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brother ever RAW novel - Chapter 244
사상 최강의 오빠 246화
시험의 숲(2)
기억의 천적은 시간이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 수록 묵은장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 기곤 한다.
가끔, 그 악취에 놀라 잠에서 깨어 날 만큼.
“안 돼!”
책상에 엎드려 자다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든 말총머리 의 여인이 외친 뾰족한 목소리에 독 서를 즐기던 초록색 머리칼의 사내 가 손수건을 건넸다.
“ 또‘?”
흔한 일인 듯, 무덤덤한 사내의 물 음에 여인이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응, 또.”
“…너 요즘 몇 시간이나 자냐?”
“3시간.”
녹색 머리칼의 사내, 최강혁이 한 숨을 쉬며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김세정. 내가 너 3시간씩이나 자 면 묻지도 않아. 다시 한번 물을게. 몇 시간이나 자‘?”
김세정은 자신의 얼굴 대각선을 가 로지르는 흉터를 검지로 매만졌다. 사실, 치료하려면 진작에 치료할 수 도 있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치료하 길 종용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이걸 지워버리면, 그의 기억도 같 이 씻겨나갈 것 같았으니까. 그래, 이제는 자신의 곁에 없는 핏 줄의 흔적이, 세월에 씻겨 저버린 추억처럼 사라져 버릴까 봐서.
김세정이 보랏빛 아이라인의 눈매 로 최강혁을 힐끔거리더니 코웃음을 쳤다.
“홍, 신경 써주는 척하려면 제대로 하기라도 하던가. 왜 시간이라고 생 각하는데?”
“설마, 1시간도 못 자는 거냐?”
“꽤 됐어.”
“아직도… 그렇게 선명해?”
김세정은 눈꺼풀 위에 아직도 남아 있는 꿈의 그림자를 되짚었다. 이내, 백발 백염의 주신. 그리고 그의 발 밑에 깔린 채 벌레처럼 죽어가던 사 내의 모습을 떠올린 김세정이 목이 멘 듯, 메마른 목소리를 뱉었다.
“몰라, 이제는 선명한지도 모르겠 거든. 비록 생생하긴 하지만, 이 기 억이 변질된 것인지 아니면 그때의 그대로인지도 판단할 수 없을 만 큼…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까.”
최강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 했다.
“이해는 하는데, 어떻게든 자려고 노력 좀 해봐. 너 요즘 하는 일도 많고… 걱정돼.”
“강혁 오빠야말로 말로만 그러지 말고, 신경 써주는 체하려면 행동으 로 좀 보여. 어떻게 된 졸병이 딸내 미 챙기느라 보스가 1시간도 못 자 는 걸 이제야 알아?”
최강혁이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렸 다.
“아니, 그렇게 나오면 내가 할 말 이 없잖냐… 끙, 괜히 또 사람 미안 하게 만드네? 쩝, 자기도 아라 말이 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제에?”
최강혁의 너스레에 김세정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뭐래, 내가 아라한테 왜 끔뻑 죽 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지나가는 듯한, 딱히 심각한 감정 의 여운도 없는 산들바람 같은 목소 리에 최강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큼씁쓸한 열매를 머금은 것 같은 웃음을 입가에 띤 최강혁이 물었다.
“그보다, 알고 있지?”
“ 뭐?”
“너에 대한 여론 안 좋은 거. 심지 어… 입에 올리기 흉한 별명도 있….”
“아, 그 뭐야, 암캐인지 뭔지 하는 거?”
“…너는 어떻게 된 애가 그런 말을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입에 올리 냐….”
“뭐 어때? 나만 떳떳하면 되지. 아 니면? 혹시 기분 나빠? 한때 매달 렸던 여인이 암캐 소리 듣고 다니니 까?”
김세정의 생글생글한 미소가 부담 스럽다는 듯, 최강혁이 고개를 옆으 로 슬쩍 돌렸다.
“야, 나 유부남이야.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매달리긴 내가 언 제 매달렸….” “에헤이, 정확히는 홀아비시지. 댁 와이프 도망갔잖수? 그런 주제에 어 디서 유부 행세야? 그리고 안 매달 렸다고? 웃기시네. 그때 질질 짜면 서 뭐랬더라? 세정아. 내가 너 안 아프게 해줄게. 네 아픈 기억 내가 다 지워줄게… 흐규흐규….”
