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39
(138)
이른 새벽, 아멜리아와 베르데는 영문도 모른 채 아렌하이트의 침실로 가야 했다.
아렌하이트는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어쩐지 피로한 기색이었다.
더불어 그의 주변을 감도는 기운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그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평소 같지 않게 험악한 표정으로 아렌하이트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였다.
마치 그의 주인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베르데는 옆에 서 있던 아멜리아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고 눈짓을 보냈지만, 아멜리아라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낼 재간은 없었다.
아렌하이트가 눈두덩이를 문지르다 입을 열었다.
“쉬고 있었을 텐데 불러서 미안해. 하지만 논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우리가 돌파하지 못했던 마을 외곽으로 나가는 일에 대해서 말인데.”
“저는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차라리 이 마을은 포기하고 그대로 떠나는 편이 낫습니다.”
“레안드로스, 그 말은 여러 번 들었어.”
인내심을 꾹꾹 눌러 담은 아렌하이트의 말은 숫제 경고에 가까웠다.
레안드로스는 다시 입을 다물었고, 더욱 살벌해진 분위기에 베르데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렌하이트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이어 나갔다.
“마을 외곽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아티팩트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 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아멜리아와 베르데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가 아닌가?
“마, 마을 변두리로, 나가, 가려면, 아티팩트를 파, 파괴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 정확한 위치나 어떤 형상인지도 모, 모르니 문제인 거죠.”
“그렇지.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티팩트를 부수는 건 중심부를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야.”
“뭐라고요? 혹시 다른 방법을 알아내셨다고 하신 건 아니죠? 고작 하룻밤 사이에요?”
베르데가 따지자 아렌하이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맞는데.”
“어떤 방법인데요?”
“아무리 아티팩트라고 해도 살아있는 모든 만물을 그렇게 속일 순 없지. 어쨌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 이상 벌레나 쥐 같은 다른 생명이 살지 않겠어?”
“공작님 말씀은 그런…… 벌레나 쥐를 활용해서 변두리까지 나가자고요?”
“비슷해.”
“어우 씨, 아멜리아 양. 내가 공작님 몸은 치료해도 허언증까지는 고칠 수 없거든요. 이쯤이면 병도 수준급이에요. 치료해달라고 해도 안 할 겁니다.”
베르데의 망발에 아멜리아의 눈길이 서늘해졌다.
언제 이 망측한 주둥아리를 닫을까, 하고 예상해보는 눈이었다.
아렌하이트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
“왜 그렇게 말해…….”
“아니, 공작님. 생각해보십쇼. 쥐나 벌레 같은 놈들은 중심을 벗어날 수 있다고 치자고요. 바퀴벌레 하나 잡아서 끈을 목에 매고 달리게 시킬 겁니까? 아니면 서커스단에서 훈련받은 쥐를 구할 거냐고요?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훈련받은 쥐라면 있어.”
“대체 괴짜 발명가도 아니고 무슨- 예?”
“쥐가 있다고.”
“예?”
베르데가 자신이 들은 답을 다시 곱씹어보는 사이에 레안드로스는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렌하이트는 동의를 구했다.
“있다면 사용하는 건 괜찮지?”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이해 못 하겠는데요.”
공작이 쥐를 길들이는 취미가 있었나?
베르데가 방을 둘러봤지만, 쥐를 키우는 바구니나 작은 철창, 하다못해 상자조차 없었다.
아렌하이트는 침대에 앉은 채로 고개를 왼쪽으로 쭉 뺐다.
마치 베르데의 뒤에 있는 뭔가를 보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베르데가 얼결에 몸을 비키며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아주 여러 개의 작은 발톱과 발이 나무 바닥에 부딪히는 토토독하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진짜 쥐예요?”
아렌하이트는 웃기만 했다.
“잠시만 기다려보자.”
베르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작님, 허언증이 미쳐 날뛰는 건 아니겠지.
* * *
기다리는 동안 베르데와 아멜리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베르데는 자꾸 무언가가 신경 쓰이는지 문께를 흘금거리고 있었고,
아멜리아는 저 혼자 어떤 생각에 골몰하는 중이었다.
레안드로스는 끝까지 앉지도 않고 내 옆에 서 있었는데 나를 보지 않는 건 여전했다.
시간이 좀 지나 나까지도 무료하고 졸릴 때 레안드로스가 저기 떨어진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진심이 아니면 뭐겠어.”
