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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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무기다.
전장에서 이가 다 빠진 칼을 들고 다니는 무장은 없다.
말 그대로 정신 나간 행동이지.
레안드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소설 초반부에서 가지고 있는 검은 아무리 잘 쳐줘도 평범한 검에 불과했다.
레안드로스 버프가 있어서 마수까지는 가능해도, 역시 그걸로 신을 죽이기에는 버거웠다.
그러니 우선은 동부의 인력부터 끌어모으려고 했는데.
“다시 말해봐. 에이슬링 상단주 후계가 뭐라고 했다고?”
“공작님께서 하신 발언에서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기에, 추후 찬찬히 찾아뵙고 이야기를 논의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합니다.”
안 오겠다는 뜻이잖아, 그거.
공작의 제안을 무시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걸 읽고 나서도 동부 사업에 달라붙어 있겠다는 배짱을 부린다고?
뭔가 이상했다.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두 번째 삶에서 아이든에게 정보를 넘겼을 때 아이든은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 올린 근거에 기반해서 동부가 위험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난번 회차에서는 동부가 위험하다는 근거는 없었지만, 내 편지를 받자마자 달려왔지.
혹시 그렇다면.
“……아직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건가?”
매 회차마다 각 등장인물을 만나는 시기를 점점 앞당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가.
예정보다 빠르게 만난 아멜리아가 아직 경계심을 풀지 못한 것과 비슷하겠지.
지금 이 시점에 동부가 위험하다는 징조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이 순풍만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동부의 사업은 왕성에서 주관하며 두둑한 돈줄이 지원하는, 누가 봐도 신뢰성 있는 국가사업.
그래서 아이든 역시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나는 손짓으로 시종을 침실에서 내보내고 아이든의 답장을 다시 들여다봤다.
글은 한없이 정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슬쩍슬쩍 드러나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 여우 같은 놈을 어떻게 끌고 온담.
동부가 평화로울 거라고 믿는 놈에게 대체 구덩이에 대한 증거를 어떻게…….
‘잠시만.’
눈이 번쩍 뜨였다.
증거는 만들면 되잖아.
나는 구덩이가 어떻게 위험한지, 그 안에 뭐가 살고 있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 그걸 폭주시키는 방법만 찾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지난 회차, 지지난 회차에서 아이든이 얻었던 확신이 어떤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구덩이가 위험하다는 생각만 주면 되는 거 아니냐.
역시 발상의 전환이 중요한 법이구나.
발상이 한 270도 돌아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대수랴.
나는 이불을 걷어버리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회귀할 때마다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가능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문밖으로 나서니 멀리서 시트를 옮기던 하녀 하나가 황망히 다가왔다.
아른트가 성의 보수를 감행하면서 마을에서 대거 유입시킨 평민 출신 고용인 중 하나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공작님, 맨발로 돌아다니다가는 발에 상처가 나십니다. 돌아가시면 제가 실내화라도 가져다드릴게요.”
“아냐, 괜찮아.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보다 레안드로스는?”
“기사님이라면, 아까 성 근처의 순찰을 도신다고 나가셨던 것 같아요.”
“불러와. 내가 응접실에서 보잔다고 전해줘.”
아이고, 루셀도 빨리 데려와야겠다.
이쪽도 인력난이 심각하네.
하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레안드로스가 응접실로 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말했던 거에서 계획 변경. 아무래도 동부로 직접 가야 할 것 같아.”
“에이슬링 상단에서 답신이 왔습니까? 오지 않겠다고 했나 봅니다.”
“응. 처음에는 좀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든 입장에서는 납득 가더라고. 그래서 동부에 가서 상황을 좀 보려고.”
“하지만 공작님께서 직접 발걸음을 하신다면, 아무래도 얕잡혀 보이지 않겠습니까.”
“아이든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되는 문제잖아? 걱정하지 마.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할 테니까.”
“반대로 저는 드러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왜, 싫어? 빼줄까?”
“전혀 아닙니다. 불만은 없습니다. 공작님의 안위를 우선시할 수 있다면.”
레안드로스가 정색하며 말했다.
새삼스럽지만 레안드로스는 정말 외골수적 성향이 강했다.
이런 애가 나를 떠날 정도면 나는 대체 지난 회차에서 어떤 잘못을 한 거냐.
반성하자, 반성.
“그럼 언제쯤 출발할까?”
“공작님께서는 말을 타보신 적이 없으니, 마차를 수배하려면 이틀 정도 걸릴 듯합니다.”
“아냐. 나 말 탈 줄 알아.”
“……공작님께서, 말입니까?”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승마를 배운 적은 없지만, 슬레이 등 위에만 매달려있던 시간이 얼만데.
나를 향해 ‘그럴 리가 없는데’ 같은 눈빛을 보내는 불신자를 보며 목에 걸린 호각을 슬쩍 어루만졌다.
맘껏 의심해라, 이 자식아.
“준비가 가능하다면 오늘 밤에라도 출발하지. 원래 밤을 틈타서 움직이는 게 침입자의 정석이거든.”
“산의 길을 생각하면 낮에 출발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동부에서 돌아다니는 건 밤이어야 하잖아.”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레안드로스가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설마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얼굴을 보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준비라도 철저히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필요 없어. 물도, 식량도 챙기지 않아도 돼.”
파격적인 발언에 레안드로스는 눈에 띄게 당황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거기다 대고 못을 박았다.
“오늘 해가 완전히 지면 성문에서 출발한다. 늦지 않게 오도록.”
* * *
텅 빈 성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짐수레도, 말도, 하다못해 마중하는 고용인들도 없었다.
