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6
◈ 암습?
천마는 남자의 말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을 모두에게 전하고 한곳으로 집결시켰다.
때아닌 공동생활에 잠시 당혹감이 번졌지만, 이내 안정되었다.
이건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도 문주님이 계시니까 괜찮겠지.”
“뭐, 그렇지. 상대가 꽤 강하긴 하나 봐. 문주님이 이 정도까지 신중한 걸 보니까.”
“그래 봐야 한 방이지. 지금까지 늘 그랬잖아.”
천마에 대한 믿음이 상황에 대한 두려움보다 강했다.
한 장소에 모여서 생활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평소와 같이 진행했다.
수련도, 식사도, 수면도.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후우. 이 해체본이라는 거 너무 어렵네.”
숙소에 앉아 해체본을 연구하던 한채아였다.
흑영진기를 바탕으로 이를 수련하고 있지만, 해체본은 그녀의 이해보다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튀어나왔다.
“수련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냐?”
“아, 문주님.”
때마침 찾아온 천마에 한채아가 냉큼 일어났다.
“무엇이 그리 널 어렵게 하지?”
“흑영진기를 통한 천지간의 소통이요. 다른 생물에 접촉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건 너무 어려워요. 개념부터 진기의 운용까지…….”
“다른 차원의 능력이니까. 그리 어렵다면 본좌가 좀 도와주도록 하마.”
“어? 정말요?”
반색하는 한채아 앞으로 천마가 더욱 다가갔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였다.
“어, 어 문주님?”
“조용히 하거라. 혹여나 다른 이들이 듣거든 오해하지 않겠느냐. 이건 단지 네 수련을 도와줄 따름이다.”
“그런……가요?”
한채아 턱 끝에 닿는 천마의 손가락.
그녀는 눈썹만 파르르 떨 뿐, 도망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물끄러미 천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눈동자?’
그러다 문뜩.
그녀는 천마의 눈동자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무언가 달랐다.
언제나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 차이가 뚜렷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천마의 손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음? 이건 무슨 의미지?”
“문주님 맞아요? 뭔가 평소와 달라요.”
“다를 건 없다. 너를 어여삐 여겨, 특별히 찾아온 것에 불과하다. 물러나지 말거라, 두려워하지 말거라. 그저 본좌의 손에 모든 걸 맡기면 된다.”
“……문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한채아가 아예 물러나 진기를 끌어 올렸다.
흑영진기가 몸 주변을 돌면서 천마를 위협했다.
“옳게 본다는 것은 진실을 꿰뚫는다는 의미. 네 경지가 한 걸음 깊어졌구나, 화아야.”
“무, 문주님!?”
순간, 또 다른 천마가 한채아 앞에 나타났다.
펄럭이는 도포 자락으로 다른 천마를 휘감고 강렬한 기운으로 움켜쥐었다.
“하하하. 이번에는 조금 빨랐구나, 천마.”
그러자 펑 소리를 내며 다른 천마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건 반걸음 뒤.
회색 암복 차림의 남자였다.
“감히 본좌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희롱하다니. 네놈이 제명에 죽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후후후. 그게 내기였으니까. 이제 겨우 하나를 통과했을 뿐이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아쉽게도 나는 정말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남자의 모습이 배경에 녹아들었다.
마치 뙤약볕에 녹아버리는 눈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그럼 두 번째 시험을 기대하자고.”
웃음기 가득한 소리 역시 허공을 맴돌다 사라졌다.
“무, 문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분신. 아니, 또 다른 자신의 투영인가. 거짓에 진실을 씌워서 흉내 내는 방법이구나. 화아, 네가 거짓을 구분하지 않았다면 자칫 늦을 수도 있었겠어.”
“그러니까 방금 그 사람이 문주님을 흉내 냈던 거죠? 와.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같던데.”
“그가 두른 몸은 거짓이 아닌 본좌의 육체가 맞으니까. 거짓이 진실이 되는 힘이니, 어지간해서는 알아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아……저도 눈동자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알아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눈동자?”
