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
◈ 망나니
안기남은 눈앞의 남자가 싫었다.
특급이라 능력치 계급은 인정하지만, 그 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들건들하는 태도도 시건방진 말투도.
남을 깔아보는 눈빛도 그러했다.
“하하. 우리 안 중령님은 어찌 그렇게 딱딱하실까. 좀 풉시다, 풀어.”
“개인 호위명령을 받은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푸핫! 아, 죄송합니다. 고작 1급 투사가 절 호위한다고 하니까 웃음이 나와서.”
“……”
크리스.
한국 이름으로 이국영.
보다시피 아주 싸가지없는 놈이다.
“내일 오후에 회의가 다시 진행되니 오늘은 일찍 주무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아이, 왜 이러실까. 오랜만에 귀국했는데 즐겨야죠. 내가 예쁜 애들로 섭외해 뒀으니까 우리 안 중령님도 가서 좀 놉시다.”
“죄송합니다만, 맡은 바 임무가 있으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고지식하기는. 뭐, 됐습니다. 놀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앉혀 놓을 수도 없으니까.”
크리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야외 풀장 비치에 누워서 어디론가 전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차림새의 여자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그가 말 한 초대 손님이었다.
“자자, 다들 앉아서 한 잔씩 따라 보라고.”
크리스가 상석에 위치하자 여자들이 좌우를 채웠다.
들어오는 술은 하나같이 고급이었다.
저 한 병이면 한달 치 월급인데.
안기남이 호화스러운 향락에 한숨을 내쉬었다.
VIP를 호위하는 일이 드문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좋진 않았다.
특무대라면 나름대로 이름 높은 방첩기관.
그 수장이라는 자가 이런 곳에서 한량을 대접하고 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꺅! 죄, 죄송해요.”
“아이 씨. 너 이 술이 얼마짜리인지는 알고 있냐?”
그때,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크리스의 왼편에 앉은 여자가 실수로 술을 흘린 것이다.
셔츠를 다 적시고 반병 넘게 바닥으로 흘렀다.
“야. 너 바닥에 흘린 거 전부 핥아.”
“……네?”
“핥아서 마시라고. 이 술이 네년 몸값보다 비싸. 그러니까 전부 싹싹 핥아서 마셔.”
지나친 강압에 여자가 벌벌 떨었다.
상대가 VIP면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는 여자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바닥에 흘린 술을 핥으라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지나쳤다.
“안 핥아?”
“꺅!”
그 망설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크리스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뒤로 확 젖혀진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 찼다.
“……그만하시죠.”
보다 못한 안기남이 나섰다.
크리스의 손목을 낚아채서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안 중령님. 이거 뭐 하는 겁니까?”
“서울 한복판입니다. 시끄럽게 일 벌여서 좋을 거 없어요. 여자들은 다 내보내고 그냥 주무십시오.”
“이야, 우리 안중령님. 지금 나한테 명령하시나?”
“명령 같은 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뭐 이 새끼야.”
콰득.
갑작스러운 충격에 안기남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게가 전신에 부과된 느낌이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어디서 중령 나부랭이 따위가 와서 지껄이냐? 어?”
“……크, 크윽!”
“주제를 알아야지. 고작 1급 투사에 불과한 새끼가 감히 나한테 지적질을 해? 내가 윤무락 그 영감탱이 사정을 봐 주니까 너도 동급으로 보이냐?”
“끄으으으!!”
드득. 드득.
대리석 바닥이 갈라질 정도의 무게였다.
안기남은 기를 쓰며 저항해 봤지만, 힘의 차이가 역력했다.
“주제를 알고 자빠져 있어.”
“끄……아아아아!!”
굉음과 함께 안기남의 몸이 완전히 주저앉았다.
팔과 다리가 뒤틀리고 짓눌린 부위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쩍쩍 갈라지는 바닥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우우웅.
크리스의 폰이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어. 어. 오호, 그래?”
그는 무언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전달된 소식이 마음에 든 것이었다.
폰을 다시 품 안에 넣고 안기남을 누르던 힘은 풀었다.
“커, 커헉!”
안기남이 겨우 숨을 토했다.
죽음에서 간신히 돌아온 듯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우리 안 중령님이 대한민국의 군인인데 함부로 죽이면 안 되지. 암, 그렇지. 내가 이번만 특별히 살려줄게. 그러니까 앞으로는 주제도 모르고 까불지 마. 알았지?”
“……”
“답은 해야지?”
“크으윽! 아, 알겠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크리스의 발에 안기남에 억지로 답을 했다.
고통과 수치심에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럼 난 우리 예쁜이 만나러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수습 좀 해 줘. 저 계집애들 입에서 이상한 소리 나가면 우리 안 중령님이 책임지는 거야.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래야지. 나는 말 잘 듣는 개가 좋더라.”
크리스가 짧게 웃으며 사람들을 가로질렀다.
누구 하나 눈을 마주치는 이가 없었다.
“괘,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뒤늦게 여자들 중 한 명이 부축했지만, 안기남은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부들거리는 손과 발을 억지로 쥐어짜 몸을 일으켰다.
“……분명 이지아라 그랬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
안기남이 입술을 거칠게 씹었다.
#
빼곡하게 적힌 글을 눈으로 훑었다.
‘엠페러’라고 적힌 상호를 바탕으로 수많은 갈래가 나뉘고 있었다.
개 중 하나가 붉은 계집이 있던 트러블이었다.
“붉은 계집아. 널 쫓아낸 이들이 맞더냐?”
“네, 맞아요. 근데 이걸 어디서 구하셨어요?”
“독 쓰던 못난 놈 있지 않더냐. 나름대로 수소문하는 재주는 있더구나.”
독을 쓰던 놈은 말만큼 행동이 빨랐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자료를 한가득 챙겨왔다.