어둠을 밝히는 횃불만 근처를 조용히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레안드로스는 그곳에 혼자 서 있었다.
해가 진 하늘의 끄트머리에는 희미한 노란색이 남아있었지만, 주변은 이미 어둠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는 제 주인의 결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필 이렇게 위험한 상태에서, 어떤 물자도 없이 움직이겠다고 하다니.
이동을 도와주는 아티팩트라도 손에 넣으신 건가.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설핏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렌하이트가 막 성에서 나와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같이 평화로운 걸음걸이였다.
“늦어서 미안. 아른트가 없으니까 망토를 어디 뒀는지 통 못 찾겠더라고.”
“제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셨으니 마구간에 가서 직접 말을 고르시겠습니까?”
“아냐. 동부까지 타고 갈 말은 이미 있어.”
아렌하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목에 걸고 있던 호각을 끄집어냈다.
아놀드 남작 영애가 맡아두고 있던 전 공작부인의 유품이라고 했던가.
반쪽짜리라 소리조차 날지 의문인 호각이었지만, 아렌하이트는 그것을 입에 물고 훅 불었다.
바람 소리가 작게 났다.
뭔가를 부를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다.
옆에 있던 레안드로스도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렌하이트가 무엇을 시도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아마 실패로 돌아갔을 거라고 짐작한 레안드로스가 막 입을 열려 할 때.
뭔가가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레안드로스는 순간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나무만큼 큰 괴이한 현상의 윤곽이 레안드로스의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줄어들었고, 횃불의 빛조차 닿지 않는 음지에서 어렴풋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타고 난 재에 묻힌 숯을 떠올리게 하는 새빨간 눈.
세상 어느 것보다 새카맣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 몸.
마찬가지로 까만 갈기와 말총.
어둠을 빚어 만든 것처럼, 완벽한 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슬레이프니르.”
아렌하이트가 반가움을 가득 담아 부르자, 말은 즉시 아렌하이트에게 다가갔다.
하르트만의 마구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며, 고삐가 채워지지도 않은 말이었다.
레안드로스는 그것이 진짜 말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공작님, 그건 대체.”
“전 공작부인이신 어머니가 남겨주신 거야. 위험하지도 않고, 좋은 녀석이니까 안심해. 앞으로 너도 많이 타게 될걸.”
슬레이프니르라고 불린 말이 자세를 낮추자, 아렌하이트는 안장도 없는 등으로 올라탔다.
그리고는 레안드로스를 내려다봤다.
레안드로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렌하이트의 뒤에 탔다.
말의 기수가 된 아렌하이트는 갈기를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동부 황야로 가자. 가능한 사람이 없는 곳이면 좋겠는데, 숲은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히히힝!
높은 울음소리로 응답한 말이 그대로 앞을 향해 달렸다.
벽에 부딪힐 거라고 생각한 레안드로스는 엉겁결에 아렌하이트를 제 쪽으로 당겼다.
하지만, 강한 충격 대신 어딘가로 쑥 빨려 들어가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전해졌다.
뭔가 말할 새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을 뜬 곳은 하르트만 성이 아니었다.
너르게 펼쳐진 넓은 황무지,
곳곳에 반짝이는 작은 횃불들과 아직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멀리 희미하게 솟아난 분화구 같은 땅.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달만 음산하게 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레안드로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건 꿈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뜨뜻미지근한 동부의 공기, 흙먼지가 가득한 냄새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렌하이트는 분화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구덩이라고 불리는 거야. 저기서 마수가 출현하고 있지. 황무지 사업의 핵심이기도 하고.”
“저걸 부숴야 합니까?”
“아냐. 네가 할 일은 따로 있어.”
아렌하이트의 손이 움직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막사와 횃불과 사람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저기가 전초지겠지. 너는 가서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켜. 구덩이에서 마수가 곧 나올 거라고,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설득해.”
“그들이 순순히 제안에 따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때는 네가 그들을 지켜.”
“지키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도망치지 못한 사람, 도망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호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나도 곧 갈게.”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지키라니.
레안드로스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에서 내렸다.
전초지까지는 걸어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레안드로스가 전초지로 향하자 아렌하이트는 말에게 명령했다.
“구덩이 위로 가자. 눈에 띄지 않게 달릴 수 있지?”
-푸르르릉.
아렌하이트를 태운 말은 기수의 명을 거침없이 따랐다.
발굽이 밟고 지나간 풀잎은 꺾이지도 않았다.
산들바람처럼 달리는 말이 구덩이 위로 올라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겨우 사람 하나가 서 있을 수 있을 만큼 좁은 땅.
그 위에 선 아렌하이트가 구덩이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모처럼 들여다본 심연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기분 나쁘게.”
그렇게 중얼거린 아렌하이트가 제 팔을 걷었다.
하얀 팔이 밤하늘 아래 드러났다.
아렌하이트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손목을 이로 물어뜯었다.
입 속으로 비린 맛이 훅 몰려왔다.
뜯어낸 살점을 구덩이 안에 퉤, 하고 뱉은 그는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피를 구멍 안으로 떨어뜨렸다.
언젠가 유릭 왕세자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아렌하이트는 숱한 어인족을 바쳐도 깨어나지 않던 남부의 신을 자신의 눈알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깨워낸 순간을 기억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피도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구멍 안에서 서늘하고 역겨운 바람이 불어왔다.
[별…… 비행을…… 눈을 떠…….]부글거리는 불길한 소리. 머릿속을 통해 직접 울리는 것 같은 처절한 울음.
아렌하이트는 손을 거두었다.
이제 주인공이 활약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