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5
◈ 까망이
이지아가 물끄러미 검은 액체를 바라봤다.
꿀렁꿀렁 흔들리는 모양새는 어딘가 불안했다.
“이거 이렇게 둬도 괜찮은 건가요?”
“설아가 기운으로 다독여 두었으니 잠잠할 거다.”
“푸후. 태상문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맞는 거겠지만……”
“우리 까망이는 얌전해.”
걱정 어린 이지아의 말에 한채아가 덧붙였다.
검은 액체 앞을 막는 몸동작은 새끼를 지키는 어미였다.
“까, 까망이?”
“부를 이름이 마뜩잖아서 내가 지었어.”
“그렇게 귀여운 이름으로 부를 존재는 아니지 않나? 오늘 흑영에 휘감겨서 고생한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그건 까망이 잘못이 아닌걸. 이 아이는 그저 굶주림에 시달려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던 거야.”
“끄응. 됐다. 죽은 사람도 없고.”
천만다행으로 그 많던 사람 중에 죽은 이는 없었다.
신교의 무인들이 어떻게든 살생을 억제한 결과였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상황을 설명하는데 몇 배의 고생이 더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상이었다.
“그래서 문주님. 채아가 다루는 저 기운은 대체 뭐죠?”
“오뢰진기와 비슷하다. 사람을 조종하는 특별한 무공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었지. 수 대에 걸쳐서 이 힘을 가다듬고 마침내 완성해 냈다.”
한채아가 시체를 제압하고 천마는 힘의 정수를 뽑아냈다.
오뢰진기와 마찬가지로 그 기억이 전해졌다.
사람을 지배하는 힘을 배우기 위해 그 갈망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
지독한 명령에서 고통받고 괴로워하며 그 정수를 쌓아갔었다.
천마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정신이 휩쓸려 갔을 만큼 지독한 갈망이었다.
과한 건 털어내고 한채아에게 넘겼다.
“이름은 흑영진기라 해.”
“흑영진기. 적혀 있기라도 했던 거야?”
“부서진 석관에. 피로 ‘흑영’이라는 글자를 새겨 두었었어.”
“우리를 습격한 저 괴이의 이름도 흑영이었으니 우연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네.”
“그건 아마도……”
“영왕의 존재에 흑영진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일 거다.”
천마가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한동안 추측으로만 가지고 있던 걸 이제는 꺼낼 때가 온 것 같다.
“오뢰진기. 흑영진기. 그리고 진법 이후에 태어난 영왕이라는 존재. 만약 누군가 이를 고의로 만든 거라면 그 수단에 이러한 기운들이 동원됐을 거라고 본다.”
“그 양피지의 인물 말인가요?”
“가장 유력한 인물이다. 아주 오래전, 예상으로는 진나라 이전부터 살아온 존재. 무언가 특수한 것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식의 무학을 접목하였고, 그것이 이런 것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특수한 것?”
쏠린 시선에 천마가 잠시 침묵했다.
이건 아무래도 조금의 정리가 필요한 답이었다.
몇 초의 정적 후에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아마도 그것은 천마라는 존재.”
“……네?”
“고분의 시체들은 모두 숫자를 새기고 있었다. 본좌가 무공을 얻은 시체 역시 숫자 ‘一’을 새기고 있었지. 게다가 기록에 남은 천마라는 이름까지. 놈이 원한 최종본이 천마라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문주님을 얘기하시는 건가요?”
“아니, 내가 아니다. 나는 그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이례적인 존재. 완성을 위해 준비하던 자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나와 조우하며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문주님이 만났던 남자 말이군요.”
“그래.”
“하지만 그런 거라면 그 남자 역시 오뢰진기나 흑영진기와 마찬가지로 무공을 담아두는 틀일 수도 있지 않나요?”
천마가 가볍게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봐도 한 가지가 설명되지 않았다.
“천마진기는 세상 모든 진기 위에 군림한다.”
“……아!”
“이를 넘어서는 무엇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영왕에 다른 진기들이 들어갔다는 말은?”
“두 가지로 추려볼 수 있겠지. 그 자체라 다른 천마이든가, 천마진기를 잃어 그것을 대체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
“아! 문주님께서 시간을 넘어 버렸으니……”
대충 앞뒤는 맞아떨어진다.
