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둘 중에 한 명만 골라
“죄수 번호 0126!”
아침잠을 깨우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맑아졌다.
몸을 일으키니 교도관, 아니 문지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벌써 아침 배식이야?”
문지호는 대답 대신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석방이다.”
길었던 수감 생활을 끝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갈 때였다.
쏟아지는 빛줄기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목적지는 NARAK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이었다.
“한선우.”
한쪽 눈썹을 추켜세운 김 대표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김 대표는 압수했던 휴대 전화를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어떻게, 반성은 좀 했나?”
“네, 대표님. 저 정말 새사람이 됐습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말썽 피웠다간 그땐 압수가 아니라 해지야.”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양손을 내밀었다.
김 대표는 휴대 전화를 슬쩍 뒤로 빼며 물었다.
“디렉팅인가 뭔가는 잘되어 가?”
“아, 그거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 누구가 휴대 전화를 압수하는 바람에 딸랑 펜 한 자루 쥐고 골머리를 앓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휴대 전화를 받아 들고서 사무실을 나섰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병철이 두부 한 모를 쓱 들이밀었다.
“……고맙다. 누가 보면 진짜 출소한 줄 알겠네.”
“딱 한 입만 베어 물어. 김치찌개에 넣어야 하니까.”
두부 모서리를 살짝 베어 물며 휴대 전화 기록을 살폈다.
《반짝 연애》에 함께 출연했던 보이 그룹 멤버들이 보낸 메시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개중에서도 하이스쿨락 도영은 100통 가까이 메시지를 보냈다.
하긴 피디한테 호되게 깨지고 그대로 연락 두절됐으니 걱정할 만도 했다.
도영
(선우 님 화나셨어요? ㅠㅠㅠㅠ)
(진짜 유출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ㅠㅠㅠㅠㅠ)
(저희끼리만 알고 있자고 신신당부했는데 ㅠㅠㅠ)
“……병철아, 이게 무슨 소리야? 유출이라니?”
“바빠 보여서 말 안 했는데, 형 유명해졌어.”
“엑…….”
나는 멈춰 선 채로 딱딱하게 굳어 버렸고, 병철이는 석상이 된 나를 질질 끌며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었다.
“결과만 보자면 나쁜 일은 아니란 거지.”
“나쁜 일 아닌 거 확실해? 파랑새에서 내 이름이 계속 해시태그 되는데?”
[히피펌망한사람] @Hippie_DogMang꼴 보기 싫은 프로그램에
블랙시즌 선우 이름 붙여서 태그하면
그 프로그램 엎어진다는 게 사실임?
#아이돌체력평가제도 #아체도
#한선우 #따봉선우야고마워
19.8K 리트윗 1,013 인용 13.9K 마음에 들어요
리트윗이 거의 2만 가까이 된다.
어느덧 나는 한선우라는 이름 석 자를 잃어버리고, ‘따봉 선우’로 불리고 있었다.
“따봉 선우야 고마워.”
“너 인마, 형이라고 불러야지!”
“알겠으니까 이만 숙소로 돌아가자. 따봉 선우 형.”
숙소로 돌아간 뒤, 우리는 김치찌개에 계란프라이를 두고 조촐한 아침 식사를 했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멤버들이 따봉을 날려 대는 탓에 입맛이 싹 달아났다.
“따봉 선우 형, 이제 슬슬 작곡가 섭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슬립리스 쉽한테 전화해 보려고. 지금쯤 일어나셨으려나?”
작곡가 슬립리스 쉽.
《아이돌 전쟁》 3차 경연 당시 우리에게 기꺼이 레트로풍 《놀려(Tease)》를 내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훗날 명곡을 함께 만들자는 과분한 제안을 해 주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한번 걸어 볼게.”
휴대 전화에 저장된 슬립리스 쉽의 연락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뚜루루루’ 하는 통화 연결음 끝에 숨소리가 돌아왔다.
“여보세요, 작곡가님?”
