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4)
4화 동태눈깔 조기 치료
청담동 소재의 헤어&메이크업 샵 《비너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음악 방송 리허설을 끝마친 멤버들이 퀭한 눈으로 샵으로 들어섰다.
음악 방송 《더스테이지》의 리허설은 새벽 4시부터 시작하는데, 대부분 민낯에 사복 차림으로 리허설을 끝낸 후 샵으로 이동하여 메이크업을 받곤 한다.
“컨디션이 영 별로네.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형, 저도 너무 떨려서 잠 한숨도 못 잤어요.”
데뷔를 코앞에 둔 코흘리개들이 전전긍긍 가슴앓이를 할 때, 나는 유유히 의자에 앉아 여유를 만끽했다.
“녹차 말고, 따뜻한 레몬티로 주세요.”
자연스럽게 음료까지 요구하자, 문지호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중얼거렸다.
“저 새끼는 왜 저렇게 당당하게 앉아 있는 거지?”
“선우 형, 어제 두 다리 쭉 뻗고 꿀잠 자던데요.”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혹시?”
거울 너머로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입안에 머금고 있던 레몬티를 허공에 분사했다.
“혹시는 무슨 혹시야.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멋대로 죽이지 마!”
나는 물기로 흥건한 입가를 손등으로 벅벅 눌러 닦았다.
문지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내 뒤통수를 흘겨봤다.
“……수상해.”
멤버들의 반응에 이유 모를 우월감이 치솟았다.
무대를 앞두고 벌벌 떨던 애송이는 여기 없다 이거야.
데뷔 8년 차 베테랑 아이돌 한선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단 말씀.
그도 그럴 게 멤버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바람에 낯짝이 두꺼워졌다.
다 너희 덕분이란다. 이 망할 놈들아.
“맞다. 병철이 형, 컨셉 바꾸기로 하지 않았어요?”
“밖에서 병철이라고 부르지 마. 창피하니까.”
가장 먼저 머리 손질을 시작한 병철이 주위로 멤버들이 기웃거렸다.
본래 병철이는 이마를 드러내고 다녔지만, 이 기회에 앞머리를 내리게 되었다.
앞머리 기장이 눈썹뼈 아래로 내려오게끔 손질한 뒤, 부스스한 느낌을 주기 위해 드라이를 했다.
그 모양새가 반항아 컨셉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한 컨셉이 그거야?”
“응. 선우 형이 곧 유행할 컨셉이라고 그랬어.”
“그 컨셉이란 게…….”
“살면서 해 본 거라곤 공부밖에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지적이고 섹시해 보이는 샌님.”
듣다 못한 지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뭔 개소리야? 너 술 마셨니?”
“이제 지호 형까지 그러네. 나 아직 미성년자라니까.”
병철이는 덥수룩한 앞머리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거울 속 제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자 지호와 하준이가 얌전히 앉아 있는 내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한선우, 너 미쳤어?”
“병철이 형을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저 지경이 됐어요?”
나는 검지로 코끝을 쓱 훑었다.
어젯밤, 스탯 포인트를 사용하여 남병철의 갱생 가능성을 높였다.
덕분에 수월하게 병철이를 설득할 수 있었다.
비록 내 능력치와는 하등 관계없는 포인트였지만, 손쉽게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니.
엄청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곧 너드미가 대세가 되는 날이 온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대표님께선 허락하셨어?”
나는 대답 대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도겸이 형을 향해 엄지를 척 추켜세웠다.
그러자 메이크업을 받던 형이 싱긋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무래도 맏형이 말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을 테고, 선우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김 대표를 설득해 달라는 요구에 도겸이 형은 흔쾌히 응했다.
대표 앞에선 찍소리 한마디 못 하면서, 뒤에선 불평불만만 내뱉고 다니는 떨거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시 도겸이 형이야.
“형은 언제나 완벽 그 자체예요.”
“하하, 얘가 갑자기 부끄럽게 왜 이래.”
형이 아이돌이라서 참 다행이에요.
형이 만약 사이비 교주였더라면, 저는 지독한 광신도가 되었을 거예요.
선망 가득한 시선으로 형을 올려다보자, 불쑥 튀어나온 문지호가 대뜸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악! 갑자기 왜!”
“앞으로 그런 중요한 이야기는 다 같이 모여서 해. 음침하게 뒤에서 작당하지 말고. 알겠어?”
“……알겠어.”
문지호는 뚱한 얼굴로 무어라 투덜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메이크업이 시작됐다.
눈꺼풀을 지그시 내리감고 데뷔 초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때 당시엔 전문 샵에서 관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한편으론 신생 기획사임에도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는 김 대표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셰이딩 좀 빡세게 해 주실래요. 콧날로 사람도 썰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날카롭게요.”
“코 셰이딩이요?”
“네. 그리고 레몬티 한 잔 더 주세요.”
뽕 뽑아야 해. 끝내주게 뽕 뽑아야 해.
온통 그 생각뿐이다.
데뷔 후 첫 정산일, 설레는 마음으로 정산서를 열어 봤던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정산 금액은 마이너스였다.
그간 투자라고 생각했던 앨범 제작 비용, 무대 의상 제작 비용, 헤어·메이크업 비용 모두 빚이었던 것이다.
“다 끝난 거예요?”
“메이크업은 끝났는데, 머리 손질은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
“기다리는 동안 앉아서 과자 좀 먹고 있어도 되죠?”