김세정이 주먹을 눈가에 붙이고 빙 글빙글 돌리며 우는 시늉을 보이자 최강혁이 홍시처럼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지, 지금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 오는데?! 아오… 애가 아침 댓바람 부터 사람 아픈 데를 막 쑤시네….”
“아파? 어디가 아파? 여기? 요 기?’’
깔깔 웃으며 김세정이 검지로 자신 의 어깨와 가슴을 쑤시자, 최강혁이 불퉁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야, 그만 말 돌리고! 너 대체 어 쩌려고 그래? 덕분에 네가 왕의 첩 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문도 퍼지고 있다고!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 거 아냐?”
“내비 둬. 그들에겐 나를 욕할 자 격이 충분해. 난 그들의 자식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장본인이니까… 막말로, 자기 자식을 죽인 원수에게 창녀든, 암캐든 심한 소리 좀 한다 는데 이걸 어떻게 말리겠어?” 김세정이 왕에게 받은 임무는 규정 집행. 그리고, 라플레시아에서 제일 중요한 규정은 무능한 자는 중간계 로 가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김세정은 필연적으로 공 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 그 어느 부모가 어빌 슬롯이 적다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버리겠 다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니, 김세정이 생각기에 그들의 원망은 정당했다.
그래, 암캐 소리 정도는 기꺼이 들 어줄 정도로.
“그래도….” “강혁 오빠. 됐으니까, 맡은 일이나 잘하세요. 그리고 왜 자기 평판도 아닌 내 평판을 이리 신경 쓰실까? 본인이 됐다는데?”
김세정이 이리 나오자 최강혁도 어 쩔 수 없었는지 한걸음 물러섰다.
“하아… 알았다. 그럼 일단 방관하 고 있을게. 그리고! 맡은 일은 다 하고 딴지를 거는 거거든? 자, 가져 가. 이번 드리프트 계획서야.”
최강혁이 건넨 계획서를 김세정이 휘파람을 불며 받더니, 장난기 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쭈, 다 하셨네? 이야… 역시 유 능남. 뭐, 보나 마나 유진성 아저씨 한테 다 시켰을 테지만… 그래도 해 왔으니깐 칭찬해드림.” “야, 요즘… 그 양반 탈모 왔다. 아무래도 일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 카락 상태가 좀… 그러니 일 좀 작 작 시켜.”
“괜찮아! 보니깐 아직 열 가닥 넘 게 남아 있었음. 그거 다 떨어질 때 까진 일 시켜도 될 듯!”
같은 남자로서 동지애라도 느낀 걸 까? 아니면 자신의 머리카락은 안녕 하셔서 안심한 걸까? 최강혁은 풍성 한 자신의 숱을 저도 모르게 매만지 며 중얼거렸다.
“자, 잔인한….”
김세정이 드리프트 계획서를 대충 훑어보고 일어섰다.
“오케이, 그럼 나 슬슬 갔다 올 테 니까, 아라 잘 챙기고 있어.”
“알았다. 몸조심하고, 잘 다녀와”
최강혁의 배웅이 끝나기 무섭게, 막 집무실로 들어온 흑발의 미녀가 붉고 푸른 오드 아이를 빛내며 물었 다.
“숲에 가려고?”
“웅, 근데 앨리스. 넌 웬일이야? 그간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잘 나오 지도 않더만?”
앨리스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광합성을 위해서지! 너 같은 못난이들은 모르겠지만, 나 같 은 초미녀들은 가끔 적외선을 충전 해줘야 미모가 빛나는 법이거든!”
“눼눼, 아침부터 하는 멍멍이 소리 잘 들었고요. 초미녀님. 헛소리 지껄 일 만큼 지껄이셨으면 꺼져주실래 요? 제가 좀 바쁘거든요.”
김세정의 막말에 헤헤 웃으며 소싯 적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는 앨리 2、
“멍멍이라니?! 그런 실례의 말씀 을! 주인 놈아! 내가 야옹인걸 잊었 냥? 잘 보라냥, 쭉쭉빵빵 검은 냐옹 이가 앨리스였다옹!”
그러면서 머리에 두 손을 붙인 채 두 손을 고양이 귀처럼 팔랑거리는 앨리스.
검은 고양이였을 때야 사역마였으 니까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엄연히 인간의 모습으로 멘탈을 공격하는 앨리스의 장난질이 역겨웠는지, 김 세정이 손바닥으로 앨리스의 이마를 후려쳤다.
짜악!
