현웅은 일부러 더 세게 타구를 날려 보내며 무력 시위를 하는 듯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프로는 간다.
순번의 차이가 있을 뿐, 이제는 프로구단에게 지명 받지 못할 거라는 위기감 따위는 없었다.
“으이이익!”
“더 올려!”
유행운 관리 하에 류진운은 하체 운동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강수현 너는 공이나 제대로 맞쳐.”
강수현은 티배팅 연습에 한창이었다.
사실 유행운은 마이웨이로 가던 길을 쭉 걸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아니, 밥상 차리라니까 매번 엎질 않나. 심지어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 타자 왜 하냐?”
식물타선 때문에 승리를 먹지 못하는 그 이유 때문이었다.
“감독님이 우리를 왜 상위타순에 놨겠냐, 어?”
이형호 감독은 상대의 견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행운과 민현웅을 상위순번에 놓았다.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뒤에 나오는 타자들이 하나같이 밥상을 엎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진짜 계속 해야해?”
강수현이 잠시 배트를 내려 놓으며 물었다.
“네 성적을 보고 생각해라. 2할 1푼이 뭐냐? 2할 1푼이. 사람이야?”
“할게.”
다시 배트를 든 강수현이 카운트를 세며 티배팅을 시작했다.
“202개.”
그때마다 유행운이 공을 올려 주었다.
따악.
“203!”
“허리 더 틀어.”
류진운도 옆에서 바들거리며 스쿼트를 하고 있다.
지금 이 둘이 따로 유행운과 운동하는 이유는 잠시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매일 특타는 진행한다. 하지만 코치의 수는 적었고 중간에 시간이 빌 수밖에 없었다.
“206!”
“나 황금사자기.”
“207!”
“8강 가야해.”
“208!”
“너희 때문에 못 가면.”
“209!”
“진짜 죽는다.”
“210!”
따아악!
타구가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강수현이 뒤로 넘어갔다.
“300!”
이제 황금사자기까지 D-7
갈 길이 멀다.
“미친놈아, 일어나.”
식물타선 선봉장인 주제에 쉴 생각을 해?
“200개 더 쳐.”
“으아아악!”
“사람 될 때까지.”
“살려줘!”
유행운이 배팅 티 위에 공을 올린다.
계속 미적거리는 강수현의 엉덩이를 가볍게 걷어차고.
“쳐!”
지옥의 훈련을 시킨다.
“301!!”
소리를 지르며 강수현이 배트를 돌렸다.
“이러다 죽어!”
“안 죽어.”
따악!
“죽어!”
“안 죽어.”
따악!
“나 죽어······!”
“안 죽어.”
기어코 500개를 채운 유행운은 더 이상 배팅 티에 공을 올리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강수현이 흐느끼며 몸을 들썩인다.
“거 봐, 안 죽었잖아.”
그 위로 냉정한 목소리가 내려 앉았다.
* * *
늦은 시간.
이형호는 대진표를 보며 상대팀을 분석하고 있다.
처음 주말리그 스타트는 좋았지만, 끝에 팀이 와르르 무너졌다.
신생팀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했고 덕분에 황금사자기 전망도 그리 좋지 못했다.
“강팀은 피해서 다행이에요.”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한결 낫긴 하지.”
재원고등학교.
경기권 B조에 속한 팀으로 6위, 즉 꼴찌였다.
황금사자기는 조 1위는 물론 2위, 4위, 6위, 8위까지 참가 티켓을 얻고 그 외의 순위는 청룡기로 간다.
나름 1회전은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재원고는 승부를 할까?”
이게 요즘 이형호 감독을 괴롭히고 있다.
서울권 B조는 원일고를 시작으로 경원상고를 잡기 위해, 상대의 강타자를 모두 거르는 전략을 썼다.
공교롭게도 원일고를 제외한 모든 팀은 그 전략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원상고의 뚜렷한 약점이라는 것이 온 세상에 밝혀진 순간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주말리그와는 달라서요.”
“고민이 되는군.”
기존 라인업을 그대로 가져가느냐.
아니면 수정된 라인업을 쓰느냐.
“이 팀에서 행운이와 현웅이를 제외하면 강심장이 누구지?”
“아, 강심장이요?”
어떡하지.
이 팀은 새가슴 뿐인데.
“으으음, 잠시 생각 좀 하겠습니다.”
타격코치가 미간을 좁히며 타자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딱히 믿음이 가는 타자는 없었고.
“그나마 해원이 아닐까요?”
고민과 생각 끝에 신해원이라는 결론이 났다.
“1학년이라 아직 더 보완해야 하지만, 이번 주말리그에 전경기 출전하면서 실력이 늘었어요.”
“신해원이라.”
신해원.
경원상고의 유일한 1학년이었다.
“비큐가 좋아서 희플이나, 스퀴즈에도 능합니다.”
경원상고는 이제 쥐어짜내는 야구를 해야 한다.
유행운과 민현웅을 테이블세터에 두고 무사 1,2루 상황에서 밀리지 않고 안타를 쳐줄 타자가 급했다.
“허어. 중요한 역할을 신입생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니.”
역시 내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없다.
“테이블세터에 유행운, 민현웅. 중심타선에는 신해원, 강민하, 이장현 순으로 짜지. 마지막 8번, 9번은 류진운, 강수현으로.”
즉, 1회에 무사 1,2루를 만들어 최대한 점수를 내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하위 타순에서 찬스를 만드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다.
“잘할 겁니다. 감독님이 걱정하시는 이유를 알지만, 재원고는 사실 여러모로 레벨이 다르니까요.”
그 사실을 이형호 감독도 알고 있었다.
재원고등학교의 색 자체가 기존에 맞붙었던 팀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팀의 전력이 유행운과 민현웅 없이는 처참하다는 걸 이미 경험했으니.
“얘들아.”
황금사자기는 단판 승부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1패를 안는 순간, 그대로 탈락이다. 패자부활전? 그딴 것도 없다.
“결국 오늘이 왔구나. 긴 밤, 설레서인지 아니면 떨려선지 모르겠지만, 나도 잠을 설쳤다.”
이형호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선수들을 보았다.
“야구는 그 누구도 모른다. 약팀으로 분류되는 팀이 강팀을 이길 수도 있고, 강팀도 전력이 약한 팀에게 질 수 있다. 그게 야구야.”
황금사자기 1회전을 마주하는 감독의 절실함이 느껴졌다.
“방심하지 말고 집중하자. 타자는 타석에 서서 최대한 강하게 칠 수 있도록 힘을 내자. 물론 공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투수는 단 하나의 공도 허투루 던지지 말자. 야구는 집중력이 강한 팀이 이긴다.”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대회가 시작되었다.
“행운아.”
“네, 감독님.”
“힘들겠지만, 조금만 힘내다오.”
1번타자.
유행운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감독을 보며 웃었다.
“승부가 오면 담장 밖으로 날려버릴게요.”
며칠 째 잠을 못 잔 이형호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원일고와의 승부 이후로 감독은 계속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 부탁한다.”
1번타자로서 타석에 선다.
땅을 고르고 배트를 가볍게 휘두른다.
“플레이 볼!”
주심의 목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