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8
◈ 거래
천마는 거칠게 흔들리는 대지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땅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부스스 깨어나고 있었다.
막하금 등이 곁으로 다가와 주변을 경계했다.
“그놈이 깨어난 건가?”
“동쪽 끝. 바다 어딘가에 살고 있는 거대한 거북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선이 타고 바다를 건넘에 그 웅장함이 마치 섬 같다 했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으나, 이리 보니 과연 허풍은 아니었구나.”
“이런 영물조차 독기에 당한 건가.”
“네놈도 견디지 못했으니, 영물이라 다를쏘냐. 게다가……”
“게다가?”
“아니, 일단은 눈앞의 것부터 처리하자.”
천마나 훌쩍 뛰어 주변으로 선을 그었다.
바닥이 깊이 파이며 달려오던 해적들이 움찔하고 물러났다.
그 수가 물경 수백을 넘어섰다.
“적이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여기서 영동 무가의 힘을 보여준다!”
“해동 유가, 손을 보태겠습니다.”
적의 등장에 분분히 기세가 피어올랐다.
사면이 트인 터라, 천마가 막은 정면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방위를 방비해야 했다.
안기남, 이지아, 윤서나 등.
신교의 모든 무인들이 능숙하게 주변으로 흩어져 각자의 방위를 담당했다.
“지아야, 어딘가 익숙해 보이네?”
“태상문주님 따라다니려면 알아서 익히는 수밖에요.”
“후후. 조금은 부럽네.”
“부러워도 곁은 내어 줄 수 없어요.”
“강단도 있고. 어디 실력도 그만큼 하는지 지켜볼까?”
“눈 크게 뜨고 지켜보시죠.”
선두에는 신교의 무인들이 섰다.
이지아가 초능력으로 땅을 엎고 안기남의 창이 공간을 분쇄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은 윤서나의 것.
끝없이 쏟아지는 누에실과 성난 해도의 발톱, 안나의 얼음이나 한채아의 환락향도 망설임은 없었다.
막하금과 노복까지도 필요 없었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해적들을 도륙했다.
“부활합니다.”
하지만 해적들은 이번에도 부활했다.
조각난 육편이 달라붙어 몸을 만들고, 가루가 된 뼈가 붙어서 형태를 이루었다.
바닥의 핏물마저 거꾸로 되감는 영상처럼 돌아갔다.
그야말로 불사의 군단이었다.
“저, 저런 괴물들을 어떻게 상대하지?”
“젠장! 이런 적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경험이 적은 영동 무가의 젊은 무인들이 당황했다.
나름대로 의기는 있지만, 불사의 적과 상대해 본 경험 따위는 없었다.
이에 박만식이 웃으며 나섰다.
“하하하. 문주님께서 주신 만독공을 시험해 볼 때구나.”
품 안에서 꺼낸 유리병이 사정없이 해적의 육편 위로 쏟아졌다.
부식성인 듯 살점을 녹이며 매캐한 연기를 토했다.
“약병이 언제부터 무공이 된 겁니까?”
“흐흐. 기다려 보라고.”
만독공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박만식은 피어나는 연기에 만독공의 내기를 엮어서는 사정없이 뿜어댔다.
녹색 안개가 사위를 감싸고 해적을 짓눌렀다.
놈들의 재생이 순간적으로 멎고, 하나둘 부서지기 시작했다.
“오, 오오! 효과가 있어!”
“역시 박 사장인가.”
“하하. 어때? 이게 내 실력이라고.”
박만식이 허리에 손을 얹고 가뿐하게 웃었다.
“어? 어어. 다시 살아나요!”
“으악! 부활하고 있잖아요!”
“박 사장님 어떻게 좀 해봐요!”
“어이쿠. 이게 아직 모자란 모양이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박 사장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났다.
불사에 대응하기에는 그의 독공이 모자랐다.
“재생력 자체를 독으로 억누르려 한 건 좋았다. 하지만 만독공의 정수라면 재생의 본질을 파훼했어야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흐흐. 부단히 정진하겠습니다. 그럼 문주님. 저 괴물들은 문주님께서 처리하실 수 있는 거죠?”
