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7
◈ 성난 걸음
백일태는 서늘함에 잠에서 깨어났다.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었다.
부스럭 소리가 벽에 튀어서 작게 울리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털며 기억을 더듬었다.
“……링 공주님.”
어딘가 이상했던 링의 모습과 그녀를 향해 달렸던 마지막 발걸음.
그리고 몸을 잡아끌던 흡입력이 떠올랐다.
용수철처럼 튀어서 일어났다.
“납치라도 당한 건가?”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안은 어두워 시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손으로 더듬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그나마 경사를 따라서 앞뒤는 구분이 가능했다.
조금 더 위쪽 경사를 타고 올라가자 희미하게나마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건 달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일종의 옥이었다.
“대체 여긴 어디지?”
그렇게 밝은 장소까지 나오자 아찔함이 반겼다.
발끝에서 부서진 돌 부스러기가 낭떠러지를 타고 저 아래로 떨어졌다.
동굴 한쪽으로 나 있는 작은 구멍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창문에 불과했다.
한 걸음만 더 내딛어도 추락만이 있을 뿐이었다.
“허튼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거다.”
“……!”
순간, 낯선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백일태가 탄력 있게 몸을 돌리며 소리 쪽으로 발을 날렸다.
발은 바람만 가르고 지나갔다.
“제법 반응은 좋군.”
“누구냐!?”
흐릿한 음영을 가르며 깊은 후드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밤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 정도라고 표현하면 좋겠군.”
“관리? 대체 여기는 어디냐? 공주님은 어디에 계시지?”
“후후. 공주님을 찾는 왕자님인가.”
“묻는 말에는 답을 해.”
“상황파악은 많이 부족하군.”
“컥……!”
관리자라 칭한 남자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백일태의 목을 움켜쥐었다.
힘으로 반항해보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다.
몸이 강철이라도 된 듯 엄청난 힘이었다.
“너를 살려두는 건 어디까지나 공주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면 너 같은 버러지를 그냥 두었을까.”
“크, 크윽! 공주님의 요청이라고? 그게 무슨 뜻이냐!?”
“어리석은 놈 같으니.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 링 공주는 강요에 못 이겨 온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을 해서 우리에게 온 거지.”
“거짓말!!”
“하하. 공주가 직접 우리를 따라온 것이 아니라면 어찌 천마를 속일 수 있었겠느냐.”
“크윽…….”
백일태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천마도에서 본 링은 억지로 당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부정했었다.
링이 비록 오만하고 제멋대로라고 해도 사람들을 배신할 인물은 아니라 믿었으니까.
“어리석은 놈. 인간의 오욕칠정 따위는 부질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모든 걸 잊도록 해라. 공주가 무극의 힘을 얻고 나면 그땐 네놈을 종복 정도로 쓸지도 모를 일이니까.”
“링 공주님을 만나게 해 줘!”
“말했을 텐데? 네놈이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공주의 부탁 때문이라는 것을. 처지를 자각해라.”
남자는 그대로 백일태를 던져버렸다.
벽에 부딪힌 충격에 백일태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했을 때는 이미 남자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분으로 바닥을 후려치고 이를 갈았다.
‘어째서.’라는 질문을 링에게 할 자격도 힘도 자신에게는 없었다.
지독한 무력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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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을 비틀어 링과 백일태를 데려간 수법은 엄청나게 고등의 것이었다.
심지어 천마조차 생소한 종류였다.
은밀함, 독특함, 강력함 모두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분을 장악하던 진법에 비견될 정도였다.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당시 천마도 주변에서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합니다.”
“바다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해상에 있던 모든 배를 추적했지만, 의심스러운 행적은 없습니다.”
“냄새도 없어. 해도도 더는 모르겠대.”
신교의 모든 이들이 주변을 샅샅이 탐문했지만 실마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종적이 끊겼다.
고위 술법이라 해도 능력의 범위는 있을 터.
이를 바탕으로 탐문 범위를 정했음에도 아직 나오는 것이 없었다.
“태상문주님,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아는 자를 불러야겠지.”
“아는 자요?”
천마는 답을 생략하고 하늘로 주먹을 뻗었다.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빛 덩어리가 구름을 가르고 하늘 위로 뻗어 나갔다.
순식간에 밤을 밀어내고 낮을 불러왔다.
“……초?”
그리고 그 빛은 하나의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산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자라면 초요립이다. 이 빛을 보았다면 상황의 위급함을 이해하겠지.”
“만약 그분께서도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황궁부터 부순다.”
“네?”
“목군은 황궁의 수법이 아니라고 했으나, 황가의 아이가 사라졌다면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그들이다. 황궁을 잿더미로 만들다 보면 무엇이라도 나오겠지.”
관계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지아가 입술만 달싹이며 질문은 하지 못했다.
담담한 듯 보이는 천마의 눈빛이 너무나 살벌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천마는 작정하고 살계를 열 것이다.
그때는 과연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것이 너무 두려웠다.
“이거, 화려하게도 해 주었군.”
그때였다.
바람을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건가?”
“공교롭지만 찾아가고 있던 길이라서.”
초요립이었다.
사뿐하게 천마 앞에 내려섰다.
하늘을 뚫어버린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황가의 아이와 막내가 사라졌다.”
“막내라면 최근에 뽑았다고 하는? 천마도 안에서 납치를 당한 건가?”
“매우 교묘하게 내 기막을 비틀어서 둘을 잡아갔다. 산의 선자들 중 그런 것이 가능한 자를 알고 있나?”
“음. 어쩌면 내가 한발 늦은 걸지도 모르겠군.”
초요립이 혀를 찼다.