찰진 소리와 함께 손바닥으로 이마 를 비비는 앨리스.
“아야! 우쒸, 아프잖아! 야, 경고하 는데! 너 에이스 취급을 이렇게 하 면 큰일 나. 나 이러다 확, 다른 데 로 이적해버릴 수도 있거든?”
“…어머, 아침 댓바람부터 소름 돋 게 지랄하니까 나도 모르게 손이 나 가버렸네? 미안여. 그리고, 씨알도 안 먹힐 소리 그만하시고 광합성인 지 뭔지나 하러 가주실래요? 쯧, 이 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삐질 거야! 나 삐져 버릴 거라고! 경고한다. 발할라의 꾀주머니 이 앨 리스, 삐져버리기 직전이야?”
삐진다고 협박하며 방방 뛰는 앨리 스에게 김세정이 심드렁한 어투로 물었다.
“그보다 예림 언니는 어딨는데?”
“그 빙딱이는 왜?”
“…예림 언니가 왜 빙딱이야?”
“차갑고 딱딱한 얼굴의 줄임말이 빙딱이잖아. 그러니 딱이지. 오우, 라임 보소.”
사실, 전혀 그런 뜻이 아니면서 딴 청을 부리는 앨리스를 본 김세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발 우리 발할라의 책사답게 체 통 좀 지켜줄래? 하아… 부마스터한 테 빙딱이가 뭐야 빙딱이? 둘이 사 이 별로 안 좋은 건 아는데, 내가 보기엔 앨리스 네가 일방적으로 시 비 터는 거거든? 에휴, 대체 넌 언 제 철들 거니?”
“헹, 네가 아직 새파란 애송이라 모르나 본데 원래 늙을수록 애처럼 변하는… 어머? 실수, 내가 늙다니? 아직 창창한 23살의 처녀가… 오호 호.”
앨리스가 자신의 대외적인 나이를 되뇌며 아차 싶었다는 웃음을 홀리 자 김세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 며 말했다.
“눼눼 님 나이 세자릿수 가뿐하게 넘는 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요? 됐 고, 나 드리프트 끝나고 올 때까지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
“으… 지루하게… 킁, 야옹이는 멍 멍이처럼 집 지킬 줄 모른다냥. 주 인 놈아 날 버리고 가지라 마냥. 외 롭다냥〜”
빠아악!
앨리스의 냥 체를 기어이 못 참고 주먹으로 앨리스의 이마를 갈겨버린 김세정은 나 죽겠다며 바닥을 구르 는 앨리스에게 중지를 선사했고, 이 런 일이 일상인 듯, 최강혁은 그들 이 짖든지, 싸우든 관심 없다는 양 독서에 열중했다.
김세정은 너무하다며 악을 지르는 앨리스를 뒤로하고 집무실을 나섰 다.
“갔다 올게. 끝내주는 놈으로 픽해 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아, 그리 고 뭐 먹고 싶은 거 있….”
앨리스가 언제 바닥을 굴렀던 것처 럼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소리 쳤다.
“올 때 메로나!”
“애냐…? 에혀, 알았다.” 김세정이 집무실에서 나오자, 복도 에서 대기하고 있던 발할라의 직원 들이 오른팔을 명치에 갖다 붙이며 척추를 곧게 피며 고개를 바로 세웠 다.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예를 갖추는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김 세정이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하얀 가면을 착용했다.
그러자, 친구들과 함께하며 풀려있 던 신체가 경직되고, 어두컴컴한 동 굴 속으로 걷는 것 같은 긴장감이 심장까지 치고 올라왔다.
‘언제부터 였을까?’
이 가면을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이 가면을 쓰고나서야, 그 녀는 김세훈이 살육을 저지를 때면 왜 하키 가면을 쓰는지 알 수 있었 다.
그래, 이것은 방패였다. 죄를 지어 야만 할 때, 상대방의 경멸과 증오 를 민얼굴로 받아내기 두렵기에 드 는 방패이며, 추악한 자신의 본질이 타인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지 않게 끔 해주는 성벽이었다.
‘그거 알아? 엄마는 아직도 말을 못 해. 그리고, 아직도 밤이면 오빠 를 찾아. 또, 혁이 오빠는 딸이 생 겼다? 아라라고 너무너무 예뻐… 그 리고 그… 아라 말인데… 오빠한테 꼭 보여주고 싶어… 꼭….’
