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85
85. 타이밍
난데없는 열애설.
이건 유행운에게는 또 다른 위기였다.
아니, 사실 위기도 아니었다. 범죄나 비도덕인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열애설이었다. 하지만 이 열애설은 유행운을 궁지로 몰았다.
“엄마, 아니야.”
“행운아.”
“진짜 아니야.”
첫 번째로 같은 집에 사는 엄마였다.
유행운의 모친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으로 열애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모든 걸 알 수 없다지만, 그래도 남보다 아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라니?
‘우리 아들이 고자는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야구를 그만두고 난 후에 유행운은 방에만 있었다.
가끔 문을 열어 보면 핸드폰을 만지고 있거나 자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학교를 가는 일 말고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던 아들이었고 야구를 다시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야구를 다시 시작한 아들은 조금 더 생기가 넘쳤다.
운동을 하고 대화하는 시간도 늘었지만, 문제는 오직 야구밖에 모르는 소년이었다. 그게 내심 걱정이었던 이선영은 아들의 열애설을 보고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엄마는 괜찮아.”
유행운은 오해를 풀어 보려 노력했지만, 그의 모친은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듯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야구만 하고 여자에게 관심 없는 줄 알았어.”
“아니, 엄마. 잠깐 내 말 좀-”
“엄만, 행운이가 누굴 만나도 상관없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엄만, 다 좋아.”
이선영이 밝게 웃었다.
아들의 생산 능력을 확인했으니, 이제 딱 하나 남은 걱정도 내려놓았다.
“이거 다 오해라니-”
유행운은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식탁에 놓은 이선영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액정에 보이는 발신자는 ‘순영’이었다.
바로 모친의 큰언니.
유행운에게는 큰이모였다.
“응, 언니.”
이선영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어, 봤어? 나도 방금 확인했어. 그치, 예쁘지? 같은 구단 친구 누나더라고. 그럼. 우리 행운이가 여자 보는 눈이 좋아.”
아.
“미치겠네…….”
유행운은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가 이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 모든 건 연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들켜서 창피한 나머지 부정하는 거라 믿는 듯했다.
지금 이모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밝았고 아들이 연애하는 그 사실 자체가 행복한 듯 보였다.
“네, 유행운입니다.”
채리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연히 주제는 열애설이었다.
채리원은 열애설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 유행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에요. 아직 그런 사이 아니에요.”
이 열애설은 연예인도 아니었고 야구선수였기에 큰 파급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현재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가장 핫한 존재 중 하나가 유행운이었다.
관심이 집중되었고 벌써 유행운은 선배들에게서 그 열애설이 ‘진짜’인지 물어보는 문자를 많이 받았다.
– 아직이요?
“네?”
– 아직이라는 말은 여지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네?”
유행운이 잠시 입을 다문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 경기가 끝나고 가진 식사 자리는 즐거웠다. 특히 백유정과 대화가 제법 잘 통했다.
백유정은 동생은 쥐어패지만, 유행운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몹시 친절했다. 여러 가지 대화를 했다.
주로 야구에 대한 이야기였고 때때로는 사적인 이야기였다.
백유정이 야구 이야기를 할 때는 유행운이 중심 화제였다. 그날 그라운드 홈런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했고, 도루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얘기했다.
느낌이 좋았다.
소고기는 빠르게 구워야 한다며 집게를 드는 모습, 맛있게 익은 고기를 엄마에게 먼저 주고 그다음에 유행운에게 챙겨 주는 모습. 유행운 역시도 집게를 들어 백유정에게 고기를 구워 주었다.
불현듯, 이런 여자라면 한번 만나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 오.
지금 통화 중인 채리원은 도파민이 싹 돌았다.
아주 재밌는 주제였고 야구 기계 같았던 유행운에게서 처음 보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하기야, 20살은 한창 연애에 미칠 나이기도 했다.
– 제가 이건 에이전트가 아니라 나이 더 먹은 여자로서 말하는 건데요.
“하지 마세요.”
– 일단 들어 보세요. 연륜이 담긴 이야기니까.