“산에 남은 내 연락책을 통해서 묘한 전갈을 받았다. 무덤같이 조용하기만 하던 산에 소란이 감지되었다는 내용이지.”
“어디지?”
“망산. 다섯 산 중 가장 은밀하고 음험한 곳이지.”
“그들에게 이런 술법을 펼칠 역량이 있나?”
“나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망산의 장로라면 아마 가능할 거다. 가리고 감추고 속이는 것에는 그들만 한 능력자가 없으니까.”
콰득.
천마의 발밑 암석이 그대로 으깨졌다.
스물스물 새어 나오는 살기에 초요립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진정해. 망산은 분명 괴팍한 장소이나, 그만큼 목적 없이는 움직이지 않아. 네 제자도 당장은 무사할 테니까 살기는 넣어 두라고.”
“망산으로 가는 방법은?”
“안에서 입구를 열지 않으면 불가능해. 통로 또한 임의로 변경이 가능하니 예측도 어렵지.”
“네 연락책이라는 인물이 할 수는 없는 건가?”
“그 정도 권한은 없어. 다만…….”
“다만?”
“그가 예전에 보내온 정보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초요립이 바닥에 그림을 새겨넣었다.
일종의 지도였다.
“오행지기 중 땅의 신물이 봉인된 위치다.”
“토기? 그게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망산은 속세의 모든 것을 잊고 무로 회귀함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 근본이 되는 걸 땅에서 찾지. 선산의 선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오행의 힘을 사용하는 거다.”
“신물이라는 건가.”
“제자와 교환할 가치 정도는 있겠지.”
의미를 이해한 천마가 침묵으로 사고했다.
마도를 걸음에 있어서 이런 방식은 원치 않는다.
힘으로 적을 제압하고 찍어 누르는 것이 원칙.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막내 제자가 달린 일이다.
자신이 두 눈 뜨고 있는 영토 내에서 사라진 제자의 일.
이건 수단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정확한 위치를.”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망산의 신물과 같으니 지키는 자들 역시 보통이 아니겠지.”
“상관없다. 막아서면 모조리 죽일 뿐.”
“…….”
초요립은 마른침과 함께 뒷말을 삼켰다.
이 정도까지 직접적으로 살육을 암시하는 천마는 처음이었다.
그를 깊게 아는 건 아니지만 이건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단순한 쟁투 이상.
피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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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이번만큼은 모든 문도들을 그대로 둔 채 혼자 움직였다.
경험을 쌓게 할 때가 아니었다.
초요립이 알려준 장소로 공간을 이동한 뒤, 일대를 기감으로 훑었다.
무공을 익힌 이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었다.
“진법이군.”
그리고 산을 통째로 휘감은 진법을 감지했다.
쉽게 볼 수 없는 고등의 진법이었다.
초요립이 위치를 특정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의 은밀함.
게다가.
“같은 방식이로구나.”
천마도에 침입했던 술법과 진법의 형태가 같았다.
같은 맥을 가지는 기술은 아무리 변형이 되더라도 그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천마는 이를 단번에 간파했다.
“문을 열어라.”
극성의 천마진기가 손끝으로 모여서 전면을 쳤다.
세상 모든 것을 멸하고도 남을 팔단공, 천마멸이었다.
진법의 기운이 삽시간에 휘말려 소멸하고 그 너머의 구조물이 통째로 무너졌다.
당황한 목소리와 황급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그 앞에 천마가 내려앉았다.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적이다! 적이 찾아왔다!”
“위치를 사수해라!”
우르르 몰려오는 적들을 천마가 그대로 밟았다.
천마군림의 힘이 일대를 그대로 짓눌렀다.
수십의 무인이 있었지만 견디는 사람은 없었다.
뼈마디가 부러지며 수수깡처럼 주저앉았다.
피와 비명 사이를 천마가 가로질렀다.
“조, 조심해라! 괴물이다!”
“젠장! 장로님을 불러와!”
“못 오게 막아!”
산은 넓고 적은 많았다.
수십, 수백의 무인들이 쏟아져나와 천마 앞을 막았다.
하나하나가 상당한 수련을 겪은 고수였다.
하지만 그와 상대하는 건 화가 난 천마였다.
그의 걸음 아래에 모조리 박살 났다.
무기조차 들지 못하고 재주 한 번 부리지 못했다.
걸음에 실린 경력에 누구 하나 버틸 수 없었다.
“그만! 대체 어디의 고인이기에 이리 행패를 부리시오!?”
보다 상급자가 나타난 건 그 무렵.
숫자 역시 적지 않았다.
“이곳에 보관 중인 토기의 신물을 가지러 왔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이곳에는 그런 물건 따위는 없습니다. 설사 있다고 한들, 그쪽같이 무례한 자에게 양도할 생각 따위는 없소!”
“지하 깊숙한 곳에 보관 중이군.”
“어, 어떻게 그걸!?”
“아직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니 모두 물러나라.”
천마라 뒷짐 진 채 모두를 향해서 선포했다.
아직 까지는 망산의 일원이라는 수준에서 공격했을 뿐.
확신이 없었기에 그나마 힘을 조절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이들 중 몇은 확실히 자신을 알아보고 있다.
그 두려움은 단순히 명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넌 대체 누구냐!?”
“천마. 앞길을 막아선다면 마지막으로 듣게 될 이름이다.”
“천마!? 그 천마라고?”
“천마가 어째서 여기에?”
술렁거림 속 천마가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했다.
초요립 수준의 강자가 무려 둘.
굉장히 빠른 대처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해진다.
“너희가 무엇을 건드렸는지 알게 해 주마.”
진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