“네. 눈동자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거든요.”
한채아의 설명에 천마가 잠시 침묵했다.
완벽하게 거짓이 진실로 투영된다면 한 점의 다름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채아가 다름을 발견한 것도 사실.
‘그런 건가.’ 천마가 짧게 읊조렸다.
“네 덕이다, 화아야.”
“제가요?”
“후에 설명해주마.”
어리둥절한 한채아의 머리를 다독이며 천마가 물러났다. 그녀는 벙찐 얼굴 그대로 머리에 남은 온기만 더듬었다.
가짜가 깊은 곳에 들어왔던 건 맞지만, 이 짧은 다독거림이 왜인지 더 기뻤다.
한채아가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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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사명(四命)은 바위 끝자락에 앉아 입술을 핥았다.
목표를 노릴 때면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특히, 이번 목표는 그 어느 때보다 느낌이 좋았다.
구성원들간의 유대도 뚜렷하고 친밀감이 도드라졌다.
그는 이런 화합을 부수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작은 형.”
그때, 사명의 뒤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이게 누구지? 우리 동생 아닌가.”
천마와 상대한 적 있는 삼아였다.
“혹시나 형이 또 잊을까 봐서 얘기해 주러 온 거야. 우리 임무는 어디까지나 무명잔본을 가져오는 거라고. 예전처럼 폭주해서 날뛰면 이번엔 용서받지 못할지도 몰라.”
“네 누이가 그리 전언하라고 하든?”
“……응.”
“큭큭. 내 숫자를 가져가더니, 나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걸까?”
사명의 몸에서 살벌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삼아가 사색이 되어서는 뒤로 물러났다.
잘못 휘말리면 형제고 뭐고 없는 것이 사명이었다.
이미 한 차례 그런 일을 저지르고 본래의 이름마저 박탈당한 경험이 있었다.
“뭐, 됐어. 어차피 그 계집아이의 생각 따위.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아버지께서 본래의 이름을 돌려주시겠지.”
“으, 응. 그러니까 무명잔본을 가지고 오는 것에만 신경을 써 줘. 아버지께서도 아직 천마는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하셨잖아.”
“삼아. 너는 궁금해 본 적이 없니? 왜 아버지께서는 천마라는 자를 방치하는 걸까.”
“그건……아버지의 일이잖아. 우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흥. 너도 그렇고 그 계집도 그렇고. 다들 아버지 말에 너무 고분고분해.”
“작은 형!”
다급한 삼아의 외침에 사명이 입을 닫았다.
아버지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대화를 듣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인물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 남는 것이다.
왜 그런 존재가 천마를 내버려 두는 것일까.
아무리 특별해도 결국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인데.
“하여튼 난 전부 전했으니까 먼저 갈게.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맡은 임무에나 충실해. 알았지!?”
“…….”
휙, 사라지는 삼아를 보며 사명이 입맛을 다셨다.
의문과 욕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
가짜 천마가 등장한 이후로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단순한 암습이면 몸으로 대처하면 되지만, 이런 종류는 대응이 어려웠다.
게다가 접근 방식은 또 어떠한가.
유혹에 가까운 방식이라니.
이지아는 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찾아오면 방법이 없을 거 같아.”
“왜? 지아는 아빠를 구별하지 못해?”
“끄응.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야. 태상문주님이 그렇게 훅 들어오면 판단하기 어려운 거라고.”
“누아는 안 어린데. 바보, 지아.”
“으휴. 내가 누구한테 고민 상담을 하는 건지.”
열 번 생각해도 열 번 마찬가지였다.
천마로 위장한 가짜가 유혹해 들어온다면 버틸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헤펐나?’ 스스로 머리를 긁으며 고민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연심은 감정이라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 뜯으면 대머리 돼.”
“어? 안나?”
이지아를 찾아온 건 안나였다.
