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5
◈ 기묘한 내기
이지아가 커다란 연판장을 들고 천마를 찾았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름과 인장이 찍혀 있었다.
“대부분이 우리 쪽으로 전향을 신청한 건가?”
“네. 두 곳을 제외하고는 전원 항복했습니다.”
항복한 12궁의 목록이었다.
천마도를 찾았던 사절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들은 산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득에 따라 손바닥을 뒤집는 것이 삶의 방식.
곧바로 신교로 갈아탔다.
“조건은?”
“지금까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건 조건도 그 마음을 여실히 투영했다.
툭, 연판장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천마가 다시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하더냐?”
“형세를 보자면 받아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고려하지 않는다면?”
“12궁의 구조는 매우 편협합니다. 권력을 쥐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것에 스스럼이 없던 이들입니다. 이대로 둔다면 변하는 것은 없겠죠.”
“옳다. 머리를 맞대고 이들을 뜯어고칠 방법을 제안하거라.”
“거절하면 어찌합니까?”
“수용과 멸문. 두 길이 존재할 뿐이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세를 읽고 어설프게 항복하는 자들을 두 팔 벌려서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낡은 건 뜯어고치고 썩은 부위는 도려낸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끝은 파괴뿐.
마도에 타협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슬슬 바람을 꿰어낼 차례인가.”
천마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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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닥.
불씨가 나무에 붙어 타들어 갔다.
부서진 파편과 무너진 전각의 형틀이 그 아래에 깔려 그을음에 흐느꼈다.
파괴의 현장.
이곳에 멀쩡한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잔해를 깔고 앉은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백색 도포 차림에 한 손에는 옥색 검을 들었다.
무심한 듯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경계로 흩어진 이들은 추적 중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주인께 항복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어리석은 것들. 도망친다고 한들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한때,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이라 생각하던 어리석은 자들이니까요.”
“마무리는 네가 하도록 해라. 뒤탈 없이 처리할 거라 믿고 있다.”
“네, 대사형.”
남자 주변으로 수십의 그림자가 흩어졌다.
모두가 범상치 않은 경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십의 사람이 사라지는 것에는 촌각이면 충분했다.
“모두 갔으니 나와보도록 해라.”
그리고 그때.
남자가 잔해 너머로 말을 걸었다.
“……눈치채고 있던 건가?”
한 남자가 잔해 주변의 공간을 가르며 걸어 나왔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알아보지 못할 얼굴은 아니었다.
선산의 선자, 금각이었다.
“독대를 원하니 받아주었을 뿐이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할 말? 지금 이 상황에서 네놈과 대화 따위나 주고받을 것이라 생각한 건가? 나는 네놈을 죽이기 위해서 이곳에 숨어 있던 것이다.”
“음. 아, 그렇군. 누군가 날 죽인다는 가정은 해 본 적이 없어서. 이해했다. 네 바람은 복수로구나.”
“오만한 놈. 네가 배신자들을 이끌고 산을 우롱할 수는 있어도 내 검을 벗어나지 못한다.”
금각이 찬란한 금색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종문은 소림.
본래 검은 쓰지 않으나, 특별한 경우 허락되는 무공이 하나 있다.
금강검이라 하여 소림이 살계를 열 때 사용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적기였다.
“소림의 금강검인가. 거짓 무공 중에서는 제법 그럴싸한 종류였지. 하지만 네 발버둥이 내게 닿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나는 산의 선자다. 내 검은 세상의 의지. 네 목을 꿰뚫어 먼저 간 이들의 원혼을 위로하겠다.”
“하하. 우습구나, 우스워. 아버지께서 필요에 의해서 짠 판 위에서 놀아나던 자들이 스스로를 선자라 칭하는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망둥이가 이러할까. 손수 주제를 알게 해 줘야겠구나.”
남자가 잔해 위에서 일어났다.
부스스 떨어지는 먼지가 바닥에 닿지도 않았다.
그 주변만 기이할 정도로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다.
“큭. 감히 사술 따위로.”
“너희는 이 땅에 갇힌 이후로, 천지의 원기로 무공을 익혔지. 그 덕에 대부분이 평범한 무부보다 뛰어난 힘을 쥐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어떠한가. 그 힘이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며 안과 밖을 나누어 스스로를 천인이라 여겼지.”
