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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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하이트가 제 시종을 아멜리아에게 배치하는 호의를 보여줬지만, 아멜리아는 마음이 영 좋지 못했다.
아놀드 남작가에서 온 시종이 호위 기사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세상 어느 바보 천치를 데려다 놔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멜리아는 이게 하르트만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황금으로 아버지의 눈을 멀게 하고,
하르트만의 몰락과 연관성을 가진 자신을 성으로 불러서,
과거의 모든 수모와 수난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려고.
그래, 맘껏 해보라지!
데더릭이 자신을 외면한 그 순간부터 아멜리아는 스스로가 산 자 같지 않다고 여겨왔었다,
그러니 어떤 수치를 당한대도 그저 그뿐.
자신에게 단순한 고통 이상이 되지 못할 테니 상관없었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하르트만 공작의 속내를 모른 척하고 시종을 받아들였다.
분명 자신의 시종들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악독한 짓을 저지르리라.
독을 탄다거나, 밤중에 목을 조른다거나, 누명을 씌운다거나.
분명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차는 뭐가 좋으십니까? 아무거나라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낮인데 커튼으로 햇살을 가려놓으시다니요. 채광이 가장 좋은 방입니다. 이렇게 어둠 속에만 있으면 나을 병도 낫지 않습니다.”
“옷은 제때 갈아입으십시오. 번듯한 시녀도 멀쩡히 두고 계시면서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식사입니다. 식욕이 없으시더라도 조금만 드십시오. 예의 바르신 남작 영애께서는 요리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른트는 악독한 흉계를 꾸미는 교활한 시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따지자면 보모에 가까웠다.
제대로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환기하고 누워만 있지 말고 좀 돌아다니라는 소리를 꾸준히, 예의 바르게, 인내심 있게 해대는 것도 용한데.
그것도 모자라서 모든 일과를 철저히 아멜리아에게 맞춰 행동했다.
기상 시간부터 취침 시간에 이르기까지,
마치 처음부터 아멜리아를 모시는 시종이었던 것처럼.
“호, 혹시 나를, 처, 처음부터 관찰하고 있었던 건 아, 아니겠지…….”
“제가 말입니까?”
“아, 아니라면, 어, 어떻게 그렇게 내, 내 생활을 꿰뚫어 본, 것처럼 시, 시중을 들겠어.”
“이런 말씀을 드리면 건방지다 생각하시겠지만, 영애께서 준수하시는 하루의 일과가 생각보다 단순했기 때문에 금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나?
아멜리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루 동안 한 일을 되돌아봤다.
자고, 일어나서, 누가 먹여주는 차를 마시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니 누워서 한참 생각하다가, 자고, 다시 일어나서 약을 먹고, 저녁을 먹고, 또 자고.
짐승이나 다름없는 일과를 떠올리자 아멜리아의 바싹 마른 창백한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졌다.
“그, 그건.”
“제가 주제넘은 발언을 했다면 사죄드립니다.”
“……돼, 됐어.”
아른트가 뜨거운 물에 찻잎을 우려내자 향긋한 향기가 방 안에 퍼져나갔다.
아멜리아는 아른트가 온 이후로 가려진 적이 없던 창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구경하고 있었다.
디켄터 산맥의 풍경은 확실히 근사했다.
사람의 손이 많이 닿은 아놀드 남작가의 후원 풍경과는 다르게 야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푸른 잎사귀, 저 끝까지 한계를 모르고 펼쳐져 있는 하늘,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 있는 하얀 구름층.
아른트는 차를 따르며 권유했다.
“산책을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직 중정의 정비가 끝나지 않아 밖으로 나가셔야겠지만 그것도 특별한 경험이 되실 겁니다.”
“시, 싫어. 이미, 여기 올 때 보, 본 걸로 충분해.”
“마차에서 바라보셨던 풍경과 직접 걸으며 보는 풍경은 분명 다를 겁니다.”
“그, 그래도 싫어.”
아멜리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다.
남작가의 제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게 거북하게 느껴졌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무기력함도, 이따금 일어나는 발작도 점점 더 잦아졌고.
아멜리아는 자신이 불시에 사람들 앞에서 발광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자신의 저택이라면 모르겠지만, 공작가 안에서 발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아멜리아가 움츠러들자 아른트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맘때의 디켄터 산맥은 아름답죠. 이미 아시겠지만, 영지민들이 살던 장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특히 더 신비롭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 그 길이 아, 아직도 있었어?”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영지민들은 전부 다른 곳으로 달아나서 장원은 텅 비었겠지만.”
“그, 그런.”
텅 빈 장원이라니.
아멜리아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른트는 이미 익숙한 듯 말하며 창문을 살짝 열었다.
“사람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산책하시기 좋은 때일 겁니다. 지금 가신다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상쾌하고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 아멜리아의 건조한 뺨을 간질였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거닐었던 산책로가 문득 그리워졌다.
어쩌면,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아멜리아는 산의 마법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 *
“좋아, 좋아. 잘되고 있군. 역시 아른트를 믿는 게 정답이었어.”
아른트와 아멜리아, 두 사람이 함께 성을 나서는 모습을 보자 미소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대로라면 아멜리아가 아른트에게 푹 빠지게 되는 것도 조만간이겠지.
침실에서 창문에 얼굴을 딱 붙이고 두 사람을 음흉하게 구경하는 내 모습을 본 레안드로스는 나를 질질 끌고 가 침대에 앉혔다.
“나중에 아른트에게 성과를 보고 받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제게 해주셔야 할 이야기가 있다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렇지.”