천마가 찾아온 수섬진기를 받은 뒤, 무명잔본 해체본으로 개인 수련을 하던 차였다.
“고민이 많을 거 같더라니.”
“채아도? 두 사람이 같이 무슨 일이야?”
“둘만 있는 건 아닙니다.”
“막내 사제도 왔어?”
안나, 한채아, 백일태.
세 사람이 한꺼번에 이지아의 숙소로 들이닥쳤다.
셋의 공통점이라면 고분의 진기를 받아들이고, 해체본을 연마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셋이 한꺼번에 무슨 일이야?”
“문주님이 가보라고 하셨어.”
“태상문주님께서? 어째서?”
“그건 우리도 몰라. 셋이 모여서 하나의 역량을 낼 수 있다면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엿볼 수도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게 전부야.”
“뭐야, 그건. 수수께끼?”
되짚어 봐도 영문 모를 이야기였다.
어쨌든 손님은 손님.
세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와 나란히 앉았다.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런 조합으로 있는 건 처음이네.”
“응. 전부 다른 시기에 신교로 들어왔으니까. 나랑 안나는 궁에서 이곳으로. 일태는 시험을 거쳐서. 따로 만나서 친해질 기회는 거의 없었지.”
“그런가. 막내 사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배분으로 묶였는데도 친해질 기회가 없던 거네.”
“지금이라도 친해지면 되지 뭐. 이왕 이렇게 모인 거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나 가지자.”
“가, 갑자기?”
“모여서 다른 일 할 것도 아니잖아.”
한채아의 말에 이지아가 뒷머리를 긁었다.
말은 그렇지만 이런 대화는 영 어색했다.
“왜? 내가 문주님 얘기라도 꺼낼까 봐?”
“뭐, 뭐!?”
“솔직히 궁금하지 않았어? 가짜 문주님이 나 찾아와서 정확하게 무슨 일을 했는지.”
“…….”
그래, 이런 부분 말이다.
이지아가 마른침을 꼴딱 삼키며 한채아를 바라봤다.
불편한 얘기를 직설적으로 꺼내는 그녀가 영 마뜩잖았다.
“그 상황이면 지아도 견디기 어려울 거 같은데.”
“무, 무슨 일이 있었는데?”
“문주님이 내 턱을 잡고는…….”
“턱? 턱을 잡았어?”
“그래. 이런 식으로 턱을 잡았지.”
한채아가 손을 뻗어 이지아의 턱을 가볍게 쥐었다.
살짝 올라가는 시선에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건 뭔가 싶었지만, 말릴 틈이 없었다.
“이거 늦어버렸네. 이곳에서 다 모이라고 했다면서.”
“응?”
“어?”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한채아가 들어왔다.
이지아의 턱을 쥔 한채아가 하나, 갑자기 들어온 한채아가 또 하나.
한채아가 둘이 된 상황이었다.
“누……누구야!? 누가 진짜냐!?”
“잠깐, 진정해! 나는 다른 애들하고 같이 왔다고!”
“뭐야!? 또 가짜가 나타난 거야? 내가 진짜라고!”
“두, 두 사람이 똑같이 생겼어!”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다른 점을 찾고 싶어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얼굴, 떨리는 목소리, 몸동작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같았다.
“……선. 선을 봐요.”
혼란 속, 더욱 뜬금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백일태였다.
그는 허공의 한 부분을 손으로 더듬으며 선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잠깐만, 이거…….”
“진기를 끌어 올려!”
“오뢰진기와 흑영진기. 그리고 수섬진기가 공명하고 있어. 스승님이 말한 게 바로 이거.”
백일태, 한채아, 안나의 진기가 공명을 시작했다.
진기의 공명은 파문처럼 주변 공간으로 퍼져서 낯선 흔적을 그러냈다.
그것은 백일태가 말하던 ‘선’과 유사했다.
그리고.
“네가 가짜구나!”
선은 한채아의 얼굴에서 그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