김세정이 키득거렸다. 지금 앨리스 의 꼬락서니를 그가 보게 되면 표정 이 어떨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 그렇지. 앨리스는 오빠를 아직 도 기다려. 이왕 백 년 기다린 거 앞으로 백 년만 더 기다리겠다지 뭐 야? 그.리고 예림 언니는 꽤 강해졌 어. 뭐, 오빠 성에 차려면 멀었다며 아직도 노력 중이지만… 또 진성이 아저씨는 대머리 되기 직전이다? 완 전 웃겨.’ 마음속의 누군가를 향해 재잘거리 던 김세정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하키 가면을 고쳐 썼다. 하 키 가면의 그늘진 구멍으로 그녀의 눈빛이 달빛 아래의 수정처럼 빛났 다.
‘한심하게 혼자서 또 뭐하는… 하, 김세정. 그만하자. 이게 뭐하는 거 니? 찌질하게… 그래, 이쯤 했으면 됐잖아? 그러니 이제 놔주자. 십 년 이면 충분하잖아. 맞아. 차고 넘치잖 아?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하기 엔.’
김세정이 복도를 벗어나자 홀이 나 온다. 그러자, 수백 명이 넘는 클랜 의 직원들이 김세정을 향해 가슴에 팔을 붙이고 고개를 세운다.
발할라만의 인사법으로 자신들의 군기를 증명하던 그들은 김세정이 손을 흔들자 언제 부복했냐는 듯 자 신들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로 타이트한 가죽 갑옷을 입은 금발 블론드의 미녀가 걸어왔 다.
발할라의 부 마스터, 서예림이였다.
“마스터. 다 준비됐습니다.”
사석에서는 반말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나, 공석에선 깍듯하게 예 를 지키는 서예림이였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김세정이 서예림과 함께 다가가자 직원이 홀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 앞에 펼쳐지는 푸른 하늘. 그리 고, 밑에 펼쳐진 콘크리트 숲의 도 시.
가슴이 뻥 뚫리는 광경에 김세정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도시 위를 민들레 씨처럼 부유하는 수정체 모양의 빌딩.
이곳은 라플레시아에서도 극히 일 부만이 거할 자격을 지닌 부유 빌딩 으로, 김세정이 공을 세우고 영웅왕 에게 하사받은 건물이었다.
덕분에, 발할라는 가문이 아닌 머 셔너리 클랜(MerCenary(기an)으로 선 유일하게 부유 빌딩을 소유할 수 있었다.
끼루루룩一!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갈색 그 림자가 김세정의 바로 앞에 내려앉 았다.
부드러운 사자의 털과 독수리의 깃 털을 동시에 지닌 환수, 그리폰이었 다.
웬만한 소형 버스 크기의 그리폰 위로 김세정이 뛰어오르자, 그리폰 이 그녀가 타기 쉽도록 허리를 숙였 다.
김세정이 능숙하게 안장에 올라 그 리폰의 고삐를 쥐자, 서예림이 뒤를 따랐다. 그러자, 감히 너 따위가? 라는 눈초리로 서예림을 매섭게 노 려보는 그리핀.
크르르….
그리폰이 으르렁거리자, 김세정이 그리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야 그리핀은 선심 쓴다 는 듯 푸레질을 하며 허리를 숙여주 었다.
서예림까지 안장에 오르자, 그리핀 이 세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 랐다.
부유 빌딩 아래에서 그리핀의 출정 식을 바라보던 도시의 시민들이 웅 성거 렸다.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승용차 사 이로 스마트 폰으로 누군가와 통화 하던 이가 말했다.
“엄마, 친척 오빠 이번에 돌잔치 했지? 어때? 스텟은 확인해 봤대? 설마 폐기 대상은 아니지? 아니, 지 금 규율 집행자가 그리핀 타고 날아 올라서 그래… 아〜 아니야? 다행이 다. 응, 아니… 무서워서… 저번에 언니 딸 슬롯 2개 찍혀서 폐기당했 잖아….”
“…미친,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고….”
“퉤, 더러운 암캐. 개 같은 왕의 앞잡이 같으니… 빌어먹을, 이번엔 또 얼마나 죽어 나갈까….”
“쉿! 조용히 해. 혹시라도 랭커가 들으면 어쩌려 그래?”
“썅, 들으라 해! 단칸방에서 사는 것도 지겨우니까…! 흐}, 비 랭커인 사람들은 억울해서 살겠냐? X바… 그래. 슬롯 4개로 시민 판정을 받은 무능한 내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 냐….”