붉은 계집의 사정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뭔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세요?”
“내가 이해하기로 어린 루주는 이곳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다. 아이돌이라는 위장도 그렇지만, 청월루의 루주는 그리 녹록한 신분이 아니야. 헌데, 현상금을 걸고 사냥을 하더구나.”
“청월루의 루주임은 모르는 것 아닐까요? 단순히 아이돌이라 생각하면 가능한 얘기 같은데요.”
“아니. 금액과 동원된 수를 보자면 알고 있다. 알면서도 이리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
수를 읽고 정세를 살피는 것 정도는 쉽다.
굳이 그런 걸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강했기에 번거로움을 피했을 뿐.
“어린 루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제가 알기로는 촬영 때문에 지방에 내려갔어요.”
“지방이라. 공교롭군. 결국 귀찮은 날 파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 엠페러라는 곳을 털어야 하는 걸까.”
본사의 위치와 대표의 얼굴 역시 파악해 두었다.
섭공으로 머리를 싹 훑어주면 필요한 정보가 나올 터.
귀찮음을 불식하며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한 걸음 이전에 찾아온 사람이 있다.
“어라, 안 중령님?”
까만 놈이었다.
어딘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비적비적 걸어왔다.
“엠페러에게 의뢰를 한 건 크리스라는 놈입니다. 윤무락 대장님이 소환한 특급 에스퍼 중 하나죠.”
“내 소개장에 대한 반응인가. 하지만 왜 어린 루주를 노리는 거지?”
“상황이 다릅니다. 윤무락 대장님이 당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크리스를 부른 건 맞지만, 그가 이지아를 노리는 건 전혀 다른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라?”
“네. 그자는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나르시스트. 이지아를 정복하기 좋은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자 하니 떠오르는 얼굴이 여럿이었다.
황궁 절대 고수니, 남궁 세 가의 숨겨진 검이니.
온갖 것들로 치장한 망나니들이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점이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하지만 까만 것아. 어찌 그걸 나에게 말하는 것이냐? 너는 군부의 개일 텐데?”
“……난 군인이지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런 빌어먹을 새끼 따위의 호위를 하라고 아등바등 올라간 게 아니라 이겁니다.”
“호오. 말투에 분기가 가득 찼구나. 네 몸은 그자의 짓이더냐?”
“망할 놈이지만 실력은 진짜입니다. 눈짓 하나로 날 가지고 놀더군요. 당신이라도 쉽진 않을 겁니다.”
“도발이라. 좋은 수단이다. 네놈이 기특하니 선물을 하나 주마.”
“무……!”
까만 놈을 허공으로 띄웠다.
내외상으로 엉망인 된 몸이었다.
일단은 한 번 씻어내는 것이 좋겠지.
천마진기로 몸을 싹 훑었다.
울혈을 몸 밖으로 배출하고 잘못된 수련으로 어긋난 뼈마디를 다시 맞췄다.
고통이 심하겠지만 그 정도는 적은 대가다.
“십팔로표변창(十八路票變槍)이라는 공부다. 네놈의 작대기가 그럭저럭 모양새는 갖추겠지.”
“끄……그으으으!”
부글거리는 까만 놈 머리에 투로를 새겼다.
스물 아홉 번의 밤과 서른 번의 낮 동안 끝없이 찾아와 괴롭힐 것이다.
이겨내면 창법은 까만 놈의 것이 되고 지면 잃는다.
어디까지나 하기 나름.
이정도면 작은 변심의 대가로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놈이 지금 어디에 있다고?”
“끄윽.”
넘어가는 숨을 겨우 참으며 까만 놈이 입을 열었다.
#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의 사인에 이지아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포항 인근까지 내려와서 3박 4일이나 걸린 촬영이었다.
그 길고 긴 여정이 끝난 것이다.
“수고했어요.”
“바로 서울로 올라가도 되는 거지?”
“아직 안 돼요. 감독님하고 전 스텝 다 모이는 회식자리 있어요. 그것까지 끝내고 올라가야죠.”
“아, 썅.”
매니저, 청하의 말에 이지아가 입술을 내밀었다.
위장으로 있는 아이돌이 어째 본업보다 더 바쁜 느낌이었다.
“됐다, 됐어. 숙소 가서 좀 씻고 쉬자.”
“저 대표님하고 통화해야 하는데.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귀찮아 죽겠네. 나 먼저 간다. 넌 다른 스텝차 타고 와.”
“어? 어디 가요? 가더라도 경호하는 애들하고 같이 가세요!”
“귀찮아, 귀찮아. 뒤에서 따라오라고 해.”
키를 챙겨서 냉큼 차에 올랐다.
청하가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상큼하게 무시했다.
이런 지방 촬영까지 호위를 덕지덕지 다는 건 불편했다.
“야, 여긴 진짜 사람이 없네.”
그렇게 차를 몰고 나와 도로 위를 달렸다.
촬영 장소가 장소다 보니 가는 길이 한적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나 우뚝 솟은 나무는 그림이었다.
“데이트하기 딱 좋은 코스려나……뭐래!?”
불쑥 튀어나온 혼잣말에 괜히 저 혼자 놀랐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 부채질 하고 창을 내렸다.
찬바람에 민망함이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청아를 데리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민망함에 입술만 비죽거렸다.
“……응?”
그렇게 얼굴에 닿은 찬바람이 얼마나 됐을까.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점점이 사라질 때.
어둑하게 내린 그림자 사이로 무언가 움직이고 있음을 이지아가 알아차렸다.
들고양이치고는 크고 숫자가 많았다.
“뭐지?”
이상함을 느낀 이지아가 폰으로 손을 뻗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따라오고 있을 청월루 사람들을 부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콰쾅!!
강력한 충격이 차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