천마진기를 수복해야 할 존재가 천마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거대한 진법으로 계획을 꾸몄다.
기운이 왜 영왕에 녹아 있는지, 최근 들어 반응이 거칠어졌는지 등이 설명된다.
“막 문주님의 등장이나 해왕 등의 활동을 보면 영왕의 의지가 느껴지기는 하네요.”
“괴이와의 접촉이 많아지며, 태상문주님의 존재를 느꼈다면 충분히 말이 되지.”
“이거 이야기가 너무 커서 이해가 잘 안 되네요.”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복잡한 분위기를 천마가 말로 씻어냈다.
“상대가 누구든 변하는 것은 없다. 적이 있다면 힘으로 누르고 나아가면 그만. 우리는 본래의 계획대로 모든 궁의 고분을 탈취한다.”
“……음. 확실히 그렇네요. 모든 고분의 기운을 회수하고 나면 영왕의 존재도 더 뚜렷해질 터. 그때가 되면 양피지의 인물도 숨을 수만은 없을 거예요.”
“그 사이에 산의 선자들도 끼어있기는 하지만……”
“길을 걷다 돌아보면 모든 것은 먼지와 같으니. 궁리하여 나아가라. 그것이 우리의 방식이다.”
천마가 검을 뽑아 하늘을 그었다.
길게 새겨지는 선이 너무 뚜렷했다.
그와 함께라면 세상에 복잡한 일 따위는 없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이름 짓기를 까망이라 한 존재.
한채아의 소유물인 한때의 흑영이 통통 튀어 정원에 늘어졌다.
까만 찹쌀떡 같은 생김새였다.
“자, 까망아. 우리가 인정받으려면 연습밖에 없어.”
한채아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까망이를 쿡쿡 찔렀다.
그때마다 표면이 출렁거렸다.
“다들 아직은 널 꺼리잖아. 우리가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해. 알았지?”
대답이라도 하듯 까망이 흔들리자 한채아가 만족한 듯 웃었다.
그녀는 흑영진기를 통해서 까망의 의식을 일부 느낄 수 있었다.
꽉 잡힌 충성심이었다.
“우선은 변형부터 해보자. 얼마나 크게 늘어날 수 있어?”
까망이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좌우로 확 늘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로세로 수십 미터의 거대한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한 번 출렁거릴 때마다 정원 관목들이 부러졌다.
“자, 잠깐만! 너무 커! 좀 줄어들어 봐!”
황급히 명령을 바꾸자 까망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잔디와 관목은 대거 박살 낸 후였다.
한채아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바뀌었다.
“……내가 실수했다. 체적이 늘어나면 주변이 짓눌릴 것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래서야 민폐 덩어리.
한채아가 구겨진 인상으로 주변을 보고 있자 까망이 통통 튀어서 잔해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푸딩이 나무에 녹아드는 것처럼 무너졌다.
잔해를 전부 뒤덮는 건 순간이었다.
“너, 뭘 하려고?”
잔해를 덮은 까망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부서진 나무 파편이나 이파리 따위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박살 내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와. 이걸 네가 되돌린 거야?”
까망이 관목에 매달린 채로 덜렁거렸다.
명확한 의사 표현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조각을 맞추는 건 그렇다고 해도 이미 잘린 나무를 살리는 건……”
한채아가 까망 주변을 돌다가 답을 찾아냈다.
깨끗하게 회복한 관목과 수풀 뒤쪽 공터는 완전히 메마른 상태였다.
즉, 한쪽 생명을 빨아서 다른 한쪽에 부여한 형태.
흑영진기의 지배 능력을 제외하면 이게 본래 가진 힘이었다.
흑영진기를 통해서 느껴지는 굶주림의 정체였다.
“문주님은 괴이가 영물의 일종이라고 했지. 그럼 너도 영물의 일종이니?”
까망이는 다른 괴이와는 궤가 달랐다.
애초에 독기의 지배를 당하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괴이들과는 다르게 까망은 뒤섞인 형태였다.
즉, 독기가 섞여서 완전히 다른 생명체가 된 것.
실제로 천마도 독기를 씻어내면 죽는다고 단정했었다.
“크르르릉!”
“어? 해도야.”
