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8
◈ 작은 틈
어두운 방.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무력감에 백일태가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명제는 그를 괴롭게 했다.
“…….”
신교의 마지막 제자이며 아직은 어설픈 수련자였다.
납치한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감히 어쩔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이곳에 가만히 앉아 천마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자 남자로서 그건 무리였다.
마지막으로 봤던 링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녀는 정말로 원해서 이곳에 온 걸까.
이대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의문은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각오를 되새긴 백일태가 내면에 집중했다.
지금 그가 기댈 수 있는 힘은 오뢰진기가 유일했다.
힘의 일부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쩌면 티끌만치라도 가능성이 생길지 모른다.
강 위에 뜬 낙엽처럼 부유하기만 하는 오뢰진기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다섯 동작과 다섯 감정.
격렬함을 근본으로 하는 이 진기는 어느 것 하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가족을 죽임으로써 힘을 쌓아 올린 진기.
어설픈 수련자가 건드릴 힘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싫어.”
하지만 백일태는 혈통적인 접근성이 있었다.
피와 피로 이어지는 어떤 유대감이었다.
그건 그들이 왜 힘을 추구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감정.
이는 무력감이었다.
“무력하기 싫어 힘을 추구한 것이 오뢰진기가 되었다.”
세속적인 원리이기에 그 또한 감정적이다.
백일태가 그 단순함에 깊이 몰두했다.
그 역시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가슴에서 시작한 고동이 전신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우득, 우득.
뼈가 자리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갔다.
무아의 경지.
백일태가 껍질을 벗고 있었다.
#
망산의 선자 태오와 태선이 천마의 뒤를 잡았다.
둘은 이미 태을의 경고하에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 토기의 신물을 노릴지도 몰랐으니까.
적어도 본래의 계획이 끝나기 전까지는 천마를 막아야 했다.
“천마, 천마 하더니 무례하기 짝이 없군.”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오는 것이냐?”
소리에 담긴 힘이 천마 주변을 뒤흔들었다.
말로 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잡아간 막내를 돌려놓아라. 그리하면 온전한 형태는 유지하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천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떨리는 소리를 미풍처럼 받아내며 둘에게 경고했다.
그 담담한 말에 서린 살기가 피부를 아리게 했다.
“허튼소리를 하는군. 대체 누가 누구를 잡아갔다는 말이지?”
“신교는 원래 그렇게 무례한가?”
“연극은 집어치워라. 본좌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든다면 그 끝은 너희의 죽음뿐이다.”
“건방진 놈. 네놈 혼자서 우리 둘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직접 몸으로 받아보아라.”
천마가 선공을 취했다.
공간을 가르며 태오와 태선의 뒤를 잡아 천마휘로 공간을 쓸어버렸다.
반경 수 미터의 대지가 그대로 증발했다.
가공할만한 위력이었지만 두 선자도 만만치 않았다.
기의 막을 겹겹이 쌓아 천마휘의 힘을 바닥으로 흘렸다.
“네놈에게 안의 힘을 가르쳐 줘야겠구나.”
“톡톡히 본때를 보여주마!”
태오는 앞으로 태선은 뒤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바람같이 허공을 가르며 쉼 없이 천마에게 장권을 날렸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천마 주변으로 태풍이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잔재주 따위를.”
천마는 한 걸음을 크게 걸으며 태풍을 씻어냈다.
군림보의 힘이 바람을 누르고 천마멸의 파괴력이 공간 자체를 틀어버렸다.
바람과 같이 움직이던 태오와 태선은 그대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삐걱거리는 압력에 코와 귀에서 피가 흘렀다.
“어, 어떻게 이 정도 힘을……?”
“말도 안 돼. 우리가 일수에 밀린다고?”
“마지막이다. 막내를 돌려놓아라.”
“웃기지 마! 고작 이 정도에 우리가 포기할 것 같더냐!?”
태선이 바닥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푸른색 불꽃이 균열을 타고 번지며 주변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땅이 펄펄 끓고 달아오른 대기가 폭풍처럼 날뛰었다.
“지옥염이다.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그냥 벗어날 수는 없다.”
이어, 무형의 기운이 탑의 형태를 이룬 채 사방으로 쏟아졌다.
천마의 기운과 대치하며 불길을 한곳으로 모았다.
내부의 온도가 더욱 극적으로 상승했다.
지옥과 같은 불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지옥염과, 이를 보조하는 구궁첨탑이었다.
망산 내부에서도 태오와 태선이면 능히 장로를 이길 수 있다, 평가되었다.
“어떠냐? 이 지옥 같은 열기를 버틸 수 있을까?”
“우리는 십 년 이상 이 열기 속에서 수련했다. 네놈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버티기 쉽지 않을걸?”
천마의 도포 끝자락에 불이 붙었다.
불씨가 타올라 조금씩 옷감을 좀먹었다.
기막조차 뚫고 들어오는 지독한 열기였다.
“지옥염이라.”
이에 천마가 손으로 불씨를 잡아서 꺼트렸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분명 대단하기는 했으나, 지옥을 운운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지옥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천마의 손끝에 새하얀 백광이 어렸다.
이것은 홍염궁의 지옥도래.
하지만 홍염궁의 무공이 가지는 한계는 망산의 두 선자보다 낮다.
필요한 것은 이 불꽃을 지피는 화염의 근원.
천마진기가 순식간에 주변 화기를 집어삼켰다.
모든 기운은 천마진기에 굴복하는 법.
백광이 백염으로 변하며 주변을 휘감았다.
내부의 온도가 아득하게 상승했다.
“뭐, 뭐야!?”