채리원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 백유정 씨, 행운 선수한테 관심 있어요. 쉽게 말하자면 호감? 그거, 사진만 봐도 보여요. 행운 선수 말대로 사람 일은 모르는 거 맞아요. 그거 맞지. 사람 일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연애는 타이밍이거든요? 행운 선수가 보기에도 백유정 씨 좋은 여자 아니에요? 예쁘지, 집안 좋지, 명문대 출신에, 남동생 전도유망한 야구선수지.
그 말인즉슨.
– 이런 여자는 금방 누가 데려가요. 그러니까, 망설이는 건 쓸데없는 시간 낭비예요. 인생은 타이밍. 연애도 무조건 타이밍! 아셨죠?
알긴 뭘 알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행운은 연애 감정에 서툴다.
지난 1회차에서 여자를 만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랑이 오래간 적이 없었다. 그 인생에서 유행운은 보잘것없었다.
돈도 없고 성공도 하지 못했다.
자리를 잡지도 못했고 손해 보는 야구만 해 왔던 유행운이다.
해서, 연애라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고 오히려 거리를 두었던 유행운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연애할 시간도 없었으며 사랑 타령에 감정 소모를 하기에는 야구를 너무나 못했다.
야구를 잘해야만,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만 다음이 있다.
그다음이 연애였고 여자였으며 사랑이었다.
– 그럼 이건 부정하면 될까요? 열애설이요.
유행운이 심호흡하며 말했다.
“일단 유정 누나한테 확인하고 전화드릴게요.”
– 어머.
“…….”
– 누나래.
청춘이다.
채리원이 이런 말을 작게 중얼거린 듯한 착각이 든다.
유행운이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째, 오늘 하루가 꽤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백유정.
그녀는 외모로 유명하지만, 그 외모 때문에 본인이 갖고 있는 역량이 깎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백유정에겐 남동생이 있다. 바로 백유진이었고 그 백유진은 현재 대전 호크스 소속 1군 투수였다.
백유진은 20살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성공했다.
당연히 백유정이 누나로서 남동생의 그늘에 가려질 것 같았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단독][슈퍼루키를 사로잡은 미모의 대학생은 누구? …… 한국대 언론정보학과 출신 백유정]백유정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바로 한국대학교였으며 전공은 ‘언론정보학과’였다.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 백유정은 어릴 때부터 영특했으며 공부로는 재능이 타고났다.
[요정님…… 없는게 뭐임? 공부 잘해 얼굴 예뻐 몸매도 좋아 성격도 좋고 남동생은 백유진…… 없는게 없네?]└ 유행운도 있음
└ 남친이 유행운
└ 프로 계약금으로 21억 당긴 남친이 유행운 ㄷㄷㄷㄷㄷ
└ 심지어 집안도 좋음 아빠가 광주 아이언스 모기업 전무 출신???? ㅎㄷㄷㄷ
└ ㅋㅋㅋㅋ 아빠가 GIA그룹 전무면 백유진 광주 가야하는 거 아니냐?
└ 이러다가 유행운 FA 때 아이언스 가는 거……??? ㄷㄷㄷㄷ
└ 닥쳐 행운이는 대전에서 안고 죽을 거야
└ 요정님이 대전을 버릴리가 없다 ㅎ
일이 커진다.
백유정은 호텔 침대에 앉아 초조하게 입술을 뜯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졌다. 유행운에게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상대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야, 백유정!”
우당탕탕!
딱 이 말이 맞다.
백유진은 대전에서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고 백유정과 모친은 호텔 방을 따로 잡았다. 대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었고 바로 옆방에서는 엄마가 체크아웃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 부수겠다?”
백유진이 숙소에서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날아왔다.
“안 부쉈잖아.”
“뭐?”
“아니지?”
“뭐가 아니야?”
“열애설!”
“닥치고 조용히 들어와. 네가 소문 다 내겠다.”
지금 백유정은 심란했다.
숙소 생활을 하는 남동생이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아도 지금 죽을 만큼 정신이 없다.
“열애설, 그거 아니야.”
문을 닫고 들어오는 백유진을 보며 말했다.
“이거 그냥 오해야. 너도 알잖아. 어제 다 같이 식당 갔던 거 기억 안 나?”
