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2
◈ 과격한 질문
한바탕의 소란이 끝나고 신교가 한자리에 모였다.
천마가 천마도 한복판에서 습격당한 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도움은커녕 짐만 되다니.”
안기남은 분을 참지 못했다.
제대로 무를 닦은 이후로 처음으로 겪는 무력감이었다.
소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책할 일이 아니다. 그 아이의 힘은 산의 선자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미숙함은 있지만, 쉬이 상대할 성질은 아니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외모와 다르게 나이가 수십 배인 건 아니겠죠?”
“그렇진 않을 거다. 말투나 행동으로 보건데, 드러난 모습 그대로의 나이겠지. 다만, 그 육체의 기질은 어딘가 기묘했다.”
천마는 자신과 싸웠던 소년을 떠올렸다.
단순히 보기로는 잘 단련된 무인의 육체.
하지만 그 너머로 미묘한 어긋남이 있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일단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추후에 생각해 보도록 하자. 지금은 이 물건과 그를 쫓는 이들에 대해서 따져봐야 할 시기다.”
깊은 사색은 물리고 무명잔본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고작 다섯 자가 적힌 낡은 양피지.
하지만 이 물건을 위해 천마와의 일전을 불사한 이들이 있었다.
그 행보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산의 배후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배후라. 어쩌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본좌가 사라지고 난 뒤, 진법을 전하여 무림을 일소한 것도 분명 그들이다. 후에, 산의 일부와 소통하며 여러 가지 일을 주도한 것도 사실. 궁의 거점이 된 고분과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시체들까지 생각하면 부정하기는 어렵다.”
“대체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전에도 말하지 않았더냐.”
“천마의 탄생……말인가요?”
이지아의 반문에 천마가 끄덕였다.
“단순한 권력이나 지배의 욕심 따위는 아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미 세상을 쥐고도 남았겠지. 일련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건 단순한 바람. 존재에 대한 염원이다.”
“존재에 대한 염원. 천마라는 존재를 숙원한다는 겁니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주술이나 방법론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신앙의 주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양피지를 남긴 자는 그 하나를 위해 수천 년을 살아가고 있지.”
수천 년이라는 압도적인 숫자에 모두가 침묵했다.
일생을 길게 봐야 백 년.
그 수십 배가 되는 시간을 하나에만 몰두한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 감내할 무게가 아니었다.
“대체 무엇을 상대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군요.”
“상대가 무엇이든 변하는 건 없다. 그들의 바람이 본좌의 길과 충돌한다면 힘으로 누르면 그만.”
“히, 힘으로 말입니까?”
“마도에 어중간함은 없다.”
그 무시무시한 세월의 무게조차 천마에게는 별다른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
되레 그는 작은 흥분을 느꼈다.
어쩌면 유구한 삶 속에서 만나보지 못한.
절대적인 강자와 싸울지도 모르니까.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홀로 남아 부딪칠 것 없이 삭아가는 것.
“오늘부터 무명잔본을 수련한다.”
화려하게 타올라라.
천마는 가슴속 열망에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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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
짐짝처럼 달려가던 소년, 삼아가 소리쳤다.
그의 누나 되는 여성이 걸음을 세우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왜 그냥 도망친 거야!? 그자를 죽였어야지!”
“……지금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야?”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위험하다고.”
아버지라는 말에 소년이 더듬거리자, 소녀의 얼굴이 더욱 차가워졌다.
“명령은 분명했어. 무명잔본을 찾아오는 것. 근데, 지금 뭘 하는 거지? 누가 천마와 싸우라고 그랬어?”
“잔본만 챙기려고 했어! 근데 그 인간이 이미 책을 읽었다잖아. 이미 만상지력을 깨우쳐서 쓰고 있었다니까. 그런 괴물을 어떻게 그냥 둬?”
“……내가 오지 않았으면 죽는 건 너였어. 우리가 육체는 완전한 불사가 아니야. 만상지력에 당하면 죽을 수 있다는 건 알아야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다만, 그 인간이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야. 그래도, 이 누나까지 왔다면 싸워 볼만은 하잖아.”
삼아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혼자라면 필패.
하지만 둘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 설사 우리가 이긴다 해도 그건 아버지의 명령에 반하는 일이야. 큰오빠가 이걸 그냥 두고 볼 거 같아?”