“미친 거냐!? 이 온도면 누구도 살 수 없어!”
“산자가 있다면 지옥의 불이 아니겠지.”
“미, 미친놈!”
“구궁첨탑을 풀어!”
다급한 외침에 태선이 구궁첨탑을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 기운마저 화기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이었다.
지옥도래라는 무공의 이름답게 일대는 지옥이었다.
바닥은 이미 녹아 물처럼 흐르고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대기에 불의 용권풍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주변 무인 중 누구도 이 지옥도 근처로는 다가오지 못했다.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열기에 검이 녹아날 정도였으니까.
“답해라. 막내를 어디로 데려갔지?”
“크, 크아아아! 당장 이 불을 꺼! 멈추라고!”
“몸이 타들어 간다! 같이 죽을 셈이냐!?”
고통스러운 비명 속.
태연한 것은 오직 천마뿐이었다.
그는 도포가 타고 피부가 익어감에도 그저 한 가지만을 물었다.
그 집요함은 광기에 가까웠다.
“네놈들을 태워죽이고 나면 토기의 성물을 가져가 다시 물어볼 따름이다. 죽기 싫다면 답해라. 어디로 데려갔지?”
“미, 미친놈! 정말로 여기서 같이 죽을 셈이냐!?”
“고작 어린 제자 놈 하나잖아!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고 이렇게까지 덤비는 거냐!?”
“신교는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 답해라. 죽음이냐, 자존심이냐.”
머리카락이 타고 살이 익어 고름이 터지고 있다.
지독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천마는 미동조차 없었다.
태오와 태선은 천마의 그런 태도가 두려웠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집요할 수 있단 말인가.
지옥을 불러온 무공 따위는 이 광기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다, 답하겠다! 답할 테니까 제발 멈춰!”
“젠장! 우리가 졌다! 그만 이 불을 꺼줘!”
결국, 아쉬운 쪽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천마가 둘을 물끄러미 바라본 뒤, 지옥도래의 힘을 거두었다.
차츰 열기가 가라앉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겨우 숨통을 튼 태오와 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선자가 되고 처음으로 죽음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어디지?”
“…….”
부르르.
분명 이곳은 아직 뜨거울 텐데.
천마의 질문에 왜 소름이 돋는 것일까.
태오와 태선은 저들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
링은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받았다.
먹고 마시는 것부터 잠자는 자리까지 모두가 최고급이었다.
기본적으로 무극진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최상의 몸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
하지만 어딘가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젠장. 내가 왜 그따위 것들에 불편해하는 거지?”
자꾸 눈에 밟히는 신교에서의 생활.
공주도 아닌 식객 신분으로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나날이었다.
옷도 형편없고 먹고 마실 것도 최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수발들 하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그리워할 여지라고는 한 점도 없다.
근데 이상하게도 자꾸 떠올랐다.
“됐어. 이미 선택한 일이잖아. 이건 신교에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야.”
무극진기를 받아들이고 황궁을 대표해서 신교와 동맹을 맺으면 된다.
신교 입장에서도 힘 있는 친구가 하나 더 생기는 격.
어느 면으로도 나쁠 건 없다.
분명 그래야 정상인데.
“왜 나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지?”
백일태가 딸려온 건 사고였다.
당분간은 보안 때문에 가둬둔 것뿐이지 일이 끝나면 안전하게 돌려보낼 것이다.
결코, 나쁜 의도 따위는 없다.
어차피 힘을 추구하는 것이 무인의 본능.
그 본능을 따른 것에 불과하다.
“……하아. 이거 안 되겠다.”
“뭐가 안 된다는 말입니까?”
툭 튀어나온 속마음에 답변이 돌아왔다.
링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녀를 이곳까지 안내한 목소리의 주인, 태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뒤에 서 있었던 거지?”
“조금 전에 왔습니다. 뒷모습이 어딘가 심란해 보여 말을 걸까 고민했죠.”
“쯧.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어.”
“무엇인가요?”
“갇혀 있는 백일태를 만나고 싶어.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가능하면 몰래 밖으로 내보내 주고 싶어.”
그리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았다.
“안 됩니다.”
“안 된다고? 어째서?”
“대업을 치르기 전까지는 최상의 몸과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외부인과 접촉해서 정신이 흐트러지면 곤란합니다.”
“그 외부인 때문에 심란하다고. 백일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거잖아. 내가 설명하게 해 줘. 그리고 가능하면 나가게도 해 주고.”
“불가합니다.”
“어째서!?”
계속된 거절에 링의 목소리가 커졌다.
“공주님께서는 선택하셨습니다. 이제 와서 마음에 걸린다고 불필요한 일을 하면 곤란합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신교의 제자입니다. 섣불리 풀어주었다가 이곳이 들통나면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몰래 풀어주면 되잖아!”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공주님께서는 얌전히 이곳에서 대업 준비만 하시기를.”
“너…….”
“그럼 소인은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태허가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태도는 언뜻 공손한 것 같으나, 그의 기세와 말투는 전혀 아니었다.
고압적이고 차가운 느낌.
천마도를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다 잡은 고기라는 거냐?”
불쾌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혀끝에 닿아 불쾌감을 배로 만들었다.
선택에 대한 후회와 불안감이 더불어 몰려왔다.
“……공주. 공주님.”
“응?”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일까 싶었지만, 끊이질 않았다.
링이 벽을 더듬어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갔다.
구석에 난 조그마한 틈이었다.
“공주님, 저예요.”
“백일태?”
만나고 싶었던 사람.
링의 얼굴에 의문과 반가움.
그리고 그 너머의 어떤 감정이 함께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