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1
◈ 싸움의 법칙
어린 소년.
천마는 목소리의 주인을 보며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이내, 소년의 내면을 꿰뚫어 보며 판단을 수정했다.
작은 몸에 담긴 힘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마치 작은 바구니에 담겨 있는 태양 같았다.
“네가 초요립을 죽인 자인가?”
“두 말은 하지 않아. 그 물건은 우리 것이다. 돌려줘야겠어.”
“답해라.”
“너야말로 답해.”
소년은 답을 무시하며 천마에게 요구했다.
그 태도는 어딘가 억척스러웠다.
곁에서 보던 안기남이 앞으로 나서며 그 태도에 창끝을 드리웠다.
“무엄하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들어오는 것이냐?”
“흥. 너같이 약한 놈하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저리 비켜.”
“감히……!”
발끈한 안기남의 창이 소년의 어깨로 향했다.
발 내딛음과 함께 뻗은 경쾌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창은 소년의 어깨에 닿기도 전에 방향이 하늘로 바뀌었다.
정확하게는 안기남의 몸 전체.
그는 머리부터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크게 굴렀다.
“크, 크윽!?”
“싸우란 얘기는 없으니까 여기까지만 하는 거야. 더 덤비면 목을 부러뜨리겠어.”
“호오. 손속에 여유를 두는 것이냐? 네게 그 명령을 내린 건 누구지?”
“난 네 질문에 답하러 온 것이 아니야. 쥐고 있는 무명잔본이나 내놔.”
천마가 빙그레 웃으며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누군가에게 강요받는 건 달갑지 않다.
그 대상이 안면 있는 사람을 죽인 자라면 더더욱.
발끝에서 힘이 물결처럼 번지며 소년을 밀어냈다.
“이런 식이면 나도 더는 못 참아.”
소년은 그 물결을 가르며 꼿꼿하게 섰다.
땅이 갈라지고 대기가 찢어져 굉음을 토해내는 공간에서도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되레, 반격을 준비하는 기세까지 있었다.
“참지 못한다면 어찌할 셈이더냐.”
“너에 대한 경고라면 들었다. 하지만 몸도 정상은 아닌 자에게 당하지는 않아.”
“그거 제법 도발적인 말이구나.”
“창피당하기 싫다면 무명잔본이나 내어놓으라고.”
“초요립 그자가 목숨과 바꾼 물건이다. 어찌 그냥 내어 줄 수 있을까. 적어도 네 피로 그의 넋은 달래야 하겠구나.”
천마의 기세가 곱절로 늘어났다.
양손에 천마멸의 기운이 서리더니 공간을 찢었다.
소년도 이는 경시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허공을 손끝으로 가로질렀다.
세로 방향의 선이 허공의 한 부분이 갈라지고, 그 안으로 천마멸의 기운이 쓸려갔다.
파괴의 힘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막거나 흘리거나 되받아친 것이 아니었다.
“천마신공 구단공에 준하는 기예로군.”
“세상에 잘난 사람이 너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가운 얘기구나.”
기공은 소년의 기예에 흡수될 뿐.
천마는 망설이지 않고 보법을 밟아서 거리를 좁혔다.
바다 위를 헤엄치는 용과 같이 화려한 흔적을 새기며 천마가 소년의 뒤를 점했다.
무방비로 놓인 뒷덜미.
천마는 손을 뻗으려다 무언가 이상한 기척에 공간을 뒤집어서 거리를 벌렸다.
콰득, 하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소년의 후방이 그대로 무너졌다.
이건 이지아가 사용하는 기공의 방식이 아니었다.
“직접 관여하는군.”
“쳇. 눈치는 좋네.”
펄럭. 천마가 소매를 털어서 바람을 만들었다.
먼지가 떠올라 소년 주변을 훑고 지나가는데, 몇몇 공간에 묘한 공백이 있었다.
마치 그곳만 공간이 결여된 모습이었다.
“힘으로 법칙에 접근하지 않는다. 과연, 무명잔본에 새겨진 이치는 이런 것인가.”
“그걸 읽어버린 거냐!?”
“이치에 대한 접근이 사뭇 다르더군. 네가 모시는 자가 이를 창안한 것인가?”
“젠장! 당장 내놔!”
소년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주변 공간의 결여가 수십, 수백으로 확장하더니 천마를 사방에서 짓눌렀다.
기묘한 일그러짐이 물 위에 떨어진 기름처럼 번졌다.
폭발음이나 강렬한 울림은 없었지만, 그 공간 하나하나가 무기였다.