“환수… 부럽다. 나는 언제 승용차 대신 환수를 몰아보나… 아, 걱정이 네, 요즘은 아카데미에서 환수 없으 면 애들이 따돌린다던데….”
“그보다 말이야. 십 년 만에 랭커 가 되고 규율 집행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대줬을까? 응? 겁나게 대줬 겠지? 안 그래? 괜히 암캐라고 불 리겠냐고.”
“닥쳐 새꺄. 발할라의 머셔너리들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자 칫하다 걸리면 모가지 날아가. 랭커 들이 시민 목숨 파리 취급하는 게 하루 이틀인 줄 알아?”
“어쩔 수 없잖아. 왕께서는 무능한 이들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걸….” 누군가는 겁을 먹고, 누군가는 혐 오하고, 질투했으며, 누군가는 자책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 의 눈동자에 새겨져 있는 것은 명백 한 시기와 질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저 여 인이 갑주 백마의 주인이자, 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불과 십 년 만에 상위 랭커에 이른 발할라의 마스터.
김세 정이었으니까.
“이봐요.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해요? 미션 안 들어요?”
한예슬의 질문에 상념에 빠져있던 김세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 의 눈앞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낡은 하키 가면을 쓰고 있는 말총머리의 여인이 미션에 대해 한창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미션의 명칭은 ‘점수 뺏기’ 입니다. 여기서 점수란 당신들의 가 슴에 달린 번호표의 숫자를 의미하 고, 높은 숫자일수록 많은 점수를 얻게 되니 참고해 주시길.”
한 생존자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 졌다.
“잠깐만요. 그럼 순위가 낮을수록 더 유리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럼 저같이 높은 순위를 받은 사람한테 는 너무 불합리한….”
김세정이 옅은 한숨을 뱉었다. 하 늘제를 통과해서 여기까지 도착한 주제에, 한심한 질문이나 던지고 있 는 생존자가 짜증 났던 것이다.
“당신 어깨 위에 달린 건 머리입니 까? 아니면, 깡통입니까?”
“…아니 이 여자가 미쳤나. X바, 미친년이 궁금하면 좀 물어볼 수도 있지. 말이 심하….”
스르륵.
말을 잇던 사내의 목에 실금이 그 어짐과 동시에 금에서 핏방울이 새 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서서히 사내의 목에서 굴러떨어지는 머리 통.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지도 못 한 사이에 김세정이 손을 휘둘렀 고, 그 손짓이 뿜어낸 풍압이 남자 의 목을 날려버렸다는 걸 알게 됐 다.
한 사람의 생명을 눈 깜짝할 새에 앗아간 김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순위는… 97등… 높다더니 별로 쓸만하지도 않군요. 나는 1등이었는 데. 뭐, 어차피 살 가치가 없는 사 람인 것 같아 미리 정리했습니다. 그러니 확보할 점수가 사라졌다고 너무 서운해 마시길.”
순간, 그들 사이를 파고드는 적막 과 공포.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 숲이 바로 하늘제의 연장선이라 는 걸.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숨소리 하나 못한 채 긴장감에 파묻혀있는 걸 본 뒤에야, 김세정이 말을 이었다. 방 금, 한 사람의 목숨을 거둬간 것 치 곤 지나치게 무덤덤한 어투로.
“바보 같은 질문 말고, 끝까지 들 으시길. 번호표는 점수고, 목숨입니 다. 번호표를 빼앗기고 점수가 없 다? 죽습니다. 확보한 번호표의 점 수가 우리 ‘기대’보다 낮다? 이 또 한 죽습니다. 아, 참고로 여기서 우 리의 기대는 추상적입니다. 한마디 로,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그 말은 즉….”
김세정이 검지 하나를 세운 채 좌 중을 돌아보았다. 하얀 가면에 반사 된 햇살이 유난히 섬뜩하게 다가왔 “설人}, 1등일지라도 점수가 우리 마음에 안 든다면 이 또한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최대 한 많은 점수를 확보해야겠죠?” 만점이 몇 점인지 모르는 시험만 큼, 두려운 게 또 어디 있을까?
김세정의 말이 끝나자, 그들은 깨 달을 수 있었다.
이 숲의 미션이야말로, 여태까지 자신들이 겪은 어떤 시험보다도 잔 혹하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인이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잔인하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런 김세정을 김세훈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하얀 눈동자로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