“본좌가 이런 조무래기들과 놀면 저 커다란 거북이는 누가 상대하겠느냐. 설아야, 이곳은 네게 맡기마. 그리해도 되겠느냐?”
천마는 박만식을 넘어 안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여기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스승님.”
“그래. 몇 놈 잡고 요령을 전해주어라. 저기 정신 못 차리는 막가 놈에게도 알려주고.”
“응. 응.”
그렇게 몇 마디 말을 툭 던지고는 천마는 하늘로 사라졌다.
모든 이의 시선이 안나에게로 쏠렸다.
“일단……얼리자.”
그녀의 눈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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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휘는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새어 나왔다.
통증이 머리를 울렸지만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머리 위에 떠 있는 그림자는 느낄 수 있었다.
기듯이 바닥을 긁으며 일어나서 뛰었다.
“몸을 낮추세요!”
다급한 외침에 일단 고개부터 박았다.
이내,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몰아쳤다.
몸이 바닥으로 밀려나 나무 둥치에 처박혔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끄으으……헉!”
통증에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거북이의 눈동자였다.
몇 미터 앞까지 다가온 머리였다.
‘고작 거북이.’라는 말은 그 압도적인 체적에 가려졌다.
나름 현장 지휘관으로 숱한 괴이 사냥에 참여해 봤지만 이런 크기는 처음이었다.
“박대휘 소장님을 보호해라!”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지키려는 건 한서휘였다.
그의 검은 수십, 수백으로 나뉘어 거북이의 피부를 찔렀다.
충격에 거북이가 들썩이고 머리가 멀어졌다.
피부 위에 새겨지는 작은 생채기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추, 추가 포격을 가해라! 저 괴이를 죽여 없애!”
“일반 화기는 특급 괴이에게는 안 먹힙니다. 위성 병기라도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그건 그 빌어먹을 천마가 부숴 먹었으니.”
“에이잇! 그럼 핵이라도 떨어뜨려! 뭐라도 하란 말이다!”
박대휘는 거의 발악처럼 외쳤다.
상황이 특급 재해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뒷배가 궁과 산 아닌가.
지금껏 세계에 내려왔던 특급 재해들은 모두 그들이 상대했다고 안다.
그러니 이건 요식행사여야 했다.
군이 천마보다 낫다는 안도감을 심어주는 행위.
그걸 위해서 그저 서둘렀다.
어찌 됐든 자신은 안전하니까.
“젠장! 좌우에서 해적들이 옵니다! 능력자들은 박대휘 소장을 최우선으로 보호해라!”
“장난쳐!? 우리도 죽게 생겼다고!?”
“집어치워! 저런 쓰레기 구하려다가 다 죽게 생겼어!”
“나 혼자라도 살겠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자신을 구하려는 건 경쟁 위치에 있는 한서휘.
명령체계 아래에서 말이 되어야 할 능력자들은 자기 살기 바빠 모조리 도망치고 있다.
군권도 신분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태우민! 뭐라도 좀 해보란 말이다!”
“……쯧. 아무래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야겠군.”
“뭐?”
“윤무락 대용으로 널 택했던 것이 실수였나보다. 추잡한 늙은이 같으니. 모두 자리를 벗어난다!”
“이……!”
태우민마저 박대휘를 버리고 물러났다.
그가 데리고 왔던 궁의 잔여 병력마저 모조리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안 그래도 엉망이던 대열은 더욱 헝클어지고 지휘 체계는 완전히 붕괴했다.
남은 건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궁색하구나.”
“……!”
그 순간에 귀를 파고든 목소리 하나.
박대휘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커먼 거북이의 그림자 아래로 한 남자가 뒷짐을 쥔 채 허공에 떠 있었다.
만약 지금이 아니었다면 경멸과 멸시로 대했을 남자.
하지만 지금이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남자였다.
“천마!”
목소리에 묻어나는 희망조차 느끼지 못한 채.
박대휘가 절실하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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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거북이는 더욱더 거대했다.
이무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체적이었다.
구전은 전혀 허풍이 아니었다.