“닥쳐라! 우리는 산의 선자다! 세상을 위해서 괴이를 막는 존재! 그 누구도 우리를 업신여길 수 없다!”
“말하지 않았느냐. 너흰 그저 우연히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
남자의 전면에서 빛으로 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순식간에 금각의 어깨를 찔렀다.
그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소림의 호신무공 중 어느 것도 이를 방어하지 못했다.
“크아아아! 네놈이 감히!!”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금각이 금강검을 휘둘렀다.
찬란한 금빛이 하늘을 꿰뚫어 남자의 머리부터 내리꽂혔다.
마치 하늘에서 신벌이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닥이 지글지글 끓고 대기가 팽창해서 폭풍처럼 몰아쳤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힘치고는 과할 정도였다.
“만상의 힘 앞에서 이런 잔재주는 우스울 뿐이다.”
하지만 그 빛 속에서도 남자는 태연했다.
손으로 빛을 가르고 양쪽으로 나누었다.
마치 커튼처럼 나뉘어 그가 지나갈 길을 열었다.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모습에 금각의 눈동자가 커졌다.
“부, 불가능하다!”
“어리석은 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천지의 원기가 모이는 이런 영험한 장소에서조차 고작 그런 성취뿐인 자들이니……더 바라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지.”
“고, 고작이라니! 나는 생사의 경지마저 뛰어넘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이 땅에는 천지의 원기가 모여 있다고. 생과 사 정도는 머무는 것으로도 충분히 넘고 남는다.”
남자는 가볍게 손을 뻗어 금각의 어깨를 눌렀다.
마치 산이 짓누르는 듯한 무게.
금각은 감히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세상천지, 비교할 것 없던 그의 내공조차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공은 도구에 불과하다. 세상에 속삭이기 위한 목소리인 거지. 하지만 세상에 손을 넣어 휘저을 수 있다면 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는 상관없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말해봐야 이해 못 할 줄 알았다. 거짓된 세상 속에서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역시 그 정도뿐이겠지.”
“크, 크아아아!!”
남자가 힘을 조금 더 쓰자 금각은 아예 무너졌다.
바닥에 짓눌린 채 몸만 바동거렸다.
주변의 모든 공간이 사지를 짓누르고 있기에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오늘부로 거짓된 선지자들을 폐하고 세상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린다.”
“크, 크으윽!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냐!?”
“무엇 때문이라. 굳이 말하자면 거슬렸기 때문이다.”
“뭐?”
“이 장소는 너희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흔히, 괴이라 말하는 존재를 위한 곳이었지. 그동안은 아버지께서 동면하시어 내버려 두었을 뿐, 이제 다시금 활동하시니 본래의 목적대로 돌아갈 뿐이다. 너희는 그저 그 길에 놓인 작은 돌멩이에 불과했다.”
“괴, 괴이를 위한 장소였다고? 영왕을 만든 것이 너희들이냐!?”
“이름은 잘 붙였더구나. 영왕. 그래, 그 존재를 만든 것이 아버지시니라.”
“어째서!? 어째서 그런 괴물을 만든 거냐!?”
마지막 질문에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은 조소라기보다는 어딘가 들뜬 웃음에 가까웠다.
손끝을 금각의 머리 위에 올리며 짧게 답했다.
“무료해서.”
“……뭐?”
퍼석. 산의 선자, 금각.
그의 마지막 말은 허망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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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손짓에 시체가 바닥으로 무너졌다.
수월궁의 고분에서 만난 시체였다.
수섬진기(水纖眞氣)라는 것을 품고 있었다.
물의 흐름에서 깨달음을 얻는 독특한 방식.
다른 두 진기보다 수수하다 싶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로 괴팍한 면이 있었다.
“심해에서 완전한 무아로 빠져야 그 세밀한 움직임을 느낀다는 거군.”
사람은 견디기 힘든, 바닷속 깊은 곳에서 수련해야 하는 괴공이었다.
그 정수인 수섬진기 역시 숱한 실패 끝에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천마는 이를 안나에게 건넸다.
성향상 잘 맞고, 그녀의 빙공과는 궁합이 좋았다.