“……윽.”
“하아. 우린 그냥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돼. 그 이상을 염려하는 건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잔본은……내가 어떻게든 회수할 테니까 넌 상처나 치료하고 있어.”
소녀는 철없는 동생의 말을 일거에 잘랐다.
잠깐 부딪쳤던 것에 불과하나 천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자를 인질로 잡지 않았다면 승산을 점치기 어려운 상대.
설사 둘이 합공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누나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건 너나 나보다 나은 사람이 한 명 있잖아.”
“작은 형? 하지만 작은 형은 유폐되어 있잖아.”
“아버지께서 특별히 풀어주셨어.”
“풀어주었다고? 작은 형을?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야. 우리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
“그건 그렇지만, 난 작은 형이 무서워. 애초에 유폐된 이유도 명령을 무시하고 서쪽 대산의 선자들을 모조리 학살했기 때문이잖아. 그런 사람을 다시 쓴다고?”
동생의 물음에 소녀는 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이번 선택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많았다.
하지만 명령을 내린 건 다름 아닌 아버지.
거역할 수도, 거역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건 아버지의 뜻대로 흘러갈 거야.”
자신에게 말하듯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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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무명잔본을 깊이 들여다봤다.
다섯 자로 함축된 오묘한 진리는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것이 튀어나왔다.
이것만 탐독해도 몇 년은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는 없었다.
“해체본을 만들어야겠다.”
“해체본이요?”
구절을 뜯어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전체의 뜻을 헤아리기는 어려워지나, 되레 익히기는 쉽다.
천마 자신이야 이미 함의를 머리에 담았으니, 제자들을 위해서는 난도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
“화아와 호아를 불러와라.”
지금 해체본을 만들었을 때, 이를 소화할 수 있는 건 두 사람.
오뢰진기를 얻은 백일태와 흑영진기를 얻은 한채아였다.
천마는 고분의 무공이 무명잔본에 실린 만상지기를 익히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임을 깨달았다.
방식은 다르나 목적지는 같았다.
“너희 둘은 이제부터 해체본을 익힌다. 함의에 도달하기에는 경지가 턱없이 부족하니, 칼끝을 다듬어 경계를 허물도록 한다.”
“어찌하면 되는 겁니까?”
“수련 방법은 소상하게 적어주마. 너희 둘의 진기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 해체본을 따르면 어렵지 않게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천마는 무명잔본 다섯 자 중 하나를 떼어 두 사람에게 풀어주었다.
이는 현대의 서식으로 300권이 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천마가 덜어내고 덜어내어서 나온 분량이었다.
제대로 정석을 밟으려면 몇 배가 되어도 부족했다.
“막가와 목군은 두 사람을 도와라.”
“흐음. 너는 어쩔 생각이지?”
“놈들이 원하는 건 결국 무명잔본이다. 본좌가 움직이면 따라올 터. 겸사겸사 고분을 탐사할 생각이다.”
“고분? 지금 알고 있는 고분이 더 있나?”
벽력궁과 환희궁은 이미 획득한 상황.
황궁의 무공은 이미 망산의 선자들이 먼저 선점했다.
당장, 다른 궁의 소식은 들어온 것이 없다.
“알만한 곳이 있다.”
하지만 길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법.
천마는 조금 과격한 방법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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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반으로 쪼개졌다.
소리에 놀란 금의위들이 우르르 몰려와 전면을 포위했다.
그 숫자가 대충 잡아도 천을 넘었다.
“손님 대접이 박하구나. 주인을 불러오거라.”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날뛰는 것이냐!?”
“황궁 아니더냐.”
부서진 문을 밟으며 천마가 손짓했다.
대기가 돌덩어리처럼 무거워지며 금의위를 눌렀다.
일제히 땅에 주저앉았다.
버티는 이 하나 없었다.
“네놈, 천마!! 드디어 정신 줄을 놓았구나! 감히 황궁을 침범하다니!”
“개진하라! 저 망나니를 이곳에서 처리한다!”
“황궁의 위엄을 지켜라!”
금의위는 무너졌지만, 병력은 더 있었다.
수백의 무사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와 천마를 포위했다.
하나하나가 고수였다.
“황궁이라는 곳이 그리 위세 넘치는 장소였나?”