사람의 목과 머리 사이의 아주 작은 공간 하나.
그것만 단절되어도 생명은 사라지고 마니까.
소년의 결여된 공간은 그런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천마는 이에 대응하여 천마신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천마진기를 직접 결여된 공간에 집어넣어서 그 주도권을 다투었다.
적은 틈에서 생긴 비틀리고 어긋난 이치의 폭포가 천마를 괴롭혔지만, 이는 익숙했다.
이미 무명잔본에서 겪은 바 있으니까.
수없이 난립하는 허상 속에서 천마는 진실을 쥐었다.
그건 공간을 비트는 어떤 핵심 스위치였다.
딸칵, 하고 꺼버리니 공간은 그대로 보통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만상지력(萬想之力)을 쓴다고!?”
소년의 놀란 얼굴을 보며 천마가 주먹을 내질렀다.
공간이 파도 모양으로 물결치며 소년을 밀어냈다.
첫 공격을 서서 막아냈던 그이지만, 이것은 결이 달랐다.
크게 두 걸음을 물러났다.
“중화했군. 물결치는 공간의 상을 반대의 상으로 받아친다는 건가.”
“미친. 있을 수 없어. 무명잔본을 봤다고 해도 고작 몇 시간이야. 그 사이에 만상지력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
“단어는 낯설지만, 힘의 개념은 그렇지 않다. 본좌 역시 오래전부터 이와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천마신공 구단공에 이르러 느낄 수 있던 세상의 목소리.”
뒷짐 지고 답하는 천마의 모습에 소년이 아연한 얼굴을 했다.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은 개념을 알고 배운 결과.
하지만 천마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얻어냈다.
이건 신석기 시대의 원시인이 핸드폰의 이치를 깨닫기보다 어렵다.
이래서 천마를 경고했던 건가.
소년은 누이의 말을 곱씹었다.
“……안 되겠어. 너를 이대로 두면 어디까지 강해질지 가늠하기 어려워. 싸우지 말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전력을 다하겠다는 건가?”
“고작 시작점을 알았다고 모든 걸 깨우쳤다고 생각하지 마라. 만상의 힘은 세계로 통하는 문의 손잡이. 네 어리석음에 죽음을 더해주마.”
“호오. 그렇다면 본좌도 네게 알려주마. 지금껏 숱한 이들이 본좌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천마와 소년이 서로를 마주 봤다.
팽팽한 긴장감이 둘 사이를 연결했다.
줄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툭―
신호가 된 것은 작은 돌조각 하나.
공간 위로 번지는 그 작은 울림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서로를 향해서 뻗는 주먹은 공간을 뒤흔들었다.
비틀리고 중화되고, 다시 어긋나고.
공간이 마치 종이처럼 계속해서 구겨졌다.
소리마저 구겨진 매질을 통과하지 못하여 침묵으로 일관했다.
폭발도 소음도 없는 단순한 타격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태로운 싸움이었다.
싸움이 길어지며 완전히 중화되지 못한 공간의 단절이 여기저기 칼날처럼 퍼졌기 때문.
스치기만 해도 숨이 끊어질 수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군.”
“……쯧.”
천마는 싸움 속에서 이해했다.
초요립의 일격이 어째서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았는지.
소년의 공간제어는 확실히 거리와 총량의 제한점이 있었다.
너무 멀어지면 제어가 불확실해지고, 총량이 넘어서면 여파가 밖으로 샌다.
즉, 다룰 수 있는 바구니가 작다는 의미.
“그 흔적은 거력이 아니었군. 법칙을 쥐고 흔든 상처에 불과했어.”
“닥쳐! 날 평가하지 마라!”
소년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잘린 공간의 파편이 칼날처럼 돌아서 천마를 노렸다.
마치 공간으로 만든 만천화우와 같았다.
‘잔재주일 뿐이다.’ 하지만 천마는 당황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파편을 정면에서 받으며 힘의 파문을 방사했다.
그것은 천마진기였으나, 소년의 말을 따르자면 만상지력이었다.
직접 공간에 닿아 파편을 중화시키는 힘이었으니까.
파편은 파문이 닿자 이내 보통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아직이다!”
그때, 소년이 중화되는 공간의 힘을 손으로 쥐었다.
무릇 물건이 휘었다가 돌아가면 그 탄력을 가지는 법.
공간도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결여된 공간이 중화되며 비틀림에 대한 탄성처럼 주변으로 강한 힘을 내뿜었다.