그때였다.
어디선가 해도가 나타나더니 까망 쪽으로 돌진했다.
막거나 피할 틈도 없었다.
관목이 부러지고 까망의 몸을 해도가 발로 크게 눌렀다.
철퍽, 무너지는 소리는 컸지만, 되레 당황하는 건 해도 쪽이었다.
애초에 까망은 액체와 비슷한 몸.
깔린 채로 해동을 덮어서 가둬 버렸다.
해도가 발로 바동거려봐도 까망의 몸은 찢기지도 터지지도 않았다.
“까망아 안 돼. 해도는 적이 아니야.”
놀란 한채아가 까망을 만류했다.
혹시나 해도를 다치게라도 하면 천마의 분노를 피할 길이 없었다.
“크릉?”
그리고 이내 까망이 해도에게서 벗어났다.
한채아가 황급히 뛰어가 둘 사이를 막았다.
재차 벌어질 싸움을 막기 위해서였다.
“크르르르. 크릉.”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해도가 어딘가 기분 좋은 얼굴로 까망 주변을 빙빙 돌았기 때문이다.
까망의 능력은 직접 제어하고 있기에 그건 아니었다.
이건 그저 단순한 기쁨.
“독기의 잔재를 가져갔구나.”
“아, 문주님.”
답을 가지고 온 건 천마였다.
하늘을 밟으며 내려와 해도 위에 걸터앉았다.
해도는 기분 좋게 울고 까망은 놀란 듯 후다닥 도망가서 한채아의 뒤에 숨었다.
“퍽 재미있는 놈이구나. 잘 따르느냐?”
“네. 제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어요.”
“그래. 기묘하긴 하나 영성이 트인 놈이니 잘만 가르치면 부족함은 없을 거다.”
“근데, 문주님. 까망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샘이다.”
“네?”
“영기를 담은 샘. 특별히 영기가 높은 지역은 그 자체로 영성을 띄기도 하지. 샘 자체가 영성을 띄고 독한 흑영진기를 모조리 빨아먹어 하나의 생명체가 된 형국이다.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니 기적에 가깝겠지.”
“샘이라니……”
한채아가 놀란 얼굴로 까망을 쿡쿡 눌렀다.
몰캉몰캉 들어가는 모습이 이제 보니 물 같기도 했다.
“본래 이런 샘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흑영진기에 뒤섞이며 형태가 이상해지기는 했으나 그 본질은 같다. 죽은 나무를 살리거나 해도의 독기를 가져간 것도 모두.”
“까망이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요?”
“그건 네 역량에 달렸다. 저 아이는 이미 흑영진기와 한 몸. 네 역량이 발달하면 그만큼 수용할 수 있는 양도 많아지겠지.”
“역량에 따라서 까망이가……”
한채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묘하게 강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까망이를 꼭 안고 머리를, 아니 머리가 있을 법한 곳을 다독여 주었다.
푸르르, 떨리는 고동이 대답 같았다.
“제가 꼭 책임지고 키울게요, 문주님.”
우리 아이를.
아니, 까망이를.
한채아가 힘껏 다짐했다.
#
어둡고 눅눅한 창고.
깊이 떨어지는 후드 차림의 한 사내가 서재를 거닐고 있다.
발밑에서 끌리는 먼지가 장소의 오래됨을 드러냈다.
길게 그어진 발자취만큼 많은 책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런 곳에서 처박혀 있을 때가 아닙니다, 사형.”
“음? 아아, 태을이구나. 이런 외진 곳까지는 무슨 일이더냐?”
그런 그의 앞에 태을이 나타났다.
“이야기 못 들은 겁니까? 흑영진기가 나타났습니다.”
“호오. 누군가 금릉을 열었구나.”
“그리 감탄만 하고 있을 때입니까? 흑영진기가 나타났다면 다른 진기들도 나타날 겁니다.”
“불사진기나 멸옥진기를 말하는 거냐?”
“네! 네! 본래 우리 것이어야 했을 그 힘들 말입니다!”
격앙되는 목소리에도 남자는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쌓아둔 책을 태을에게 건네며 다시 서재를 걸었다.
답답함에 태을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한마디를 덧붙였다.
“망산의 문을 열어라.”
그리고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