– ……계속 기다렸어요.
“예, 예에?”
– 이대로 날 영영 찾지 않는 줄로만 알았어요.
어째서인지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럴 리가요. 조만간 작곡가님 시간 나실 때 찾아뵈려고 하는데요.”
– 약속 장소는 내가 정해도 되나요? 블랙시즌 멤버들하고 꼭 함께 들르고 싶은 곳이 있거든요.
“네, 그럼요. 작곡가님 편하실 대로 하세요.”
작곡가는 비교적 수월하게 섭외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문제는 김 대표에게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것.
《Hot Blood》를 제치고 타이틀곡으로 확정받기 전까진 사실상 무료 봉사나 다름없다.
그런 염치없는 부탁을 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 * *
“그, 작곡가님? 저희하고 같이 들르고 싶다던 곳이…….”
“여기예요. 전부터 꼭 한번 와 보고 싶었거든요.”
슬립리스 쉽이 우리와 함께 가고자 한 장소.
그곳은 바로 신당동 떡볶이 타운에 있는 ‘까악떡볶이’였다.
소문난 맛집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뭐지? 걸어 다니는 머그샷이 내 가게 앞에 있네? 경찰 불러야 하나?”
작곡가 사운드 크로우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운드 크로우는 슬립리스 쉽을 발견하자마자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훠이, 우리 애들만 두고 썩 꺼져라. 흉악범한테는 떡볶이 안 판다.”
“새대가리 굴려서 떡볶이 만들면, 식품위생법 위반 아닌가?”
또 시작이다. 어찌어찌 가게 내부까진 들어왔지만, 언제 어디서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새대가리, 손님이 들어왔으면 주문을 받아야지.”
“어쩌지? 메뉴판에 콩밥은 없는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콧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앉은 자리가 몹시 불편했다.
회귀 전, 사운드 크로우는 베일에 싸인 신원 미상의 작곡가였다.
그리고 현재 《아이돌 전쟁》을 통해 반강제로 얼굴을 공개하게 된 그는…….
– 충격 실화! 떡볶이 파는 작곡가가 있다?
《생활의 고수》 891회 출연
《생방송! 월요병 아침》 4,028회 출연
《생존 정보통》 1,928회 출연
《백 선생의 맛집 기행》 166회 출연
온갖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떡볶이집 사장 겸 작곡가가 되었다.
아무래도 내 손으로 바꿔 놓은 게 블랙시즌의 미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 오랜만에 왔으니까 배불리 먹고 가. 부족하면 더 달라고 말하고.”
사운드 크로우는 우리에게 세트 메뉴를 내어 주었고, 슬립리스 쉽에겐 컵에 든 소금물을 탁 내려놓았다.
콧김을 씩씩 내뿜던 슬립리스 쉽이 돌연 떡볶이를 집어 먹었다.
“맛이 영 별론데? 내가 직접 만드는 게 낫겠어.”
“자, 작곡가님……!”
만류할 새도 없이, 사운드 크로우가 떡볶이 주걱을 내팽개치며 슬립리스 쉽을 일으켜 세웠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곡도, 떡볶이도 내가 만든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우리 가문의 떡볶이를 욕하는 건 참아도, 나를 욕하는 건 못 참아!”
……말의 순서가 뒤바뀐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사운드 크로우에게 멱을 잡힌 슬립리스 쉽은 기죽은 내색 없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블랙시즌은 네가 아니라 나를 선택했다! 너는 그냥 서바이벌용 작곡가야! 일회용품이나 다름없다고!”
이제 알겠다. 슬립리스 쉽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아이돌 전쟁》 파이널 라운드 때 밀려났던 기억을 두고두고 곱씹고 있던 것이다.
뒤끝이 장난 아니군. 하지만 사운드 크로우는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야 그는 디렉터 프렘과 함께 YMJ 신인 어나더의 곡을 만들고 있을 테니까.
“……얘들아, 그게 사실이니? 이 흉악범이 너희 곡을 만든다는 게?”
