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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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취직 활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좋든 싫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이해득실이 조금이라도 작용하는 곳. 가령 회사에서 쌓는 관계는 좀 다르다는걸.
겉으로는 하하호호 화목한 곳이라도 속내를 까보면 크게는 부서별, 직급별부터 작게는 나이별, 출신 학군지별로 파가 갈려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다른 파벌을 배척하고 자신이 속한 무리에 이득을 가져다주려 다양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험담, 아부, 밀어주기, 상담, 격려, 차별, 소외, 권유.
거기서 내가 취한 행동 방식은, 최대한 납작 엎드려서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사원이나 주임만큼 어리숙하지 않지만 동시에 과장이나 차장만큼 꼬장 부릴 힘은 없는 대리라는 직급.
해당 직급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생각보다 그 방식은 잘 먹혔다.
무사히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 가면서 귀찮은 정치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앞에는 아홉 명의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들이 있었고,
나는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런 재능이 없는 회사원일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밑천이 드러난다는 건 각오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취한 행동 방식은,
바로 관전.
“그쪽은 아무래도 취급하는 물품 자체가 궤를 달리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영역을 확장한다 해도 점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동부에서 우리 상단이 출자한 보급품의 비율을 고려해볼 때 당연한 요구요.”
“이번 사업은 동부와 연관이 없습니다. 디켄터 산맥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지요. 역시 이번 사업에 있어서 투자금 규모를 확인하고…….”
“아니, 하지만 단연 투자금의 규모만 확인할 게 아니라…….”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인력의 이동은 어떻게…….”
음, 들어봤지만 역시나.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지난 회차에서 아이든과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었던 건 아이든의 배려 덕분이었구나.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공작님, 공작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이고 깜짝이야.
뭐라고? 방금 하나도 못 들었는데.
“내 의견을 묻는 건가?”
“공작님께서는 이번 사업의 기반이 아니십니까? 마수들이 존재하는 땅을 유일하게 영지에 보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공작님의 의견 역시 들려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스무 쌍이 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려니 어쩐지 기분이 불편해졌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지.
“글쎄, 나는 그대들에게 마수가 나오는 땅을 임대 해주고, 사업에 필요한 인원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줄 뿐일세. 물론 정당한 대가를 받고 말이야.”
“하지만 공작님, 에이슬링 상단과 나눈 말씀은…….”
“그때는 하나의 상단과 협약을 맺는다는 가정하에 제안했지.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대들의 모수(某數)에 따라 더 효율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노련한 경영인 아홉 명을 단번에 찍어 누를 만큼의 지식이나 경험은 없다.
하지만 정론이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
내 말을 들은 사람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맞습니다.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맞겠습니다. 하지만 기초 비용을 산정하고 각 상단의 출자 비율을 결정하기 전에 땅의 임대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렇군. 자네들은 땅의 가치를 얼마로 책정하고 있나?”
“디켄터 산맥은 마수 자원이 풍부하기는 합니다. 그 부분만 놓고 보면 분명 천혜의 자연이지요. 하지만.”
하지만?
그는 제 턱에 뾰족하게 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고, 장비를 설치하는 것도 지형상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마수를 토벌하는 위험성도 저희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기에.”
“되기에?”
“디켄터 산의 토지 임대료는 약 연 금화 오백 닢으로 책정하면 적당할 듯합니다.”
금화 오백 닢.
그것도 1년에 말이지.
나는 인자하게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면 적당한 가치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금화 오백 닢이.”
“물론 자세히 따져보면 달라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지금 당장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홉 상단이 한 해에 금화 오십 닢 조금 더 되게 부담하게 되겠군.”
“그렇습니다, 공작님.”
“어디서 밑장을 빼.”
“……예? 방금 뭐라고?”
이 새끼들이.
이게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보니까 이쪽을 등쳐먹으려고 하네.
지난 회차에서 아이든이 지불한 반년 치 토지 임대료는 금화 이백 닢이었다.
그것도 산맥의 극히 일부 지역에 한해서!
상단 하나와 독점 계약을 맺었으니 비싸게 쳐줬다고 해도, 산맥 전체에 연 금화 오백?
그냥 공작저를 팔라고 하지 왜?
이 씨발 양심 없는 새끼들.
자기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애가 가진 땅을 등쳐먹으려고 들어?
내가 다른 건 다 몰라도 지난 회차에서 맺은 계약서 내용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 금화 오백 닢만 받겠습니다!’ 하고 넘어갔을 거 아냐.
이 쌍놈의 호로새끼들이.
사람을 개호구로 보나.
아이든 체면을 봐서 잘해주려고 했는데 너넨 이제 뒤졌다.
“오백.”
“예,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 오백을.”
“한 상단에 오백.”
“……예?”
“아, 물론 반년을 기준으로 한 토지 임대료일세. 그러니 각 상단마다 한 해에 금화 천 닢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간단한 계산이야. 참고로 선불이니 참고하도록 하게.”
“그, 그렇게 높은 금액을 어떻게 지불한단 말입니까!”
그 남자는 테이블을 치며 일어났다.
그 사람 말고도 다른 이들 마찬가지로 제법 당황한 표정이었다.
고작 땅의 임대료가 한 상단에 금화 천 닢이라니 말도 안 될 법도 하다.
다 합치면 반년에 금화 구천 닢, 1년에 거의 이만 닢에 가깝게 벌게 될 테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대들이 생각해도 너무 비싸지? 내가 그대들을 등쳐먹으려고 하는 것 같지? 일괄적으로 다 받아먹는 건 말이 안 되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토지 임대료만 한 해에 금화 이천 닢이 됩니까!”