소년은 이 힘을 모조리 모아서 검처럼 쓴 것이다.
“무, 문주님!”
그리고 이 검은 순식간에 천마를 관통했다.
가슴을 관통하는 커다란 무색의 일렁임에 안기남이 소리쳤다.
“하하! 그러니 알량한 재주를 믿고 설치면 안 되는 거다. 만상지력을 사용한 여력은 이렇게 다룰 수도 있지. 이를 회종검(會從劍)이라고 한다.”
이에 소년이 득의한 얼굴을 했다.
만상지력에 당한 상처는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아무리 천마라 하여도 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회종검이라. 좋은 수군.”
“……뭐? 어떻게?”
“힘을 감싸서 본좌의 몸을 비틀었을 뿐이다.”
천마가 가슴을 관통한 회종검을 손으로 잡아뽑았다.
검은 그대로 공간에 노출된 뒤, 마치 연기처럼 흩어졌다.
뚫렸어야 정상인 천마의 가슴은 멀쩡했다.
“설마. 말도 안 돼. 단절과 중화를 넘어서 분접(分椄)의 요령을 쓴다고?”
“분접이라. 썩 어울리는 이름이군.”
천마는 회종검이 들어오는 공간을 전부 낱개로 잘라서 옆의 공간과 이었다.
즉, 회종검이 가른 건 천마의 가슴이 아닌 다른 공간.
단절되었지만 단절되지 않은 기괴한 능력이었다.
“본좌가 만나본 아이들 중 공간의 술을 사용하는 이가 있지. 생각해 보면 과거 선인들도 비슷한 방식을 이용했다. 네 것이 우위에 있다면 우위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들의 것도 나쁘지는 않지.”
“……거짓이나 쌓인 경험은 거짓이 아니다. 이 말인가.”
“이해했다면 네가 한번 받아 보거라.”
천마가 양손으로 만상지력을 쥐었다.
공간을 그대로 단절하는 법칙의 검이었다.
순식간에 검격이 소년의 전면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당황했지만, 가진 능력으로 이에 대응했다.
공간이 잘리고 붙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하지만 천마는 배운 걸 바로 쓰는 것에 선수였다.
맞부딪친 공간이 중화되어 흩어질 때마다 그 여력을 점으로 쥐어서 소년에게 날렸다.
앞선 것이 회종검이었다면 이건 회종탄.
소년은 이를 파훼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커어억……!!”
이내 회종탄 하나가 소년의 배를 관통했다.
뻥 뚫린 구멍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공간 자체가 도려진 것이기 때문에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막기 위해서는 공간 자체를 중화해야 하나, 이를 천마가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계속해서 몰아치는 검에 상처는 늘어갔다.
“어떠냐. 이제는 네가 모시는 자에 대해서 말해 볼 생각이 드는가?”
“웃기지 마! 고작 이런 상처 따위에 굴복할 것 같아!?”
“그래. 잘 말했다. 죽은 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는 걸맞은 생명이 필요하겠지.”
천마는 굳이 매달리지 않았다.
의문은 많았지만 죽은 초요립이 우선이었다.
양손에 잡힐 정도로 작게 다루던 만상지력을 순식간에 거대한 나무 크기로 확장했다.
소년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괴물. 고작 하루 만에 어찌 이런…….”
“답은 저승에서 구해보도록 해라.”
천마는 그 힘을 그대로 소년에게 던졌다.
발버둥을 치듯, 소년의 검이 만상지력을 조각조각 중화했지만, 총량이 너무 컸다.
이미 힘은 눈앞까지 당도해 공간을 무너뜨렸다.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혼이 날 줄 알아라.”
하지만 그 순간.
무너지는 공간을 가르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결여된 지역을 토막으로 나누어 순식간에 중화시킨 뒤, 그 여력마저 바람에 날렸다.
일련의 과정이 한 호흡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누이!”
“조용히 해. 여기서는 물러난다.”
그녀는 재빨리 소년을 품 안으로 거두었다.
“놓아줄 것 같더냐?”
천마는 상대의 기색을 읽었다.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
만상지력을 다시금 쥐어 난입한 이를 가르려 했다.
“쫓는다면 그쪽 제자는 죽습니다.”
“…….”
하지만 검은 휘두르지 못했다.
난입한 여자의 힘 중 하나가 안기남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기 때문.
힘을 방사하며 이를 중화할 재주는 없었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여자는 곧바로 소년을 안은 채 공간을 넘어갔다.
남은 건 흩어지는 바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