하지만 그래 봐야 바위에 던지는 달걀일 뿐.
천마는 천마군림으로 사방을 포위한 진법을 통째로 밟아버렸다.
압도적인 힘 앞에 기교는 의미 없는 것.
수백의 무사가 일제히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천마는 그 모습을 눈으로 훑고는 대전을 가로질렀다.
더 이상은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으음. 천마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바람처럼 천마 옆에 목군이 나타났다.
개입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한때 몸을 담았던 곳이다.
태풍 앞에서 무너지는 초가집 같은 꼴에 참을 수가 없었다.
“공주를 어여삐 여긴다면 네가 나서야 맞지 않나?”
“그건……복잡합니다. 황궁의 처사가 옳지 않은 건 분명하나, 평생을 몸담았던 곳입니다. 그리 종이를 베듯 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 네 바람은 이름에 달린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 달린 것이냐.”
천마는 그런 목군의 가슴을 쿡 찌르고는 스쳐 갔다.
목군은 잡지도 만류하지도 못했다.
그의 말대로 황궁이라는 이름에 집착하는 자신은 마음을 속이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 황궁을 떠났을 때부터.
이미 마음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네가 황제인가?”
목군이 상념에 빠져있을 때.
천마는 대전을 가로질러 황제의 방에 당도했다.
금빛 옥좌 위에 앉은 용포 차림의 남자.
그가 황궁의 주인인 황제였다.
“무엄하다. 감히 평민 주제에 감히 본 황제에게 말을 거는 것이냐?”
“황제라는 족속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를 않는군.”
천마는 그대로 거리를 좁혀서 옥좌를 짓눌렀다.
단단한 청석이 그대로 가루가 되며 부서졌다.
황제는 앉아 있던 자세로 푹 고꾸라져 바닥을 굴렀다.
놀란 얼굴에는 당황과 부끄러움이 한가득이었다.
“무, 무슨 짓이냐!?”
“일어나라. 네 옥좌나 네 이름이 널 지켜주지는 않는다.”
“거, 거기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자를 끌어내라!”
황제는 외쳤지만 공허할 뿐이었다.
이미 전력 대부분은 꺾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이들도 두려움에 모습을 감췄다.
이곳에 있는 건 황제 자신 하나였다.
“긴말은 안 하지. 다른 궁의 위치를 말해라. 그리하면 네 잘난 목숨은 보전해 주마.”
“가, 감히 본 황제에게……컥!”
“두 번은 없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황제의 목을 천마가 움켜쥐었다.
강하게 조여오는 힘에 그제야 황제가 깨달았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 나도 다른 궁의 위치 따위는 모른다! 우리는 철저하게 개별적인 활동을 할 뿐이야!”
“얄팍한 소리 따위는 그만둬. 산의 충실한 개가 되어 무극지체를 딸로 삼은 네가 다른 궁을 모른다?”
“저, 정말이다!”
“날뛰는 네 심장이 멎어도 그리 말을 할까?”
천마는 쿵쿵거리는 황제의 심장을 손끝으로 눌렀다.
새롭게 배운 만상지력이 그 주변 공간을 조금씩 옥죄었다.
답답하게 짓눌리는 심장에 황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저, 전부 다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알아낸 건 몇 곳뿐이야!”
“말해라.”
“…….”
황제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주눅 든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버틴다고 될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권력과 황제라는 감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약속했으니 목숨은 살려주마.”
천마가 잡았던 손을 풀며 일어났다.
황제의 얼굴이 ‘살았다.’라는 생각에 활짝 폈다.
“하지만 네 행적이 괘씸하여 그냥 돌아가기는 그렇구나. 앞으로 1년 동안 네 꿈자리를 찾아와 괴롭힐 것이다. 이겨낸다면 무공이 한결 깊어지겠지만…….”
천마가 황제의 이마를 손끝으로 찍었다.
곁다리로 익힌 술법 중 하나였다.
“이겨내지 못하면 폐인이 되겠지. 황제로 태어났다면 한 번이라도 스스로 해결해 보거라.”
“으, 으아아아! 뭐야, 이거!?”
발작하는 황제를 뒤로 한 채 천마가 몸을 돌렸다.
죽여도 좋을 몸이지만, 그저 목군을 배려했을 뿐이다.
1년의 고통이 과연 죽음보다 가벼울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