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도전! 양푼 노래방
“어, 나온다.”
“누구야? 어떤 분들이야?”
마지막 팀, 메테오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조명은 그대로였지만, 메테오는 어떠한 팀보다 더욱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마치 이 게임의 정해진 승자가 나타난 것만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더엠페러는 가벼운 눈인사로 메테오를 맞이했고, 다른 팀은 일동 기립 후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직 문지호만이 고개를 조아리지 않았다.
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기에 나는 속히 지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지호, 왜 그래.”
메테오가 착석하고 나서도 지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팔꿈치를 세워 군살 없는 옆구리를 내리찍자, 그제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비틀어 바라본 지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혈색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어서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너…….”
말을 잇던 도중 셔츠에 고정된 핀 마이크에 눈길이 갔다.
‘문제 될 만한 발언은 최대한 삼가야 겠네.’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꾹 다물자, 웅장한 효과음과 함께 두 명의 MC가 모습을 드러냈다.
“승리의 깃발을 꽂는 팀은 누구?”
“《아이돌 전쟁》,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손뼉을 치면서도 눈으로는 연신 지호의 상태를 살폈다.
MC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호는 여전히 평정을 찾지 못했다.
“저는 《아이돌 전쟁》의 진행을 맡은 배우 신유라.”
“솔로 가수 데이입니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던 하준이가 특정 MC를 향해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빛의 속도로 하준이의 손등을 내리쳤다.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신유라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멘트를 이어 나갔다.
“와, 슬쩍 둘러보기만 해도 라인업이 굉장한데요. 쟁쟁한 경쟁이 기대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데뷔 순서대로 시청자분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새까만 수트를 갖춰 입은 메테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리더 잭슨의 구호에 맞춰 인사했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안녕하세요. 메테오입니다.”
“데뷔 3년 차 6인조 보이 그룹 메테오. 더엠페러하고는 일주일 차이로 선배네요.”
“뭐, 일주일도 선배는 선배니까요. 싸움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까, 적당히 즐기다 가겠습니다.”
이 전쟁은 누군가에겐 미래를 바꿀 기회지만, 메테오에겐 한순간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리더 잭슨이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막내 이든은 딴청을 피웠다.
한순간 이든과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메테오의 짤막한 소개가 끝났으니, 다음 차례는…….
“King Of Kings! 안녕하세요. 더엠페러입니다.”
순백의 제복을 입은 여섯 명의 소년에게로 눈길이 쏠렸다.
더엠페러의 리더 우진이 활기찬 목소리로 운을 뗐다.
“저희는 전제군주제 세계관 속에 살고 있고요. 다양한 장르 음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제군주제라면 멤버 전원이 왕인 건가요?”
“아뇨. 전원 배다른 왕자입니다. 이 중에서 한 명은 언젠가 왕이 되겠죠?”
“왕좌를 쟁취하지 못한 나머지 멤버는…….”
“유배될 예정입니다.”
리더 우진의 재치 넘치는 대답으로 딱딱했던 촬영장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더엠페러의 소개가 끝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킬링퍼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I’m Your Boy! 안녕하세요. 데뷔 2년 차 아이돌 킬링퍼스트입니다.”
“데뷔 서바이벌 출신 아이돌이 또 서바이벌 참전이라니, 이 정도면 서바이벌 중독 아닌가요?”
“치열하게 싸운 만큼 보상이 확실하니까요. 그게 또 서바이벌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이제 파릇파릇한 1년 차 신인 두 팀만 남겨 놓고 있네요.”
하이스쿨락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리더이자 보컬인 도영이 수줍게 뺨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방과 후 집합! 안녕하세요오. 4인조 밴드 하이스쿨락입니다.”
“참전한 팀 중에서 유일한 밴드돌인데요. 퍼포먼스 면에서 불리하진 않을까요?”
“밴드라고 해서 춤을 못 추는 건 아니니까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당찬 대답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우리는 시선에 못 이겨 무릎을 부여잡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잇차, 일어나는 소리만 들어선 노인대학 아이돌이었다.
도겸이 형은 허리를 부여잡고서 맥없는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둘, 셋. I’ll be your seasons! 안녕하세요. 블랙시즌입니다.”
“블랙시즌 표정이 썩 좋지 않은데요.”
“이만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서요. 하하…….”
“그 말은 즉, 화려한 라인업 때문에 기가 죽었다고 봐도 될까요?”
“기가 죽었다기보단 그냥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경입니다.”
우승이라는 장대한 목표를 가지고 참전한 다른 팀과는 달리,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파이널 라운드까지 살아남아 《에고이스트(Egoist)》를 되찾는 것뿐이었다.
현재 상황만 봐선 파이널 라운드 진출은 무슨, 1차 경연에서 뼈도 못 추리고 탈락할 판이었다.
“각 팀의 인사 잘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태블릿 PC를 하나씩 나눠 드릴 텐데요.”
“가장 견제되는 한 팀, 가장 최약체라고 생각되는 한 팀, 마지막으로 가장 겨루고 싶은 멤버 한 명을 뽑아 주세요.”
“투표는 모두 익명으로 진행되니 편히 작성해 주세요.”
우리는 벙한 얼굴로 태블릿 PC 화면을 응시했다.
누구 하나 선뜻 의견을 내는 멤버가 없었다.
“저기, 이 투표가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러면 그냥 사다리 타기로 정하자.”
사다리 타기 결과.
가장 견제되는 팀은 킬링퍼스트.
가장 최약체라고 생각되는 팀은 메테오.