“그럼 다른 제안을 하지. 임대료 차등 적용 방식은 어떤가?”
“차등…… 적용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대들도 알다시피, 산맥에는 마수가 풍부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곳에 마수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닐세. 그것들도 좋아하는 환경이 다 다르거든.”
구덩이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힘을 합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거대한 구덩이를 탐사하고 개발하는 데 각자 쪼개져서 일하면 그게 비효율적인 거지.
하지만 산맥은 구덩이와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투입되기 어려운 구조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해도 지을 수 있는 캠프의 규모는 한계가 있는 데다가,
마수종에 따라 공략을 달리 해야하기 때문에 진형 변경이 쉬운 소규모 용병 부대를 활용해야 했다.
“그대들 상단의 주력 분야가 전부 다르다고 들었네. 그러니 전부 같은 마수종을 사냥하려고 다툴 필요는 없어. 자신의 분야에 적절할 것 같은 마수종, 출몰 빈도, 임대 영역을 선택하면 돼.”
그러니 각 상단에 맞는 마수종과 규모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른바 상단 개별 맞춤 서비스.
“마수가 희귀할수록, 자주 출몰할수록, 임대를 원하는 토지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임대료는 올라가네. 물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있을 거고. 잘 생각해보게.”
투자금이 많아질수록 고급 마수를 사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하이 리스크에는 하이 리턴이 따라온다.
그건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였다.
“그렇다면 땅의 분배는 본인이 고를 수 있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군. 그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떤가?”
주판알 좀 튕겨야 할 거다.
아직도 미지수인 사업 분야에서, 왕실의 특혜 없이 충분한 이익을 내려면 다소의 출혈은 감안해야지.
오늘의 회의는 ‘임대료 차등 적용’ 제도를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나가는 사이,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는 이의 등에 종이를 구긴 조각을 던졌다.
그는 뒤돌아보더니, 내가 손짓을 까닥까닥하는 걸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모두가 그렇게 자리를 비우자 집무실에는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남아있던 놈이 슬금슬금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야.”
“왜 그러세요.”
“금화 오백 듣고 열불 뻗치는 줄 알았네. 뭐?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 나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이냐?”
“하, 하지만 결국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끌고 가셨잖습니까!”
“내가 잘나서 그런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호구 잡혀서 다 뜯겼어!”
“하지만 공작님이니까 믿고 있었다고요!”
“이게! 너 말대꾸 한다, 말대꾸!”
아이든이 움츠러들어서 멈칫거렸다.
물론 아이든에게 나쁜 의도가 아니었단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괘씸한 기분이 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러니까 단둘이서만 계약하자고 한 건데 다른 사람들을 굳이 끌고 와서는.
나는 혀를 끌끌 차며 턱짓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아.”
“예, 옙.”
“너 뭐 팔 거야.”
“예? 저는 무기입니다. 생필품도 있겠지만 우선 지금 당장 활용처는 무기만한 게 없으니까요.”
“넌 땅 고르지 말고 내가 주는 곳에 자리 잡아. 너 지금 금화 이백 닢 융통할 수 있어?”
“예? 하, 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럼 반년에 금화 이백 닢만 내. 이걸로 네 토지 임대 문제는 끝이다.”
“아니, 멋대로 땅을 주시고 돈도 가져가시네요. 저도 제 눈으로 땅 볼 줄 압니다, 공작님!”
“팍 씨! 사람이 준다면 주는 대로 받아!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너도 금화 이천 닢 뜯기고 싶어?”
아이든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얼굴로 ‘아니, 대체 왜…….’ 라는 발만 반복했다.
그래도 본인이 따로 특혜를 받게 되었다는 건 눈치채고 있는지 거센 항의는 하지 않았다.
나중에 되면 헐값에 노다지를 얻었다고 기뻐할 놈이 뭐 이렇게 투덜거려?
“넌 전생의 너 자신에게 감사하도록 해. 알겠나?”
“공작님이시면서 시정잡배 같은 말투로 말씀하시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세요?”
“내 마음이야! 그보다, 이거 말고도 따로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어.”
“부탁이라뇨?”
“호기롭게 임대료 차등 적용을 운운하기는 했는데, 디켄터 산맥이 워낙 넓잖아. 내가 아는 지역은 산맥의 극히 일부밖에 없어.”
“오랫동안 하르트만령이지 않았습니까? 가문 내부에서 따로 만들어두신 지도가 있지 않을까요?”
“그게, 왕실에서 식솔들을 잡아가면서 여러 자료까지 가져간 바람에. 아직 반환 절차도 못 밟고 있다네.”
“아…….”
아이든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면 새로 산맥의 지도를 구하셔야겠군요.”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이쪽에서 직접 그릴 예정이야.”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사업에 적절한 영역은 이 근처 범위 내에서 금세 조사할 수 있을 테고요.”
“그래서 지도 제작자를 그대가 좀 수배해주었으면 해.”
“그 정도야 쉽죠. 혹시 특별히 찾으시는 제작자가 있으십니까?”
특별히 찾는 제작자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번 삶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설명해주면 찾아줄 수 있겠나?”
“당연합니다. 용병이나 모험가 길드에 수배해보겠습니다.”
아이든은 믿음직하게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그리고 그 장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이든에게 지도 제작자 수배를 의뢰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는 두 명의 용병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솜씨 좋은 지도 제작자와 용병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제 이름은 막스이고, 개인 용병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이쪽은 제 아들 요나스입니다.”
막스와 요나스.
북부에서 목숨을 잃었던 이들과 다시 재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