나는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간식을 찾으러 가는 길, 메이크업이 한창인 멤버들의 얼굴을 쓱 둘러봤다.
걱정과는 달리 병철이는 너드 컨셉이 제법 잘 어울렸다.
막내 하준이는 신인 아이돌답게 풋풋했고, 도겸이 형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리고 문지호는…….
“뭐, 왜.”
“…….”
“할 말 있으면 해.”
흔히들 말하는 덕후 몰이 상, 그게 바로 문지호였다.
조각처럼 잘생긴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희멀건 피부와 속쌍꺼풀이 얇게 진 눈매. 웃을 때는 무해한 미소를 자아낸다.
세상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원체 낯가림이 심한 탓에 늘 털을 곤두세우고 다니는데.
팬들은 그런 문지호의 면모에 더욱 열광했다.
“그냥 재수 없어서.”
지금으로부터 1년 뒤, 문지호는 극심한 연예인 병을 앓게 된다.
블랙시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선 녀석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놔야만 한다.
스탯 포인트를 사용한다면, 지호도 병철이처럼 평화적인 방법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척 슬프게도 튜토리얼 이후로 퀘스트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천천히 공들인다면, 문지호를 갱생시킬 수…….
“뭐? 왜 갑자기 시비야. 헛소리하지 말고 꺼져라.”
응, 방금 한 말 취소.
아무래도 이 녀석은 다소 난폭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개과천선시켜야겠다.
* * *
케이블 음악 방송 《더스테이지》 대기실.
출연진 인원과 비교하면 대기실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신인 아이돌은 같은 시기에 데뷔한 아이돌과 같은 대기실을 쓴다.
파티션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헉, 허억…….”
나는 대기실 한구석에서 몸을 움츠린 채 숨을 골랐다.
망각하고 있었다. 설마 다른 아이돌과 같은 대기실을 쓸 줄이야.
데뷔 8년 차, 단독 대기실 사용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샵에선 아주 여유가 넘쳤잖아. 갑자기 왜 저래?”
“몰라요. 그냥 변태 같아요.”
나는 멤버들이 움직일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며 외쳤다.
“어디 가지 마! 얌전히 대기실에 앉아 있어!”
“옆에 계신 분들한테 인사만 하고 오려고 했는데…….”
“하지 마! 제발 소란 피우지 마! 그러다 기사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어떤 할 일 없는 기자가 그런 거로 기사를 써요.”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던 놈들이다.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놈들이니까.
“에이, 못 참겠다. 가서 인사만 하고 올게요.”
“안 돼애애애액!”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내 하준이는 파티션 너머로 향했다.
나는 멀어지는 하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병철이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병철아. 너만은 절대로 엇나가면 안 된다. 알았지?”
“테오라니까. 밖에선 병철이라고 부르지 마.”
겁에 질려 몸을 떨기를 십여 분.
인사를 하고 온다던 하준이가 품 안 가득 간식거리를 들고 돌아왔다.
“저분들도 오늘 음방 데뷔래요.”
“컨셉은?”
“청량미 넘치는 소년 컨셉이요.”
“하필 우리랑 겹치네.”
지호가 한숨을 푹푹 내쉬자, 도겸이 형이 지호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신인 아이돌 컨셉이 다 거기서 거기지. 너무 걱정하지 마.”
밀리언 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 그룹 시리우스.
블랙시즌과 유사한 컨셉으로 데뷔했지만, 데뷔 초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망돌이 된 이후로도 시리우스는 장수돌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옆에 계신 분들은 선배님들한테 앨범 돌리러 간다던데,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는데, 잠깐 이동해도 되죠? 매니저 형.”
나는 매니저 형을 향해 세차게 도리질 쳤다.
뒷머리를 긁적이던 매니저 형이 슬쩍 운을 띄웠다.
“될걸? 아마도.”
울고 싶어졌다.
매니저 형, 원래 저렇게 줏대 없는 사람이었던가.
“한선우, 넌 안 갈 거야?”
지호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고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야지.”
네놈들이 또 어떤 사고를 칠 줄 알고.
내가 등 뒤에서 바짝 감시해야겠어.
줄줄이 복도를 지나치던 멤버들의 발걸음이 어느 대기실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3년 차 보이 그룹 메테오의 대기실이었다.
3대 기획사 중 YMJ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현시점 음원 차트를 올킬하는 아이돌이다.
“……여기는 건너뛰면 안 될까?”
콧대 높은 문지호 님께서 어쩐 일로 기가 팍 죽어 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골라서 인사했다고 밉보일 일 있어? 할 거면 공평하게 다 해야지.”
“그게…….”
지호는 답지 않게 대답을 망설였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하준이가 입을 열었다.
“지호 형이 메테오 데뷔 조였거든요. 안 봤어요? 데뷔 서바이벌 방송까지 나왔었는데.”
“그랬던가.”
문지호가 대형 기획사 장기 연습생이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다.
데뷔 직전에 내쫓겼다는 그 그룹이 메테오였던가.
메테오와는 워낙 접점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얘들아. 지호가 불편하다니까 여기는 건너뛰자.”
그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년 뒤, 문지호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연예인 병 말기 환자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 문지호의 자존감을 확 짓밟는 게 좋지 않을까?
역시 한선우, 비상한 두뇌를 가졌군. 후후후.
나는 악마처럼 씩 웃으며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다 같이 들어가자. 우리가 못 올 데 온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지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