아멜리아를 아른트에게 맡겨둔 이후로도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전 공작부인의 서재에 숨겨진 비밀의 방에서 책을 찾아오는 것부터,
호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게다가 앞으로 레안드로스를 이야기의 주인공 삼아 행동해야 했기에 계획도 다시 한번 더 확인해야만 했다.
어째 여기 와서 편하게 쉰 날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지난번에 꿨던 계시를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두고 점검해봤어. 결과는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몇 가지 단서를 알 수 있었지.”
“단서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왕세자를 물리치는 순간까지의 여정. 그리고 그 여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제까지 얻은 설정을 종합해보면,
유릭의 생물학적 부친은 신적 존재.
그 존재는 지구상에 먼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모습을 감췄다.
유릭은 부친을 소환하기 위해 멸망을 준비하며 이 왕국 내에 총 네 개의 구덩이를 파두었다.
사방위에 하나씩 있는 구덩이는 신을 품고 있으며,
그 신은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몰살시킬 힘을 가진다.
그리고 유릭이 원하는 때가 되면 그것들이 일제히 깨어나 왕국뿐만 아니라 외부로 퍼져나가 별의 멸망을 이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설정만 놓고 보면 저절로 절망감이 생기기 충분했다.
신적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 넷.
그것도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미치거나 죽어버린다는 설정이 붙었으니.
하지만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난 삶에서 겨울 나비와 눈보라 거인을 해치우고 체득한 것.
이 세상에서 불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육신을 가진 존재는 죽을 수 있었다.
죽지 않는 존재는 영원히 침묵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법칙에서 벗어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잘난 신이라는 존재조차 마찬가지였다.
죽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건, 이제까지 아무도 살해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겠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충분한 승산이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키울 거야.”
“설마 제 양부가 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신 차려.”
“죄송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이끌어줄 거야. 계시를 알고 있는 건 나고, 그 계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하르트만 가문의 적자인 나니까.”
레안드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첨언했다.
“공작님께서 계시와 함께 길을 알려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제게 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제가 공작님을 따라가기만을 바라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맞아. 너도 나름대로 노력해야 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엔딩을 보기 위해 레안드로스는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했다.
그러나 현재 이 왕국 내에서 레안드로스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문 것도 사실이었다.
애초에 주인공 버프를 받고 있잖아?
웬만한 검사라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네 번째 회귀를 시작한 회귀자,
원작 소설을 전부 기억하는 유일한 빙의자,
죽어도 다시 되살아난다는 점을 무기 삼아 북부 마수 공략법을 달달 외운 미친놈.
그게 바로 나, 아렌하이트 하르트만의 몸을 입은 유예성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약속 하나만 하자.”
“……약속이라면, 아른트가 했던 것과 비슷한……?”
“아냐, 그런 건 아니고. 네가 지금부터 끝까지 지켜줘야 할 단 한 가지가 있어. 그게 뭐냐면.”
하지만 내가 아무리 제갈공명급의 전략을 짠다고 해도 장수가 없으면 전쟁조차 시작할 수 없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뚜렷했다.
“너는 나를 믿어야 해. 다른 사람이 다 떠나도, 너는 나를 떠나면 안 돼.”
이번 삶의 너는 나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외면한다는 선택지조차 떠올릴 수 없도록.
“세상이 다 내가 틀렸다고 해도 너는 날 믿고 따라와야 해. 레안드로스, 너는 유릭에게 살해당한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산이야. 아른트와 더불어 내가 소유한 마지막 사람이야.”
동정심을 자극하고, 죄책감을 주입하고, 내가 한 것도 아닌 오래된 약속을 이야기한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도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하면 안 되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엔딩을 위한 것.
그러니까, 레안드로스. 너만은.
“네가 유릭을 죽일 때까지만이라도.”
내가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고, 너희에게 엔딩을 가져다줄 때까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의 새카만 눈에 비치는 것은 나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레안드로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전 공작부인의 명령대로, 제 새 주인이신 공작님께 맹세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이야기를 해도 되겠군. 지금부터 우리는 마수를 사냥할 거야.”
“마수라면 산맥 깊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우리에게는 폐쇄된 사냥터가 있잖아.”
“공작님. 마수의 땅에 들어가 사냥하기에는 현재 보유한 인원으로는 부족합니다. 게다가 그것들이 성까지 오게 된다면 남작 영애가.”
“아냐. 사냥을 한댔지 우리가 하러 갈 거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내가 웃자 레안드로스는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봤다.
“손도 대지 않고 마수를 없앨 수 있는 법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선택지는 두 가지.”
그의 손을 놓고 대신 눈앞에 손가락을 두 개 들이댔다.
“돈, 아니면 불.”
“예?”
갑자기 나온 단어에 레안드로스는 영문을 몰라 했다.
“둘 중 하나 골라봐. 참고로 불은 하르트만 선조께서 마수의 서식지에 불을 질러 마수종을 청소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거야.”
“공작님, 너무 위험합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응, 절대로 안 되겠지? 산림지대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큰불로 번질 수도 있겠지? 그럼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겠다. 그렇지? 좋은 선택이야.”
“불이 숲을 불태우는 거라면 돈은 대체 뭡니까?”
나는 일어나서 옷을 탁탁 털고 비죽 웃었다.
“뭐긴 뭐겠어, 돈에 눈이 먼 물질만능주의자들을 사용하는 방법이지. 지금 에이슬링 상단이 동부에 한창 투자 중이라며?”
이전 회차에서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게 찜찜했던 차에 잘 됐지 뭐.
아이든, 고마워해라.
나 만나러 올 때 선물 잔뜩 들고 오는 거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