가장 겨루고 싶은 멤버는 더엠페러 진혁으로 결정됐다.
그로부터 5분 후, MC가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데이 씨, 투표 결과를 발표해 주세요.”
“가장 견제되는 팀부터 발표하겠습니다. 1위는 킬링퍼스트로 세 표, 2위는 메테오로 두 표였습니다.”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었던 눈치인지, 메테오 막내 이든이 볼을 부풀렸다.
“최약체라고 생각되는 팀은 블랙시즌으로 총 네 표를 받았네요. 나머지 한 표는 메테오에게 돌아갔습니다.”
끼야아악,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우리가 최약체로 지목당해 몰표를 받을 것은 익히 예상하였다.
그런데 나머지 한 표를 왜 공개하는데요? 누가 봐도 우리가 찍은 거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메테오 멤버 전원이 헛웃음 치며 언짢은 내색을 했다.
최약체에 최약체로 지목당하다니, 유쾌하지 않은 기분임은 분명했다.
“와, 마지막 투표 결과가 참 재밌게 나왔는데요.”
“가장 겨루고 싶은 멤버 1위로 블랙시즌 선우 군이 꼽혔습니다.”
“정리하자면 최약체지만, 가장 겨루고 싶은 멤버라는 거네요.”
나는 아래턱을 떡 벌리고서 MC를 바라봤다.
“왜 저를……?”
대답은 어깨너머에서 돌아왔다.
하이스쿨락 리더 도영이 오른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잘생겼어요!”
“와아악, 아닌데요!”
“잘생겼는데 겸손하기까지 해요!”
당장 칭찬 폭격 멈춰!
이 상황에서 지나친 칭찬은 득이 아니라 독이라고!
내가 격하게 손사래를 치자, 이번엔 메테오 막내 이든이 입을 열었다.
“워낙 외모에 치중한 칭찬이 자자해서, 얼마나 잘났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비아냥 가득한 어조에 나보다 지호가 먼저 반응했다.
지호는 식은땀으로 흥건한 손을 자꾸만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다.
“유라 씨, 투표로 사기도 돋웠겠다 슬슬 1차 경연 주제를 공개할까요?”
“좋습니다. 1차 경연은 ‘공식 주제가 파트 대결’입니다.”
공식 주제가 파트 대결이라…….
세트장에 웅성거림이 번졌다.
“공식 주제가는 단 3분, 모든 팀이 공평하게 파트를 나누어 가질 순 없습니다.”
“각 팀은 ‘양푼 노래방’이라는 게임을 통해 파트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지금 당장 팀별로 게임에 출전할 멤버 한 명을 뽑아 주세요!”
양푼 노래방이라면, 꽤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게임이 아닌가.
노래를 딱 한 번 들려준 뒤, 제작진이 지목하는 순서대로 노래를 부른다.
음정, 박자, 가사 중 어느 하나라도 틀리면 머리 위로 양푼 냄비가 떨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지호가 나가는 게 좋겠지만, 지금은…….”
지호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의 등을 떠밀어 게임에 출전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시선을 옮겨 도겸이 형을 바라봤다.
“형, 할 수 있겠어요?”
지호가 고장 난 이상, 안정적인 가창력을 지닌 형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잃을 게 뭐가 있겠어. 내가 한번 해 볼게.”
“형만 믿을게요.”
도겸이 형은 우직한 발걸음으로 세트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먼저 보내 놓고도 영 미덥지 않았는지, 병철이와 하준이가 초조한 어조로 말을 붙여왔다.
“괜찮을까? 도겸이 형.”
“차라리 선우 형이 나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나는 두 사람의 이마에 딱밤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요리할 때 빼고, 언제 한 번이라도 형이 우리 실망하게 한 적 있어?”
“……없어요.”
“그래,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당연한 결과지만, 우리를 제외한 다른 팀은 모두 메인 보컬을 앞세웠다.
다섯 명의 소년이 일렬로 의자에 앉았고, MC는 헤드셋을 나누어 주었다.
“들려드릴 노래는 공식 주제가 《ONE》의 2절입니다.”
“여러분 모두 1절을 숙지하고 있을 테니, 음정과 박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네요.”
“모쪼록 가사에 집중해서 들어주세요. 10초 후에 음악을 재생하겠습니다.”
도겸이 형은 퍽 진지한 얼굴로 헤드셋을 착용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음악 감상이 시작됐다.
가볍게 리듬을 타는 메인 보컬 사이에서 형은 미동 없이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 헤드셋을 벗어 주세요!”
마지막까지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있던 형은 MC 데이에게 헤드셋을 갈취당했다.
“도겸이 형 표정 어때요? 괜찮아 보여요?”
“글쎄다. 속으로 뭔가를 되뇌는 것 같기도 하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어서 형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다들 공식 주제가 파트를 두고 치열하게 싸울 준비 되셨나요?”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양푼 노래방, 지금 시작합니다.”
‘따르릉’하는 알림음과 함께 공식 주제가 《ONE》의 MR이 흘러나왔다.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도겸이 형을 응시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남들만큼만 가져오는 거예요.“
첫 차례만큼은 피했으면 했는데.
하필이면, 제작진의 손에 들린 화살표가 제일 먼저 형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러자 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소리를 냈다.
‘이, 이럴 수가……!’
음정과 박자, 어느 한 군데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나는 곧이어 눈물을 펑 터뜨렸다.
“전쟁을 라라라, 라라랄라 으흐으음!”
형은 가사 없이 완벽한 허밍을 소화했고, 정수리에 양푼 냄비를 정통으로 후려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