“처음 들어왔을 때 이상한 점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은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위험한 거 아냐. 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계약한 거야.”
“당장 목을 물어뜯는 것만이 위험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쪽으로는 내가 너희들보다 더 강할걸.
나는 뺨을 긁적이다가 물었다.
“뭐, 물어뜯기면 그만이지.”
“공작님.”
“그래서 너는 계속 그렇게 고개 돌리고 있을 거야?”
“……공작님이 제 동생이었다면 벌써 호되게 혼냈을 겁니다.”
“나는 너희를 나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레안드로스는 아닌가 봐?”
“지금 농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도 말장난하는 거 아니야.”
이런 방법까지 써야 하느냐는 레안드로스의 회유는 잘 들었지만, ‘이런 방법’ 외에는 쓸 수 있는 게 없는걸.
“나는 검도 못 쓰고, 아멜리아처럼 똑 부러지는 것도 아니고, 아른트처럼 성실한 것도 아니니까. 할 수 있는 선에서 지원해야 하지 않겠어.”
“공작님.”
“어머니가 계셨다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라고 생각해.”
전 공작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레안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쯤이면 레안드로스에게 전 공작부인은 가불기가 아닐까.
자신을 거두어주고 잘 대해준 은인을 대하는 태도라기에는 너무 진지하게 임하는 거 아닌가?
이 반응은 은인을 대하는 것보다는, 좀 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레안드로스. 설마 전 공작부인을…….”
“우와아아악!”
갑자기 베르데가 의자에서 펄쩍 뛰어올라서 나까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같이 놀란 아멜리아가 경기 들린 베르데의 등을 퍽퍽 때리고 나서야 베르데가 외쳤다.
“문에서 소리가 났어요! 소리가 났다고요!”
“소리? 아. 벌써 돌아온 모양인데.”
“뭐가 돌아와요?”
베르데가 반문하는 사이에 문고리가 덜걱거리더니, 문이 그대로 끼익하고 열렸다.
다들 문을 쳐다봤다. 베르데는 숨이 멎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열린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나?
그 순간 아주 작은 무언가가 쏜살같이 문지방을 넘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램프 밑 그림자, 가구 사이의 틈새, 테이블 밑 등 어둡고 보이지 않는 곳을 민첩하고 재빠르게 돌아다녔다.
타다닥 하는 조그만 소리와 함께 찍찍거리는 울음이 들렸다.
베르데가 의자 위로 냉큼 올라가서 나를 내려다봤다.
“쥐, 진짜 쥐입니까?”
“쥐긴 한데.”
“쥐긴…… 하다고요?”
나는 이제 침대 밑으로 굴러들어온 그림자를 향해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추었다.
한쪽 팔을 바닥에 대자, 찍찍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이리 온. 착하지.
묵직한 무게감이 팔을 올라탔다.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자 어룽거리는 램프 빛에 그것의 형상이 드러났다.
베르데는 짧게 소리를 질렀고, 아멜리아도 당황해서 일어나느라 의자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생명체는 쥐였다.
긴 분홍색 꼬리, 윤기 없는 회색 털가죽, 네 개의 다리와 손가락처럼 보이는 발가락과 발톱.
고개를 뒤로 젖히느라 주름 잡힌 목덜미는 자글자글했고, 보통의 쥐보다는 좀 더 커서 색색거리며 숨을 쉬는 게 전부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쥐의 머리는 설치류의 그것이 아니라, 늙수그레한 인간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뺨과 이마의 살가죽은 축 처졌고, 흰자가 없는 작고 동그란 검은 눈은 사악하게 빛났다.
진짜 인간처럼 머리에는 듬성듬성 머리카락 같은 것이 솟아 있었지만 풍성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쥐는 끊임없이 여기저기 매부리코를 대고 킁킁거리다가, 기묘한 옥타브의 찌이이익 소리를 내며 작게 울부짖었다.
그 광경을 본 아멜리아와 베르데의 머리 위에서 흐리게 일렁거리던 숫자가 바뀌었다.
[73/75] [49/50]“고, 공작님, 그게 대체 뭡니까?”
“내 쥐.”
“사람 얼굴이 달렸는데요.”
“좀 특이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그런 걸 넘어간다고요? 그런 괴물을 등에 난 작은 종기처럼 말하지 마세요!”
베르데가 삿대질했다.
아멜리아 역시 경계 어린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위, 위험하지는 아, 않은가요?”