“네 등을 두드려 화라도 난 것이냐?”
짧은 물음에 놈이 거대한 포효로 답을 했다.
입바람이 태풍처럼 밀려와 주변을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나무가 뽑히고 바위가 뒤집혔다.
예전 같았으면 신으로 추앙받기 부족함이 없다.
“잠시 대화를 하고 올 테니 물러나 있거라.”
성난 거북이의 콧잔등을 백열의 권으로 쳤다.
콰릉, 하는 우렛소리와 함께 섬 전체가 통째로 들썩였다.
그래도 꼴에 아픈 건 아는지 고개를 쭉 뺀다.
발갛게 달아오른 콧잔등은 퍽 애달프기까지 하다.
“기다려라. 알아들었느냐?”
그제야 커다란 대가리가 움찔하고 거리를 두었다.
크기에 비해 겁은 많고, 독기에 비해 성정은 유순하다.
그렇다고 이무기처럼 독기를 누른 것도 아니고.
독특하기 짝이 없다.
“문주님.”
“음. 백아야, 고생이 많았다.”
“저 괴물과는 결판을 내지 않는 겁니까?”
“저 거북이 말이더냐? 싸우면 퍽이나 재밌을 것 같다만, 그리 용쓸 대상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아이가 있다.”
지친 백아의 등을 어루만진 뒤 아래로 내려왔다.
겁먹은 군부의 아이들은 무기도 들지 못한 채 주춤주춤 물러나기만 했다.
이런 걸 군부라 내밀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리 엎어져 있을 셈인가?”
“크, 크윽!!”
군의 수장인 아이.
힘겹게 몸을 추스르고는 앞에 섰다.
다리는 떨리고 시선은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면서.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는 왜 꼭 충격이 필요한 걸까.
“네가 끌고 온 아이들이 많이 상했구나.”
“비, 비웃기라도 할 셈이냐!?”
“비웃어? 본좌가 널 말이냐? 우습구나. 너 따위가 그런 가치를 지녔다고 보는가?”
“나, 날 무시하지 마라!”
“앉거라.”
대드는 놈을 손끝으로 눌러서 앉혔다.
주변에는 여전히 수천의 세가 있지만 편드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이 권력의 실체일 따름이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자들. 이리 외딴곳에서 고혼이 된다 하여도 상관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아가 그 처지를 불쌍히 여겨 중재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너에게 제안을 하마.”
“제, 제안이라고?”
“재주 있는 아이들 몇을 남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라.”
“그게 전부인가?”
“앞으로 명령은 내가 내린다.”
“무슨……!”
발끈하는 놈을 다시 눌렀다.
여기서 그냥 죽이고 나머지를 처리하는 건 쉽다.
주야장천 말하는 마도라면 그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넘어와 정 준 아이 몇은 아직 그런 마도의 잔혹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 또한 나이를 먹고 유약해진 부분일지도 모르고.
지금은 이리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도 걸림이 없다.
“본좌가 아니라면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저 뒤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현명하게 선택해라. 네 알량한 자존심이냐 아니면 삶이냐.”
“히, 힘으로 날 겁박할 셈인가?”
“어차피 네놈도 국가의 권력으로 본좌를 속박하려 하지 않았는가. 큰 자가 작은 자를 누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따르는 편이 옳지 않겠느냐?”
“구, 국가보다 네놈이 더 크다고?”
“작은 땅덩어리 따위. 무에 무게가 있다고.”
툭 던진 말에 놈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다.
고작 선 몇 개로 나뉜 국가라는 개념에 매몰되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크다.
그러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에게 설득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요구할 뿐이다.
“우리는 천마를 따르겠소.”
“지금 군이고 뭐고 따질 땝니까!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맞소. 군이 우릴 지켜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의탁할 대상과 협조라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남은 아이들의 생각은 이미 넘어왔다.
군부에 속한 아이들조차 말만 하지 못할 뿐, 눈으로는 그 뜻을 함께하고 있다.
“……우, 우리를 살려주시오, 천마.”
“그래. 적어도 살길은 알고 있구나.”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길.
신교의 깃발 아래에 잠시나마 군대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