멤버들은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고, 나는 식은땀을 삐질 거리며 대답했다.
“인연이 닿아서 부탁드리게 됐어요.”
사운드 크로우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러곤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럼 나는……!”
정적이 찾아왔다. 떡볶이를 먹던 손님들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가게 밖에서 참새가 짹짹 지저귀는 소리만 들릴 뿐,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자, 작곡가님은 많이 바쁘시잖아요? 그 왜, 곧 데뷔하는 YMJ 신인한테 줄 곡도 작업하셔야 하고…….”
사운드 크로우는 크게 충격받은 듯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내 가게 안 손님을 모조리 내쫓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확실히 프렘이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했었지. 하지만 나는 거절했어.”
그는 눈물을 펑 터뜨리며 외쳤다.
“뮤즈인 블랙시즌을 위해서……!”
충격 발언에 멤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운드 크로우는 떡볶이 주걱을 주워 들었고, 그 끝을 슬립리스 쉽을 향해 겨누었다.
“이렇게는 포기 못 해! 블랙시즌의 타이틀곡 작곡가 자리를 두고 겨루자!”
“어림없는 소리, 이번 선약은 나야! 정 나하고 겨루고 싶다면…….”
슬립리스 쉽은 악마처럼 씩 이를 드러냈다.
“내 주위를 돌면서 ‘나는 빡빡이다’라고 스무 번 외쳐!”
끼아아악! 아무리 앙금이 남았어도 그렇지, 민머리인 사운드 크로우에게 그런 끔찍한 요구를 하다니.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멤버들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슬금슬금 세트 메뉴를 손수 포장했다.
순대를 포장 용기에 옮겨 담던 문지호가 애꿎은 나를 불러 세웠다.
“야, 따봉 선우!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봐! 저건 도를 넘었잖아!”
“나라고 별수 있어? 애당초 못 할 걸 아니까 요구한 거잖아.”
그리고 정확히 3초 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빡빡이다! 나는 빡빡이다! 나는 빡빡, 그흐윽!”
사운드 크로우가 슬립리스 쉽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문지호의 손에 들린 순대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우리가 대체 뭐라고…….”
인간의 밑바닥을 저토록 낱낱이 보여 주고 있는 걸까.
* * *
그로부터 일주일. 슬립리스 쉽에게서 의뢰한 곡이 완성됐다는 연락이 왔다.
반면 사운드 크로우는 아직 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겸업인 데다가 원체 곡 뽑아내는 속도가 느리니 그럴 만도 했다.
“선우야, 사운드 크로우도 망원동 작업실로 오고 계신다는데?”
“어, 그 잠깐 사이에 완성하셨대요? 그렇게 손이 빠른 분이 아닌데.”
“아니, 일단 미완성 본이라도 들고 오시겠대.”
“선착순이 아니니까,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온몸을 꽁꽁 싸매고 지하철에 오른 우리는 망원동에 있는 슬립리스 쉽의 작업실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먼발치서 떡볶이집 앞치마를 채 벗지도 못한 사운드 크로우가 숨 가쁘게 뛰어왔다.
“허억, 헉, 아직, 아직 타이틀곡 안 정했지?”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오늘은 그냥 중간 점검 차 모인 거예요.”
“그 흉악범이 내 눈 밖에서 너희를 또 어떻게 구슬릴 줄 알고!”
“……두 분 다 성격이 많이 변하신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슬립리스 쉽이 웃는 얼굴로 문을 열어 주었다.
심장이 덜컹거린다. 언제 봐도 면역이 안 되는 외모였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어서 들어…… 새대가리가 왜 여기 있지?”
“오늘에야말로 격차를 느끼게 해 주지. 단언컨대 네 완성본은 내 미완성본보다 못하다.”
두 사람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블랙시즌의 작곡가는 나야.”
“아니, 블랙시즌의 타이틀곡은 내가 만든다.”
얼핏 보면 조폭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타이틀곡 경쟁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