“전혀. 나와 일종의 동맹 관계라고 보면 된답니다, 아멜리아 양. 앞으로 종종 만나게 될 테니 함부로 밟거나 해부하려고 들지 않으면 좋겠어. 베르데, 너 말이야. 너한테 하는 말이야.”
“그런 건 줘도 해부 안 합니다! 무슨 부정을 타려고!”
베르데가 악악거리는 사이에 쥐는 내 팔뚝 위에서 연신 조잘거렸다.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한참이나 찍찍거리며 열창하던 쥐는 이내 내 팔을 기어올라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있지만, 우리처럼 큰 사람들이 가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네.”
“그, 쥐, 쥐가 하는 말을, 알아 드, 들으셨어요? 그, 그보다, 기, 길이 있긴 한 건가요?”
“그래요, 아멜리아 양. 내 예상처럼 사람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걸로 되어 있나 봐요. 하지만 이 녀석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말해줘도 괜찮은가.
내가 고민하자 지금껏 조용하던 레안드로스가 입을 열었다.
“마을을 나가느냐, 아니면 길을 따라가느냐. 둘 중 하나겠습니다만, 공작님께서는 전자는 죽어도 싫다고 하셨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죽어도 싫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그놈에게 명령하십시오. 길을 보여 달라고.”
한층 더 쌀쌀맞아진 말투가 양심을 쿡쿡 찔렀다.
내가 고집부린다는 걸 콕 집어서 말하다니.
나중에 한 번 날 잡고 풀어줘야겠군.
인면서(人面鼠)의 턱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다가 내려놓자, 쥐는 문가까지 가서 나를 돌아봤다.
우리는 쥐를 따라서 여관을 나서, 전날 몇 번이고 들락거렸던 뒷골목으로 향했다.
이리저리 휘어진 길과, 길을 따라서 잘 배열된 주택.
쥐는 한 집의 뒤로 돌아갔다.
살짝 열린 뒷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간 쥐를 보고 베르데가 물었다.
“이, 이거 가야 하는 겁니까? 진짜로?”
“어쩔 수 없잖아.”
“무슨 쥐를 따라서 가택침입까지 해요! 이거 범죄라고요!”
“그럼 여기 있던가. 나는 일단 들어가 볼래.”
“고, 공작님, 위험 하, 할 것 같으니까, 저도 함께.”
“…….”
“이봐요, 기사 형씨. 당신도 갑니까? 가냐고? 아니, 대답 좀. 그냥 무시하고 가지 말라고요! 이보세요! 당신들 단체로 이상한 거라도 주워 먹은 거냐고요! 야! 이 미친 사람들아!”
악을 쓰던 베르데는 제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같이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들어온 베르데를 뺀 우리는 집에 인기척이 없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이 집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인가.
정교한 세트장 같은 집을 둘러보다가, 내 쥐가 찍찍거리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어느 집에나 흔히 있을 법한 지하 저장고의 앞.
쥐가 킁킁거리다가 그 문 앞을 돌아다니자, 레안드로스가 대신 문을 천천히 열어주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건 어둡고 차가운 계단이나 잔뜩 널린 저장식품 따위가 아니라.
낯선 길목이었다.
“이, 이게 무슨.”
아멜리아가 문을 통해 팔만 살짝 넣어서 휘저어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문 너머의 공기에서는 신선한 이른 아침의 냄새가 났다.
“꼬여 있대요.”
“네, 네?”
“길이 꼬여 있대요. 그러니까 이 문을 열면 원래 나와야 하는 곳은 다른 문에 이어져 있고, 이 풍경은 이 문과 이어져 있는 거라고 하네요. 공간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에요.”
“그, 그러면, 이 뒷골목은 저, 전부 이런 식으로 되어 이, 있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나침반을 사용해도 길을 빙빙 돌 수밖에 없었겠죠.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주지, 우리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요.”
마치 드림랜드 같네.
나는 세 사람을 돌아봤다.
“이 앞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해주세요.”
“에? 왜요? 뭐 때문입니까?”
“공간을 틀어가면서 숨기려고 하는 게 있다면 웬만한 일은 아니라는 의미니까.”
내 답을 들은 베르데가 몸서리를 쳤다.
쥐가 먼저 문 너머로 뛰어들었고, 나는 그것을 따라 한 발을 내디뎠다.
공간이 뒤섞인 미로의 한가운데로.