“다음은 파랍궁인가.”
항복한 궁에게서 위치를 받아냈다.
고분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진기를 챙기는 건 단순 노동에 불과했다.
무명잔본, 해체본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런 진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천마가 아닌 제자들이 무작정 연마하다가는 수십 년도 모자란 공부였으니까.
“……음.”
그렇게 고분을 등지고 나와서 몇 걸음.
천마는 독특한 기운에 발걸음을 멈췄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기묘한 기운이었다.
“드디어 만나는군.”
안개와 같이 솟아나는 건 한 남자였다.
중간 키에 평범한 외모.
가만히 있으면 대중에 가려져 분간이 어려울 것 같은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무명잔본을 찾으러 온 건가?”
“뭐, 표면적으로는.”
천마로서는 예상했던 손님이었다.
애초에 접근하는 자를 꿰어내기 위해서 고분을 홀로 돌파했던 것이니까.
“신기한 느낌이군. 너도 양피지를 다루던 이와 관계가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해 두지.”
“대체 어디서 너와 같은 이들이 이리도 나온다는 말인가. 산에서 은거할 성정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후후. 우리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은가 보군.”
“호기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일평생 무림을 종횡했어도 비슷한 존재조차 보지 못했다. 갑자기 이리 튀어나오니 호기심이 아니 생길까.”
천마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평생 찾던 것이 싸움을 받아줄 호적수였다.
천년의 시간을 넘고 나서야 만나게 된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너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겨룰만한 능력이 없었지. 좋은 술에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가 만나는 것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이군. 숙성의 시기라. 본좌를 알았다 함은 천 년 전의 이야기인가?”
“뭐, 대충 그렇다고 해 두지.”
그렇다면 이들도 시간을 거스른 걸까.
천마는 눈앞의 남자에게서 많은 것을 읽지 못했다.
독특한 기운만큼 자신을 가리는 것에도 능했다.
마치 안개를 더듬는 느낌이었다.
“깊이 이야기할 마음은 없나 보군.”
“이야기는 지루하지.”
“그럼 이제 목숨이라도 노릴 셈인가?”
“솔직히 당장이라도 너와 목숨을 놓고 겨루고 싶어. 하지만 이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까.”
“흐음. 이해를 못 하겠군. 무명잔본을 노리고 왔으면서 겨룰 수는 없다?”
천마의 의문에 남자가 혀끝을 핥으며 웃었다.
순간, 일렁이던 안개 너머로 그 본질이 언뜻 보였다.
그것은 핏빛으로 얼룩진 살육.
침착한 모습으로 가려진 광기의 일면이었다.
“하아. 아쉽지만 사정이 그러니까. 대신 가벼운 내기를 한번 해보자고.”
“내기라. 무엇이지?”
“닷새 동안 네 주변 사람의 목숨을 노리겠다. 범위가 너무 넓으면 재미가 없으니 신교의 사람으로 국한하지. 막으면 네 승리. 실패하면 내 승리로.”
“재미있는 도발이군. 거부하고 이 자리에서 네 목을 뜯어내면 어떨까?”
“……하하. 너무 그렇게 맛있는 얼굴은 하지 말라고. 나도 참기 어려우니까.”
슬쩍 끌어올린 기세에 남자의 표정이 흔들렸다.
깊은 갈증에 휘말리는 중독자의 얼굴이었다.
“닷새야. 닷새만 버티면 네 승리로 인정하고 무명잔본에 대한 건 포기하도록 하지. 하지만 실패하면 순순히 무명잔본을 내어놓아야 할 거야.”
“너무 일방적이군. 조건을 하나 추가하지.”
“호오. 무슨 조건이지?”
“본좌가 승리하면 네가 모시는 자의 이야기를 해 다오.”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라면.”
짧은 갈등 끝에 남자가 수락했다.
“정보를 듣기 위해서라도 습격하는 네놈을 죽이지는 말아야겠군.”
“하하. 그런 직설적인 도발. 너무 좋아. 그럼 닷새의 여흥을 즐겨보자고.”
그리고는 안개와 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천마는 그 모습의 꼬리를 눈으로 밟으며 주먹을 짧게 쥐었다.
이 자리에서 제압이 가능했을까?
“…….”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