“알지. 아는데, 왜 이런 기사가 갑자기 나?”
“난들 아니? 나도 몰라.”
“행운이는?”
“곧 전화한대.”
“뭐야, 둘이 연락처도 알아?”
“…….”
소파에 앉은 백유진이 가방을 옆에 치워 둔다.
“엄마는 뭐래?”
“엄마 아직 몰라. 알잖아, 엄마 인터넷 잘 안 하시는 거…….”
“엄마가 알면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어! 갑자기 열애설? 미친 거지!”
“너 진짜 한 대 맞고 싶니?”
“아니! 맞기 싫어!”
백유진이 바로 두 팔로 방어 태세를 갖추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오늘도 경기 있는데…….”
오늘 백유진은 바로 구장으로 가서 몸을 풀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열애설 때문에 정신이 하나 없었다. 게다가 유행운은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그래서 누나가 묵고 있는 호텔에 쳐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백유정, 진짜 안 돼.”
“너 왜 자꾸 반말이야?”
“그게 중요해?”
“너 이리 와 봐.”
“왜?”
“좀 패게.”
지금 백유정은 난데없는 열애설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유행운에게 미안한 감정도 느끼고 있었는데, 딱 패기 좋은 샌드백이 바로 앞에 제 발로 나타났다.
백유정이 베개를 들었다.
서서히 남동생에게 다가가자, 백유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깨, 팔꿈치, 팔뚝, 손.”
“뭐?”
“거긴 안 건드릴게.”
“뭐, 뭐라고?”
부웅!
마치 야구선수가 풀스윙을 잡아당기듯, 백유정이 베개로 풀스윙을 가져간다.
그 순간, 백유진은 민첩하게 고개를 숙여 베개를 피했고 이번에는 아래로 스윙을 가져가는 백유정이었다.
퍼억!
베개는 바로 백유진 머리 옆을 스쳐 소파 헤드를 가격했다.
순간, 어릴 때 베개로 죽어라 얻어터졌던 과거 기억이 떠오른 백유진은 순간 어질어질했다.
“너 몸이 재산이라서 봐준 거야.”
진심이었다.
운동선수만 아니었다면 소파 헤드가 아니라, 백유진의 머리를 날렸을 것이다.
“아,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네.”
백유정이 베개를 침대로 휙 던지며 차분하게 말했다.
“다 아니야. 기사에 나온 거 다 아니고 행운 씨하고 대화해서 이 상황 풀 거야. 오해라고 다 이야기할 거라고.”
“으. 침팬지야? 사람을 때리게?”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에는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소파를 때렸다.
백유진이 살벌한 눈빛을 보고 꼬리를 내렸다.
“닥칠게.”
백유정은 두 얼굴이다.
밖에서는 예쁘고 착한 누나인 백유정은 남동생 앞에서는 거대화된 킹콩이 따로 없었다.
오늘 백유진은 잊고 있던 과거가 생각났다. 틈만 나면 누나에게 베개로 미친 듯이 얻어터졌던 과거가.
“진짜 아니지?”
“아니라고.”
“근데 왜 전화번호는…….”
“어제 대화하다가 교환한 것뿐이야.”
“갑자기 왜 교환을 해? 유행운, 이놈 진짜 웃긴 놈이네?”
“유진아.”
순간, 백유진은 소름이 돋았다.
제 누나가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를 때는 굉장히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진짜 맞고 닥칠래, 그냥 닥칠래?”
“그냥 닥칠게.”
그 순간, 백유정의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유행운이었다.
“나 줘.”
“네가 왜?”
“내가 누나 동생이잖아. 내가 혼구멍 내 줄게.”
“네가 뭔데?”
“……나는 누나 동생이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거기 얌전히 있어.”
백유정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윽고.
“네, 백유정입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백유진은 그 순간, 먹은 음식이 위장에서 빠져나와 목구멍을 터치하는 느낌이었다.
– 누나, 잠깐 통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 미안해요. 나 때문에 지금 힘들죠……?
“아니에요. 내가 미안하죠…….”
백유진은 그저 어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